Chapter 216
“흐음···”
퓰러 박사는 강단 위 의자를 발로 빙그르르 돌리면서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 1초에 한번씩 에밀리가 들어왔다·
“퓰러 박사님· 어떠셨어요? 진짜 제대로 된 증명 같나요?”
‘ㅁㅊㄱㅈㄹ’가 ‘WLOG’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고도 로버트 퓰러는 미리 외워두었던 질문들을 추가로 던졌다·
그때마다 나메는 막힘없이 대답했기에 퓰러 박사도 해석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녀가 줄곧 설명해왔던 ‘프록시마 논’은 ‘디리클레 L-함수의 영점’이라는 사실을 그녀가 떠난 뒤에나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아세파이트 알파군’ ‘카이젠 K 함수’ 등 미지의 고유명사들은 인터넷에 쳐봐도 나오지 않는 것들이었다·
모양과 형태를 보아하니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은 이론들이 너무 많았다·
“만약 페르마가 정말로 17세기 수학만을 가지고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다면 이런 형태이지 않을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타원곡선과 모듈러성 정리라는 현대 수학이 정립되고 나서야 풀렸다·
하지만 그 외의 방법으로도 풀릴 수 있었다면?
그 바탕에는 분명 상상도 못 한 획기적인 이론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로버트 퓰러 박사는 손가락을 경쾌하게 튕겼다·
오랜 고민 끝에 가닥이 잡힌 것이다·
이 증명이 참이든 거짓이든 결과는 중요치 않았다·
나메의 증명에 담긴 내용 자체만으로도 수학계를 뒤흔들 미래가 훤히 그려졌으니·
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자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인내심이 강했다·
“좀 더 다양한 분야를 아는 사람이 필요해·”
인공지능의 발달 이후로 사회에서는 지식인들에게 다시 전문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학사에서는 코끼리를 배우고 석사에서는 코끼리 발을 배운다면 박사에서는 코끼리 발톱 때를 연구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고 전문적 지식에는 끝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분야를 계속 좁혀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코끼리 전문가라도 다른 이들이 연구하는 분야를 전혀 모를 수 있는 폐단이 생겨나버렸다·
“존 폰 노이만이나 테렌스 타오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둘 다 돌아가셨잖아요· 그리고 노이만은 수학자도 아니고 100년 전 이론마법학자인데 왜 여기서 찾는 거예요·”
‘수학’이라는 분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존재가 필요했다·
그래야만 나메의 이론이 이미 나와있는 것인지 아예 새로운 이론인지 교차검증을 할 수 있었다·
결국 퓰러 박사는 다른 방안을 모색했다·
“남은 건 집단지성뿐이야·”
전문가도 100명이 모인다면 코끼리 형상 정도는 대충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박사님 말씀대로 대형 강의실을 빌리기를 참 잘했네요·”
“그러게· 다음에는 먹을 거라도 가져와야하나·”
대머리 교수는 나메가 좋아할만한 간식이 뭐가 있을지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이를 흘끔 쳐다보던 에밀리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타코야끼?”
“?”
“아 죄송합니다· 어디서 타코야끼 냄새가 나서· 절대로 박사님 머리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탈모가 아니라 머리를 민 거라니까!”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토록 어려운 난제들도 풀렸는데 탈모약은 2051년이 될 때까지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타코야끼 냄새를 맡으며 퓰러 박사는 맨들맨들한 머리를 괜히 한번 쓰다듬어보았다·
너무 오래 돌아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 * *
[나메야! 우리 그간의 정은 다 잊은 거야? 직업체험박람회 아니 최근에도 너희 교수님 연구실에서 만났었잖아· 우리 정말 좋았잖아! 제발 다시 돌아와 줘!]
우다연의 절규는 애써 무시했다·
치즈맛 타코야끼 6알·
나는 과거의 우정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택했다·
아무래도 성의를 보이는 사람에게 더 끌리기 마련이었다·
우리는 ‘바크’ 채널이 처음 탄생한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당연하게도 끝까지 따라온 우다연은 건물 앞에서 입구컷 당했다·
“다연 언니랑 아는 사이에요?”
“응?”
“제가 강의실 나오기 전부터 조금 험한 대화를 나누고 계시던데·”
“그것도 들었어? 나메는 귀가 진짜 밝다! 자 여기 한입 더 들어간다 아아-”
“아암· 음· 고마워요 단니엘 언니·”
한국대 음대 1학년에 재학 중인 ‘단니엘’·
“근데 부끄러우니까 이따 선배님들 앞에서는 니엘이나 다니엘이라고 불러줄래?”
“으음 싫어요·”
“그··· 그래 알았어·”
“타코야끼 맛있네요· 위에 치즈가루를 뿌린 게 참신해서 좋아요·”
“그래? 다행이다 좋아해서!”
그녀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 예쁘기만 하구만·
“그 언니 이번 교양 과목 나랑 같은 조야·”
아 그래서 서로 아는 사이였구나· 접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았는데 교양 과목으로 엮인 사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과목 이름도 ‘인간관계의 심리학’이란다·
순간 나는 귀가 솔깃해져서 수업에서 어떤 걸 배우는지 실습으로는 무얼 하는지 물었다·
인간관계가 파탄났을 때 어떤 심리기제가 발생하는지 가르쳐주나?
증오하는 대상이 생겼을 때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면 나도 직접 참관해서 들을 의향이 있었다·
“전혀 그런 수업 아니야! 그냥 솔직히 수업에서는 뭐 배우는지 잘 모르겠구··· 그냥 팀원들끼리 만나서 노는 거랄까···?”
“놀아요? 수업인데?”
“응! 막 볼링장도 가고 VR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고·”
“그게 끝이에요? 에이 설마·”
“끝인데? 왜?”
이건 내가 생각하는 대학 수업이 아니야!
이래서는 전생의 쓰레기같은 아카데미와도 별 차이점도 없지 않은가?
수업은 허울일 뿐이고 귀족들의 친목의 장으로 변질되어버린 카이젠 중앙 아카데미·
평민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자들을 짓밟으면서 어떻게라도 귀족들과 연을 맺으려고 애썼고 귀족 자제들은 수업에까지 와인을 가져와 술파티를 벌이는 그야말로 교육기관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공간이었다·
“히히 잘 놀고 학점만 잘 따면 그만이잖아?”
“아··· 아닌데···”
“나중에 나메도 수업 들으러 와볼래? 교수님께서도 분명 좋아하실 거야!”
전생의 트라우마가 재현되며 눈앞이 아찔해졌다·
단니엘이 이런 사람일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아까 우다연을 따라가는 건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 뭐·
바크 스튜디오에는 그녀가 말해주었던 것처럼 여러 명의 대학생들과 훨씬 나이 많은 여성분이 계셨다·
천교수와 비슷한 아우라를 풍기는 거 보니 딱 봐도 이 사람은 대학 교수였다·
“안녕하세요·”
“아 나메야 너 너무 귀엽다! 그래 안녕 만나서 정말 반가워!”
교수의 목소리 끝이 한 옥타브 올라갔다·
아기들에게 말을 걸면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다는데 막상 당해보는 입장이 되어보니까 심히 부담스럽다·
다른 바크 부원들과도 한 명씩 인사를 차례대로 나누었다·
공통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다들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굳이 하나 따지자면 손가락이 길고 곱다는 것?
“나메는 우리 바크 알아요 바크?”
“네 예전에 추천영상으로 봤어요·”
“우오오오!”
“봐봐 아까 나메가 우리 안다고 말했다고!”
“이게 진짜네?”
그때 당시에도 100만 구독자나 되는 대형 브이튜브 채널이면 한 번도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특히나 클래식 음악을 자주 검색하는 나로서는 피드에 종종 뜨는 채널이었다·
학생들이 들떠서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봤다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언제 봤어요? 어떤 영상인지 알려줄 수 있어요?”
“영상은 꽤 여러 개 봤었고· 거의 다 재작년에 봤던 것 같네요·”
“아아 그렇구나! 우와 재작년이면 나메가 완전 쪼꼬미였을 때네! 여섯 살이면 진짜 어리긴 어리··· 다··· 잠시만··· 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급히 자기 입을 막아보는 여자 선배·
“아··· 아으··· 미안···”
그녀의 눈썹이 팔자로 휘며 눈동자는 또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풀썩 주저앉기까지 한다·
왜? 아 난 또 뭐라고·
“캡슐에 갇혀있을 때만 본 거 아니에요· 구출되고 나서도 가끔씩은 생각나서 찾아봤어요·”
가상현실에 갇혀있을 때 즐길 거리가 너무 없었던 나머지 억지로 본 거라고 착각했구나·
그런 건 아니었다· 보니까 천만 조회수 동영상도 있을 정도로 인기도 많더만·
격려하는 의미로 그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뒤에 있던 단니엘이 눈에 흰자위를 보이더니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져버렸다·
얘네들 단체로 왜 이러는데? 이것도 몰카 같은 건가?
* * *
단니엘은 생각했다· 세상에 이런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둘이나 있을 수 없다고·
한국대 에브리타임에도 아이의 얼굴만 절묘하게 잘린 사진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초상권 문제 때문에 다들 알아서 자중하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나메가 연주를 끝내고 헤어지고 나서도 니엘은 한번 더 그녀를 만날 계획이었다·
니엘은 학교 정문까지 내려가서 타꼬야끼를 구입했다·
그리고 땡볕이 내리쬐는 날씨에 다시 자연대 건물까지 뛰어서 온 보람이 있었다·
덕분에 귀여운 아이와 손도 잡아보고 무엇보다 경쟁자였던 힉스 스튜디오까지 물리칠 수 있었으니까·
선배들도 다들 들뜬 기분일 것이다·
겉보기와는 달리 ‘바크’는 PD들의 현생문제와 컨텐츠 제작 의무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있는 칙칙하고 우울한 집단이었다·
그만큼 나메가 가져오는 활기는 차원이 달랐다·
다들 너무 들뜬 나머지 한 선배가 말실수를 하였다·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단니엘이 정색했다·
[캡슐에 갇혀있을 때만 본 거 아니에요· 구출되고 나서도 가끔씩은 생각나서 찾아봤어요·]
불쌍한 아이가 난처해하지 말라고 애써 웃어보이는 것 같았다·
이목구비 뚜렷하고 귀여운 외모에 가려져 다들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노나메라는 아이는 자그마치 7년동안이나 캡슐에 갇혀있던 사람이라는 걸·
선배도 자기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바로 알아챘다·
하지만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단니엘은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다·
나메가 7년동안 캡슐에 갇혀 있으면서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을까·
그리고 ‘트라우마’를 맞닥뜨렸을 때 어쩜 이리 초연해할 수 있을까·
괜히 이런 곳에 불러서 미안한 감정이 우선적으로 들었다·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 머리가 어지러워질 찰나 단니엘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스튜디오 매트리스에서 다시 깨어난 단니엘·
“니엘아 괜찮아?”
“나메··· 나메는?”
니엘은 자신보다도 나메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지금 교수님이랑 같이 ‘마에스트로’ 하고 있는데?”
“뭐? 설마 가상현실 그거? 나메가 캡슐 안에 있다고?”
“어어· 그치·”
“안 되겠어 나도 직접 봐야겠어·”
“야 무리하지마 니엘아!”
니엘이 옆방으로 달려갔다·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마치 노나메의 경우처럼 어린 시절 캡슐에 갇히다시피 살아온 단니엘·
설령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해 또 정신을 잃을 지라도 나메가 괜찮은지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K순살치킨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2부는 재밌게 보셨나요? 앞으로 다양할 게임들이 나올 3부의 노나메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우다연은 나메를 붙잡기 위해 딸기 크레페를 준비했어야 했다··!!
그리고 나메가 얼마나 산전수전 다 겪은 경력 많은 스트리머인데 니엘 친구는 잘 모르나 봅니다!!
오늘 내용이 조금 짧은 것 같아서 이번주 내로 또 연참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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