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7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요!]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익숙한 동요와 크리스마스 캐롤이 희미하게 울려퍼진다·
늦잠 자는 어린이들을 깨우는 소음에 나메는 8시보다 조금 이른 7시 50분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그녀는 기지개를 쭈욱 켜고 잠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긴 머리카락이 바닥에 축 늘여뜨려진다·
잠에서 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새벽 중에 천교수의 선물을 확인하느라 피곤함이 가시지 않은 모양·
“충전은 다 됐나?”
나메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충전기 선을 자신쪽으로 끌고 왔다·
자그마한 엄지발가락으로 가운데 전원버튼을 꾹 눌러본다·
원형 무선 충전기 위에 잠들어있는 주먹만한 새 형상의 로봇·
띵띵 띠리딩~
새의 목덜미에 푸른색과 초록색의 빛이 반짝이며 작동신호음을 지저귄다·
천교수의 성탄절 선물은 다름아닌 벌새 로봇이었다·
소음이 크고 부피가 큰 드론과 달리 카메라와 홀로그램 기능을 탑재한 벌새 로봇은 스트리머들 사이에서도 자주 애용되곤 했다·
나메가 턱을 찬찬히 쓰다듬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이 비비· 한번 날아볼래?”
부우웅-
벌새 로봇이 빠른 날갯짓으로 허공을 날았다·
방이 워낙 조용한지라 저음의 비행소리가 났지만 사람 간의 대화소리에 충분히 묻힐 정도였다·
나메는 현대과학기술이 집약된 로봇을 신기하다는 듯 한참이나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았다·
“나 따라와·”
어깨 근처를 맴돌며 정신없이 떠다니는 벌새로봇·
침실 문을 열고 나오자 따가운 태양빛이 그녀의 눈을 콕콕 찔러댔다·
동공이 빛에 익숙해질 때까지 실눈을 뜨고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거실로 나왔다·
천교수는 그동안 티비를 보며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줄어드기 때문에 항상 나메보다 두 시간은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다·
부스스한 머리로 밍기적거리며 기어나온 나메·
어딘가에 눌려 빨갛게 자국이 남은 볼살을 보고는 차마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나메야 메리 크리스마스! 옆에 그건 처음 보는 건데? 혹시 산타 할아버지 선물로 주셨니?”
‘나메도 영락없는 어린아이였구나’라며 천교수가 속으로 웃었다·
원래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서 세수부터 하는 아이가 로봇 초기 설정까지 끝마치고 나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메가 한쪽 눈을 찡그리더니 손가락으로 벌새 로봇을 가리켰다·
“아빠가 준 거 아니에요?”
“아니 난 오늘 처음 보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나메 착한 일 많이 했다고 선물을 주시고 가셨나보구나·”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시치미를 뚝 떼는 천교수·
자녀를 키울 때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를 만끽하며 싱글생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나메는 어른의 농락에 순순히 당하고만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아 그러면 당뇨병과 고혈압이 의심되는 고도비만의 노인분께서 근로기준법도 어기고 무휴식 무급으로 32시간 동안 4억 명의 어린이에게 에펠탑 20개 무게인 20만톤 가량의 선물을 초당 1200가구에 마치 레이저 쏘듯 주셨단 말씀이신가요?”
매섭게 쏘아붙이는 나메의 말에 천교수가 결국 두손 두발을 모두 들었다·
“하아··· 그래 항복항복! 내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떻게 마음에는 들고?”
“네· 광고에서만 보던 건데 엄청 귀엽네요· 감사합니다·”
“다행이야 마음에 들어서·”
조금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듯 싶었지만 나메와 오래 알고 지낸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그녀가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메가 한쪽 팔을 꼿꼿이 펴들자 벌새가 날갯짓을 멈추고 그녀의 팔 위에 앉았다·
구태여 말을 하지 않더라도 사용자의 동작과 눈빛으로 명령을 이해한 모양이다·
나메가 머리를 쓰다듬어보아도 벌새도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둘 다 로봇같은 게 똑 닮아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메의 손이 은근슬쩍 천교수의 커피잔으로 향했다·
“에헤이· 안 되지· 나중에 어른 되면 마시렴·”
“흐아암··· 그나저나 오늘 몇 시에 나가실 거예요?”
나메가 손을 다시 회수하고선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렸다·
크리스마스에만 구매할 수 있는 한정판 마력석 매물들이 대량으로 풀린다·
나메는 추후 7서클 마법진을 발동시킬 때 필요한 마나를 미리미리 비축할 생각이었다·
다만 오늘만큼은 안전상의 이유로 천교수도 함께 따라나가기로 하였다·
“나메가 준비되는대로 바로 나갈까?”
“그럼 갈 때 벌새 로봇도 챙겨가도 될까요? 밖에서 테스트해보게요·”
“뭐 안 될 건 없겠지? 마음대로 하려무나·”
소파에서 내려온 나메는 방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렸다·
이윽고 천교수가 앉은 뒤편으로 돌아갔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포옹을 하려다가 그의 양 어깨를 붙잡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항상 고마워요 아빠·”
여전히 익숙지 않은 울림이었지만 언젠가는 이 또한 자연스러워지리라·
나메는 제대로 된 감사 인사를 건네고서야 자신의 방으로 쌩 달려갔다·
* * *
명품이나 보석들을 구매하려면 백화점으로 가야하듯 고가의 마력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상법상 300만원 이상으로 귀중품에 해당하는 마력석은 하나의 소매점에서 단 한 개만 구입이 가능했다·
안전상의 문제도 물론 있지만 무엇보다도 즉석에서 범죄나 테러에 악용될 여지를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법을 제정하는 높은 분들이 로비를 받아서인지는 몰라도 백화점 내의 매장들은 서로 다른 소매점 취급을 받았다·
‘어차피 테러를 일으키려면 사람이 밀집된 백화점에서 더 일어날 확률이 높지 않나?’
정작 규제를 가해야할 곳을 내버려두니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언니 여기서 뭐가 제일 큰가요?”
“완드 말이니? 우리 어린이 고객님은 아직 키에 맞는 완드를 써야 할 것 같은데···?”
“아뇨아뇨· 마력석이요·”
완드와 시계 보석 마력석 등을 취급하는 반클리프아펠 매장·
이런 값비싼 제품을 파는 장소는 한산할 줄 알았더니 그것도 내 편견이었나보다·
찰칵-
찰칵찰칵-
“?”
명품을 온몸에 덕지덕지 휘감은 여자아이들 둘이서 사진을 찍어댔다·
“우왓 미안··· 사진 찍어도 돼?”
“아 네··· 마음대로 하세요·”
화장법이 많이 미숙해보이는 게 아무리 많이 쳐줘도 중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진을 찍은 다음에 허락을 받는 매너는 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
부자라고 해서 딱히 염치가 더 생기는 건 아니었나보다·
오히려 재계서열 16위에 속하는 이보름과 이하루 자매가 새삼 재평가되는 순간이다·
“잠깐만 두 분 모두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직원이 나와 천교수를 이끌고 매장 안쪽으로 안내했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고나니 VIP관이 깊숙한 곳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방사선을 내뿜는 포스의 거대한 초록석 보석이 정중앙에서 우리를 떡하니 반겨주었다·
사이드 진열장에 있는 마력석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여기 보시는 게 그랜드 캐니언 마전지대에서 발굴된 몰다바이트 베이스 마력석입니다· 출력마압이 로그스케일 8·5에서 9 사이고 혹시 정확한 수치측정을 원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해드리겠습니다·”
나보다는 천교수쪽을 보고 설명하는 느낌이었지만 아무튼 상관없다·
“가격이 혹시 어느 정도 되죠···?”
“가격은 현재 저희 모던 아울렛에서 15억 4천만원에 책정이 되어 있으세요·”
“흡···”
점원이 사물존칭의 오류를 범해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액수였다·
15억 4천이면 존대를 하는 게 마땅하지·
무슨 돌덩어리 하나에 15억씩이나 할까·
전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내 가치관이 극렬한 불편함을 호소했다·
치킨이 2만원인 건 괜찮아도 넷플릭스 구독료로 2만 원을 내라고 하면 까무러치는 기분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음에 올게요’라는 말만 남기고선 매장을 쓸쓸하게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나면 쓸 수 있는 7서클 마법을 쓰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돈 하나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겠지만은 문제는 그 돈이 천문학적인 금액이라는 점·
“나메야 구슬 아이스크림 사줄까?”
“네 무지개맛으로 먹을래요·”
할짝-
차가운 아이스크림으로 머리를 식히면서 신성한 크리스마스에 돈 생각을 계속했다·
바이오아카식의 임상3상은 여전히 깜깜무소식·
이러다가 주식이나 해외선물까지 눈을 돌려야할 판이다·
하지만 악마의 속삭임이 유혹해올 때마다 나는 아이작 뉴턴의 명언을 되새겨본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더라!’
세기의 천재도 남해회사 주식사건으로 한화 약 50억을 날리지 않았는가·
조폐국장 월급의 40년치라고 하니 체감상으로는 200억원쯤 되었을 것이다·
‘운에 기대지 말고 정직하게 살자·’
언제까지 내게 운이 따르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때마다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었다·
그래도 이왕 백화점에 온 이상 아무것도 안 사고 갈 수는 없겠지·
“아까 보니까 지하 푸드코트에 뻥튀기 팔던데 그거 하나 먹으러 갈까요?”
“뻥튀기 좋아하니?”
“네· 의외로 그런 게 서양 스타일이라니까요·”
“응 서양? 알겠다 가보자꾸나·”
아이스크림을 모두 해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여보세요? 응! 1층 뒷문쪽 그 아이스크림 파는 데에 노나메 있어· 아직도 있으니까 빨리 와봐!”
“꺄아악 너무 귀엽다!”
“어디 싸인할 종이 없나? 나메님! 저희 티셔츠에 싸인 좀 해줘요!”
어느새 내 주위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한명 한명 다 상대해줬다간 끝이 없으리라·
“오늘 집에 가서 싸인 복사 마법이라도 배워놔야겠네요· 분명 누군가가 개발은 했을 테니까·”
* * *
나메에게 수치 플레이를 당하고 크리스마스 이브 방송 펑크로 카리리에게 이중으로 혼난 아델라는 아침부터 분노의 월오아 랭크전을 돌렸다·
‘흥! 크리스마스든 뭐든 언니랑은 당분간 말도 섞지 않을 거다!’
설령 나메가 게임머니를 두세 트럭씩 준다고 해도 거절할만큼 아델라는 마음의 문을 굳세게 닫았다·
도적이 5티어에 처박힌 메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쌍검으로 적을 난도질했다·
하지만 킬보다는 데스 카운트가 더 많아지며 연이은 패배에 스트레스만 쌓여왔다·
그러다가 조우한 메피스토펠레스·
예전에는 세계 하나를 멸망시킬 포스의 악당이었지만 챌린저 랭크전에서는 그저 사냥당할 오브젝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원래 행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가온다고 하던가·
[블루팀이 메피스토펠레스를 물리쳤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 토벌 후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드디어 채워졌다·
“어어?”
[메피스토펠레스의 추억 – 100% (Complete!)]
[죽음의 안개에 흩뿌려진 메피스토펠레스의 추억· 안개에는 아무런 저주를 찾아볼 수 없다·]
아델라는 게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나메가 알려준 감정 마법을 시전했다·
[시전: 감정]
“4 35 38 20 14 63 63 13 35 31 5··· 아 뭐냐고 대체! 이렇게 보여주면 내가 뭘 어떻게 알아!”
순서 있는 암호가 좌측에서부터 촤르륵 펼쳐졌다·
분명 뭔가 심오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단언한 나메·
그래서인지 아델라는 더더욱 이 암호의 해석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는 나메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혼자 끙끙 앓으며 고민할 동안 어느새 나메가 백화점에서 돌아왔다·
“치··· 둘이서 재밌게 쇼핑하고 왔나보넹··· 아침에 일어나면 나한테 제일 먼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다더니···”
인벤토리에서 VR머니를 확인한 아델라·
[Private Room]
[노나메와 아델라의 집]
[system: ‘아델라’님이 ‘노나메와 아델라의 집’ 파티에서 탈퇴하셨습니다·]
아델라는 급기야 독립을 선언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독자님들께서는 과연 암호를 맞출 수 있을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숫자 대부분은 숫자 그 자체로 보면 된답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괴물이네요··!! 깨어있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나누어주지 않는 이유가 자칫 잘못하면 선물 레이저를 맞고 죽을 수도 있어서라는 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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