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9
8년 전 UN과 한국의 공조 작전은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발푸르기스의 단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소탕해버린 건 마땅히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이로써 야기된 방화대교 폭파는 결국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과가 공을 덮는 걸 두려워해 이러한 사실을 은폐했던 관계자들은 현재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다·
한미연합사령부 부참모장 자리에서 불명예 전역을 당한 육사 74기 원석희 소장도 그 일원이었다·
경찰청에서 면회가 들어왔다·
“오늘 아침 일본 테러 피해자의 시신에서 이런 게 발견되었답니다· 어떻게 좀 뭐라도 알아보시겠어요?”
책상에 사진 여러 장을 툭 던지는 경찰·
그 중 하나를 쥐어든 원석희 소장이 짜증스러운 어투로 일갈했다·
“어이 경찰 양반들· 이렇게 성의 없이 사진 하나 툭 던져주면 내가 뭘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이게 도대체 뭔지 시신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런 정보를 나한테도 알려줘야 할 거 아닙니까· 아유 사람 참 답답하게시리···!”
죄수복을 입은 원석희 소장은 안경을 쓰고 침침한 눈을 찡그렸다·
결국 가장 막내 경찰이 맞은편에 앉아 대머리 아저씨의 괴팍한 성질을 받아주러 출동했다·
“그러니까요 아저씨· 이게 말이죠· 피해자의 두개골에 박혀있었어요·”
“두개골? 두개골 어디?”
“막대 개수를 한번 세어보세요·”
“하나 둘 서이 너이··· 총 아홉 개구먼·”
“아홉 개의 막대가 전부 머리 하나에 박혀있었는데 위치를 가릴 처지가 되나요? 대충 고르게 분포되었다고 보시면 돼요·”
“어흠···”
원석희 소장이 다시 안경을 내려놓고 사진을 눈에서 멀리했다·
바늘이나 장침 같은 게 아니다·
두께는 대략 굵은 엄지손가락 정도 되어보인다·
흰 막대기의 길이는 거의 사람의 팔뚝과도 같다·
쓰임을 전혀 특정할 수 없는 물건·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는 동안 다른 경찰이 소장에게 넌지시 무얼 알려주었다·
“한국 발푸르기스 사건 때도 그 캡슐 안에서 사망한 피해자들이 여럿 있지 않았습니까? 다들 하나같이 관자놀이 쪽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거랑 관련이 있는지 묻고자 온 거예요·”
“아아 그래! 똑같네 똑같아! 딱 이 정도 크기였어·”
원석희 소장이 손가락을 튕기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
“다른 곳은 내 잘 모르겠고· 서울연구소쪽 인질들 시신이 딱 이 모양이었어요· 처음엔 어떤 사이코패스 같은 쌍놈이 드릴이나 대못으로 뚫은 줄 알았는데 모양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 국과수에서도 자기네들은 모르겠다고 해서 뭐··· 결국 흐지부지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 외에 특이점은 더 없었습니까? 정말 중요한 사건이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도 사진으로만 본 거라 잘은 몰라요· 발푸르기스가 요새 좀 잠잠하더니 뭐 동해바다 건너서 튀어나오기라도 했나봐···?”
“네 대충 비슷한 것 같습니다·”
“뭐라고? 진짜?”
* * *
일본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봉변을 당한 여성은 쇼와여자대학에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경영학과 학생으로 밝혀졌다·
8년 전 참변 당시 20살로 대학교 2학년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였다·
두개골에 아홉 개의 구멍이 뚫려 잔혹하게 훼손된 시신은 마치 추리소설에나 나올 법했다·
카츠하타 유파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레지듀가 가득한 액체 포션에 젖어있는 신체 부위는 발견 당시에도 부패가 진행 중이었다고 밝혔다·
일본의 고압적인 공권력은 연루된 범인들을 이 잡듯이 잡아냈다·
아무리 범인들이 끈끈한 우정과 투철한 종교적 신념으로 맺어져 봤자다·
그들이 전생에 독립운동가라도 되지 않는 이상 고문에 가까운 압박을 견뎌낼 수는 없었다·
결국 ‘알레프’의 주교 아오야마 노시노부가 긴급 체포되며 구심점이 사라졌다·
더불어 사건을 주동한 인물들이 전부 의사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사회 엘리트들이라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더 큰 탄식을 자아냈다·
캡슐을 지키고 있던 도카이대학 의학부 게이오기주쿠대학 응용연성공학과 소속 학생 두 명은 범행동기를 밝혔다·
“포와(phowa)입니다· 그럼 또 집요하게 물으시겠죠· 포와란 무엇인가! 사람이 죽으면 의식이 육신의 아홉 구멍을 통해 나가게 되는데 이 아홉 개의 구멍은 윤회에 드는 문입니다· 포와법을 수행하면 정수리의 범혈이 열리고 의식이 그 통로를 통하여 극락세계로 왕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포와를 시도하였고 여성은 아미타불의 본존을 관상하고 무사히 천국까지 당도하였을 것입니다·”
“발푸르기스? 하···! 재주가 좋아 도움은 받았습니다만 그들은 이단이라는 말도 아까워요· 인류의 영적 수준을 격하하는 멍청한 인간들이죠· 왜 인간은 기껏 서방정토를 만들고 극락으로의 회귀를 시도하지 않는 것일까요·”
포와 극락세계 서방정토·
그들은 티베트 불교에서 따온 괴악한 사상을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펼쳤다·
어차피 사형 선고가 확정되리라는 걸 안 이상 해탈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결국 영양가 없는 인터뷰에 화난 기자 하나가 그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피해자에게 죄책감은 없으신가요! 8년간 캡슐을 지키고 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금은 대체 어디서 마련한 거죠?”
“그녀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으니 이 여인은 곧 생불(生佛)입니다· 절을 떠나는 중은 있어도 부처를 저버리는 중을 기자님께서는 보았습니까?”
“아아··· 잘 모르겠지만 네에··· 그럼 자금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나누어주는 성의로 받았습니다· 우리 멍청한 기자님도 언젠가는 사고가속 마법을 꼭 한번 받아보시길 개인적으로 권하겠습니다·”
광기에 찬 눈빛에 기자가 마이크를 내리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남성은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리더니 기자를 향해 느긋하게 조언했다·
“아무래도 믿지 못하시는 눈치군요· 이해합니다· 미개한 두뇌로는 깨달음에 어려움이 따르죠· 그럼 친히 여러분들의 저급한 언어로 해석 및 왜곡해서 말씀드리죠·”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중요한 말을 내뱉을 타이밍을 캐치해낸 것이다·
“우리 알레프는 최종적으로 육체를 버리고 가상현실에 귀의할 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후속연구를 위하여 육체는 저희가 보존하고 있었습니다만 로우 데이터는 모두 오필리아 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오필리아! 잠시만 얘네들 영국의 ASI 제작사 아니야?”
“빨리 국제부 기자들 연락 돌려! 무조건 큰 거 있다!”
“하하하!”
혼비백산한 사람들을 지켜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아수라장이 된 포토라인·
형사들이 눈치껏 그의 팔을 붙잡고 건물 안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마지막 반항이라도 하듯 범인은 최후의 발언을 덧붙였다·
“그래 맞아요 아사네코 아데라! 그녀가 바로 살아있는 부처의 증거입니다! 시발 ASI는 무슨! 그녀가 원래 한낱 인간이었다는 걸 여러분은 알고나 계셨습니까? 하하하하하!”
* * *
원래 세계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영국을 찍으면 대충 맞는다·
영국 오필리아 법무팀 사람들이 전부 사표를 내고 런하기까지는 이틀이 채 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로 보너스를 두둑하게 받을 생각에 신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델라의 회수 건으로 골머리를 앓던 법무실장이 출근도 하지 않고 돌연 퇴사를 해버렸다·
회사 내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퍼질 수밖에·
‘오필리아가 정말 알레프와 연관이 되어 있다면?’
‘이거 알고보면 블랙기업 아니야?’
‘내가 회사에 출근한 것만으로도 내 인생을 실시간으로 망치고 있는 거라면?’
만약 여기서 발푸르기스까지 엮이기라도 한다면 회사는 그야말로 나락 확정일 것이다·
오필리아 사는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법이라는 안전헬멧을 벗어던졌다·
온갖 짐승들이 달려와 물어뜯기 시작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시작은 영국 국가범죄청과 런던광역경찰청·
오필리아가 라이선스를 빌려준 ASI를 전량 회수하고 윤리범죄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수사관들은 유일하게 지적재산권 보험을 들어놓지 않은 ASI 제품을 수상히 여겼다·
그들은 결국 개체 ‘bfa41d67c7’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당장 부는 게 좋을 겁니다· 지금 이 ASI 참조좌표 어딨습니까! 서버 어디다가 숨겨놨냐고!”
대영제국의 형사가 보기 좋게 멱살을 잡았다·
“엿 먹어라· 정보공개청구 신청하시든지·”
혐성국의 CEO가 보기 좋게 가운데손가락을 날렸다·
죽기 vs 자살하기에서 죽기를 선택한 CEO에게 주먹이 날아갔다·
“크헉! 너희들 지금 죄 없는 사람을 때리고도 넘어갈 줄 알아? 언론에 전부 뿌려버릴 거야!”
“마법만 안 쓰면 괜찮습니다·”
“법이 무슨 그래!”
“우리 나라 법이 원래 그래요· 꼬우면 국회의원 하시든가·”
“이런···!”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과도한 공포심을 조성하는 게 약일 때도 있었다·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시티 오필리아 제4 데이터 웨어하우스 병합관리센터· FBI 연락해서 수사 공조 요청해·”
* * *
[중대한 버그 리포트: 2045-08-30 오후 2:05:35]
[시스템 포맷(REUNION-3): 2045-08-30 오후 2:08:37]
“깔끔하게 포맷되어버렸구만···”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국제 수사의 결말은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사람이 죽어서도 가상현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질문은 이제 영원히 인류의 난제로 남게 되었다·
“진짜로 알레프의 실험은 성공했던 걸까요?”
FBI 수사관 후배가 순진하게 물었다·
“에휴 농담도 참· 사람들이 다 못 배워서 하는 소리야·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가상현실 기술이 나오자마자 이미 엄밀하게 증명까지 된 걸 이제 와서 또 떠들고 있네· 이 칼텍 출신 선배가 이유를 알려줄까?”
“왜 안 되는데요?”
“아주아주 쉽게 말하면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세계와 교감을 하고 있어· 바로 이 오러하트로 말이야· 일종의 탯줄을 달고 태어나는 거지·”
“탯줄이요? 탯줄이 어디랑 연결되어 있어요?”
“원가지와 덧원가지· 그리고 마나 원줄기· 지구라는 태반에서 마나가 있는 양수에 들어있는데 여기서 갑자기 탯줄을 끊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죽어버리겠죠·”
“기본적인 원리는 대충 그런 거야· 아니면 더 직관적인 증명도 있어· 오픈월드 자체가 마나 원줄기로부터 확장시킨 개념인데 죽어서 간다는 것부터 모순이지· 가상현실에 존재하려면 오러하트가 있어야하는데 죽음은 곧 오러하트의 정지를 의미하니까· 따라서 가상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죽어있지 않은 것이다라는 명제가 성립해· 오케이?”
“그럼 그 반대는요?”
후배가 되물었다·
“반대라니?”
“인간을 본뜬 정신을 처음부터 가상현실에서 만들고 인간을 본뜬 육체를 만들어서 그 안에 가상현실의 의식을 넣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건 당연히···”
후배가 말하는 육체의 범주가 너무 넓었다·
오러하트가 없어도 그것을 정녕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사이버펑크 영화처럼 전부 기계로 된 몸까지도 육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너무나도 먼 미래의 이야기였지만 선배는 끝끝내 부정할 수 없었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가능할 지도 모르겠네·”
명제가 성립할 때 대우가 성립해도 그 역까지는 알 방법이 없으니까·
철학적인 질문들을 나누는 동안 데이터센터 로그 파일들을 뒤적이던 수사관들이 냉큼 달려왔다·
“선배님! 그 bfa뭐시기가 참조좌표 위치 변경이 한번 일어났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원본이?”
“아뇨 원본은 아니고 분명 한번 포맷된 ASI 개체는 맞는데··· 중간에 한번 불완전하게라도 복구가 되었나봅니다·”
“그럴 리가? 3단계 리유니언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텐데? 백업이라도 했나보지?”
“챈드라님· IP 알려주시겠어요?”
“184·85·235·194·”
“235 194··· 한국 서울이네요·”
한국 그리고 서울·
IP만으로 참조주소를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포토라인에서 알레프 신도가 검찰로 송치되기 전 ‘아델라’를 떠올려본다면···
개체의 소유권은 분명 노나메가 가지고 있으리라·
모든 수사관들이 한마음으로 생각했다·
“이만 퇴근합시다·”
한국이 미국의 52번째 주로 편입되지 않는 이상 이 사건은 그들의 관할 밖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메 함량이 부족해서 쓰면서 너무 우울했습니다··!! 원래는 연참이 꼭 필요한 구간이지만 연이은 시험에 시간이 너무 부족하네요!!
다음에는 꽉꽉 채워서 오겠습니다!!
오늘도 농쭉나메와 카리리가 등장하는 만화를 보고 정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팬아트 항상 압도적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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