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3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생일이 두 개가 아닐까?”
“음?”
“3월 15일하고 4월 9일· 그러니까 내년에는 선물도 꼭 두 배로 부탁해!”
“정신 나갔어? 선물 다시 이리 내·”
“줬다 뺏는 건 반칙이지!”
아델라는 선물박스를 품에 꽉 안으며 몸을 반대로 돌렸다·
몸이 어려지면서 정신연령까지 같이 어려진 건지 아니면 원래도 이런 애였는지 한숨만 나온다·
그녀는 손톱으로 포장지를 박박 할퀴어 마침내 박스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와 진짜야?”
아델라가 무슨 의미로 묻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잠깐 대답을 망설였다·
“짝퉁은 아닌데·”
“아니 진짜로 나한테 주는 거냐구?”
“응 뭐 조만간 필요해질 것 같아서 사와봤어· 학교 갈 때 가방으로 쓰라고·”
아델라의 손에 들린 것은 굉장히 심플한 디자인의 검은색 메신저백이었다·
“이거 한정판이라 많이 비쌀 텐데··· 와앙 언니 여기 봐봐 너무 귀여워!”
조명 아래에서 가방을 이리저리 비추어보는 아델라의 광대는 하늘까지 승천할 지경이었다·
아델라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에는 한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빨간 바지와 노란 신발을 착용한 검은 생쥐가 뭉게구름 위에 엎드려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캬아! 이제 무인도에 표류해도 걱정은 없겠네· 이거 보고 미키 마우스 따라 그리면 알아서 찾아와 줄 테니까!”
요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프라다 디즈니 콜라보 에디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등골브레이커 라인업에 무혈입성한 제품이었다·
어른들은 항상 이런 사치문화를 탐탁지 않게 여기곤 했지만 엄연히 청소년들의 시선에서도 바라볼 줄 알아야한다·
부모들이 재산 학벌 직업 연봉 거주지 등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똑같이 화장품 의류 가방 IT기기 등으로 계급을 형성한다·
당장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게 그것뿐이니까·
이러한 풍습은 비단 현대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나타나기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중세시대가 더 심하면 심했지·
한국에서는 은따를 당하지만 중세 사교계에서는 드레스코드를 잘못 맞추고 갔다고 한 가문의 사업을 박살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매우 잘못된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최소한 아델라가 이런 차별적 시선에 희생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준 선물이었다·
“히히 고마워· 소중히 잘 간직할게·”
“혹시나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응응·”
“네가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 괴롭혔다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잖아? 그럼 나는 널 캡슐에 영원히 가둬버릴 거야·”
“헉···!”
“기껏 힘들게 얻은 육체 잃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행동해· 알겠어?”
“네넷! 명심하겠습니다!”
아델라가 칼 같은 자세로 경례를 하였다·
그래 뭐 아델라가 그럴 아이는 아니니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회성은 나보다 훨씬 좋을 지도 모르지·
“머리 빗고 와 아델라· 내가 셀프염색 도와줄게·”
“신분증에 이름에 생일선물에 염색까지 오늘 완전 속전속결이네? 우리 이러다 애도 하나 낳겠어?”
“··· 그런 드립 하나도 재미없거든?”
“캬하핫! 부끄러워하기는· 기다려 나메 언니 나 씻고 올게!”
아델라가 흰 티셔츠를 훌렁 벗었다·
정확히는 벗어던지기 전에 그녀의 머리가 빠져나오려는 걸 내가 두 손으로 막았다·
“잠깐 염색하기 전에 머리 감는 거 아니랬어·”
“아 그래? 몰랐네·”
아델라가 겸연쩍게 볼을 긁으며 다시 옷을 바로 입었다·
* * *
[그래서 천씨 이름 추천 좀 해주라· 내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이 안 나·]
[천지원·]
[너무 흔한 건 싫어·]
[천이슬·]
[애매해 그리고 너무 약해보이지 않아?]
[천진반?]
[그건 빡세도 너무 빡세잖아!]
[천엽 천자문 천원만 천천히 천방지축 천리길도한걸음부터·]
[점점 사람에서 멀어져가는 것 같은데···]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았지만 나메는 작명에 영 센스가 없었다·
‘그러고보니까 본인 이름부터가··· 어떻게 사람 이름이 노나메 푸흡!’
물론 나메의 면전에 대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죽음을 자처하는 일이기에 아델라는 속으로만 몰래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나메를 귀찮게 한 업보로 집에서 쫓겨났다·
[여기 카드 줄 테니까 앞에 빵집 가서 네가 먹고 싶은 걸로 생일 케이크 사와· 참고로 난 고구마 케이크는 싫어하고 초코나 딸기 케이크 좋아해·]
[내 생일인데 왜 내가···]
[까라면 까·]
해는 여전히 서쪽 하늘 높이 걸려있었다·
분명 감동스러워야 할 첫 공개외출이 한낱 심부름 거리로 전락해버렸다·
“후우·”
아델라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심호흡을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숨통이 확 트였다·
며칠 되지 않는 봄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득 보였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니 사람의 수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이제 막 하교한 고등학생들 이쑤시개로 떡볶이를 콕콕 찌르며 사이좋게 걸어가는 연인들 장을 보러 마트까지 걸어가는 가족까지·
아델라는 인파의 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실재하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이제는 그녀도 이 풍경의 일부가 될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아델라를 곁눈질로 힐끔거리지만 그 이상으로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그늘진 곳에서는 검은색에 가까웠던 머리카락이 태양 아래로 나오자 약한 오렌지빛이 감도는 갈색머리로 반짝였다·
눈동자도 서클렌즈를 껴서 갈색빛이 맴돌았다·
‘더 늦기 전에 가보자· 잔소리는 듣기 싫으니깐·’
빵집은 아파트 단지를 나서자 마자 바로 좌측 대로변에 존재했다·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홀로그램이 새로 출시된 빵을 보여주었다·
은은한 빵 굽는 냄새까지 퍼지자 아델라의 입에 침이 잔뜩 고였다·
그녀는 목을 큼큼 가다듬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여성 알바생의 격한 응대에 아델라가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다·
“아 네 어서오세요···!”
처음 집을 나설 때의 자신감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아니 내가 손님인데 어서오세요가 뭐야···! 안녕하세요라고 해야하는데 이상하게 안 보겠지?’
아델라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는 표정을 구겼다·
그녀는 빵을 둘러보는 척 하다가 결심을 굳히고 알바가 있는 계산대로 발걸음을 총총 옮겼다·
“이거 해피버스데이 프레지에 생크림 케이크 얼마예요?”
순간 아델라의 시야가 어둡게 닫혔다·
[참치 바게뜨 샌드위치 하나랑 으음 스파클링 와인도 하나 줄래? 얼마야?]
그리고 잊고 있었던 강렬한 악몽이 떠올랐다·
[얼마냐니깐?]
목각인형처럼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주인 뻣뻣하게 가게를 빙빙 돌던 손님들·
모든 게 가짜 투성이인 게임 속 세상에서 그녀는 영원한 루프를 반복했다·
그 끔찍한 악몽은 아델라가 가상현실에서 빠져나오기 전까지 매일같이 지속됐다·
“하아··· 하아···”
“저 손님?”
다시 환한 빛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게 바로 빈혈이었구나·’
갑자기 일어난 빈혈 증상에 아델라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네? 아까 뭐라고 하셨어요?”
“36000원입니다· 이걸로 포장해드릴까요?”
“네네·”
“할인이나 적립카드 있으신가요?”
“네? 저 이걸로 결제하려고 하는데···”
뇌정지가 온 아델라가 나메가 건네준 카드를 보여주었다·
“포인트 2000점 있으신데 사용해드릴까요?”
“어··· 네·”
이제는 뭐가 뭔지 몰라도 자동적으로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초는 몇 개 필요하세요?”
“초요? 아 초··· 초가 몇 개가 필요하더라···!”
아델라는 아직 확실한 신분증이 나온 게 아니었다·
얘기만 들어보면 대충 고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는 것 같았지만 정확히 몇 살인지를 알 수 없었다·
알바생을 더 기다리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아델라는 부탁했다·
“일단 하나만 주세요·”
“네?”
“아니지 아니지 스무 살 아래로 넉넉하게 챙겨주세요·”
“그럼 큰 거 2개 작은 거 9개 넣어드리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생일 케이크를 받아올 수 있었다·
‘에이 뭐야 별 거 아니잖아?’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
“음?”
[연어에 목숨을 걸었다 – 연어스페셜초밥(24pcs) 35000]
이로써 한층 자신감을 얻은 아델라는 예정에는 없던 초밥집 가게로 홀린 듯이 들어가 나메의 카드를 마구 긁었다·
“사장님! 저 연어초밥 많이 많이 주세요! 포장이요!”
* * *
다음 날 새벽 아델라는 배를 움켜쥐고 잠에서 깨어났다·
“으으으 배 아파···”
아델라의 생일파티는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다만 조금 과식을 하였는지 속이 더부룩하고 아랫배가 콕콕 찌르듯이 아파왔다·
‘그냥 참고 다시 잘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를 뒹굴거리기 30분째·
이제 곧 해가 뜰 시점이었다·
결국 거실 밖으로 뛰쳐나온 아델라는 나메의 방문을 조심히 열어 들어갔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소녀의 머리맡으로 가서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언니···”
“···”
“언니·”
“으음···”
“자고 있는데 깨워서 진짜진짜 미안한데··· 혹시 집에 위장약 같은 거 있어? 나 배가 너무 아파서·”
나메가 몸을 뒤척이며 아직 잠이 덜 깬 채로 물었다·
앙증맞은 입이 위아래로 벌어지며 하품을 한다·
“흐아아암··· 어디가 아픈데·”
“여기 아랫배가·”
“올라와서 누워봐·”
“응·”
아델라가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어린 아이 특유의 따뜻한 체온 때문에 이불 안이 후끈거렸다·
나메는 개나리빛 오러를 손바닥에 얇게 펴바른 다음 아델라의 배를 살살 문질렀다·
“어때· 이제 좀 괜찮아?”
“후아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진작 언니한테 부탁할 걸·”
마법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나중에 오러를 배우게 된다면 꼭 이런 종류부터 배워놔야겠다·’
언제까지나 나메에게 부탁만 하면서 살 수는 없기에·
“됐지? 이제 가 봐·”
“지금 아침 6시인데 조금만 같이 누워있으면 안 돼? 어차피 언니 조금 이따가 샤워하러 갈 거잖아·”
“그러든가···”
“헤헤· 고마어엉·”
아델라가 나메의 앞머리를 가지런히 정돈해주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메의 눈이 번쩍 뜨였다·
“머리 만지지 마·”
“엇 미안미안! 난 그냥-”
“쿠울···”
“뭐야 잠꼬대야? 아닌가?”
애매한 시간대에 깼는데 다시 잠에 들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완전히 잠결에서 깨어난 나메는 아델라와 서로 오랫동안 눈을 마주쳤다·
“아델라 어제 내가 가방 준 거 열어봤어?”
도리도리-
아델라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뭐 들어있었어?”
“지금쯤 필요하겠다 싶어서 일단은 대형만 하나 사서 넣어놨거든· 네가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천하태평하길래·”
“대형? 무슨 대형?”
나메가 진짜 모르냐는 식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넌 안 할 거라고 생각했어?”
“안 할 거라니 그게 무슨··· 무··· 무슨··· 아아···”
아델라가 깊은 깨달음을 얻더니 뒷말을 잇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아··· 아니지? 에이 설마! 난 살면서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생리대 더 필요하면 인터넷에서 주문하든지 앞에 편의점 가서 사든지 네가 알아서 해· 그래도 종류는 대충 알지?”
이튿날 아델라는 진짜 여자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참고로 아델라는 불임입니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공지사항 Q&A에 답변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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