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5
딩동댕동-
“흐으으·”
“하아···”
종소리가 울리자 여기저기서 거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3학년 A반 다들 손 머리 위로 올리세요·”
젊은 남선생이 지시를 내리자 반 아이들이 착실하게 따랐다·
작년 2학년 B반 담임이었던 심효찬 선생이 올해 우리 반을 맡게 되었다·
참고로 재클린 캐롤은 6학년 A반 담임으로 배정되었다·
“나메야 이번 중간고사 엄청 어렵지 않았어···?”
대각선 앞에 앉아있던 지혜가 고개를 돌려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자 저 멀리 위치한 유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차피 나메한테는 다 쉬울 텐데 물어보는 게 의미가 없지·”
나는 그저 미소만 지어줄 뿐이었다·
그동안 심효찬 선생이 뒤에서부터 하나씩 ‘마법의 발동’ 시험지를 거두어갔다·
마법의 5단계 중 3단계 발동부터는 본격적으로 회로술식을 다루는 학문이다·
마법을 배우는 것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번 중간고사 시험범위에서는 비례식을 완벽하게 숙지해야하고 다양한 평면도형의 길이와 넓이 그리고 때에 따라선 입체의 부피까지도 구할 수 있어야만 했다·
[이름: 노나메 / 최근수정시간: 38분전]
“넌 시후처럼 월반 안 하니 나메야?”
심효찬 선생이 내 시험지를 확인해보며 물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아무튼 이상해·”
시후는 4학년으로 월반을 했는데 아마 지금쯤 다음 과목 시험을 준비 중일 것이다·
4학년부터는 한 과목 더 많으니까 우리보다 늦게 하교하겠지·
“얘들아 시험 보느라 수고 많았다· 다들 주말 잘 보내!”
“와아아 끝이다!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아까 전부터 근질거리는 몸을 참고 있었던 남학생들이 쏜살같이 반에서 뛰쳐나갔다·
“유나는 조금 기다렸다가 시후랑 같이 갈 거야?”
“나··· 나라도 기다려줘야지·”
“역시 남친 챙기는 건 여친밖에 없다니까· 히히·”
“우리 사귀는 거 아니라고!”
“그럼 우리는 간다· 유나는 좋은 시간 보내고·”
“야 한서리! 너 잡히면 죽어!”
서리가 깐족거리며 놀리면 유나가 눈을 까뒤집고 달려드는 식이었다·
1년째 반복되는 패턴에 이 순수한 아이들은 질리지도 않아했다·
“유나야 집에 너무 늦게는 들어가지 말고· 응원할게·”
“나메 너마저···”
데이트 약속이 잡혀있는 유나를 제외하고 서리 지혜 하루 그리고 나까지 4명이서 강남 시내로 나갔다·
“점심은?”
“애슐리 가기로 했잖아·”
“아하·”
어린 애들을 가까이서 보고 있자면 정말 뷔페집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창 키가 클 때라서 그런지 다들 먹성도 좋았다·
“나메야 이것도 한번만 먹어봐·”
“나 배불러·”
“벌써? 두 접시밖에 안 먹었는데?”
억지로 칼로리를 태우려고 식욕의 침식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포크를 들이대는 아이들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며 빠르게 점심을 해결했다·
배가 부른 채로 돌아다니면 힘드니까 영화관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노래방에 가서 어느새 충전된 에너지를 털어내주고 문구 쇼핑을 하기 위해 교보문고에 들렀다·
‘이게 책을 파는 곳이 맞기는 해?’
대형 서점이라는 장소가 절반이 문구류로 도배되어 있었다·
아기자기한 키링 캐릭터 필통 수백 종류의 스티커 플라스틱 케이스 편지지 등등·
“나메랑 잘 어울리겠다!”
하루가 뒤에서 몰래 다가와 내 머리 위에 무언가를 씌워주었다·
토끼귀 모자였다·
“어디서 찾아왔어?”
“쪼오기!”
그녀가 가리킨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베개 캐릭터 인형 담요 등등 온갖 종류의 잡동사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건너편에는 한술 더 떠 전자기기와 캡슐 커스텀 소품들을 취급하는 코너도 보였다·
차가운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한 서점의 발악인 걸까·
심장을 제외한 모든 부품을 기계로 대체해버린 사이보그를 보는 것 같았다·
“얘들아 나 조금 힘들어서 저기서 쉬고 있을게· 쇼핑 끝나면 찾아와·”
보더콜리급 체력을 가진 아이들을 피해 나는 서점의 따뜻한 심장에서 종이책을 하나 구매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파트리크 모디아노]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 얘는 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지?’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심연으로 빠져드는 몰입감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책을 빠르게 정독해나갔다·
그동안 나는 주변에서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
“저기요?”
“네?”
“혹시 실례지만 싸인 부탁할 수 있을까요?”
정신을 차려보니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조금 힘들어도 애들이랑 같이 있을 걸·’
걸어다니기 힘들다고 잠깐 떨어졌더니 더 큰 퀘스트가 주어졌다·
“제가 조금 이따 가봐야해서· 일단 해드릴 수 있는 만큼만 해드릴게요·”
[시전: 좌표 동기화]
‘이하루 마지혜 한서리 빨리 와서 구해줘·’
빨리 일행들이 나를 구출해주기를 소망하며 열심히 마법진을 그려댔다·
* * *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밤 8시였다·
“아델라 나 왔어·”
“오늘 별로 기운이 없어보이네?”
“응· 힘드니까 오늘 운동은 생략할래·”
“헛 진짜? 이게 웬일이야 빨리 게임하러 가야징 흐흥!”
애들과 놀아주는 게 체력소모가 생각보다 훨씬 컸나보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아델라의 침대 위에 털썩 쓰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델라는 침대 아래에 있던 닌텐도를 꺼내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검정고시 결과 나왔어?”
“당연히 합격이지· 그냥 완전 인성 테스트였다니까·”
“그럼 다행이고· 늦어도 5월쯤에는 입학할 수 있겠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겨둬·”
“언니야 시간 남으면 이따가 나 오러 다루는 거나 함 봐주라· 오늘도 개쩌는 거 보여줄 테니까·”
아델라는 하루도 안 되어서 오러를 운용하는 법을 깨우칠 수 있었다·
전생에서 침식들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마나가 희박한 세계이다보니 시간은 더 걸릴 거라고 예측했었다·
[언니 나 앞으로 쓸 이름 정한 것 같아· 바로 천샛별· 어때 예쁘지? 귀엽지? 사랑스럽지? 전 재산을 꼴아박고 싶은 이름이지?]
[개촌스러운데·]
[언니 진짜 미워!]
그녀가 어떻게 오러를 다루게 되었는지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깨달음을 알리는 과정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오러하트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 뻔하기도 한 게 별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건 정말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오러를 다룰 때 중요한 건 영속성이다·
영속적인 물질이나 개념을 매개로 삼을수록 오러는 의지에 더욱 강하게 반응한다·
하늘에서 세 번째로 밝은 금성 정도면 무난무난한 편이지·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게임할 때까지 오러를 쓰는 건 심하잖아·”
“내 맘이지롱! 이런 좋은 걸 묵혀서 어디에 쓰나·”
아델라의 눈이 주황색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몸을 다루는 법에 이어서 안구의 반응속도를 높이는 강의까지 해줬는데 아델라는 단번에 깨우쳐버렸다·
가상현실에서의 경험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적었던 탓이리라·
아니면 단순히 재능이 뛰어날 수도 있을 테고·
“월척이다! 철갑상어야!”
그리고 얘는 그 재능을 낚시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현실 낚시도 아니라는 게 가관이다·
무의식적으로 잔소리가 튀어나가려는 걸 꾹 참고 아델라가 추는 기쁨의 댄스를 지켜봤다·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이는 아델라를 향해 물었다·
“너 방송은?”
“언니 놀러갔을 때 이미 숙제 다 끝냈지· 날 뭘로 보고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보여줘봐· 구경이나 해보자·”
“오러?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보라고· 이 아델라님의 위대한 업적을·”
아델라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 입을 꾹 다물자 잠잠했던 아델라의 오러하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오러를 어떻게 다루는지 상세히 지켜보기 위해 마왕의 뿔을 간이시전했다·
‘벌써 오러에 질서가 잡혀나가고 있네?’
주홍빛 기운이 오러하트에서 나선형으로 퍼져나간다·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제어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성취에 감동하여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밥만 축내는 고양이인 줄 알았더니 뒤에서는 이렇게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었구나·’
이제 아델라는 오러로 무엇을 할까 기대가 되었다·
주먹을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근육의 탄력성을 증대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욱 높은 경지라면 체내의 호르몬을 조절하는 건데 과연 어찌할지···
“으그극!”
아델라가 짧은 신음을 내더니 인상을 팍 찡그렸다·
어금니를 으드득 가는 소리와 함께 오러가 자석에 이끌리듯 양쪽으로 갈라졌다·
한쪽은 아델라의 머리를 향해 다른 한쪽은 아델라의 엉덩이쪽으로 회오리치듯 모인다·
이제는 뭘 하려는 건지 감도 안 잡혔다·
오러를 응집시키는 것을 보면 신체강화류는 아니고 호르몬 촉진도 아니었다·
순간 아델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주황색으로 이글거리는 홍채 위아래로 길게 찢어진 동공·
동공?
“에··· 에에···”
아델라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더니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입을 막았다·
“엣취! 엣취 헤에엣취!”
펑-!
“크흥·”
연이은 세 번의 재채기에 아델라가 비염에 걸린 듯 코를 훌쩍거린다·
“아델라 너···”
아델라의 오러는 단순히 질서가 잡힌 수준이 아니었다·
형태를 이루고 입체를 이루고 마침내 그 존재를 입증했다·
나는 두 눈을 연신 비비고 마왕의 뿔을 해제했다·
여전히 아델라의 오러가 두 눈에 ‘보인다’·
“결국 되찾았다고· 마이 바디·”
두 개의 고양이 귀가 머리 위에서 쫑긋거리고 붉은 꼬리가 등 뒤에서 자태를 드러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그녀의 귀를 만져보았다·
장난감으로 트릭을 쓴 게 아니다·
진짜 그녀의 오러로 구현되어서 내 손을 보기좋게 통과해버렸다·
대신 손바닥과 스친 부위에는 내 오러와 공명이 되어 따스한 감각이 느껴졌다·
“너 이걸 어떻게···?”
내 물음에 아델라는 능글맞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하니까 되던데?”
오러의 외적발현·
하늘에게 선택받은 극소수만 펼칠 수 있다는 절정의 기예·
아델라는 선행되는 모든 단계를 건너뛰고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
* * *
“이 귀로 특별히 다른 주파수의 소리가 들린다던가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고· 꼬리도 뭐 마찬가지고· 요컨대 장식 수준이라는 거지·”
“아무리 장식이라도· 오러를 몸 밖으로 꺼낸 시도 자체가 대단한 거야 아델라·”
“언니가 이렇게 마구마구 칭찬해주는 건 처음인 걸? 엄청 어려운 거긴 하나보네? 기분이 막 좋아지고 있어 헤헤·”
“근데 재채기는 왜 한 거야·”
아델라가 휴지로 코를 킁 풀어내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잘 모르겠는데? 고양이 알레르기라도 있나?”
“너 무슨 개그하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화님 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맛있는 한편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전직 고양이가 고양이 알레르기를··?! 인체란 정말로 신비롭네요!!
14000명 선작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마나인방을 인생픽에 선정해주신 소중한 독자님들께도 주기적으로 나메와 아델라와 함께 큰 절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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