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6
[학생상담기초자료]
[성명: 천샛별]
[생년월일: 2036년 4월 9일]
[진로 및 직업: 연예인(본인 희망) / 동일(부모님 희망)]
[취미와 특기: 음악감상 / 가상현실게임]
“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폭탄이 하나 들어온 것 같은데···”
구룡고등학교 1학년 부장교사가 침음을 흘렸다·
“아직 만나보지도 않고 학생을 평가하시면 안 되죠! 사람 됨됨이는 모르는 거예요·”
“그냥 은정쌤이 걱정돼서 한 소리입니다· 빅데이터에 따르면 꼭 이런 애들이 면학 분위기를 해쳐요· 이제 보니 초등학교 중학교도 다 검정고시고 말이야·”
“나름대로 다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요· 건강이 안 좋았다든지·”
강남 8학군에 해당하는 구룡고등학교다·
자칭 입시전문가라고 하는 부장교사는 전학생의 진로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꼭 놀기 좋아하고 대가리 꽃밭인 애들이 연예인을 적어놓는단 말이지· 요즘 연예인은 뭐 되기 쉬운 줄 아나·’
일반고에서는 최상위권 한 명 한 명의 대입 성적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미꾸라지 한 마리가 나타나 온 웅덩이를 흐려버린다면 기껏 잘 하고 있던 학생들에게까지 영향이 갈 수 있었다·
“게다가 혼혈인 것 같은데·”
“부장쌤 이제는 하다하다 인종차별까지!”
“아니 내 말은 남자 애들에게 참말로 인기 많겠다 싶은 외모라고· 연예인을 적은 이유도 이해가 가서요·”
“저희 반 학생인데 저도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먼저 다 본 다음에 드릴게요·”
다음 페이지로 넘기자 학년부장의 눈이 대뜸 튀어나왔다·
불편하다고 잘 안 쓰던 안경까지 가져와 글씨를 읽었다·
[가족관계]
⦁아버지: 천규진 / 57세 / 대학교수
⦁동생: 노나메 / 8세 / 초등학생
[고등학교 생활에서 바라는 점: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은정쌤· 우리나라에 노나메라는 이름이 그 애 빼고 더 있었나요?”
“노나메요? 워낙에 특이한 이름이라 없지 않을까요?”
“그래 8살인데 이름도 노나메인 거면 확실하지··· 여기 보셔유·”
“왜 그러시는··· 흐악!”
두 선생은 한동안 전학생의 인적관계를 확인하고 아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노나메한테 언니가 있었어?”
* * *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청춘의 시기를 꼽으라고 하면 항상 고등학교 시절이 빠지지 않는다·
비록 대입이라는 쇠사슬에 발목이 잡혀있긴 했어도 같은 처지의 수감자들과 쌓은 추억은 평생에 걸쳐 미화되기 때문이었다·
정작 당사자들은 반복되는 수험생활에 지쳐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월요일 1교시부터 배정된 수학시간에 학생들은 일찍이 절망에 빠졌다·
다행히 수학 선생의 병가로 수업 대신 자습이 주어졌다·
1학년 학생들은 다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창문으로 살랑살랑 들어오는 봄바람을 만끽하며 꿀같은 잠을 청했다·
중간고사에 아직 의지가 꺾이지 않은 일부 학생들만이 열심히 펜을 움직였다·
종이 울리기 직전 화장실에 다녀온 남학생 하나가 허둥지둥 의자에 걸터앉아 옆 친구들에게 말을 걸었다·
“얘들아 빅뉴스! 정보쌤 피셜 오늘 전학생 온대!”
그 소식에 얕은 잠에 들어있던 학생들이 졸린 눈을 비비고 고개를 들었다·
“아 씨 또 너야? 흐아암 진짠줄 알았네·”
“구라 아니라 찐이라고· 전학생 지금 교무실에 있어·”
“아니면?”
“아니면 매점 500만원 사줄게·”
그제서야 진지하게 경청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예쁘냐?”
“걔 어때? 잘생겼어?”
그들만의 언어로 해석하자면 여자인지 남자인지 묻는 질문이었다·
“난 그냥 지나가다 들은 것 뿐이라 못 봤어· 여자라는데?”
“나이스!”
“우리 반 23명이라 한 명 부족하지 않아? 무조건 우리 반으로 오겠네!”
“아 또 김희정 같이 생긴 애 들어오는 거 아냐? 그럼 실망인데···”
“뒤지고 싶어? 나같이 생긴 게 뭔데?”
쉬는 시간이 되어도 떡밥은 식지 않았다·
만약 학교가 커뮤니티였다면 모든 게시글이 전학생에 대한 주제로 업로드되었을 것이다·
운 좋게 교무실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던 학생이 새로운 정보를 퍼다 날랐다·
“내 입으로 말하기에는 좀 쑥스러운데···”
“아 지랄하지 말고 빨리!”
“도내 최상위 랭크 미소녀 확정· 머리 겁나 작고 피부도 엄청 하얗고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외국인인 것 같았어·”
“오오오오오!”
남학생 여학생 가리지 않고 환호성을 질렀다·
대부분의 여학생들도 크게 만세를 불렀는데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건 의외로 남자들보다 여자들이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기껏해야 한 명만 그 외모를 누릴 수 있는 반면에 여자들은 공공재처럼 사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볼을 꼬집거나 손을 잡거나 허리를 껴안는 건 대한민국의 여고생들 사이에서 문화적으로 허용된 범위였다·
2교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도 모두가 자리에 착석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1교시동안 보충한 에너지를 쏟아내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 교실 앞문이 열리고 국어쌤이자 1학년 3반의 담임인 이은정 선생이 들어와 소란을 잠재웠다·
그녀의 그림자를 뒤따르는 여학생이 시야에 들어왔다·
차분한 갈색 머리카락이 걸을 때마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 스치고 지나갔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에는 잡티 하나 찾을 수 없다·
맨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여성의 오똑한 콧대와 남들보다 배는 긴 속눈썹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키는 평균에 가까웠음에도 골반이 남들보다 훨씬 위에 위치해있어서 다리가 무척이나 길어보이는 건 덤이었다·
‘진짜 외국인인가? 한국말은 할 줄 알까?’
‘지금 우리랑 같은 교복 입은 거 맞아?’
‘비율 미쳤다···’
‘예쁜데 잘생겼어! 잘생겼는데 예뻐!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전학생이 정색하는 표정으로 교실을 둘러보자 눈이 마주친 학생들은 전부 눈동자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아직은 친근감보다는 어색함이 앞서있는 단계였다·
“우리 반에 새로운 전학생이 오게 됐는데 학교를 다니는 게 처음이라고 하니까 어색하게 행동해도 놀리거나 지적하지 말고 더더욱 너희들이 옆에서 잘 챙겨줬으면 좋겠다· 같은 한국인이니까 외모 가지고 차별하지도 말고·”
외모 가지고 차별하지 말라니 당치도 않다·
오히려 학생들은 저 정도로 예뻤으면 역으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 저기 빈 자리 가서 앉을래? 교과서는 짝꿍인 다희가 같이 보여주고·”
아델라는 잠깐 흠칫하더니 이내 가방을 들고 맨 뒷자리로 이동했다·
“쌤 자기소개는요!”
“자기소개 빠뜨렸잖아요!”
절차를 한참이나 건너뛰지 않았나·
학생들의 의문은 타당했다·
하지만 이은정 선생은 칠판의 전원을 켜더니 도리어 되물었다·
“그런건 쉬는 시간에 너희들끼리 해야지 지금은 수업시간이야·”
“아아아 쌤!”
의문만이 남은 50분 간의 수업이 쭉 이어졌다·
* * *
“그 다음 줄· 내용 면에서 어떤 배경이 있냐면 밑줄 치겠습니다· 인간을 존중하며 현실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지향까지 밑줄치고 동그라미 3번·”
아델라는 바른 자세로 국어 수업을 경청했다·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향찰은 뭐고 향가는 또 무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그녀의 의식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갔다·
툭툭-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노란 포스트잇 위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이름이 뭐야?]
아델라는 환하게 웃으며 그 옆에 또박또박 글씨를 적었다·
[천샛별·]
[우와 예쁘다 🙂 ]
예쁜 순우리말 이름에 여학생이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놀랐다·
그녀는 쪽지를 앞 사람에게 건넸다·
앞자리 학생이 손을 등 뒤로 숨겨 엄지를 날려주었다·
‘오 이런 방식으로··· 괜찮은데?’
[어디서 왔어?]
[한국·]
이번에는 쪽지를 앞으로 건네지 않았다·
아마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으리라·
[한국에서 태어났어?]
[아마도 ㅇㅇ·]
[그럼 어디 혼혈이야?]
[나도 잘 몰라· 폴란드? 우크라이나? 한국? 일본?]
[?]
배다희는 눈을 삐뚜름하게 치켜떴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는 뜻이었다·
‘아하!’
텔레파시를 정확하게 알아들은 아델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연필을 집었다·
[나 고아야! 친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입양됐어!]
“···!!!”
[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정말로미안해ㅠㅠㅠㅠㅠ]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셈이었다·
다희는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조금 시간이 지나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은 다희는 코를 훌쩍이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샛별이는 뭐 좋아해?]
[록 음악 듣는 거나 게임도 좋아해·]
[무슨 게임?]
[요즘 하는 건 동물의 숲이랑 월오아·]
그러더니 마지막 쪽지가 남학생으로부터 반송되었다·
[└ 티어 뭔지 한번 물어봐주셈·]
악필로 휘갈긴 질문·
[└└ 마스터·]
그 쪽지가 앞으로 넘어가자 남학생들 사이에서 소란이 크게 일었다·
“얘들아 지방방송 끄자· 자 여기서 10구체 향가는 3단 시상전개방식으로 기서결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마지막은 낙구로-”
선생님의 주의에 포스트잇의 흐름이 잠깐 끊겼다·
다희와 샛별은 몸을 바짝 엎드려 더욱 신중히 눈치를 보았다·
[민지가 화장품 뭐 쓰는지 물어봐달래·]
여기저기서 질문공세가 종이비행기의 형태로 날아왔다·
다른 전학생들은 이 정도까지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천샛별의 경우는 확실히 달랐다·
학생들이 빨리 다음 대답을 내놓으라고 따가운 시선으로 들들 볶았다·
[선크림?]
[아니 비비나 파우더·]
[안 발랐는데·]
[???]
다희의 눈썹이 팔자로 휘었다·
약간의 배신감을 느낀 표정도 조금 흘러나왔다·
[남친은 있어?]
[모솔이야·]
[이상형은?]
아델라는 연필을 입에 물고 천천히 고민을 했다·
‘따지고 들면 나메 언니의 월오아 아바타가 제일 내 취향이란 말이지···’
그녀의 외형이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미적으로 완벽한 인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아델라는 이 질문 또한 ‘딱히 없음’으로 넘겨버렸다·
답변한 질문의 수는 다 합해도 몇 개 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담임에게 걸리지 않는 선에서 매우 천천히 진행되었기에 어느덧 2교시의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다희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꼭 하고 싶었던 질문을 건넸다·
[오늘 학교 처음 다니는 거라고 했지?]
[응응·]
[혹시 그동안 학교를 못 다닐만한 사정이 있었던 거야? 민감한 질문이라면 대답 꼭 안 해줘도 돼 샛별아!]
[아아 별 거 아니야·]
아델라는 문제 없다는 듯이 미소를 씨익 지어주었다·
‘별 일 아닌가보다 다행이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다희는 답변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내가 예전부터 몸을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 신세였거든· 최근에 마법치료를 잘 받아가지고 드디어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어·]
* * *
“학교 다녀왔습니당·”
“오 아델라 첫 학교생활 어땠어? 별 일은 없었고?”
“에이 언니 걱정은 너무 과해· 다들 정말 착한 애들밖에 없었다고· 내 급식판도 대신 들어줬고 말이야·”
“아니 급식판을 대신 들게 시켜? 너 내가 다른 친구들 괴롭히면 내 손에 죽는다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간이시전: 마왕의 뿔]
나메의 눈이 흉흉하게 번뜩였다·
나메의 오랜 기억 속에서 고등학교는 하나의 야생이나 다름없었다·
그 자존심 강한 아이들을 그것도 하루만에 굴복시키기 위해 어떤 무력이 동반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분명 상호간에 엄청난 충돌이 일어났을 테지·
“내가 시킨 거 아니야! 그냥 친구들이 서로 들어주겠다고···!”
“변명하지 마 아델라· 내가 그러라고 오러를 가르쳤어? 어?”
“난 진짜 너무 억울해! 억울하다고!”
아델라는 가슴을 팡팡 치며 억울함을 호소해보지만 나메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거실 전체를 무섭게 짓누르는 마나 폭풍에 아델라가 무의식적으로 고양이 귀를 꺼냈다·
“어쭈 오러 안 집어넣어? 이제는 대들기까지 하겠다?”
“아버님 살려주세요! 아버님!”
“아빠 오늘 논문심사 가셔서 늦게 들어오실 거야· 넌 안 되겠다·”
나메의 등에서 검붉은 오러가 부글부글 끓더니 흉측하고 손아귀로 자라났다·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선보였던 마왕의 손이었다·
마립자는 마립자로밖에 잡을 수 없다·
거대한 손톱이 일렁이는 고양이 귀를 콰직하고 낚아챘다·
“아아악! 내 귀! 아파! 뭐야 이거 왜 아픈 건데!”
“단순한 환상통이니까 잔말 말고 내 방으로 따라와·”
“냐아아아앗! 이 사이코 꼬맹이 자식이 진짜!”
덜컥-
방음문이 닫히고 천교수의 집에는 다시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구룡고등학교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피폐회로··!! 천샛별은 사실 병약미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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