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54
무엇이든지 2주차가 고비인 법이었다·
다이어트도 2주차에 접어들면 포기하고 싶고 훈련소도 2주차가 되면 본격적인 갈굼이 시작된다·
나는 2주차에 접어들기 직전 에미카에게 단단히 경고를 하였다·
“이제부터가 진짜야· 잘못하면 슬럼프나 입스에 빠질 수 있어·”
입스 국소적 이긴장증·
불안과 압박감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동작을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이다보니 자동화 과정이 깨져버리는 현상이다·
투수들 사이에서 자주 목격되는데 인간의 투척능력은 오랜 세월 진화를 통해 발전된 고도의 지능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팔을 얼마큼 뻗었지 다리는 이렇게 움직이는 게 맞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고 수행능력은 더욱 악화된다·
유전자 레벨부터 각인된 능력이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이를 복구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도록 해야한다·
“응···! 준비됐어!”
에미카의 경지는 ‘심상 내재화 단계’ 초입이다·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다룰 줄 알고 주변으로의 확장을 꾀한다·
“그동안은 완벽한 동작만 수행하는 걸 고려했겠지· 이제는 완벽한 대응이 필요해· 자 코다치 들고 눈 감고·”
시각은 인간에게 있어서 축복이자 저주이다·
세상은 3차원이지만 망막에 맺히는 상은 2차원이다·
따라서 거리감을 오인하는 과정은 검사들 사이에서도 꽤나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에미카는 허수아비 앞에 서서 일본도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할 줄 아는 거 아무거나 해봐· 이왕이면 가장 자신 있는 게 좋겠어·”
“오모테노 타치 4본 중 카스미노 타치를 시연해보겠습니다·”
적당한 거리에 선 에미카는 상단의 자세를 취해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1수 그녀는 순식간에 앞으로 치고 나와 허수아비의 목을 향해 칼날을 들이밀었다·
2수 그와 동시에 몸을 사선으로 내빼며 적의 반격을 상정해 검을 내리찍고 3수 다시 허수아비의 빈 상단을 내려찍는다·
공격이 막혔을 시 4수로 하단의 반격을 막고 오가스미 자세로 5수 중상단의 연격까지 막아내어 6수 상단 훼이크 7수 찌르기로 마무리한다·
자신있는 기술답게 동작에 군더더기 하나 없다·
이 기술을 숙지하지 못한 채로 받았다면 당장 아카데미 중등부생이라도 일격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이제 여기서 내 코칭이 들어간다·
“눈 떠도 돼· 이제 나한테 똑같이 해봐·”
나는 어린이용 목검을 들고 허수아비의 자리에 대신 섰다·
“아무리 검집이라도 위험하지 않을까? 극의의 소태도가 아니라면 이 공격은 막아낼 수가-”
“왜 이렇게 쫑알쫑알 말이 많아! 빨리 하기나 해!”
“네넷!”
똑같이 1수 나는 가볍게 발을 뒤로 내빼며 거리를 벌렸다·
에미카는 자신있게 사선으로 들어와 검을 끊어쳤다·
탁-!
“어라?”
하지만 내 검은 튕겨지지 않고 그녀의 장검과 딱 달라붙었다·
나는 손목힘을 이용해 검을 옆으로 밀어내버리고 그녀의 이마를 향해 목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응용을 못하면 백날 외워봤자 무슨 소용이야!”
텅-!
“아아악!”
목검이 에미카의 두개골과 부닥치며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에미카 언니 잘 들어· 대련은 올림픽이 아니야· 서로 같은 무기 같은 조건으로 싸우지 않는다고· 내가 작년에도 한번 충고해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전혀 안 고쳤구나?”
“하지만 검이 안 튕겨질 거라고는···”
“오러를 다루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이 반발계수 하나 고려를 못 해?”
[연성: 산화철-알루미늄-마그네슘]
[2서클 시전: 테르밋 반응]
[시전 해제: 테르밋 반응]
나는 또 다시 광선검을 만들어내 다른 검과 교차시켰다·
우웅-
“검을 그냥 통과해버리네?”
“오러의 밀도에 따라 성질에 따라 검의 특성을 무궁무진하게 바꿀 수 있어· 이런 검을 다루겠다는 사람이 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검은 그냥 검이라고·”
내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에미카의 시선이 처량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후으응 어렵다···”
“나도 답답해·”
“하지만 나라고 해서 모든 상황을 전부 고려할 수는 없잖아·”
“당연히 안 되지· 내가 하고픈 말은 시간을 쪼개라는 거야· 에미카의 사고처리속도는 우수해· 하지만 동작 하나하나가 쓸데없이 크고 느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정립된 기술을 빨리 수행하는 건 의미가 없지· 그럼 구분동작을 세세하게 쪼개라는 거야· 어떤 변수에도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예측은 심리싸움과 운의 영역이다·
여러 라운드를 치르는 격투게임이라면 몰라도 목숨을 확률 따위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
“가장 마지막에 결정짓는 사람이 이겨· 그게 대련의 본질이야·”
결국 대련 또한 가위바위보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엄청나게 강한 가위를 가지고 있으면 주먹도 뚫어버릴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모든 선수들은 수싸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상대가 보자기를 낼 거라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알고만 있어도 가위를 낼 자신감이 생긴다·
“일어나 다시 해보자·”
잘못된 지점을 짚어줄 때에는 고통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인간도 결국 동물은 동물·
에미카의 팔심이 빠지거나 종아리의 무게중심이 틀릴 때마다 목검으로 쳐서 교정해주었다·
딱-!
“흐윽!”
“누가 이딴 식으로 가르쳐준 거야?”
“우리 스승님이·”
“그래? 그 인간도 맞아가면서 다시 배워야겠네·”
“···!”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은 것처럼 에미카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 어쩌라고·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야· 무술에 정답은 없지만 명백한 오답만큼은 존재해·”
결국 에미카는 맨바닥에 주저앉아 구슬비처럼 흐르는 땀을 닦았다·
온몸에 멍이 시퍼렇게 올라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짐을 주섬주섬 챙겨 집에 갈 채비를 하였다·
“오늘은 이게 끝이야?”
“응· 더 하면 내가 화가 나서 언니를 때릴지도 몰라·”
“치이 이미 실컷 때렸으면서·”
“진짜 제대로 맞아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
에미카는 일그러진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국가 교류전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작년 우승자가 누구였더라?”
“아슈빈 라마크리시난· 인도 애· 올해는 나이제한 때문에 참여 못 해·”
“그래 걔도 보니까 언니랑 비슷한 수준이더만· 외적 발현으로 싸대기 몇 번만 갈기면-”
“나메야 나메야·”
“응?”
“너는 심상세계를 깨우친 계기가 뭐야? 이 세상에서 너보다 일찍 오러를 개화시킨 사람은 없었잖아·”
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전생의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기 때문·
적당히 각색해서 얘기해주는 건 괜찮지 않을까?
“나한테 여동생이 하나 있었거든?”
“여동생? 보육원 여동생?”
“대충 그런 거라고 쳐· 돌아가는 꼴이 누구 없는 게 보육원이랑 비슷했으니까· 어쨌든 그 동네가 치안이 별로 안 좋다보니까 나쁜 사람들이 참 많았어· 그러다가 어느 날 동생이 유괴된 거야·”
“헉 동생분은 어떡해···!”
에미카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심각한 눈을 떴다·
“원래 납치의 결말은 뻔하잖아· 죽었어·”
“아아···”
“범인도 빨리 찾았는데 정말 보잘것없는 인간이었더라·”
“나메한테 그런 슬픈 일이 있었구나··· 그럼 그 범인은 감옥에 잡혀들어갔어?”
“아니 내가 죽였어·”
“··· 뭐?”
“죽을 때까지 패서 죽였다고·”
* * *
리시안셔스 튤립 다알리아·
나는 올해도 똑같이 세 가지 종류의 꽃을 사들고 엄마를 뵈러 갔다·
유골함 앞에서 오랫동안 명복을 빌었다·
지난 1년동안 겪었던 일을 어린이의 입을 빌려 조잘조잘 이야기해주었다·
두리도의 이상한 할아버지로부터 보육원 친구 백아린을 구해준 일 한국대에서 가정사 딱한 여학생과 엘리트 커플을 만났던 일·
엄마가 이름까지 다 기억하지는 못 하겠지만 차례대로 백봉곤 훈장과 단니엘 신연호 반소월을 읊어주었다·
기분전환을 위해 못 가본 해외여행도 가보고 천재발굴단에 출연한 소식도 알렸다·
중간에 폭탄테러에 휩쓸리기는 했지만 엄마가 걱정할까봐 삐에로 상자를 받았다고 거짓말도 했다·
천교수와 몇 번 싸우다가 화해도 했는데 이제는 아빠라는 낯간지러운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일본 거대 유파의 보물을 깨먹기도 하고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한창 자라나는 학생들의 대가리도 가리지 않고 박살냈다·
특히 네버랜드는 엄마랑 꼭 같이 가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어서 눈물이 나왔다·
아델라의 몸값을 벌기 위해 광고도 바쁘게 찍으러 다니고 전생에서 한창 연구했던 치유마법이 약물로서 개발되어 내심 기뻤다·
발푸르기스의 흔적을 놓친 건 아쉽지만 우려했던 7서클 마법들이 잘 시전되어 다행이었지·
최근에는 국세청 조사 때문에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지만 흐지부지 잘 넘어갔고 친구들과의 체육대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었다·
요새는 에미카의 수련을 돕느라 정말 바쁘다고 털어놓았다·
“오늘도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인사를 하고 나오기 전 문득 설아의 유골함 주위로 비어있는 8개의 칸들이 신경이 쓰였다·
봉안당 측에서는 내게 감사함의 표시로 비워놓은 자리라지만 이래서야 꼭 설아가 외톨이 같지 않은가·
전생에 고인이 된 지인들을 차례대로 떠올려보았다·
생모 테네브레이아와 귀여운 동생 니오베 용사파티 3인방 클라우스 실비아 레밀리아 거기에 마리아 스승님과 총참모장 루리까지 합하면 7명이다·
‘애매하게 하나가 비네· 히아센 너도 그냥 죽은 걸로 칠게·’
나라가 엉망이 되었는데 시민혁명 한번쯤은 일어났겠지·
그럼 정확히 8명이 된다·
사실 추모할 생각은 딱히 없었다·
괜히 내 죄책감만 키우는 꼴이 되어 이번 생에 충실해지기로 한 이상 전생은 전생으로서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봉안당을 나오던 중 에미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에미카 언니?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연락했어?”
“고이즈미 요시히로입니다·”
“아 네 어쩐 일로·”
칼칼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길래 독감이라도 걸린 줄 알았다·
스승이 왜 에미카의 폰으로 연락을 했지?
“노나메 양· 후계자님과의 수업은 이만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습니다· 6회분 비용은 계좌번호 남겨주시면 추후 입금해드리겠습니다·”
“예? 잠깐만요 왜 갑자기·”
“아가씨께서 더 이상의 교육은 원치 않으신다고 합니다·”
뜬금없는 소리에 눈살을 확 찌푸렸다·
“카츠하타 에미카의 의견인가요? 이유가 뭐라고 하죠?”
“전적으로 아가씨의 의견이 반영되었습니다· 저희도 영문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메 양께서 더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
설마···
겨우 그런 말 하나 했다고?
혹시나 다른 이유가 있을까 싶어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에미카의 안색이 안 좋아졌을 때가 딱 그 말을 꺼냈을 때밖에 없었다·
“일단 그만두는 이유라도 들어보게 내일은 들려도 괜찮을까요?”
“잠시만요··· 괜찮겠니? 예 괜찮답니다·”
“네 그럼 아카데미 끝나고 바로 들릴게요·”
하아···
진짜 애 보는 건 어렵구나·
* * *
‘분명 거짓말이 아니었는데···’
에미카는 어렸을 적부터 거짓말을 판별하는 눈썰미가 좋았다·
메이와쿠를 끼치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가문의 어르신들을 관찰하다 보면 진심일 때와 아닐 때 오러의 움직임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카츠하타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있으면 당주님이 아니라 내게 먼저 말해주면 좋겠다· 얼마나 곤란했는지 아느냐·”
“죄송합니다· 하필 바로 앞에 당주님께서 계셔서···”
“후계자 교육도 잘 듣던 네가 그러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9살짜리 애한테 배우는 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더냐?”
“그런 게 아니에요·”
“나메 양도 들어오는구나· 그래 이유나 한번 들어보자·”
나메는 아카데미 교복차림 그대로 한옥 호텔 접견실에 들어왔다·
에미카와 스승이 나란히 소파에 앉고 나메는 맞은편 의자를 꺼내 자리에 착석했다·
“왜 갑자기 배우기 싫다는 거야? 내가 너무 빡빡하게 굴어서 그래? 언니가 너무 잘 따라오길래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줄 몰랐어·”
실로 나메의 교육이 말도 안 되게 힘든 건 맞았다·
이 정도 강도의 훈련은 카츠하타 유파 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하는 나메는 두려움의 대상 그 자체였다·
만약 나메가 성인이었으면 에미카도 범인이 그 자리에서 죽은 게 정말 잘 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메는 겨우 8살이잖아···’
이는 어린이의 범주를 한참이나 넘어섰다·
어린이의 탈을 쓴 괴물 혹은 악마·
한편으로는 나메를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에미카는 교육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사람을 죽였다는 말 정말이야?”
에미카는 개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고이즈미 요시히로의 흰 눈썹이 기이하게 올라갔다·
나메는 그 질문을 받고도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뭐야 그것 때문이었어? 당연히 거짓말이지 나는 사람을 죽여본적이 없는데?”
나메의 오러하트에 흔들림 하나 없었다·
즉 진실이다·
‘뭐야 이게 왜 진실이야? 내가 오해한 거라고?’
에미카의 볼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사흘동안 끙끙 앓았던 자신이 바보같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니?”
고이즈미 요시히로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아 카츠하타가 물어봤거든요· 외적발현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정말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깨우쳤다고 말해줬어요·”
“흠··· 분노를 매개로 내면세계를 깨우치는 건 굉장히 드물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지· 분노를 하면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는 사람도 존재하니까·”
“그럼 나한테 한 말은···!”
“에이 당연히 과장이지 과장·”
나메가 싱긋 웃었다·
오러가 살짝 흔들렸다·
진실도 거짓도 아니고 애매했다·
‘과장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죽이지는 않았다는 건가?’
에미카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 정도라면 에미카도 용납 가능한 범위였다·
“그럼 오늘도 수업 들어줄 거지?”
“응 오해해서 미안해···! 내가 정말 뭐에 씌었던 것 같아·”
“그럼 다행이고· 고이즈미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카츠하타 양이 많이 나아진 것 같나요?”
“가문의 상위 검법을 스스로 터득하기까지 하더군· 천재들끼리의 시너지가 이 정도일 줄 알았다면 더욱 빨리 만나보게 할 걸 그랬어· 혹시 나메 양은 카츠하타 유파에 입문할 생각은 없나?”
“아시잖아요· 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알겠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고이즈미와 나메가 신뢰의 악수를 나누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 (이번 생에서는)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나메의 9번째 생일이 나올 예정입니다!! 우리 나메 드디어 9살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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