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62
흰쌀밥 위를 가득 덮은 큼지막한 장어·
젓가락으로 살을 가르니 향긋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갈색 소스가 고루 발린 살점들을 입에 왕창 넣는다·
거기에 계란찜 한 입 가쓰오 육수 한 모금까지 여기가 천국인가?
“맛있어요···!”
내 한마디에 가족들이 빵 터져 웃음을 지었다·
반소월의 아버지 반일권 총영사는 우엉조림과 명란젓이 담긴 반찬 그릇들을 내쪽으로 밀어주었다·
야채는 안 먹는데 성의를 봐서라도 한 젓가락은 집어야겠다·
“칼로리를 태워서 힘을 낸다니 이야 난 무슨 네가 칭기즈 칸의 후예인 줄 알았다! 근데 이 쪼꼬만한 몸으로 태울 칼로리가 있긴 해? 우리 소월이가 너무 약한 거 아니야?”
“무슨 소리? 우리 과에서는 내가 제일 강해요·”
“에이 애들이 여자라고 봐줬겠지·”
“지금 여기서 한판 뜰까요 아빠?”
“좋지· 여보 내 방에서 오함마 가져온나·”
반소월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소매부터 걷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밥풀 묻은 주걱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제발 어른이 되었으면 둘 다 철 좀 들어라!”
“그래서 한국대 철학과 입학했잖아·”
“여보 나도 철 들려고 어제 부하 직원들이랑 회식으로 싱싱한 철갑상어를 먹었어·”
“아유 내가 말을 말지! 나메야 부족하면 더 줄 테니까 많이 먹으렴?”
여기도 썩 정상적이진 않지만 어쨌든 화목하기만 하면 된 거 아닐까·
우리가 저녁을 먹을 동안 반일권 아저씨는 혼자 펜을 돌리며 추천서에 적을 내용을 고민하고 계셨다·
“김웅 마도사님은 ‘국사무쌍’ 박태석 마도사님은 ‘너의 청춘을 응원한다’라고 대충 쓰셨는데 내용은 별로 상관 없나봐요?”
“아니· 막내에 당첨된 게 하필 나라서 그래·”
“막내요?”
“추천서 문구는 5명 중 가장 기수가 낮은 사람이 짬처리··· 아니 도맡아서 쓰는 거야· 나도 기수로는 어디가서 꿇리지는 않는데 어디서 이런 고인물들만 쏙쏙 골라왔을까? 조금 더 고민하고 내일까지 써줄게· 괜찮지?”
“네 저야 감사하죠·”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맛난 거 많이 먹고 재밌게 놀다 가라· 불편한 거 있으면 소월이한테 말하고·”
저녁을 다 먹은 난 뒤 나는 간단히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잠옷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이마에는 세안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다시 반소월의 침실로 이동했다·
“침대가 없네?”
“나메는 침대 선호파? 불편하면 매트리스 가져와줄까?”
“아니 난 상관없어· 바닥에서 자는 것도 편해·”
돌바닥에서 노숙해본 적도 있는데 푹신한 이불 위 쯤이야·
반소월이 내 베개와 이불을 가져다주는 동안 나는 천교수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안부인사를 건넸다·
화가 다 풀린 건지 반쯤 체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통화를 끊었을 즈음 반소월이 차가운 액체를 내 볼에 발라주었다·
“응? 이거 뭐야?”
“알로에 수분크림· 소중한 아기피부 오래오래 지켜야 해·”
얼굴 마사지를 받는 동안 나는 발바닥에 피로가 많이 쌓였음을 알게 되었다·
집에서 출발해 강원도 부산을 거쳐 후쿠오카에 도착할 때까지 단 18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문명의 이기를 오늘만큼 잘 누리던 때가 있었나 싶네·’
잠자리에 누웠지만 바로 잠이 오지는 않았다·
평소 취침시간을 생각하면 아직 좀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심심하면 브이튜브라도 볼래?”
“응? 그럼 언니는?”
“난 가상현실 들어가서 보게· 천장에 빔프로젝터 틀어줄 테니까 나메는 편안하게 누워있어·”
항상 나는 브이튜브 컨텐츠를 만드는 창작자의 입장이었지 소비를 했던 적은 정말 드물었다·
반소월은 캡슐에 들어가서 홀로그램으로 가상현실 속 자신의 모습을 띄워서 보여주었다·
“국가교류전은 본 적 있어?”
“작년 결승이랑 에미카가 나오는 경기만 봤어· 개인전으로 진행한다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몰라·”
“올해는 41개국에서 64명이 참여했다고 하더라· 모든 경기는 단판제 토너먼트니까 6번만 이기면 우승인 거지· 아 여기 티저도 나왔네·”
브이튜브 알고리즘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여러 영상들을 관람했다·
유명 가수들이 출연하여 부른 테마곡 각 선수들의 포부 팬들의 응원 등등·
클랜 단위로 밀어주는 잘 나가는 유망주들은 아예 개인 채널을 파서 다큐멘터리와 훈련 영상까지도 올린 모양이었다·
에미카도 당연 예외는 아니었다·
하얀 도복을 입은 소녀가 뿔을 달고 단순히 광선검을 휘두를 뿐인 영상은 1주일만에 조회수 5천만을 가뿐하게 넘겼다·
‘이건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거야?’
한 술 더 떠서 국가교류전 공식 채널에서는 참가자들이 올린 영상의 하이라이트를 모아 편집본을 게재하기까지 했다·
마치 대회 전부터 이들의 경쟁을 부추기려고 하는 듯 보였다·
[#11 Emika Katsuhata· 그녀는 이번 국가교류전에 있어서 아주 강력한 우승후보입니다· 3서클 더블캐스팅이라는 막강한 무기와 함께 최근에는 외적발현까지 성공시켜버림으로써 약점을 찾아볼 수 없는 참가자가 되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카츠하타의 검이 빨갛게 물들어버린 순간부터 승리는 급격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질 것입니다· 그게 당신쪽은 아니겠죠·]
다소 오글거리는 대사와 함께 에미카의 대련 장면들이 휘황찬란하게 나왔다·
댓글도 하나같이 호평일색이었다·
[베스트 댓글]
-(07:39) 폭포 아래에서 정신을 수양하는 고리타분한 수련 따위는 이제 더 이상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카츠하타는 현대의 전투이론을 모두 흡수했고 마법과 오러의 적성우위를 가릴 수 없을만큼 다재다능하기까지 합니다· [좋아요: 6·4천]
└ 노력하는 천재는 무섭다·
└ 천무지체!
└ 헝가리 듣보잡한테 패배한 에미카가 우승후보?
└ 작년 카츠하타는 겨우 14살에 불과했잖아· 어린 애들한테 두 살 차이는 엄청 크지·
└ 멘탈을 제외하면 완벽한 육각형 스탯의 소유자·
-(08:01):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매우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라스트 제다이는 일본인이었나요? [좋아요: 2·1천]
└ ㅋㅋㅋㅋㅋㅋ 우리 할머니도 똑같은 소리 했음·
└ 와 스타워즈 아시는구나!
-(08:23) 교보재에 실려도 손색이 없는 완벽한 검법이다· 옵포지션(상대의 칼을 자신의 칼로 밀어내는 행위)을 외적발현만으로 완벽하게 수행해낸 장면을 보고 나는 그녀가 전설의 반열에 들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좋아요: 8·7천]
나는 댓글을 둘러보며 영상을 다시 처음부터 주의깊게 보았다·
쓰던 검이 두동강난 에미카가 곧바로 광선검을 만들어내 회심의 일격으로부터 벗어나는 장면이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흐으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영상을 중간에 멈추자 반소월이 이유를 대뜸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이 부분 있잖아· 8분 24초 25초· 머리로 수직으로 내려찍는 공격을 샤이텔하우라고 하는데 여기서 굳이 무게중심을 뒤로 뺄 필요가 없어· 아 이게 말로는 설명이 힘든데· 뭐 잡을만한 거 없나·”
검을 대체할 마땅한 물건이 없었다·
에미카의 자세가 왜 문제가 되는지 최대한 말로 풀어서 설명했다·
“모든 공격에는 대응되는 방어법이 있고 방어자세에서 가장 빠르게 나갈 수 있는 공격이 존재해· 에미카의 스탠스를 보면 상대의 리더블링 그러니까 2차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템포를 늦춘 걸로 보이는데··· 애초의 검의 무게가 달라서 상대가 그럴 속도가 안 나와·”
저게 안 좋은 자세라는 의미는 아니다·
체스로 따지면 4수 안에 체크메이트를 할 수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놓친 거라고 보면 됐다·
“상대가 진짜 신중한 사람이라서 첫 수에 힘을 다 쏟지 않고 내리친다해도 이렇게 검을 비스듬하게 치우고 이렇게 직선으로 들어가면 광선검이 먼저 목에 도달하지?”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일단은 응·”
“아주 만약에 에미카가 광선검을 소환할 걸 알았어도 저기까지 검이 내려와버린 이상 외통수야· 오프닝을 노출하기 위해 일부러 검을 노린 거라고 봐야하는데··· 그때는 타이밍 맞춰서 검을 아래로 내려버리면 상대 상체가 비어서 자멸하는 꼴이지·”
“오오···! 하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이론이 그래· 여기서 굳이 더 트집을 잡자면 외적발현을 국소적으로 컨트롤하는 보완점도 찾을 수 있겠네·”
“나메 멋지다 흐에에···”
그냥 영상감을 뽑아내기 위해 검과 검이 맞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면 나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연기라고 하기엔 에미카의 대응이 물 흐르듯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걸 에미카에게 지금 말해준다한들 하루 이틀 만에 고쳐지지는 않겠지·
괜히 대회 하루이틀 전에 마음을 심란하게 할 바에야 나는 조용히 브이튜브에 댓글 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만족을 했다·
-비공개: (08:25) 만약 이 동작을 고의로 행한 게 아니라면 개선이 필요한 부분 같아요· 어깨회전속도 보폭의 길이에 따라 페인트성 공격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상황에서 카츠하타 에미카는 한 가지 사소한 실수를 범했는데··· (더보기)
“흐아암냠 피곤해··· 지금 몇 시지?”
댓글을 다 적고 시계를 봤는데 벌써 새벽 두 시였다·
‘아니 벌써 두 시라고?’
하품을 한 입이 절로 오므려졌다·
반소월은 이미 캡슐에서 깜빡 잠들어버린 것 같았다·
캡슐을 수면모드로 돌려주고 내부 라이트도 전부 꺼주었다·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구태여 저항하지 않았다·
잔잔한 선풍기 바람 푹신푹신한 이불 이동거리만 1000km 넘었던 오늘 하루의 여정을 되새기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내가 쓴 댓글은 수많은 비추테러를 받고 답글만 300개 이상이 달리는 기염을 토해냈다·
* * *
[해외마법 갤러리]
[부끄러운 자화상·jpg]
국가교류전 공식 티저에 한국인 한 명이 카츠하타 에미카한테 찐텐으로 13줄짜리 훈수 댓글을 달았는데 지금 반응이 ㅈㄴ 뜨거움·
좋아요 300개인데 싫어요는 5000개에 답글은 무려 400개 돌파 직전!
다른 애도 아니고 하필 외적발현까지 성공시킨 쌉재능러한테 그것도 오러와 검술로 훈수를 두냐ㅋㅋㅋㅋ
(물음표 페페짤)
너희들 중 몇몇은 겨우 브이튜브 댓글 가지고 웬 난리법석이냐 싶겠지만 이미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어글리 코리안으로 찍혀서 급속도로 퍼지는 중임 ㅇㅇ·
이번에도 한국이 국가교류전 참가 안 해가지고 이걸 빌미로 지금 열 배로 뚜드려 맞는 상황이다·
안 그래도 올해 굴릴만한 떡밥이 너무 없었는데 국가교류전 해설자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ㄹㅇ 국제망신임·
[댓글]
-한국이 참가를 안 한 거냐? 못 한거지·
└ 안 한 게 맞지 코스타리카도 참가했는데 한국 마도사들이 설마 걔네들보다 딸리겠냐?
-흠 계정 비공개··· 역시 큰일은 유동이 한다!
-He is Chinese·
-지랄을 한다 페인트 구분을 어떻게 보폭을 보고 판단함? 딱 봐도 씹덕일 듯·
└ 외적발현이 무슨 스위치도 아니고 껐다 켰다 이지랄 떠는 게 ㄹㅇ 어이가 없음ㅋㅋㅋ
└ 오러하트 밖으로 꺼내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 그걸 알았으면 절대로 저렇게 못 말하지·
└ 일반인이 뇌피셜로 싸질렀을 가능성 99·999%임·
-국가교류전 공식 방송에서 해설자들이 한국 훈수충 이야기를 꺼낸다?
└ 오우쉣!
└ 안 된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
└ 평생 조리돌림감ㅋㅋㅋㅋㅋㅋ
[훈수충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까는 거임?]
어깨와 보폭만으로 페인트 모션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라도 했냐
카츠하타 유파 후계자 상대로 검법이 아쉽다고 말하기라도 했냐
외적발현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라고 말하기라도 했냐?
도대체 (비공개)가 뭘 잘못한 거임!!!(진짜 모름)
[댓글]
-다 했네ㅋㅋㅋㅋㅋㅋ
-하나같이 거를 타선이 없네ㅋㅋㅋㅋ
-일본인들이 다같이 꼭지 돌아간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음·
└ 쪽바리가 노나메한테 훈수를 둔다? 나같아도 바로 아가리 날려버릴 듯ㅋㅋㅋ
-이 난리가 났는데 자삭 안 하고 버티는 것도 존심은 인정한다·
└ 해도 소용없음· 온갖 커뮤니티에 퍼질 대로 다 퍼졌는데·
-하필 카츠하타 에미카라는 성역을 건드린 게 너무 컸다· 내가 보기엔 몇몇 개는 맞는 말도 있는 것 같은데·
└ 어딜 봐서 맞는 말임?
└ 너무 방어적이긴 하잖아· 광선검이면 좀 더 시원시원하게 휘두르는 걸 기대했는데·
[시즌1호 훈수충 답글 드디어 나왔다!!!(주작아님!)]
주작 아니라 훈수충이 진짜로 답글 달아줬음· 스샷에 링크 첨부해놓음·
[-(비공개): ㄱㄷ 영상 찍어서 보여드릴게요·]
이거 한 판 뒤집기 각이냐?
[댓글]
-아니 자신감 뭔데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좀 호감인데?
-씹쌍남자 인정합니다·
-팝콘 각이다ㅋㅋㅋㅋㅋㅋ
-느슨해진 국가교류전에 긴장감을 주는 비공개!
-가보자~ 가보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후원자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러는 지속시간이 짧은 게 단점으로 꼽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세밀한 조작이 극히 어렵습니다· 반소월의 경우 시각적인 정보보다는 오러를 얇게 퍼뜨려 반사되는 양에 따라 물체를 감지하는 편입니다· 마비된 신체를 조금 움직이는 것 정도는 재능에 따라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손 같은 복잡한 기관은 어렵겠지만 관절을 움직이는 건 난이도가 훨씬 쉽습니다·
의문의 훈수충 노나메 본인 등판!!
나메 정도의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훈수나 악플을 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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