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21
마왕이 마족령의 악명 높던 마스터 급 암살자 노이 타닛사까지 동원해가며 시도했던 레비엥 회담 암살 시도가 실패했다·
단순 암살을 넘어 악신이 다시금 태동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까지 남겼다· 이에 제국은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다양한 왕국들에게 마왕군의 위협을 다시금 설파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 예고했다·
마신 에파가와 빛의 에테가 점지한 두 용사의 활약으로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으나 레비엥엔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어 다양한 교단의 성직자들이 조사를 위해 모여드는 중이다· 그 와중에도 회담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일각에서는 그런 초유의 사태 속에서 회담을 이어 나가는 건 무책임한 행보가 아니었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으나 대부분은 이티스엘과 제국이 그만큼 자신들의 전력을 신뢰하고 충분한 대비를 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대리인을 보낸 것도 아니고 당사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곡해된 소문 진짜 정보 일부러 부풀린 위업 등등의 내용이 적혀 있는 문서들을 넘겨보던 지크프리트가 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진짜 이럴 땐 마빡이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니까· 걔 사실은 황실 핏줄이 아니라 어디의 용같은 거 아닐까? 왜 우리 전생에서도 그런 클리셰는 좀 있었잖아·”
너스레를 떨며 농담을 던지는 지크프리트였지만 반 정도는 진심이기도 했다· 레비엥에서 개최된 회담의 규모가 컸던 만큼 일련의 사건이 불러 온 여파가 엄청났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이다·
만약 용사들이 없었다면· 만약 대비가 부족했다면·
그런 가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결과가 야기되었을 사태다· 평범한 전쟁이었다면 누구 하나 경질되는 걸로 끝나지 않고 영주의 목이 잘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원래 이런 건 상대가 아무리 강대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총대를 쥐어 준 뒤 불만을 종식시키는 법이니까·
상대가 마왕이든 마스터든 대중은 관심 없다· 그저 안전한 일상이 위협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런데 습격이 있을 당시부터 이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겨버린 에스뮈에와 이티스엘 7세의 태도로 인해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고 만 것이다·
습격? 있었다· 근데 그게 뭐·
어쩌라고·
내성이 뚫리지 않았냐고? 상정했던 결과인데? 충분히 상황을 상정해서 막을 수 있는 인력을 배치했고 실제로 막았잖아· 뭐가 문제야? 외성부터 배치했으면 인력 부족으로 수비에 구멍이 났다는 걸 몰라서 그래?
요인들의 안전에 위협이 있지 않았냐고? 여긴 엄연히 전장인데 무조건 안전할 리가 있냐? 서부 왕국 지대에서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독살 소식이 퍼지고 오러 유저조차 되지 않는 암살자들이 넣은 독 때문에 죽는 수준의 너희가 마스터 급이 작정하고 쳐들어온 걸 막아 낸 우리한테 대비를 소홀히 했다고 말할 자격이 있어?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마왕 위험하다고 말했잖아· 경고했을 땐 무시해 놓고 ‘언제나’처럼 대비하고 막아 냈더니 그거 한 번 보고 화들짝 놀라서 입을 털어? 이게 피해로 보여? 악신까지 재림했는데 ‘겨우’ 이 정도 피해면 영웅적인 승리인데?
반박할 수 있으면 반박 해 봐· 대신 개소리에 불과하면 마왕군 끄나풀이로 취급하고 단두대로 보내거나 전쟁이다·
“하여간 정치인들은 어딜 가든 뻔뻔한 게 기본소양이라니까· 그래도 같은 편이니 편하긴 하더라· 걔가 미리 손을 쓰지 않았으면 몰매를 맞는 건 우리가 됐겠지·”
공식 서한에 담겨야 하는 내용인지라 좀 덜 뻔뻔하고 덜 무례하게 적혔을 뿐이지 제국과 왕국의 반박은 실상 저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런 문서와는 담을 쌓고 살던 지크프리트조차 기가 찰 정도였으니 실제 그 문서들을 받게 된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선동과 날조가 아니라 팩트에 의거한 반박이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누가 감히 마왕의 편린이 깃든 마스터 급 암살자의 등장과 거기서 비롯된 악신의 성역으로 발생한 부수적인 피해라는 걸 측정하고 가설을 세워서 이티스엘과 에슈누아의 대응이 틀렸다고 반박할 수 있겠는가?
당사자들이 아니면 함부로 각도기도 댈 수 없는 와중에 잘못 건드리면 대륙의 공적으로 낙인 찍히고 악신 추종자로 낙인 찍힐 가능성마저 있으니 굳이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혀 있지 않다 하더라도 자살 희망자가 아니고서야 건드리지 않는다·
그렇게 에파가의 용사와 에테의 용사는 또다시 자신들의 이름에 걸맞은 업적을 세우게 되었다·
“아 형이 부탁했던 그거· 짭이라도 좋으니 용이 나오진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아니었어· 뭔 이상한 거인이 나오더라고·”
똥 치우기 밖에 안 했으면서 뭔 업적이냐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서둘러 덧붙인 설명과 달리 당시의 지크프리트는 용이 나오길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심 한복판에서 그런 게 나왔다간 무슨 사달이 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으니 용과 자폭만 아니길 빌었다· 그 기도가 닿은 것인지 실제로 두 경우의 수는 피할 수 있었지만···
“음 솔직히 좀 쉽지 않았어· 형이라면 어땠을지 모르겠네·”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좋게 끝난 건 아니었다·
통제력만 잃었을 뿐 남아 있는 악신의 기운이 급격히 줄어든 건 아니었던 탓에 형태를 갖추고 활동을 시작한 거인은 레비엥 외성 성벽 정도는 그냥 부수고 넘어갈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강했다·
걷는 것만으로도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거인이 흘린 피는 지역을 오염시켰다· 정령술사 세르타가 비슷한 크기의 정령을 소환해내지 못했다면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레비엥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을 것이다·
세상에 ‘잘 막아 냈다’고 알려진 사건의 내막은 그러했다·
피해는 줄인 건 사실이지만 마왕의 편린이라는 존재를 도시에 들인 대가는 적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도시에서 몰려든 성직자들이 오염된 구역을 격리하고 환자들을 치료하며 악신의 성역을 정화하기 위해 뛰는 중이었고 과도하게 정령의 힘을 발현한 세르타는 고열에 시달리며 제대로 거동조차 못하고 있다·
사실 지크프리트라고 해서 상태가 좋은 건 아니다·
그 역시 거인과의 결전을 통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의도치 않게 여분의 치유 구슬을 두 개나 소진한 상태로 치르게 된 싸움은 결코 쉽지 않았기에 테네아시를 비롯한 그의 일행들 역시 침상에서 쉬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크프리트는 굳이 엘드미아를 찾아와 수다를 떨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는 했어· 이 정도면 형이 깨어나도 꿀리진 않을 거야·”
의식은 있고 움직이기라도 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엘드미아는 일주일이 넘도록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들고 있던 문서들은 탁자 옆에 올려 둔 지크프리트는 편하게 자는 것처럼 보이는 엘드미아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강에 이상은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큰 사건을 해결했는데도 신나게 웃고 떠들기는커녕 환자처럼 누워만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다· 이에 저절로 어깨가 축 처졌지만 금방 마음을 다잡은 지크프리트는 이내 허리를 펴고 깔아둔 방음 마법을 해제한 다음 조용히 방을 나섰다·
“이야기는 끝났나요?”
무려 세 교단(마신교 제국 신성회 그리고 성광십자회)의 성녀들이 매일 같이 입을 모아 아무 문제 없음을 선포하는 나날이 이어지는 와중에 잠깐 양해를 구하고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던 지크프리트가 밖으로 나오자 라이카를 안아 든 채 창밖을 바라보던 아실리에가 문 열리는 소리에 반응하며 말을 걸어왔다·
며칠째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엘드미아에 대한 걱정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안절부절못하는 와중에도 아실리에는 침착했다·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이젠 익숙해졌다고 하는데··· 지크프리트가 보기엔 엘프 특유의 감성이 어느 정도 섞인 탓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이 침착한 반응이다·
“예 뭐··· 의미가 있진 않겠지만 말이죠·”
그래도 덕분에 요 며칠 가장 대화하기 편한 상대이긴 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날이 서 있었으니까·
“혹시 그사이에 누가 왔다 가진 않았습니까?”
전생과 연관된 이야기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방음 마법을 펼친 탓에 외부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지크프리트의 질문에 아실리에는 작게 웃으며 라이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뽈뽈뽈 방 안으로 향하는 라이카에게 지크프리트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절망적인 대답을 돌려주었다·
“왔다 갔죠·”
“아··· 그 몇 명이나···?”
“전부 다요·”
“하아···”
누구인지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크프리트는 아실리에의 대답만으로 방문객들을 특정 지을 수 있었다·
마빡이 레비엥 변경백 오가토르프 마신교 성녀님에 성광십자회의 꼬마 성녀까지·
그중 귀한 시간을 할애해서 힘들게 방문 했을 사람만 넷이었으니 오늘은 얌전히 침대로 돌아가서 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지크프리트는 아실리에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뒤 복도를 떠났다·
물론 진짜로 방에 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깨어 있는 용사가 해야 하는 뒤처리가 아직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Lyun 님 11 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빼빼로는 못 받아도 11코인은 받았으니 글쟁이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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