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
“이 이게····”
마법봉의 막대가 네 갈래로 갈라지더니 마법봉의 보석을 향해 푸른 빛줄기를 쏘았고 몸체의 금속이 순식간에 증식되어 2미터가 넘는 거대한 포신이 완성되었다·
마법봉의 포신 주위를 빙글빙글 날고 있는 기계 장치들이 열기를 식히며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다·
황태자는 지금의 광경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듯했다·
거대한 포신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그녀에게 평소의 히스테릭한 모습은 없었다· 마치 위대한 전사처럼 하얗게 불태웠다는 듯 어딘가 공허하기까지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포화 속에서 벚꽃의 꽃잎처럼 흩날리는 에너지 파편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어쩐지 숙연함도 느껴졌다·
뿐인가?
목표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바닥에서는 포격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용암이 들끓어 쇳물을 녹여댔고 놈이 있던 자리의 뒤로 거대한 구멍이 뚫려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심지어 구름마저도 층층이 뻥 뚫려 궤적을 따라 기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꿀꺽-
황태자의 목울대가 너울거렸다·
침을 삼키지 않고는 시간이 흐르고 있는 줄도 몰랐을 터다·
‘절대로····’
황태자는 앞으로 그녀에게만큼은 절대로 깝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최소한 노처녀라고는 놀리지 말자·’
응 그래· 그게 맞다·
드래곤 브레스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었다·
“이게··· 뭐야·”
한편 그녀는 황망함에 잠겨 있었다·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위력이다·
내 내가 뭘 본 거야?
분명 놈은 무언가의 방어 장치까지 작동시켰다· 푸른빛이 놈의 육체를 감싸며 흐릿하게 일렁거렸었다· 다만 놈이 뭔 짓을 했든 아무런 저항 없이 거대한 빛줄기에 꿰뚫렸을 뿐이고·
마법봉(?)은 천천히 재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허나 그녀는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마법은거들뿐): ···대 대체 정체가 뭐죠?]
이 자리엔 황태자도 있었기에 메시지로 보냈다· 혼잣말하는 미친년까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ㅇㅇ?
[(마법은거들뿐): 설마 여태껏 했던 말들이 전부 사실이라는 건가요?]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난 거짓말한 적 없는데?
“····”
장난스러운 주딱의 어투에도 그녀는 웃지 못했다·
‘말도 안 돼····’
그녀도 바보가 아니다·
장난 같지도 않은 지팡이(?) 하나로 이러한 이적을 만든 존재가 거짓말투성이의 허언좌일 리 없다·
그녀는 커뮤니티에서 그가 했던 말들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설마 커뮤니티에서 말했던 행성을 폭파시키니 뭐니 하는 것이 진짜였을 줄이야·
아마 그는 그녀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녀는 패키지에 들어가 있던 해킹 칩을 내려다봤다·
거멓고 뭉툭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미세한 틈 사이로 푸른빛을 발광하고 있었다·
‘이것도 보통의 기물이 아니겠지·’
그녀는 그가 말해줬던 사용법을 떠올리며 연구실 내에 있는 거대한 기계 장치에 해킹 칩을 던졌다·
아무리 놀랐다고 하나 해야 할 일까지 잊지는 않았다·
해킹 칩은 허공을 날아 기둥에 부딪히더니 얇은 실을 뿜어내며 기둥에 부착되었다·
우우웅-
기둥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미미한 진동을 일으키며 형태가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연구원으로서의 호기심이 고개를 디밀었지만 참아냈다· 호기심보단 녀석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었는지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해킹 칩···· 패키지에 들어가 있었다면 필시 이유가 있겠죠·’
푸른빛을 점멸하는 거대한 기둥이 황궁 위를 뚫고 올라가 거대한 첨탑을 구성하고 있었다·
고향에 통신을 넣기 위해서라는데 정확한 용도는 아무도 몰랐다·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흐음?
[(마법은거들뿐): 뭔가 있나요? 도대체 이건 뭐죠?]
주딱은 그녀의 말에도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녀가 조급함에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내려던 찰나·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에테르 덩어리네? 원시적이긴 하지만 확실히·
“예?”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이것도 거기에 던져봐·
우우웅-
그 순간 차원 상점에서 물품을 구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허공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패키지에 들어가 있던 해킹 칩과 유사한 기기인 것 같았다·
그녀는 그가 시키는 대로 잠자코 따랐다·
‘에테르?’
아까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자 주딱의 입이 열렸다·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으음· 이건 너무 효율이 안 좋은데? 게다가 너무 원시적인 활용법이라 효율이 구데기야·
“····”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확실히 에테르 계열이네· 뭐 모닥불과 핵융합만큼의 차이는 있다지만·
[(마법은거들뿐): 그게 뭔가요?]
여태 묻는 것은 웬만해선 꼬박꼬박 알려주었던 주딱이 그에 관해선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그는 현재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
그래도 잠자코 기다리자 주딱이 몇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가치 100짜리 행성을 부숴서 가치5를 뽑아먹는 행위랄까? 네가 말한 마나 오염이 뭔진 모르겠지만 아마 거기엔 이 장치도 큰 영향이 있었던 것 같군· 에테르가 털린 행성은 단순히 물리적 재앙만 일어나는 게 아니거든·
“!!”
그녀는 쏟아지는 주딱의 말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즉 아까 그 녀석이 그동안 행성의 자원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는 말이야· 마나 오염까지 일으키면서·
“그 그게 무슨 소리죠?”
그녀의 입에서 육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은 황태자를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아무튼· 녀석은 죽었지만 조만간 저 녀석 종족이 반응할 듯하네·
“예?”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를 쫓아가기도 버거웠다·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녀석의 생체 신호가 이미 어딘가로 전송된 듯 ㅎㅎ
그녀는 그의 말을 되새기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 그럼! 역시 죽였으면 안 되잖아요!”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아 그건 아님ㅎㅎ
황태자의 미친년 보는 듯한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 그딴 게 중요한가?
“아니라고요?”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미 내가 먼저 해킹으로 통신을 보냈거든·
“예? 뭐라고 보냈길래····”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대충 요약하면··· 이곳은 에타르가 흘러넘치는 자원의 보고이고 현재 원주민이 격렬하게 저항 중· 지원 바람· 끝·]
예?!
아니 저기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제껏 그녀가 전전긍긍했던 이유가 뭔가? 또 녀석을 암살(?)한 이유는?
마나 오염의 가속화를 저지하고 그 녀석의 고향이라는 데브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녀는 현기증이 핑- 돌며 안마의자가 생각났다· 이런 와중에도 그가 준 안마의자를 생각나다니· 자괴감이 들었다·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괜찮아· 우리에겐 마법소녀 케이샤짱☆이 있으니까!
어질어질했다· 지금 행성 단위의 침공을 받게 생겼는데 농담이라니?!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ㅎㅎ 아무튼 걱정ㄴㄴ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거기 뽑아놓은 에테르도 챙기고 실험도 겸할 겸 도우미 하나를 불러줄 생각이거든ㅎㅎ
“예?!”
도우미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야?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물론 덩치가 좀 많이 커지긴 했지만ㅎ
혹시 주딱은 그냥 미친놈이 아닐까? 그것도 힘센 미친놈·
그녀는 왠지 두려워졌다·
허나 바깥에서부터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어··· 아?
그러고 보니 이만한 소란이라면 바깥의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그녀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쳐왔다·
***
대기권마저 뚫고 높게 솟은 첨탑이 빼곡히 채워진 데브라 행성·
행성의 치안을 담당하고 전군에 대한 명령권을 가진 사령탑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외계 문명에 대한 방위를 맡고 있기도 했다· 사령탑은 그 어떤 첨탑보다도 높게 솟아 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령탑은 그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최근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업무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탐사선에 대한 전권·
현재 300척의 탐사선이 행성계 외부로 탐색을 나선 상황· 그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맡은 곳이 사령탑이었다·
삐빅-
사령탑의 상층부 수많은 휘장이 달린 고위 장교복을 입은 데브라인이 검은색 동공을 크게 떴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인가?”
“예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첫 번째 적합 행성은 테라포밍을 위해 현재 원정대를 천천히 꾸리고 있었다· 자원은 적다지만 영토를 넓히기 위한 전진기지로 괜찮을 듯했다·
다만 두 번째는 ‘소각’에 들어갔다· 행성 표면의 미개한 문명을 지워버리고 행성의 자원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세 번째 적합 행성까지 찾아냈으니·
당분간 자원 고갈 문제에 대해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게다가····
보고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세 번째 적합 행성은 자원이 넘쳐흐른다고 한다· 특히 에타르의 매장량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에타르라면 데브라 종족이 우주를 정복할 수 있게 만든 위대한 동력원·
다만 지원 요청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보고를 믿을 수 있는 것은 탐사병은 애초에 거짓 보고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데브라인이 아니면 통신을 보낼 수도 없었고·
“흐음·”
고작 우주 진출도 하지 못한 미개한 원주민이 저항하고 있다고? 쉽게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탐사병의 생체 신호를 보아 통신 전문을 보내고 사망한 듯했다· 어쨌든 탐사병을 죽인 것은 데브라 행성 전체를 건든 것과 진배없는 일·
“그렇다면 응해줘야겠지·”
도발에는 응징뿐·
감히 하찮은 외계종 따위가·
“상부에 보고를 올리고 전군 소집을 준비하게·”
“예?”
“에타르에 대해선 허투루 넘길 수 없지·”
“그렇다면····”
“총력전을 준비하게·”
“!!”
이윽고 데브라 행성 전력의 60퍼센트에 달하는 전함이 출전 준비를 시작했다·
도합 24000여 척의 우주 전함이 케이샤가 있는 행성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는 칼슈타인도 예상치 못한 전격적인 움직임이었다·
데브라인에게 에타르는 목숨보다 소중한 자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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