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1
“믿을 수 없어····”
폭죽처럼 터지며 쓸려나가고 있는 데브라군을 본 그녀의 감상이었다·
압도적이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데브라군의 가장 큰 모함에서 쏘아댄 주포조차 상대는 육각형의 투명한 장벽으로 너끈하게 막아냈다·
허나 반대는 다르다· 일반 공격처럼 뿜어내는 함포 하나하나가 데브라군 모함의 거대 주포에서 쏘아대는 위력을 상회한다·
스치기만 해도 모조리 방어가 뚫리며 괴멸적인 피해를 입는다·
상대는 어떤 공격도 성공시키지 못하지만 이쪽의 공격은 단 한 번도 막히지 않는다·
실로 불합리한 처사·
그러니 전투가 성사될 리가 없다·
어림잡아 백만 개 이상의 빛줄기가 쏟아지고 나면 데브라군의 진영이 뭉텅뭉텅 깎여 폭발에 휩쓸려 나간다·
마치 대마법사에게 들이대는 십만 대군의 일반 병졸을 보는 느낌이 이러할까?
어떠한 긴장감도 없이 제자리에서 빛줄기를 쏘아대는 우주전함을 보고 그녀는 말을 잃었다·
4200km의 우주전함·
아··· 저걸 전함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다· 언뜻 보면 기계로 이루어진 작은 행성처럼 보이기도 했다·
“····”
주딱이 말했던 도우미가 저걸 뜻하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저딴(?) 것에 맞서 대항해야 한다는 뜻인데····
가능할 리가 없잖아? 차라리 죽고 말지·
그녀는 전장을 구경하며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대기권 밖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비행 공정의 설계도를 만들었다고 기뻐했던 게 엊그제 같다·
이제는 허탈한 웃음마저 나왔다·
방금까진 데브라군의 2000km에 가까운 우주전함을 보고 좌절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시기도 적절하게 등장한 것 같다· 주딱이 이런 것도 계산했을까?
만약 조금만 더 늦었다면····
주딱이 특별히 빌려준 이 기체로도 얼마 버티지 못했을 터다·
아까는 정말이지 끔찍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전면전이 펼쳐지기 전 비록 빚이 3억을 돌파했다지만 정찰 함대를 격파한 그녀는 잠시간 승리의 기쁨을 누렸었다·
허나·
놈들의 본대가 도착하고는 절망했다·
차원이 다른 함대의 규모에 그녀는 비명을 지를 힘조차 남지 않았었다·
아무리 기체의 속도가 대단하다고는 해도 저 많은 전함이 화망을 제대로 갖춰 일시 공격만 해대도 피할 수가 없을 터였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게다가 상대는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일부러 행성 쪽을 조준해 공격하기도 했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도 치사하게 인질까지 잡는 비열함에 분통을 터뜨렸었지·
일부러 한계를 테스트하는 듯 점차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그녀가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잠시 동안 그들의 공격을 막아낸 결과·
[-3165375995 P]
31억이라니····
“빚이 빚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런 뜻일까?”
이제는 그냥 숫자처럼 보였다·
그래 뭐····
아등바등하지 않더라도 주딱의 성격상 알아서 뽑아먹을 방법이 있겠지·
응·
어쨌든 이제 모든 게 끝난 것 같다·
처음 저 거대한 함선이 등장했을 땐 뭔가 싶었는데·
뭔가 험지를 구르다 온 것 같이 군데군데 파손되고 덕지덕지 기워진 느낌마저 있었다·
헌데 그건 그냥 기만이었나 보다·
그녀는 여유롭게 우주를 유영하며 우주 함대전을 구경했다· 이따금 공격의 여파가 날아왔지만 허공에 막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 아마 새로 등장한 우주함선님께서 모종의 조치를 해둔 모양이다·
응·
빚이 더 쌓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확실했다·
‘그래도 너무 가까이는 가지 말자·’
초반과 달리 데브라군이 적극적으로 항전하면서 치열하게 주고받고 있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결과는 뻔해 보였다·
그렇게 그녀는 한가롭게 우주 불꽃놀이(?)를 구경하며 커뮤니티를 슬쩍 봤다·
혹시 주딱이 돌아왔나 싶어서·
‘응?’
그런데 주딱은 안 보이고 커뮤니티의 이상한 어그로 글이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로 인해 커뮤니티가 들썩이고 있었다·
‘이건····’
글자가 심하게 깨져 눈뽕을 선사하는 혐짤· 그럼에도 그녀가 아픈 눈을 참고 끝까지 본 이유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저 함선이랑 똑같잖아?!’
깨진 문자들 사이로 보이는 사진의 주인공을 몰라볼 수 없었다· 그야 저 멀리서 데브라군을 실시간으로 터뜨리고 있는 존재랑 일치했으니까·
‘사진엔 하단부밖에 안 보이지만 확실해!’
다만 텍스트 중 몇몇 글자가 보이긴 했는데 ‘관리자님’ ‘선물’ ‘구원’ ‘만세’ ‘집사’ 등의 단어가 언뜻언뜻 보였다·
커뮤니티 반응은 활발했다·
ㄴ저건 뭐야? 공중 도시?
ㄴ도시는 무슨 ㅋㅋㅋ 그냥 하늘 전체를 가리고 있는데
ㄴ땅과 하늘이 뒤집힌 거 아님?
ㄴ근데 저거 진짜 다 기계임? 낭만 지리는데?ㅋㅋㅋ
ㄴ주작이겠지 ㅋㅋㅋ 어떻게 저게 진짜임 ㅋㅋ
ㄴ근데 글은 또 왜 깨져서 나오냐? 이거 나만 그럼?
ㄴ아니 나도 그럼ㅋㅋㅋㅋ
ㄴ요즘은 뽀샵도 참 정성들여 하나벼~
ㄴ이거 주딱이 장난친 거 아냐?
ㄴ바이럴이지 ㅋㅋㅋㅋ
ㄴ지금 보니까 계정 삭제한 듯 ㅋㅋㅋ
ㄴ자작극 오지고 ㅋㅋㅋ
ㄴㅋㅋㅋㅋ아 저걸 믿냐고
대개로 부정적인 반응이었으나 믿는 사람도 꽤 많았다·
ㄴ굳이 주작까지 해가며 저 짓을 하겠냐고ㅋㅋ
ㄴ차원이 다르네 ㅋㅋㅋ
ㄴ야 무슨 인디펜던스 찍는 것도 아니고·
ㄴ장관이긴 하네· 뭐 저리 큼?
ㄴ커뮤니티에 상점 기능도 만든 사람인데 저런 거 하나 못 만들겠냐고 아 ㅋㅋㅋ
ㄴ얘들아? 주딱 도발하다가 조용히 사라진 녀석도 몇 있음
ㄴ걍 지겨워서 갤 접은 거겠지·
ㄴ저걸 선물로 준거면 통이 얼매나 큰 거여?
ㄴ나도 선물 하나만 주라····
ㄴ너는 혐짤 도배부터 그만둬라 ㅡㅡ
ㄴ(삭제된 댓글입니다·)
ㄴ아무튼 입조심은 해야 할 듯 ㅋㅋㅋ
이런 상황이 흥미로웠던 그녀는 사진 하나를 살짝 업로드했다·
-작성자: 마법은거들뿐
-제목: 우리 차원으로 놀러 오신 화제의 주인공
(대충 히페리온이 데브라군을 절단내는 사진·jpg)
당연히 커뮤니티에서는 난리가 났다·
ㄴ??
ㄴ엥?
ㄴㅅㅂ?
ㄴ스케일 실화냐?
ㄴ야 저게 진짜라고?
ㄴ틀린그림찾기 ㄱ 백퍼 나온다
ㄴ당연히 합성이지
ㄴ내가 뭘 본겨?
ㄴ??
ㄴ띠용?
ㄴㅅㅂ 아 ㅈㄴ못 믿네ㅋㅋ 진짜겠지 ㅋㅋㅋ
ㄴ파딱 저기서 뭐함? 진짜 거들고만 있냐?
ㄴ닉값 보소ㅋㅋㅋ
ㄴ저기에 어떻게 낌ㅋㅋㅋ그냥 구경꾼1이지 ㅋㅋㅋ
ㄴ아니 생각해보니 파딱도 우주로 나간 거 아님?
ㄴㅋㅋㅋ구경꾼1도 능력이 되어야 가능한 ㅈ같은 세상ㅋㅋㅋ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네 말이 맞네 내 말이 맞네 열심히 물고 뜯고 있었다·
“풉!”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 사진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벌떼처럼 달려드는 유저들을 지켜보는 것도 묘한 감상이 들었던 탓이다·
아무튼 이 이상으로 저 진흙탕에 발 담그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커뮤니티에서 나왔다· 애초에 주딱은 저런 반응을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그래· 인생 뭐 있어? 막살다 가는 거지·’
아마 빚이 20억을 넘어섰을 때부터일 것이다·
그녀가 욜로로 전향한 순간이었다·
허나 그런 상념도 끊겨버리고야 말았다·
[이번 집사는 팔자가 참 좋군요?]
“···예?”
집사?
어쩐지 오한이 드는 그녀였다·
***
《위대한 세피로트》의 《뿌리》 중 하나·
새하얀 대리석과 나무줄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어느 신전의 석상 앞에 허공이 일렁거렸다· 일렁임은 이내 균열이 되었고 그 속에서 피투성이의 한 사내가 튀어나와 바닥을 굴렀다·
“크아악!”
사내의 몰골은 좋은 말로도 괜찮다고 할 수 없었다· 얼굴의 반이 화상으로 인해 일그러졌으며 군데군데 성에가 껴 얼음이 덩어리져 있었고 상처에서는 은빛 선혈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쿨럭··· 빌어먹을!”
사내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절뚝거리면서 신전 깊숙한 곳으로 서둘러 향했다· 그는 연못 크기의 작은 샘에 도착 후 몸을 던져 넣었다·
풍덩-
잠시 후 상반신을 꺼낸 그의 육체는 이전과 달리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스르륵-
털썩 앉은 그의 곁으로 나무줄기 하나가 내려와 그의 몸을 받쳤다·
“제길!”
어느새 외상은 상당히 치료되었지만 사내의 굳은 표정은 풀릴 줄 몰랐다·
“계면이 부서지다니··· 어찌 된 일이지?”
갈라진 옆구리와 성치 않은 몸 곳곳에서 은빛의 선혈이 아직도 흐르고 있었다·
“하마터면 신격이 떨어질 뻔했어·”
으드득-
멋도 모르고 불안정한 차원에 들어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뻔했다·
“분명 ‘그놈’들의 짓은 아닐 텐데····”
그의 눈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인해 들끓었다·
얼마 전 아이들에게 변고가 생긴 것을 감지했었다· 하필이면 근신 중이었던 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 했다·
‘감히 나를 건드리다니····’
그의 곁으로 은빛의 아우라가 폭발할 듯이 넘실거렸다·
“후우····”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고민했다·
이번에 화를 입은 아이들은 애초에 그가 근신 처분까지 받게 만든 원흉이었던지라 이미 멸족한 것에 대해선 딱히 아쉽지 않았다·
여차하면 직접 처분할 생각까지도 했었으니·
그런데 계면이 손상된 것은 얘기가 달랐다· 그가 가꿔나가야 하는 세계가 파손됐으니 작물뿐 아니라 밭이 망가진 격이었다·
당분간 복구가 불가능했음이라·
그는 천천히 아물고 있는 자신의 상처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보고해야 할까?’
사내는 어떤 존재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말자·
괜히 문제 키우지 말자·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계면에 손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에게 어떤 처분이 내려올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가만히 둘 수는 없지· 감히 내 것에 손을 댄 놈만은··· 반드시 찾아내서····”
그가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이윽고 신전을 중심으로 은빛의 기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한 세계를 다스리는 주신의 분노는 결코 가볍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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