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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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랄 플로우(Astral Flow)라는 학명이 붙여진 은빛 액체·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차원과 관련된 최중요 소재로 대두되는 은빛 액체는 칼슈타인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신소재였다· 특히 아스트랄 차원과 관련해 어마어마한 반응성을 가지고 있어 활용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마치 무안단물과도 같았다·
말마따나 현재 그가 구축해놓은 물질 전송 시스템에 인터넷 광케이블처럼 아스트랄 플로우를 설치하면 안정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더해서 중계기 설치와 관련한 수많은 문제를 이 재료 하나만으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기도 했고·
현재 차근차근 차원 중계기 건설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가 하나부터 끝까지 모든 것에 관여해 투자하는 것은 실로 비효율적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지도 모를 일이고·
안 그래도 이 때문에 카르마 포인트를 빨아먹을 수 있는 다음 업데이트 일정을 무리해서 앞당기지 않았던가?
그런 와중 이 액체 재료 하나면 그의 걱정 반이 해결된다고 하니 욕심이 생길 수밖에·
‘문제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건데····’
표본이 너무 적다· 필요한 양도 너무 많았고·
재료가 많아야 이래저래 실험해 볼 텐데·
은하 전역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그 재료는 그때처럼 은혈을 지닌 존재가 나타나길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어찌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리아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현재 보내드린 좌표에 트리플 넘버링 개체가 출현했습니다·
“트리플 넘버링?”
-복귀하고 있던 막시엔 공이 출발했군요·
“막시엔····”
뭐···· 막시엔이라면 트리플 정도는 가볍게····
트리플 넘버링이란 괴수 중 세자릿수의 넘버링을 부여받은 특별한 개체를 뜻했다·
-트리플 중에서도 상위 개체군요·
“그래?”
-예· 200번대의 블루 레이입니다·
No·221 ‘블루 레이·’
장벽 너머의 무수한 괴수 중 위험도에 따라 은하 제국이 넘버링을 부여한 특별한 개체들· 900번대의 괴수와 200번대의 괴수는 같은 세자릿수 괴수라고 해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200번대면 꽤 높은 축에 속했다·
“블루 레이는····”
게다가 블루 레이는 고속 이동과 중거리 포격에 특화된 괴수 녀석으로 막시엔과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막시엔은 일대일로 더블 넘버까지 격퇴한 이력이 있어 큰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상성의 영향을 안 받는다곤 할 수 없었다·
“막시엔이 고생 좀 하겠는데?”
-예· 그런데 문제는····
삐빅-
화면에 찍힌 흐릿한 인영들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응?”
화면엔 정신체로 추정되는 세 명의 인영이 ‘블루 레이’가 출현한 곳 인근에서 관측되고 있었다·
저 꿀단지 같은 정신체 놈들도 함께 있다고?
으음·
그런데 뭘까?
블루 레이와 정신체 놈들은 왜 서로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거지?
괴수는 기본적으로 일정한 파동을 내뿜으며 군집체처럼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신체들 또한 괴수의 일종이라고 보고되긴 했는데 화면의 모습으로는 어째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은 착각일까?
뭐가 됐건 직접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괜히 막시엔 혼자 고생시키기도 싫었고·
“바로 가지·”
-준비하겠습니다·
혹시나 열받은 막시엔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꿀단지들을 쓸어버리는 것도 곤란하고 말이다·
칼슈타인은 서둘러 접경 부근으로 향했다·
***
[그럼 어떻게 해?]
[몰라!]
[왜 하필 혼돈 녀석이!]
은빛 불꽃을 두른 세 명의 인영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하나는 미간에 세 번째 눈이 달린 고승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하체는 말 상체는 인간의 외형을 했고 마지막 하나는 팔이 여섯 개 달린 여성의 모습과 유사했다·
[분명 크리엘라의 흔적은 여기까지 이어졌다·]
고승은 그나마 다른 둘에 비해 당황함을 내색하기보다는 차분히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 뭐 하냐고? 여기에서 뚝 끊겼는데?]
[그렇다면 이곳에서 소멸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지·]
[지금 문제는 크리엘라가 아니야· 망둥이처럼 날뛰다가 세계를 말아먹은 녀석 따위 지금 와서 무슨 상관이야?]
[어쨌든 뿌리께서 추적을 명하신 거니 상황은 확실히 알아가야지·]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소멸할지도 모르는데 무슨·]
그들 셋은 공통적으로 은색의 옅은 불꽃을 두르고 있었지만 사이가 썩 가까워 보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서로를 의지하는 듯 가까이 모여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이유는·
[저 녀석 최근 전선에서 날뛴다는 《혼돈》진영의 녀석 아니야?]
[외형을 보면 맞는 것 같군·]
《위대한 세피로트》와 적대하는 세력 중 하나인 《혼돈》·
거대한 포신을 양어깨 위에 두고 등 뒤로는 여섯 쌍의 피막 날개가 달린 녀석이었다· 금속과 괴물을 반반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랄까?
최근 전선에서 몇몇 무리를 이끌고 전선을 엉망진창으로 헤집고 있다는 《혼돈》 측 녀석이었다·
[근데 쟤들은 왜 싸우고 있지?]
[모르지·]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혼돈 녀석과 인간 여자가 주변을 휩쓸며 맞붙고 있었다·
쿠르릉- 쿠릉-
소리가 들릴 리 없는 공허의 한복판이건만 전투의 여파가 이곳까지 전해져 오고 있었다· 크고 작은 빛의 파편과 파동이 흩뿌려지며 우주를 수놓고 있었다·
[이러다 우리까지 휩쓸리는 거 아냐?]
[이미 저들은 진작에 우리를 눈치챘을 거다·]
[····]
그들은 전투의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는 처지에 가까웠으나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그들이 전투를 피해 멀리 이동하는 대로 저쪽에서도 이쪽을 신경 쓰며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전투는 하지만 이쪽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는 듯이····
[우리를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닌가? 혼자라면 몰라도 우린 셋이라고!]
[그래도 만만한 녀석들은 절대 아니야·]
사실 자존심에 그리 외치긴 했지만 썩 설득력 있어 보이진 않았다· 혼돈 녀석과 인간의 전투 현장만 지켜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저렇게까지 강할 수가 있는가?]
[마치 신과 대적하는 인간 용사 같은 느낌이군·]
[용사면 차라리 다행이게?]
[그래도 수많은 동족을 학살한 녀석보다는 저 인간 여인이 대화가 통하지 않을까?]
[인간 따위와 협상이라도 하자는 거냐?]
하체가 말인 녀석은 자존심이 상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독 인간을 멸시하는 녀석· 그런 녀석의 생떼에 질릴 만도 하건만 다른 둘도 내심으론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가축과도 같다· 그들이 뿌리내린 세계에 활력을 더해주는 미생물 같은·
[그래도 위대한 세피로트를 위해서라면 자존심을 굽힐 수도 있어야겠지·]
[꼭 그 방법만 있는 건 아니야·]
팔이 여섯 달린 여인이 섬뜩하게 눈을 빛냈다·
[양패구상을 노려야지· 어차피 크리엘라 녀석의 소멸이 확인된 이상 쉽게 물러설 수도 없어·]
[그래· 아무리 망둥이 같이 사고만 치는 녀석이었지만 분명한 우리의 동족이다·]
[허나 조금 걸리는 게 있군·]
고승의 세 번째 눈이 빛나며 한층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 차원에 들어서며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나?]
[응?]
[전혀 모르겠는데?]
[흐음····]
무언가 마음에 걸리지만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고승이었다·
[조심할 필요는 있겠어· 일단 복귀하는 건 어떤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한 고승은 후퇴를 제안했지만·
[그럼 뿌리께서 우리를 가만히 둘 것 같아?]
[최소한의 성과는 가져가야 한다· 어쩌면 상을 주실지도 모르고·]
[성혈····]
다른 둘은 욕심 때문인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이 모시는 《뿌리》는 상과 벌이 확실한 상관이다· 분명 최소한의 성과만 가져가도 ‘성혈’을 내어주실 분· 이런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니었다·
[겉으로는 혼돈 녀석이 우세해 보이지만 아무래도 밀리는 것 같다· 저 인간 여자 보통이 아니야·]
[인간이긴 한 걸까?]
[모르지· 허나 상관없다·]
그들도 절대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일단 혼돈 녀석을 지원하면 되겠군·]
[위험하니까 가까이는 다가가지 말자고·]
[알았다·]
평상시라면 몰라도 지금은 긴급한 상황· 그들은 서로의 정신을 공유하며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인간 여자를 먼저 노린다·]
그들은 전장으로 누군가 빠르게 워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막시엔은 상대의 푸른 포격을 반으로 가르며 미간을 좁혔다·
‘이 녀석····’
분명 기억에 있는 녀석이다·
블루 레이·
200번대의 녀석은 기동 포격에 특화된 개체로 영악하기로는 더블 넘버링에 뒤지지 않던 녀석·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다면 기억과는 달리 생각보다 너무 강했다·
‘내가 약해진 건가?’
그럴 리가·
사실 그녀가 밀리고 있진 않았다· 아니 거리만 좁힐 수 있다면 저런 녀석 따위 단숨에 목을 날려버릴 자신이 있었다·
허나 녀석의 이동 속도가 범상치 않았다· 과거에 비해 확연하게 빨라진 속도·
그녀가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거리를 좁히려 했지만 영 좁혀지지가 않았다· 상성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콰아앙- 서걱-
또 다른 포격이 허공에 있는 검에 의해 갈라졌다·
현재 그녀의 주위로 6개의 검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으며 4개의 검은 녀석을 쫓아 추격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검을 들고 녀석을 뒤쫓고 있는 상황이지만····
거리가 영 좁혀지지 않았다·
그녀라고 꼭 가까이 붙어야만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나 거리가 멀어질수록 위력은 처참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녀의 검격이 끝을 모르고 강해진다는 뜻도 되었지만·
‘후우··· 답답하군·’
그녀의 눈에 짜증이 서렸다·
그러던 차 날파리 같은 세 녀석이 무언가 헛짓을 시작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저 녀석들부터 정리하고 놈을 상대해야 할까?’
그녀의 눈빛이 깊어질 무렵·
누군가의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바삐 쫓아가던 그녀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고생했다· 막시엔·
이런 못난 모습 따위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현재의 상황에 굉장히 화가 나면서도 그의 목소리가 싫지 않은 막시엔은 차가운 표정으로 상대 놈들을 쓸어 보았다·
“끝이군·”
그녀는 더는 쫓아가지 않았다· 이미 상황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녀가 있는 전장으로 파멸의 섬광이 꿰뚫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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