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0
그녀는 더는 전쟁을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아···· 이만 끝내자·”
“예? 무슨 소리신지···?”
“수고했어 부교주·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마침 생각난 게 있어서 말이야· 남궁진 좀 불러줄래?”
“아 알겠습니다·”
어벙벙한 제갈현·
대체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
교주의 속뜻을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더는 봐줄 필요 없겠네· 모든 제한을 해제하고 황궁을 밀어버리면 되겠지· 남궁진에게 말하면 알아서 처리할 거야·”
“예?”
제갈현은 그녀의 얘기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수고했어· 병력의 운용과 병법을 지켜보니 대략적으로 감이 잡히더라고·”
“그··· 감사합니다?”
“그래· 아무튼 너는 이 길로 나가서 신교의 훈련소 규모를 최대한 확장하는 데 힘쓰도록·”
“후 훈련소요? 최대한?”
“그래· 간단히 생각해서 신교 전체를 병참 기지로 운영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
“예?”
그··· 은하신교는 종교가 아니었습니까?
하다못해 무림방파로도 볼 수는 있겠는데····
은하신교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운 제갈현이었다·
아무튼 지엄하신 교주님께서 그리 말하시는데 그가 어찌할까?
“알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해·”
그녀가 허공을 검으로 그었다·
그러자 허공에 균열이 일며 쩌저적- 틈새가 벌어졌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균열이 닫히며 순식간에 사라진 교주·
····
남아있던 제갈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음··· 일만 명··· 무인··· 전쟁··· 황궁··· 훈련소··· 최대한·”
이대로 끝?
“직접 나서시는 것 같으니 상관없으려나?”
제갈현은 생각을 포기했다·
아무튼 시키신 일이나 시작하자·
뭐니 뭐니 해도 제갈현은 군사(軍師)보다는 행정처리에 있어 천하제일의 인재라 인정받고 있었다·
***
쩌저적-
허공이 갈라지며 비르델이 모습을 드러냈다·
“!!”
“정지!”
“진형을 갖춰라!”
“바 방금 뭐지?”
“미친! 허공에서!”
비르델이 모습을 드러낸 곳 아래에서는 일만여 명의 절무대가 흉흉한 기세로 험준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아아···· 다들 튼튼해 보이네· 어쩐지 기쁜데?”
트 튼튼?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이제부터 너희들은 신교의 포로다·”
이제부터? 포로?
미친년인가?
뜬금없이 허공에서 나타난 경국지색의 여인이 이제부터 포로란다·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하하하! 포로라! 아리따운 그대의 미모라면 포로가 되어도 좋소이다!”
“크크큭· 어이 농담이 너무 과한 거 아냐?”
“이야 은신술인가? 그런데 제정신은 아닌 것 같은데?”
“처리하지 않아도 되겠어?”
“어차피 이제부턴 들켜도 상관없잖아? 이미 마교 본진이 코앞인데·”
“하긴· 그러면 길안내나 시킬까?”
“그거 좋지·”
허공에서 등장했다곤 하나 이쪽은 일만 명이다·
두려워할 리 없었다·
“흐음· 일단 정신 교육부터 시켜야겠네·”
나른하면서도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가 무인들의 귀에 박혔다·
“하하· 교육? 성교육은 어떤가 처자?”
“크크큭!”
“시간 없어! 빨리 처리하고 내려가자고! 이번 포상은 두둑할 것 같던데·”
아무래도 군의 특성상 음담패설과 희롱에 익숙한 절무대·
허나 그들은 순식간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으음· 반쯤 죽어도 오천이나 남네? 조금 빡빡하게 굴려도 되겠어· 아니다· 어차피 포로니까 정예 일천이 남을 때까지 지옥 코스를 짜볼까?”
화아악-
여인에게서 말도 안 되는 기세가 뿜어져 나오며 좌중을 순식간에 압도했다·
덜덜-
뭐 뭐야?!
이 이건!
으윽! 모 몸이 안 움직···!
내 내공이 얼어붙···!
끄윽! 커억!
“정말 막 굴리기에는 최적인 놈들이야·”
수려하게 웃는 그녀의 미소에서는 아까와는 달리 음산함이 느껴졌다·
소름 끼치는 미소·
절무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아·
뭔가 잘못됐다·
X됐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자네 그거 들었는가?”
“무얼? 아··· 그 얘기 말인가?”
“그렇지· 지금 그 일로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있잖은가?”
“글쎄· 일단 우리 같은 하층민들은 딱히 달라진 게 없잖나·”
“그래도 그렇지· 대장군께서 무형신검의 손에 돌아가실 줄이야····”
“그 정도로 끝났으면 이렇게 말이 나오지도 않았어·”
“이를 말인가? 황궁이 아예 뒤집어졌다지?”
황궁의 높으신 분들께서 줄줄이 목이 날아가셨단다· 평소 백성을 수탈하기에 급급했던 고관들 모두 화를 면치 못했다고·
“무형신검이 앞장서 궁을 아예 날려버렸단 소문도 있던데····”
“허어· 무형신검은 정파의 무림맹주가 아닌가? 어째서 마교 놈들의 밑으로 들어간 건가?”
“내가 어떻게 알겠나? 다만··· 교주의 미모가 월궁항아를 뛰어넘는다 하더군·”
“오오! 역시! 그런 사정이 있었으니 그랬겠지! 그런데 그렇게 미색이 곱다고?”
“말해 뭐하나? 무려 무형신검이 껌뻑 넘어갔다는데!”
현재 마교와 관련해 온갖 풍문이 떠돌고 있었다·
하늘에서부터 천군의 신장이 내려와 일격에 십만 군사를 태워버렸다는 등 단 하루만에 모든 지휘관급 무관들이 암살당했다는 등·
그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 마교의 철갑 괴인이 나타나 황군을 모조리 털어버렸다는 등·
심지어 천자의 양물이 단칼에 날아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온갖 흉흉한 소문에 백성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마교의 중원 침략!
마교인이란 인육을 탐하고 아이와 여자를 납치하는 흉악무도한 자들이 아니던가?
군부가 무너졌다는데 그들이 의지할 존재가 달리 있겠는가?
무형신검!
정파의 영웅!
우리의 희망!
희망의 등불!
어서 나서줘!
허나 그것도 잠시·
그 대단하신 무형신검이 마교의 앞잡이가 되어 황궁을 방문했다·
-무조건적인 협조· 그 외에 협상은 없다·
아니 그건 그냥 나라를 갖다바치란 소리가 아니던가?
무형신검의 행태를 지켜보다 못한 황궁 근위병들이 검을 뽑아들고 나섰지만·
-끄아아악! 내 팔!!
-으악!! 공격이 통하지 않아!
-보 보이지도 않는 무형 강기!
-으윽!
모조리 불구가 되어 바닥에 뒹굴어야 했다·
무형신검은 그 기세를 몰아 천자의 코앞까지 찾아가 강력한 경고를 했다고·
능도군이라는 황실 최고수조차 철갑을 두른 무형신검의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다고 하니 이를 어찌할까?
피바다가 된 황궁을 뒤로하고 떠나는 무형신검의 뒷모습에 모두가 땅을 치며 하늘이 무너졌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웬걸?
어쩐지 살기가 더 좋아졌다·
마교(?)의 무형신검이 황궁 재산을 틈틈이 민가에 풀었으며 어찌나 비리를 잘 찾아내는지 모조리 찾아내 형장의 이슬로 보냈다·
그 덕분일까?
의외로 세상은 멀쩡히 돌아갔다·
아니 더 잘 돌아갔다·
“흠흠· 자네 그거 들었나?”
“마교··· 아니 은하신교에서 사람을 뽑는다는군·”
“재능이 없어도 상관없다는데? 강제로라도 만들어줄 수 있다고·”
“뽑히기만 하면 인생역전이라더군·”
“필요한 건 절대적인 충성과 근성이라던가?”
현재 은하신교가 심상치 않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은색의 거대한 금속벽이 세워지고 하늘에 닿을 듯한 거대한 철탑이 들어섰다는 소문부터 시작해 입교만 하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는 등·
심지어 신교에 입교한 사람들은 피부가 고와지고 얼굴의 주름이 펴지고 수명이 늘어난단다·
입교만 하면 신선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모두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은하신교가 막대한 재산을 풀어 일반 잡부부터 시작해 무인까지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니 그 기세가 하늘을 꿰뚫는 듯하였다·
비르델의 은하신교 병참 기지화 계획은 착실히 진행 중이었다·
***
꾸륵- 꾸르륵-
그륵- 끼에엑-
정체불명의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거대한 살점이 가득한 공간·
공간 전체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맥동하며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살점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옥좌 위 가슴팍에 금속 창이 꽂힌 채 눈을 감고 있던 존재가 입을 열었다·
[···전황은?]
1km가 훌쩍 넘어가는 거대한 존재·
머리 양쪽엔 뿔이 솟아 있었으며 보라색의 갑각이 갑옷처럼 전신을 감싸고 있었고 옥좌와 연결된 촉수는 무언가를 주입하는지 끊임없이 꿀렁거렸다·
[···]
옥좌의 양쪽 아래로 도열한 수많은 괴수들·
그들에게서 무수한 보고가 올라왔다·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옥좌의 주인에게 전달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런가····]
옥좌의 주인이 내뱉는 정신파동으로 인해 도열한 괴수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그들이 딛고 선 거대한 행성이 용틀임을 하는 것 같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스사사사-
[섣불리 건드렸다간 더욱 타오를 터·]
옥좌의 주인은 고개를 내려 가슴팍에 꽂혀 있는 푸른 금속의 창을 바라보았다·
꿀렁- 꿀렁-
쿠구궁-
단순한 감정 변화의 결과라고는 믿을 수 없게도 행성을 둘러싼 거대한 암흑 기류가 화염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스사사사-
거대한 띠 모양의 블랙홀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어쩔 수 없지· 장군급 개체만 복귀시키도록·]
우뚝·
옥좌와 연결된 촉수들이 일순간 동작을 멈추었다·
[다만·]
쿠궁-
[그 녀석은 굳이 복귀시킬 필요 없다·]
부르르-
대열 끄트머리에 서있던 몇몇의 괴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알아서 잘 할 테지·]
옥좌에 연결된 촉수와 살점의 벽이 거칠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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