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7
“흐음· 그러려면 아리아에게 연락이 닿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답이 없었다·
장벽 영토 1차 확장까지는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었으니 은하제국엔 별일 없을 것 같은데·
아니면 계정 연결이 아예 끊긴 건가?
그건 좀 곤란한데·
제대로 거점을 확보하려면 인적 물적 지원이 필요하다·
콸콸-
온천수처럼 터져나오는 은빛 액체·
역시 포기할 수 없다·
***
어린 사내아이의 몸을 한 용용의 눈동자가 세로로 갈라졌다·
스아앗-
능력을 온전히 끌어내면서도 폴리모프를 유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츠팟-
용용의 몸이 순간이동 하듯 사라졌다·
나타난 곳은 거대한 괴수 몸체 위·
“타앗!”
용용의 손에 들린 단검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어떨 때는 붉은색으로 또 어떨 때는 푸른색으로·
용용의 손짓에 따라 현란하게 바뀌는 속성!
서거걱- 서걱- 서거억-
신들린 듯 춤추듯 움직이던 단검이 우뚝 멈추었다·
이미 목표를 달성했기에·
더는 움직일 필요가 없었음이라·
후두둑- 후둑- 후두둑-
비가 오듯 떨어져 내리는 살점과 가죽·
“차핫!”
용용이 소환한 마법진 속으로 호로록 사라지는 부산물들·
“휴·”
용용은 이마의 땀을 훔치고는 즉각적으로 움직여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뒤처진다!
다 잡은 괴수를 해체하는 작업일 뿐이잖아?
주딱은 이미 저 앞으로 나간 지 오래·
거리를 좁히려면 이 정도 속도론 어림도 없어!
허나 전혀 좁혀질 생각을 안 한다·
‘아 짐꾼이 이렇게 힘든 거였나?’
슥사사삭-
서걱서걱-
츠팟츠팟-
서걱서걱-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고 손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단검을 휘둘렀다·
‘그동안 봐왔던 짐꾼은 대단한 놈들이었어·’
용용이 있던 세계에서도 종종 용사 파티랍시고 찾아온 인간들이 있었고 그사이에 음침한 표정으로 껴 있던 짐꾼 놈이 있었다·
구박받던 그놈들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하나?
아무리 그래도····
-크아아악!
-끼에에엑!
-크르르륵!
-구와아악!
끊임없이 몰려오는 괴수들·
은빛의 온천수가 터진 뒤로 줄곧 저렇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탓에 주딱은 정신없이 요격 중이었고 용용은 필사적으로 부산물을 챙기는 중이었다·
‘이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점점 덩치가 큰 놈들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숫제 웨이브처럼 달려드는 괴수들·
가끔 뒤에서 나타나 용용을 덮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괴물에게 그리스와 슬로우 마법 등 온갖 디버프 마법을 건 뒤 헬파이어와 프로즌 크리스탈을 번갈아 사용해 급열 급냉 코스를 선사해준다·
마무리로는 라이트닝 샤워의 전기 찜질·
파츠츠즛!
퍼펑- 펑-
“꾸에에엑!”
미친·
고작 오크 크기의 괴수에게 들어간 마나가 얼마야?
물론 훨씬 거대한 놈이 기습하기도 했었지만·
투쾅!
펑-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날린 투창 한 번에 그대로 터뜨려 버리는 주딱의 위엄·
“아····”
열심히 줍자·
그게 살길이다·
그렇게 짐꾼으로서의 재능에 눈을 뜨고 있던 와중·
[어머? 귀여운 아이네?]
섬찟한 목소리·
[마침 수족이 필요했는데·]
나른한 여인의 목소리가 용용의 집중을 흩뜨렸다·
“···!”
[흐응·]
[장난칠 때가 아니다· 거둘 거라면 얼른 각인시키고 아니라면 죽여라·]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해?]
아····
유전자 단위에서부터 느껴지는 압도감이 용용을 덮쳤다·
드래곤·
중간계의 수호자 혹은 조율자라고도 불리는 지상 최대 최강의 생물·
허나 드래곤의 태생은 중간계를 지키기 위해 신이 내려보낸 대리인이라는 전설도 있었다·
어째서 지금 그 전설이 떠오르는 걸까?
[어머 얘가 눈치도 있네?]
덜덜 떠는 용용을 귀엽게 쓰다듬는 여인·
[어때? 꽤 쓸만해 보이는데?]
[흥·]
그리고 여인과 대화하고 있는 팔짱 낀 사내·
‘언제 접근한 거지?’
전혀 못 느꼈는데?
용용은 그들이 내뿜는 기세에 압도되어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요즘 일진이 왜 이럴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어딜 가도 괴물들뿐이고·
헬파이어도 견디는 고블린 같은 괴수부터 시작해 지금 이 자리의 여인과 사내 끝내는 주딱까지·
[흐음· 재능은 좀 부족한가? 제대로 마법을 못 쓰네?]
[그건 이 세계의 압력에 짓눌려서 그런 거다· 우리도 움직이는 데 영향을 받는데 저 정도면 준수하지·]
[흐응· 그래?]
전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그들·
대체 정체가 뭐길래?
[어쨌든 데리고 가자고· 열심히 뭘 줍고 있던데 궁금하기도 하고·]
뭐 뭐라는 거야? 이건 내 것이 아냐!
그 말에 용용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열심히 주운 것이 자신의 것이라면 놀라지도 않았다·
이 이건 칼슈타인님의···!
그 생각에 공포가 싹 가시는 듯했다·
아무리 이들이 예사로운 존재가 아니라고 해도 주딱만 하지 않다·
‘칼슈타인님은 격이 다르다·’
이는 직접 몸으로 느껴보고 지켜본 팩트다·
그래서일까?
용기가 샘솟았다·
원래 대감집 개도 위세를 부리기 마련·
“후회하시기 전에 물러나시죠·”
[응?]
[···?]
그래도 좀 무서우니까 존댓말로·
“저 저는 주 주인이 있는 몸입니다!”
어째선지 입 밖에 내고도 부끄러운 말·
허나 용용은 당당했다·
그야 그가 이제껏 봐왔던 존재 중 주딱 같은 존재는 없었으니까!
마주친 것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지는 압도적인 영혼의 격!
“지금 물러나면 잘 말씀드려서 좋게 넘어가겠슴다!”
너희도 느꼈을 거 아냐·
그 무지막지한 존재감을·
그도 느꼈는데 이들이라고 못 느낄까?
용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때? 어차피 괴수도 널려있는데 좋게 좋게 가는 게?
허나 그건 용용만의 생각인지·
[하아?]
[깔깔깔!]
어이없어 하는 사내와 폭소를 터뜨리는 여인·
“??”
아니 님들아· 진짜 장난 아니라고요·
주딱 죽창 한 번에 저승길로 가실 분들이··?
여인은 웃느라 눈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말했다·
[아 확실히 장난이 아니긴 했지·]
[미친놈인 줄 알았다·]
[응응 맞아· 아마 일대일로는 살아남기도 힘들걸?]
[실로 강한 존재다·]
이미 조우했던 건가?
주딱이 강하다는 것에 있어서는 이들도 부정하지 않았다·
역시 주딱! 적들도 극찬할 수밖에 없는 위엄!
응?
그런데 왜 이렇게 태평해?
내 주인이 주딱이라니까?
아니 잠깐· 그를 마주치고도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여인은 용용을 보며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네 주인이라는 녀석은 지금쯤 사경을 헤매고 있을 텐데?]
예? 뭐라고요?
용용의 입이 떡 벌어졌다·
믿을 수가 없다·
말도 안 돼!
주딱이 사경을?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랄까?!
쉬이 믿지 못하는 용용을 보며 여인이 씩 웃었다·
[우리 쪽도 단단히 준비해 왔거든·]
“!!”
[확실히 이쪽에 지성체가 있는 것은 흥미롭지만· 우리도 사정을 봐줄 만큼 한가하진 않아서·]
그들이 말하는 모양새는 단순 몇몇을 말하는 게 아닌 듯했다· 마치 세력이 있는 것처럼····
흠칫-
용용의 눈에 그제야 긴장감이 떠올랐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준비를 해와? 예전부터 이쪽을 치려고 준비했다는 말인가? 아닌데? 주딱은 별말 없던데?
온갖 의문이 용용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런데 말이지?]
여인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건방도 너무 심하면 별로 예쁘지 않아· 적당히 하지?]
“컥!”
스아아-
압도적인 기운이 용용을 휘감았다· 용용은 다급히 피하려 했지만 마나가 얼어붙은 듯 꼼짝도 안 했다·
으윽!
[우리가 너랑 편하게 대화를 나눌 급으로 보여? 그렇다면 조금 화가 나는데····]
생긋생긋 웃으며 말하던 여인이 표정을 굳히고 기세를 내뿜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으읏!
[하찮은 미물이 참 건방져?]
미물?
평소 인간들을 보며 미물이라 생각했던 드래곤이 미물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니 묘했다·
무슨···! 그럼 저들은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크 큿· 그 그래도· 벼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응? 아직도?]
“주 주딱은·· 무 무적이니까요!”
[주딱?]
[그게 이름인가?]
그때·
쐐애액-
용용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기척·
대기를 찢어발기는 소름 끼치는 소리·
쿠웅-
순식간이었다·
여인의 오른팔이 날아가며 튕겨 나갔다·
[꺄아아악!]
그래도 비명을 지른 걸 봐서는 살아남은 모양이다·
빗나간 건가? 웬일로 실수를 다 하시고····
허나 사내가 보이지 않음을 깨닫곤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
고개를 돌리자 거목과 함께 창에 꽂혀 있는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크하악!]
잔뜩 일그러진 표정·
두려움에 헐떡이는 얼굴·
저벅저벅-
안개 너머로 들려오는 묵직한 발소리·
저벅저벅-
“아아· 보물 고블린들이 제 발로 찾아와줄 줄이야·”
[뭐라고?!]
“이렇게 감사할 데가·”
[당신····]
오른팔이 날아간 여인의 표독한 목소리·
반면에 용용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테에엥-
왜 이리 늦었어요!
온몸에 은빛 액체를 칠갑한 칼슈타인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안 그래?”
그에 잔뜩 긴장한 기색을 보이는 여인·
어? 마! 내가 주딱 행님이랑! 어? 사냥도 같이하고! 어? 같이 밥도 묵고! 어? 아무튼 형동생 하는 사이라고!
용용의 콧대가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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