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7
[길을 열어라·]
칼슈타인 황제 폐하의 한마디에 함선에 있던 수많은 승무원은 비상이 걸렸다·
“어서 움직여!”
“실수는 없어야 한다!”
“정신 바짝 차려! 황제 폐하의 명령이시다!”
“예비 엔진은 어떻게 되어가나!”
“이상 없습니다·”
“준비된 함선부터 보고하라!”
다급하게 움직이는 승무원들·
감히 누구의 명령인데?
그들은 지금 이 한순간을 위해서 참전한 것이나 다름없다·
황실 근위 소속의 186연대·
오직 황제의 길을 열기 위해서만 조직된 부대·
단번에 전력을 쏟아붓는 것에 특화된 함대다·
도합 88척 함선의 수많은 사일로에서 에테르가 충전되기 시작했다·
우우웅-
[전 사일로 100% 충전 완료·]
[동력부 이상 무·]
[예비 엔진 대기 완료·]
[쉴드 손실률 7·8% 양호합니다·]
[주포 출력 120%]
[미사일 전탄 발사 대기·]
[선두는 양각을 벌려라!]
오버드라이브에 가까운 출력으로 황제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치워버리기 위한 함대·
[에테르 파동기 가동률 42·5%]
[U-77 중력장 설치 완료·]
[아스트랄 파장 유도기 장착·]
[실버 로드 가동·]
[에테르 비마찰 냉각제 도포·]
오로지 그의 길을 열기 위한 준비가 완료되고·
쿠웅- 번-쩍-
함대의 일제사격이 펼쳐졌다·
파지직- 파직-
주포 경로에 있던 모든 괴수들이 불에 타고 밀려나며 길이 열린다· 고위 괴수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밀어버리는 무형의 장벽·
씨익-
“좋아·”
칼슈타인이 반짝이는 무형의 통로에 발을 올리는 순간·
츠팟-
삽시간에 쏘아졌다· 고개를 돌리는 프로히덴을 향해·
ㄴ황제님 축지법 쓰신다!
ㄴ끼야야앙!
ㄴ어지러워!!
ㄴ무지 비싸 보이는 걸 소모품으로 막 써버리는데?
ㄴ아 우주 황제가 돈이 없겠냐구!
ㄴ지금 만나러 갑니다·
칼슈타인의 배려로 라이브 대신 10분의 1 이상의 감속 영상을 시청하는 커뮤니티 유저들·
그럼에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빛의 속도에 버금가는 칼슈타인의 미친 속도를·
피잉-
우주 한복판임에도 느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저항력·
ㄴ맨몸이었으면 살가죽 다 벗겨졌겠지?
ㄴ살가죽? 아니 걍 불탔겠지ㅋㅋㅋ
ㄴ저대로 몸통 박치기를 하면 메테오가 아닐까?
츠팟-
미친 듯이 물량 쏟아지는 괴수전에서 고위 개체를 도맡는 탱커의 덕목 중 하나·
폭발적인 속력을 버틸 수 있는 강건한 육체·
어느덧 프로히덴의 등 뒤까지 따라잡은 칼슈타인·
칼슈타인의 창이 빛살처럼 프로히덴을 노렸다·
스아아악-
붉은빛의 초승달이 놈에게로 향한다·
콰아앙-
별빛 갈기에 튕겨 나간 칼슈타인의 창·
허나 거기에 신경 쓸 틈은 없다·
재차 이어지는 칼슈타인의 일격에 프로히덴도 제대로 마주보기 시작했다·
프로히덴의 보랏빛 안광·
칼슈타인의 황금빛 갑주·
그리고 이어지는 접전·
콰아앙- 쿠우웅-
에테르 파동이 줄기줄기 터져 나가며 굉음을 만들어낸다·
쿠우웅-
15m에 달하는 프로히덴의 거력이 칼슈타인에게로 향하지만·
터엉- 쿠웅-
칼슈타인도 그에 밀리지 않는다·
둘은 서로를 향해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쿵- 쿠웅-
ㄴ이 이게 감속된 거라고?
ㄴㅇㅇ····
ㄴ지금도 못 알아보겠는데?
ㄴ크흠! 내공을 써서 안력을 끌어올리게나·
ㄴ눈으로 인식해도 뇌가 못 따라가는 듯·
거대한 괴수와 치고받으며 미친 듯이 퍼붓는 난타전·
정녕 인간이긴 한 걸까·
ㄴ괴수도 주딱이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듯·
ㄴ대 괴수전·
ㄴ그냥 괴수전·
ㄴ이기는 편이 내 편!
ㄴ실로 효율적이고 직선적인 초식이네만····
ㄴ힘과 속도가 더해지니 가장 완벽한 초식이 만들어지는군·
ㄴ허어! 아무렇게나 내지르는 공격이 아닐세! 한번 한번의 공방에서 상대의 공격을 완벽히····
ㄴ무틀딱 그만!
ㄴ설명충 ㄲㅈ!
ㄴ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 보소·
둘은 육탄전을 펼치며 우주 곳곳을 누볐다·
번쩍이는 에테르 파동·
어마어마한 전투 여파· 주변의 소행성이라도 스쳤다 치면 모조리 박살이 난다·
이는 괴수도 다르지 않았다· 인접해 있던 괴수들은 둘의 거친 전투에 휩쓸려 뼈도 못 추리고 산화했다·
쿠웅- 쿵-
프로히덴이 어느새 거리를 벌리면 무지막지한 투창과 함께 신속히 따라붙는 칼슈타인·
둘은 서로가 서로를 쫓고 쫓기며 육탄전을 벌였다·
ㄴ아아····
ㄴ대체 얼마만큼 강한 걸까? 현실감이 없는데?
괴수를 포함해 함대조차 전투의 여파에 휘말릴 걸 대비해 멀찍이 떨어졌다· 인류 함대 진영은 잔탄 발사 후 단단한 진을 펼치곤 주포 재충전과 방어에만 전력을 쏟는다·
저런 네임드 개체를 두고 함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칼슈타인 폐하를 위해 기도할 뿐·
결국 이번 전투의 승패는 둘에게 달렸음이라·
ㄴ드래O볼 실사판?
ㄴ이게 어떻게 SF냐고?
ㄴ신화가 아닐까?
ㄴ미친! 방금 근처에 있던 덩치 큰 괴수 터져나가는 것 봄?
ㄴ의문의 돌연사!
ㄴ그냥 케이크처럼 뭉개지네····
별빛 갈기가 스쳐 지나가며 거대한 주먹이 칼슈타인의 머리에 꽂혔다·
터어엉-
젖혀진 고개를 바로 한 칼슈타인은 곧장 복부에 창을 쑤셔 넣는다·
쿠우웅-
괴수는 거리를 벌리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도망치려고? 어딜!”
투창으로 이동 경로를 막으며 따라붙는 칼슈타인·
부모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자꾸 저 녀석들을 신경 쓰는 것 같은데····”
그 말과 동시에 칼슈타인에게서 쏘아진 투창·
퍼엉- 펑-
[!!]
단 한 번의 투창에 엠사이트 두 기가 소멸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
칼슈타인은 프로히덴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ㄴ와 악마의 미소야!
ㄴ사탄: 적이 소중히 여기는 대상을 먼저 죽여라· 메모·
ㄴ누가 악당인지 모르겠는데?
ㄴ불쌍한 괴수·
ㄴ도망가!
ㄴ힘내 괴수야!
확실히 엠사이트를 잃은 것이 프로히덴에겐 타격이었을까?
놈이 분노한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이제 제대로 해볼 마음이 들어?”
허나 칼슈타인은 시종일관 여유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에 프로히덴 쪽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파츠즛- 화아악-
놈의 보랏빛 귀화가 폭포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며 보라색 아우라가 증폭하기 시작했다·
마치 나비의 날개와도 같은 거대한 에테르 파동이 녀석의 등 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이에 맞서 붉은빛 에테르를 내뿜는 칼슈타인·
이윽고 둘이 맞붙자·
ㄴ어 어? ㅅㅂ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ㄴ야···· 이 정도 감속으로도 확인이 안 돼?
ㄴ미친·
ㄴ연결 끊긴다·
ㄴ얼마나 격렬하게 싸워야 커뮤니티 연결이 끊길까?
ㄴ호에에····
터어엉-
허공이 일그러지며 서로가 튕겨나왔다·
“와 너도 장난 아니구나?”
ㄴ장난? 장난하나·
ㄴ저게 할 말인가?
ㄴ너‘도’래잖아·
ㄴ약해·
ㄴ주딱이 좀 더 여유로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ㄴ아···· 원래 인간은 다굴이 패시브인데·
ㄴ주딱이 봐주는 거 아닐까?
반면 칼슈타인은 녀석을 보며 내심 혀를 찼다·
‘무장을 좀 더 확실히 챙겨왔어야 하는데·’
인간(?)이 맨몸으로 우주에서 전투를 벌이는 게 쉬울 리 없다· 온갖 무장의 보조를 받는 것도 그 이유·
‘하다못해 동료라도 있었다면·’
칼슈타인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대로는 끝이 안 난다·
칼슈타인으로서도 아군의 피해를 줄이려면 빠르게 끝내는 것이 좋았다·
물론 이는 프로히덴도 마찬가지· 시간을 끌어서 좋을 일이 없었다·
서로가 합을 맞춘 듯 동시에 에테르를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끝없이 증폭하는 에테르 파동·
그와 동시에 칼슈타인은 함선에서 쏘아 보낸 투박한 외양의 금속 막대를 손에 쥐었다·
충전까지 최소 1년은 걸리는 그의 0번 무기·
‘미스틸테인’이라는 아명을 가진 창에서 황금빛 에테르가 치솟기 시작하고·
프로히덴이 허공에서 은빛의 거대한 목검을 꺼내들었다·
“····”
[····]
칼슈타인이 은빛 대검을 보며 눈을 좁혔다·
뭔가 익숙한데·
허나 고민하고 있을 틈은 없다·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든 둘·
이윽고·
거대한 빛무리가 폭발하며 전역을 뒤덮기 시작했다·
[으윽!]
[쉴드를 가동해!]
[뭉쳐!!]
[120% 가동!]
[한계입니다!!]
[버텨!!]
다급히 울리는 함대의 통신·
쉴드를 풀가동한 함선들이 풍랑을 만난 듯 거칠게 내밀렸고 인접한 괴수들은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 결과·
잔뜩 인상을 찌푸린 칼슈타인·
재가 되어 흩어지는 은색의 대검·
그리고 균열 사이로 사라진 프로히덴·
“···이걸 튀어?”
허·
예전에 있었던 일이 오버랩되었다· 심장에 창을 꽂았지만 끝내 놓치고 말았던 괴수 하나가·
뭐··· 헛물켰던 그때랑 다른 게 있다면·
미처 균열을 넘어서지 못하고 천천히 하강하는 백금색 알 하나·
“흐음·”
별빛 갈기 속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걸 봐선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던데·
놈이 도주하면서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분명 녀석은 백금색 알을 보고 눈동자가 흔들렸었다· 놈의 동요로 봐서는 도주를 포기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국 남은 괴수의 반과 함께 도주를 선택한 녀석이었다·
놈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으리라· 그 ‘힘’은 피할 수 있다고 피해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녀석은 잠시 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끝내 고개를 돌려 균열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아····
아쉬워라·
칼슈타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프로히덴이 채 데려가지 못하고 버려진 괴수 군단·
“뭐···· 이만하면 카밀라의 분풀이 정도는 되겠지· 아리아 좌표 추적 가능하지?”
쉽게 놓아줄까 봐? 어디를 가려고? 좋은 데면 나도 데려가!
칼슈타인은 1m 길이의 타원형 알을 챙겨 들었다·
“음?”
그의 에테르를 게걸스럽게 탐하는 백금색 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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