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2
한국대 수리과학부 교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 보여준 열정 가득한 모습은 그럼 다 무엇이었는가·
“전 세계에서 많은 분들이 애정어린 관심과 함께 여러 질문을 보내주셨는데 안타깝게도 이 시간에 모두 다루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제 방송채널 링크를 여기 화면에 띄워드리겠습니다· 그럼 성의있는 질문들을 추려서 그것 위주로 진행해볼게요·”
화면에 거대한 QR 코드가 나왔다·
이는 나메의 트위시 방송 채널로 곧장 접속되는 링크였다·
대중들이 영문을 몰라 수군거릴 때 쯤 그녀의 폰에서 울리는 후원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어렴풋이 들려왔다·
[‘zmxncnvb’님이 1000원 후원!]
-69번 질문 가능할까요?
“네 69번부터 보겠습니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유료 투표 채널을 이용해주세요·”
나메가 미소를 씨익 짓고 로버트 퓰러 박사를 쳐다보았다·
그가 당황한 듯 몸을 움찔거렸다·
돈을 버는 방법에는 다양한 수단이 있었다·
* * *
-이··· 이게 뭐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골때리네ㅋㅋㅋㅋㅋ
-ㅋㅋㅋ누구 아이디어냐 대체
[당신의 질문에 투표해주세요! 프로듀스 365!]
<현재 순위>
[1위]
185· p-adic valuations and application of Nagell-Lutz theorem ($852)
“옥스퍼드 대학에서 또 타원곡선에 대한 질문을 해주셨는데요· 다들 골드바흐의 추측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가보네요·”
나메는 다시 분필을 잡고 작은 의자를 드르륵 바닥에 끌고 위에 폴짝 올라가 증명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또 이런 식이다·
나메가 증명을 끝내면 방송을 확인해서 가장 돈이 많이 모인 질문을 답해주곤 했다·
이제 겨우 두 시간이 지났는데 1위까지 오르려면 850달러를 지불해야한다·
업계 사람들은 당연히 기가 찼다·
정말 아름다운 논문 하나를 학계에 제출해도 이로써 얻는 저작료가 총 5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업체가 80%를 가져가버리는데다가 심사료 게재료 연회비까지 내고나면 오히려 적자이다·
그런데 논문도 아니고 겨우 증명 하나에 필요한 새끼증명을 저런 돈을 받고 팔다니?
이는 시청자들의 팬심이 더해져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와 근데 무슨 질문을 해도 척척박사처럼 답해주네ㅋㅋㅋㅋ
-몬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귀여우면 개추ㅋㅋㅋ
-ㄹㅇㅋㅋ
-아무튼 노나메가 귀엽다 이 말이야
-어? 근데 이거 유료 투표 채널이면 우리가 질문 만들 수도 있는 거 아닌강?
-???
-너 천재냐?
처음에는 천원만 주고도 물어볼 수 있는 질문들이 만원 십만원 이제 백만원에 육박했다·
설상가상으로 방해꾼들이 등장했다·
[당신의 질문에 투표해주세요! 프로듀스 365!]
<현재 순위>
[1위]
368· 1+1=2 증명하기· ($1348)
-이게 되넼ㅋㅋㅋㅋㅋㅋㅋ
-노나메 진짜 해주냐?
-누가 대체 여기다가 혼자 4백 달러나 박았냐 정말 미쳤냐곸ㅋㅋㅋㅋ
-수학자들 오열
-개날먹이쥬? 근데 개꿀이쥬?
-1+1 증명하고 천삼백달러 꿀꺽
-아 수학 돈 진짜 잘 버는 학문이었네ㅋㅋㅋㅋ
“자연수 자체를 정의해보는 것도 이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어요· 1+1이 2라는 걸 저는 페아노 공리계를 써서 증명해보겠습니다·”
“나메양! 이건 지금 증명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내용이잖아요!”
“쉿· 연관이 왜 없어요?”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한번만 더 시끄럽게 하면 에밀리에게 일러바친다는 눈빛을 보냈다·
벌떡 일어났던 수학자는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
반면 청중들은 이 상황이 돌아가는 게 웃길 따름이었다·
아름다운 증명을 완성시키기 위한 질문들은 이제 피타고라스의 정리나 이차방정식 근의 공식 유도방법과 대결해야했다·
“마지막 질문 하나만 더 받고 끝내겠습니다·”
[당신의 질문에 투표해주세요! 프로듀스 365!]
<현재 순위>
[1위]
403· 정17각형 작도하기· ($2703)
[2위]
319· 쌍둥이 소수 추측과 마왕 수열 추측의 동등성 증명· ($2698)
-정17각형 작도 승리!
-정17각형을 대체 어떻게 그리냐고ㅋㅋㅋㅋㅋㅋ
-놀랍게도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17세 때 해낸 내용이다
-이왜진?
-근데 저거 마왕 수열은 형태가 특이해서 궁금했었는데 좀 아깝다·
-마왕 수열 추측만 증명되면 자연스럽게 쌍둥이 소수 추측도 증명되는 거 아니었어?
-자와 컴퍼스 입갤ㅋㅋㅋㅋㅋㅋㅋ
-아 노나메 왜케 귀엽냐고ㅋㅋㅋㅋㅋㅋㅋ
자와 컴퍼스는 초등학교 과정을 정상적으로 수료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익숙한 도구였다·
초등학교 때 한번쯤은 원을 마구잡이로 그려보다가 컴퍼스 촉에 찔리기도 하고 힘을 너무 세게 내다가 연필심이 부러지기도 하는 추억이 담겨 있다·
그래서 정17각형 작도는 이 날의 하이라이트였다·
다른 수학자들과 타원곡선이니 복소해석학의 모레라 정리이니 토의하는 것보다 자와 컴퍼스만으로 보여줄 수 있는 궁극의 작도를 하는 게 훨씬 흥미진진했다·
한 시간 전부터 꿈나라에 가 있던 백아린과 서유나도 천교수가 깨우자 눈을 비비고는 일어났다·
나메가 컴퍼스로 정17각형의 토대가 될 큰 원을 그리며 이야기를 진행했다·
오랜 방송 경험으로 시청자들이 어떤 부분에서 지루해할 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여러분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고 아시나요? 거기서 나온 피에르 드 페르마는 ‘페르마 소수’라는 걸 처음으로 고안해냈다고 해요· 대충 F는 2의 2의 n제곱 플러스 1 꼴이죠·”
원과 원 사이에 수많은 반원이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나메가 힘들게 의자를 옮겨대며 그녀의 키만한 자로 두 점 사이를 이었다·
“페르마 소수는 전부 작도가 가능해요· 그래서 정3각형 정5각형 정17각형 정257각형 정65537각형을 작도할 수 있는 거죠·”
y축을 중심으로 하나의 직선과 두 개의 반직선이 뻗어나왔다·
또 다시 칠판 지우개가 열심히 일을 할 차례이다·
하얀 분필 가루가 휘날리자 그녀가 작게 기침을 콜록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짧은 두 팔을 위로 쭉 뻗어 컴퍼스의 중심을 잡았다· 발뒤꿈치까지 살짝 든 모습이다·
“수학이라는 학문은 집단지성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혼자 끙끙 앓고 있어도 남이 와서 보면 또 쉽게 해결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제 정17각형의 작도를 보고 수학자의 꿈을 깨운 다른 아이들이 제가 미처 다 하지 못한 증명들을 대신 해결해줬으면 좋겠네요·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나머지 모든 선은 지워졌다·
원점을 중심으로 삼는 커다란 원 안에 x축 위에 굳건하게 솟아있는 나무 한 그루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녀는 겨우 이 선분 하나를 그려내기 위해 이 온갖 고생을 했던 것이다·
‘수학이 이래서 허무한 거야·’
마리아 에우프라시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걸 찾아내기 위해 평생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메는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오러나 마법이 더 좋았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이 숫자를 세주실래요?”
이제 컴퍼스가 마지막으로 활약할 차례이다·
“하나 둘 셋!”
원 위에 점을 찍고 컴퍼스가 돌아갈 때마다 일정한 모양의 꽃잎이 탄생했다·
“넷 다섯 여섯!”
힘들게 돌아온 길이니만큼 나메는 아주 신중히 세심하게 하얀 선들을 그려냈다·
허무할 수는 있다·
그래도 나메는 여기서 아름다움을 느끼면 상관없나라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어차피 죽음으로 향하는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든지 간에 전부 정답일 테니까·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마지막으로 호선을 그려내자 기막히게도 그 끝이 처음 시작했던 점과 겹쳤다·
원 위에 17개의 점이 생겨난 것이다·
원래라면 마지막 과정은 이를 모두 눈금 없는 자로 이어야겠지만 나메는 생각을 달리했다·
[시전: 17방위 추적]
처음 그린 원과 똑 닮은 마법진이 허공에서 작성되었다·
기하학적 문양의 마법진에서 17갈래의 선이 생겨났다·
정17각형이다·
나메는 마법진을 비눗방울 다루듯 천천히 움직여 칠판과 겹치도록 만들었다·
“우와··· 똑같아···!”
유나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얀 분필이 만들어낸 17갈래의 꽃잎과 발광하는 황금색 마법진이 정확히 일치했다·
땡-!
시계가 정확히 오후 6시를 알렸다·
나메는 손목시계를 확인한 뒤 마무리 멘트를 지었다·
“저는 이 마왕 수열 정리에 대한 실로 놀라운 증명법을 발견했지만 아쉽게도 오늘 시간이 부족하여 이를 알려드리지 못했네요· 경청해주셔서 다들 감사합니다· 노나메였습니다·”
이날 커튼에 비친 나메의 그림자에 두 개의 뿔이 솟아난 걸 보았다는 목격자가 일부 속출했다·
* * *
“노나메양이 제시한 마왕 수열 정리만 증명하면 쌍둥이 소수 추측도 완벽하게 증명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표를 미루는 이유가 혹시 있나요? 아니면 쌍둥이 소수 추측은 이제 마음 속에서 완전히 버려버린 이론인가요?”
뒤늦게 기자 한 명이 마이크를 들고 뒷문으로 빠져나오려는 나를 포착했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조금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두루뭉실하게 답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왠지 말할 기분이 안 나네요· 한국이 저를 버려서 그런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노을진강줄기님 17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이번 에피소드에 정17각형 내용이 나오는데 때마침 17코인을 후원해주시다니 미래에서 오셨나요?
노벨사서님 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나메 절대 은퇴하지 마!!
헉···! 난제를 증명하기 위한 새로운 난제를 만들어내다니 이렇게 악질일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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