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6
아바타 제작 회사 ‘아티리얼’의 설계공장·
“이게 정말 반자동 아바타 생성으로 나왔다고?”
드워프같이 생긴 아저씨가 마우스로 내 월오아 아바타 모델링을 돌려보며 감상평을 내놓았다·
‘반자동 아바타’라 함은 사용자의 뇌파를 감지해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기술이다·
처음 월오아 계정 생성 당시 은발 성녀 실비아 알펜하임이 튀어나와서 꽤 당황했었지·
“그게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요?”
“당연하지! 꼬마야 넌 진짜 로또를 맞은 거라고·”
아바타 자율생성 인공지능이 처음부터 100% 관여하는 ‘자동’ 방식·
가내 수공업이든 외주 제작이든 인간이 직접 설정을 건드리는 ‘수동’ 방식·
이에 비해 ‘반자동’ 방식은 아주 조잡한 결과를 도출하기로 유명해서 시간을 무지막지하게 쏟아내거나 자신의 미적 센스를 믿는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정확하게 인간이라는 모습을 그려내는 건 정말 선택받은 극소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예를 들어 누가 한번 예쁜 손을 상상해서 반자동으로 그려볼래?”
윤슬이 대표로 나서서 뇌파 전극을 이마에 붙이고 실험을 해보았다·
그러더니 화면에는 웬 해골 덩어리가 뿅하고 나타났다·
“일반인들이 흔히 하는 실수인데 예쁜 손이라고 하면 손가락이 얇고 기다란 것만 생각하지· 인공지능은 이를 그대로 반영해서 저딴 해골이 나오는 거고·”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다·
인간 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지 못하면 인공지능은 언제나 정직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이토록 해괴한 결과물을 도출해내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반자동 방식으로 아바타를 생성할 때에는 사용자가 원하는 모델에 대해 미리 공부해놓는 게 필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모델은 너무 독창적이야· 사무엘은 저렇게 생긴 연예인이나 배우를 알고 있나?”
“최소한 할리우드에는 없지·”
“그럼 극악의 확률을 뚫고 생성되었다는 말이군· 허무하다 뭔가 대단한 비법이 있을 줄 알았는데·”
“부럽구만· 꼬마야 너 클릭 한번으로 최소한 1억은 벌었다 생각하라고·”
그들이 내 예전 육체에 값을 매겨대는 게 나로서는 영 불편했지만 뭐라 항의할 근거도 생각나지 않아서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사파리 동물 컨셉의 버튜버 아바타 하나랑 그 다음에 또 뭐라고?”
“아델라요·”
“아델라?”
“네 월오아 NPC 아델라· 아델라의 버튜버 데뷔를 허락해주세요·”
“제발 허락해주세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
윤슬이 옆에서 무릎을 꿇을 기세로 머리를 조아렸다· 아니 결국 꿇었다·
‘언니의 무릎은 그렇게 가벼운 거였어?’
‘쉿 조용히 해!’
그리고 그건 절이 아니라 도게자 아니야?
이러니까 무슨 상견례 자리에 온 것만 같다·
“아델라? 그건 월오아에서 삭제된 캐릭터잖아·”
“월오아에서는 삭제되었죠· 하지만 아델라는 여전히 VR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미리 준비해놓은 홀로그램 송출기를 꺼냈다·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해당 좌표계에 맞추어 홀로그램이 송출됩니다· 기기를 움직이지 말아주십시오·]
호텔에서 아티리얼로 가는 동안 아델라를 미리 프라이빗 룸에 대기시켜놓았다·
프라이빗 룸 전경이 환하게 드러나며 고양이 귀를 쫑긋거리는 인물이 등장했다·
아델라는 다소 긴장한 듯 주위를 힐끔거렸다·
[연습한대로만 해·]
우리가 다같이 입모양으로 아델라를 응원하였다·
“아아· 안녕하세요 아티리얼 사의 여러분· 저는 여명의 고양이 아델라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게임 속의-”
“잠깐잠깐잠깐!”
갑자기 아저씨가 그녀의 말을 제지시켰다·
‘망했다·’
‘뭐가 문제였지?’
‘어떡해! 다음 대사 까먹었어!’
불길한 기류가 흐르는 것도 잠시 그가 아델라를 슬쩍 바라보고는 말했다·
“얘 번역마법이 안 통하는데? 방금 안녕하세요우 말고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아···! 아델라는 VR에 있었지 참·”
독일의 디자인에서 태어나 영국의 소프트웨어를 이식받고 다시 미국의 손에서 키워진 키메라 혼종 고양이는 안타깝게도···
“어어 구텐탁 에브리완? 이거 맞나? 헤헤··· 헤···”
한국어 패치가 되어 있었다·
* * *
언어문제를 해결한 카리리와 아델라는 아티리얼 공장에서 열심히 실무진들과 아바타 디자인에 대해 논의하느라 바빴다·
구온유 교장이 잠시 주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에 다녀올 동안 나는 그녀로부터 ‘미아방지스티커’를 건네받았다· 촌스럽게 이게 뭐야·
남겨진 단니엘과 나는 어제 소매치기를 당한 뢰머 광장과 이어진 한적한 골목길로 돌아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며 한가로이 놀았다·
“사바나에도 고양이가 사나?”
“어제 사장님이랑 얘기해봤는데 대충 아델라를 사바나캣이라고 우기면 된댔어·”
“드립이었는데··· 맞다 니엘 언니 근데 사바나캣은 갈색이잖아?”
“검색해보니까 회색도 있더라고·”
“오 정말이네?”
“그리고 나메 네가 생각하는 동물은 아마 서벌일 거야· 사바나캣은 서벌과 샴고양이와의 교배종이고·”
“그럼 사바나캣은 사바나에 안 살아?”
“아마도?”
생태계란 참 심오하다·
아직 내가 모르는 동물들이 이토록 많다니·
“나메는 어제 잠 잘 잤어?”
“교장 선생님이랑 단둘이 같이 잤는데· 당연히 편하지는 않았지·”
“사실 나도 그래·”
교장과 학생 사장과 직원·
둘 다 썩 편한 관계는 아니다·
어제 구온유 교장과 내가 아카데미 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눌 동안 그녀들은 미래의 계획에 대해 심도 있게 토의를 하였다고 전했다·
“윤슬 언니가 버튜버로서 뭐 조언해준 게 있어?”
“지금 그게 문제야 나메야· 사장님이 나한테 아무것도 얘기를 안 해줘· 방송에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고 하고·”
이상하다· 설윤슬이 연기하는 카리리라는 캐릭터는 사실 정반대라고 봐도 무방한데·
오히려 단니엘에게는 그런 조언을 건네다니 의외였다·
“다 생각이 있겠지·”
“어떡하지! 이제 와서 무른다고 하면 너무 늦었을까?”
“언니 비행기 푯값도 윤슬 언니가 대신 내줬잖아·”
“흐힝힝··· 끄헹··· 난 망해써어어어···”
이미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이다·
버튜버 타락의 길을·
“처음부터 잘 해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원래 실패도 다 겪어보고-”
“사장님이 실패하면 날 메이드로 고용할 거래·”
“절대로 실패하면 안 되겠네·”
도대체 둘 사이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던 건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사실 단니엘은 버튜버를 시키는 게 더 아까울 정도의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버튜버 데뷔는 그녀의 장점 하나를 빼고 시작하는 일이니만큼 다른 곳에서 매력을 찾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내성적인 윤슬조차도 대중들 앞에서는 극외향적인 성격을 보여주는데 사람의 성격을 재단하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띠링-
윤슬로부터 문자가 왔다·
방금 막 아바타 디자인 논의를 끝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언니 버튜버 의상 정해졌대·”
“무슨 동물이래?”
“블랙 맘바라고 알아?”
“블랙 에···?”
“킹코브라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독사·”
“뭐··· 뭐야 그게! 나보고 어떻게 연기하라고 그런 걸 골랐어!”
산 너머 산이다·
내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조금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웃지 마아아··· 진짜 심각해···”
“귀엽지만 치명적인 컨셉? 대충 그런 거겠지?”
“몰라· 몰라몰라몰라몰라·”
“오 지금 딱 괜찮아 니엘 언니· 뭔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뭐니뭐니해도 방송에는 자신감이 중요한 것 같아·”
“자신감?”
“응· 대중들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 조금만 거슬리는 시청자들도 밴을 때려버리는 자신감· 하루쯤은 방송 약속시간을 어겨버리는 자신감·”
“핳· 그게 뭐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가 나누어준 빵 부스러기들을 전부 주워먹은 비둘기들이 푸드덕 하늘로 날아갔다·
음식을 준 은혜도 모르고 모이가 동나자마자 떠나는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에 요! 니하오!”
우리 주위로 체격 좋은 남성들 네 명이 다가온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은 나시티를 입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와 함께 껄렁대는 포즈를 취했다·
“Die Chinesen sind wirklich überall·(중국인들은 정말 어디에나 있네·)”
“칭총! 칭챙총!”
게다가 자신들의 눈을 손가락으로 길게 찢으며 위협하기까지·
“나메야 조용히 무시하고 가자··· 위험해보여·”
니엘이 내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인 채 인파를 빠져나가려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남성들이 껄껄 웃어대며 계속 우리 앞길을 방해했다·
“유 마더? 아 노우? 웨어 이즈 마마?”
“Vielleicht ist er bereits krank und gestorben!(어쩌면 이미 병에 걸려서 뒤졌을지도 몰라!)”
“하하하하하하!”
“콜록콜록! 코로나! 코로나!”
난 참을만큼 참은 것 같은데·
내 팔소매를 계속 잡아 당기는 남성을 뿌리치고 말했다·
“Hau ab bevor ich deine Eltern töte und sie in Sauerkraut verwandle·(꺼져 니들 부모님 죽여서 양배추 절임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
“엇?”
내가 설마 독일어를 알아듣고 사용할 줄은 몰랐는지 남성들이 모두 말문을 잃었다·
그들이 정색하면서 심각해진 얼굴을 우리에게 들이밀자 니엘이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나메야 너 저 사람들한테 뭐··· 뭐라 그랬어?”
“우리 지금 자우어크라우트 먹으러 가야하니까 길을 비켜달라고 했어·”
“화··· 확실해? 저쪽은 완전 다르게 생각하나본데?”
다르게 생각하면 어쩔 건데·
“인종차별에 맞설 줄 아는 자신감도 버튜버로서의 기본 소양이야 잘 봐둬·”
마법을 쓸 수 없는 나라라고?
그 대신 오러가 있다·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마법도 쓰지 못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쥐꼬리만한 오러를 가지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댔는가·
이제는 그들의 의지를 본받아야 할 때이다·
비록 전생에서는 나 또한 제국주의의 일원이었지만 신채호 선생의 말씀대로라면 ‘비아 속의 아’가 있는 법이다·
외지인이라 할 지라도 부당한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사상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면 충분히 나의 사정도 이해해줄 터·
다만 아직 내 몸은 약하다·
시퍼렇게 어린 열아홉 살의 반소월 하나조차도 힘으로 못 이길 수준이니 여차하면 침식을 꺼낼 생각도 하고 있었다·
황금빛 오러가 폭발적으로 소용돌이치며 오른팔에 모여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남자들도 오러를 잘 다룰 줄 아는 위험한 사람들이다·
남성들의 양팔을 모두 뒤덮는 뱀 문신에는 마치 마법진의 회로처럼 마나가 질서정연하게 흐르고 있었다·
회로 자체를 팔에 각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인정사정 볼 것도 없다·
“쏘리? 나메야 저 사람들이 방금 쏘리라고-”
“미안하다고 끝날 일이면 법이 왜 있고 주먹이 왜 있는데!”
그 소매치기범도 그때 그냥 콱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오러방벽을 두르니 마니· 소립자가 어떻고 마립자가 어떻고·
문득 든 생각이지만 현대의 대련은 전부 썩어빠졌다·
정작 현실에서 믿을 수 있는 방벽이라고는 본인의 오러 하나뿐인데 말이야·
그리고 이미 여기까지 충전한 이상 돌이킬 수도 없어·
[분노: 세크메트]
[카이젠식 정권지르기]
* * *
“시바 망했다!”
‘저스티스 맥키’라는 채널로 활동하고 있던 독일인 틱톡커 맥키는 방송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미리 섭외된 배우들로 하여금 힘없는 대중들을 위협하고 맥키가 직접 나서서 그들을 구해주는 플롯은 언제나 큰 인기를 끌었다·
이는 히어로에 대한 일종의 감정이입 대리만족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해외에서 ‘prank’라고 소개되는 일종의 몰카 장난 컨텐츠에는 언제나 주의가 필요했다·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가 가끔씩 배우들이 다치는 경우가 생겼으며 경찰에 신고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맥키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어 돈을 벌게 된 이후로부터는 배우들도 싹 다 실력있는 경호원 직원들로 섭외하게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현장은 끔찍했다·
키가 2미터에 달하는 가장 몸집이 큰 사내는 명치를 얻어맞고는 맞은편 벽까지 ‘날아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뒤늦게 다른 남성들이 날뛰는 소녀를 제지해보려다가 얼굴을 가격당하고 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맥키는 사람 코에서 피가 저렇게 많이 나오는 줄 처음 알게 되었다·
가까스로 의식을 차린 남성이 동료의 지혈을 도와주어 피는 멎었지만 이미 돌바닥은 검붉은 액체로 흥건했다·
만약 건드린 상대가 독일의 높은 정치인 집안이라던가 오러 무투가였다면 맥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독일에서는 카시트에 탈 나이인 소녀에게 장정들 넷이 나가 떨어지다니 그는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황금의 오러 속에서 보랏빛 전기 스파크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행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백 미터 가량 떨어져서 대기하고 있던 카메라맨이 허겁지겁 합류한 건 그 시점이었다·
“맥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너 지금 나한테 역으로 몰카하는 건 아니지?”
“앰뷸런스·”
“뭐라고?”
“빨리 닥치고 앰뷸런스 부르라고 개자식아! 사람 죽게 생겼잖아!”
경호원들을 버리고 도망갈 수도 소녀가 무서워서 다가갈 수도 없는 처지를 비관하며 맥키가 자신의 손톱을 까득 깨물었다·
소녀는 바닥에 쓰러진 남성과 몇마디 대화를 주고받더니 고개를 두리번거려서 맥키를 발견했다·
그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연이어 내뱉었다·
‘왜 여기로 오는데···! 오지 마!’
아시아인 소녀는 맥키의 생각보다도 더욱 나이가 어려보였다·
맥키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추정 나이가 한 살씩 어려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디·
‘11살? 10살? 아니 8살도 저렇게 작지는 않을 거야···!’
마침내 바로 앞까지 우뚝 섰을 때 그녀의 키는 겨우 자신의 허리춤에 지나지 않았다·
소녀는 폰으로 번역마법을 능숙하게 작동시키며 말을 건넸다·
“경찰서까지 함께 가시죠· 제가 여기 경찰서장이랑 아는 사이에요· 비록 식당이나 사우나까지는 같이 못 가봤지만·”
일이 잘못되어도 무언가 한참은 잘못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참고로 독일에서 12세 및 150cm 미만의 어린이는 의무적으로 카시트를 사용해야합니다··!! 나메는 아가야··· 4년 동안은 카시트를 타야해···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를 시전하는 노나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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