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0
대한민국 정부가 사건을 은폐한 관계자들을 벌하고 발푸르기스의 목적을 밝혀내기 전까지는 공식적인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이는 한국에 입국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이른 시간에 저녁을 챙겨먹고 천교수와 같이 논문 스터디를 하던 중 초인종 소리가 울렸고 문을 열어 확인해보니 택배 박스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나는 곧바로 백봉곤 훈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나메야! 택배는 잘 받았고?]
“네 할아버지· 잘 받았어요 네· 근데 같이 딸려온 건 뭐예요?”
[하나만 주면 정 없어부러잉 긍께 하나 더 챙겨줬지· 갖다 버리든지 나메 네가 쓰든지 니 알아서 해라· 그럼 욕봐라·]
“예?”
뚝-
전화는 매정하게 끊겨버렸다·
나는 그가 만들어준 간이 연성진 작성기를 확인해보기 위해 포장지를 뜯었다·
‘노리개?’
보통 한복 저고리에 다는 장식품이다·
그것도 3개의 노리개가 하나의 끈으로 묶여있는 삼작 노리개였다·
일반적인 노리개와 비교했을 때 무게가 꽤나 나가는 편·
자세히 살펴보니 중앙에는 마석이 박혀있어 완드의 핵을 구성하였고 각 노리개의 매듭과 주체를 구성하는 부분에는 자이로스코프 센서들이 있었다·
노리개를 만들 때 쓰이는 실 가닥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섬유로만 되어있어 완드의 회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든 것 같았다·
대충 바지 주머니에 매달고 거실로 나와 노리개를 사용해 아무 마법이나 시전해보았다·
[간이시전: 라이트]
그리고 앞으로 세 발자국 움직여본다·
“오·”
좌표계를 따로 수정하지 않았는데도 마법진에서 밝은 불빛이 똑같은 세기로 계속해서 쏟아졌다·
비록 마나의 증폭 기능이나 마법진 구조식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지만 나름 내가 원했던 주문대로 잘 나온 것 같았다·
가장 중요한 좌표계 수정 기능이 탁월했고 거기에 더해 최적 주입 기능도 95% 수준까지 끌어올렸으니 소형화 제품인 걸 감안한다면 몇백만 원이 아깝지 않은 제품이다·
이 정도면 아카데미 대항전 규정에도 위반되지 않을뿐더러 지혜가 쓰기에도 적합할 것이다·
마력을 거두고 이번엔 다른 포장지로 눈길을 두었다·
‘이건 진주잖아?’
영롱한 보랏빛이 감도는 보석의 크기는 사람의 눈알만했다·
아까 그 노리개처럼 제작과정에서 흘러나온 미약한 마나가 느껴지는 걸 보니 이 또한 마력석의 일종일 것이다·
진주를 감싸는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뾰족뾰족한 금빛 장식물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아무리 봐도 반지나 팔찌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백훈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정확한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팔찌가 아니라 나메 니 머리끈 하라고 준 거다·]
“머리끈이요?”
[그려· 오러를 쓸 때 혹시 가슴이 답답하다고 느껴진 적 한번도 없니?]
“어어··· 생각해보니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다 니 심장이 작아서 그려·]
“오러하트가 아니라 그냥 심장이요?”
[오러하트 주위에도 피가 잘 공급되고 혈액이 잘 순환되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거지· 지금 니는 성인의 두 배 세 배 다섯 배만큼 쓰는데 심장은 아기만하니까 몸이 버티지를 못하는 거야·]
“이걸 쓰면 좀 달라지나요?”
[심장에 너무 무리가지 말라고 알아서 출력을 조절해줄 거다·]
“으음 딱히 특별한 기능도 아닌데 이게 마공품보다 훨씬 비싸보이는데요?”
겨우 오러 출력을 조절해주는 제품에 이런 커다란 마석을 때려박았으니 수지타산이 맞는 장사인가 싶다·
[예끼 더 비싸다니! 니 친구 줄 마공품은 내 60년 어치의 내공이 들어간 산물인데 그쪽이 훨씬 더 비싸지·]
“알겠어요· 그런데 이 동물 키링은 뭐예요? 이것도 무슨 기능이 있는 건가?”
[그건 아주 옛날에 경로당에서 어느 보험팔이한테 받은 건데 그냥 귀여운 거 좋아할 것 같아서 붙여봤다· 싫으면 떼든가·]
“아녜요·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그려 나 바쁘니까 전화 걸지 말고!]
곧바로 머리끈을 바꾸어보았다·
머리핀도 하나 챙겨주셨네·
이 훈장님 보면 볼수록 츤데레 스타일이신 것 같다·
일부러 넉넉하게 챙겨드린 돈도 결국 이런 식으로 다시 돌려줘버리니 한 고집 하시고 말이다·
이왕 완드도 받았겠다 예정에는 없는 특훈을 하기 위해 마지혜와 한서리를 집 앞으로 불러내려고 했다·
[노나메: 한서리 바빠?]
[한서리: 마침 나메 너한테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한서리: 혹시 지혜 못 봤어?]
[노나메: ?]
[한서리: 지혜가 지금 가출했대!]
* * *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유령 영아가 아닌 이상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 생체칩을 부여받는다·
[노나메: 지혜야 너 폰 보고 있는 거 다 알아· 지금 연락 안 받으면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한다고 했어·]
지혜의 어머니가 경찰에 실종신고라도 해야하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다행히 그녀는 내 연락을 받아 사건이 커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어차피 여덟 살 아이가 가출해봤자 갈만한 곳은 딱히 없다·
기껏해야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거나 학교에 숨는 게 전부겠지·
“안녕하세요 경비원 아저씨 혹시 제 친구 못 봤어요? 단발머리에 이렇게 생긴 안경을 쓰고 있는데·”
한서리가 아카데미 경비원에게 물어보더니 그가 조용히 손가락으로 초등부쪽을 가리켰다·
우리는 초등부 놀이터에서 혼자 처량하게 그네를 타고 있는 지혜를 발견하였다·
나는 곧바로 지혜 어머님에게 그녀를 찾았으니 이따가 집으로 무사히 돌려보내겠다는 문자를 드렸다·
“지혜야! 마지혜 거기서 뭐해?”
한서리가 오도도 달려가 팔로 그녀의 목을 감쌌다·
“아 하지마!”
평소에 순딩순딩했던 지혜가 짜증을 내며 뿌리쳤다·
“헉··· 화났나보다· 어떡하지?”
“지혜야 무슨 일 있었어?”
그녀가 나를 보자마자 그네에서 벌떡 일어나 물었다·
“혹시 우리 아빠한테는 아무 말 안 했지? 제발···”
“너 가출한 거 아빠는 모르셔?”
“으응! 알면 절대 안 돼!”
“모르실 걸? 일단 난 아무말 안 했어·”
“휴우 다행이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아버지가 형사였었지·
그녀가 이렇게 무서워하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는 간다·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구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은 기분을 먼저 풀어주는 게 먼저이겠다 싶어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복숭아맛 이클립스 사탕을 입에 넣어주었다·
“···?”
그리고 포O몬 빵 스티커를 손등에 붙여준다·
“우와··· 이거 엄청 희귀한 건데·”
마지막으로 타이밍 좋게 오늘 막 택배로 도착한 그녀의 완드를 보여주었다·
“자 네 완드야 지혜야·”
“완드? 이게 정말로 완드야?”
“조금 모양이 특이하긴 하지만 사용법은 똑같아· 어때 이제 기분이 좀 풀렸어?”
“응··· 고마워··· 고마운데···”
지혜는 완드의 값어치를 잘 모르니 오히려 띠부씰에 더 정신이 팔려있는 모양새였지만 뭐 상관없다·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시던데·”
“···”
“원래 지혜 너랑 서리랑 같이 훈련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그냥 집에 돌아가야겠다 그치?”
“훈련할 필요 없을 것 같아·”
“야 그게 무슨 말이냐! 너 도와주려고 나메랑 내가 맨날 학교까지 나와서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이제 와서-”
“나 멀리 전학 갈 지도 몰라· 아··· 아빠가 나보고 더 이상 아카데미 다니지 말랬어·”
어느새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촉촉한 물방울들은 석양빛에 반사되어 붉게 빛나고 있었다·
* * *
“다녀왔습니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인생은 대체로 고달프다·
초등부 때부터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의 방학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총명한 상위권 친구들은 아닐지 몰라도 마지혜처럼 애매하게 좋은 머리를 타고났으면 노력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혜는 아카데미 친구들이 마냥 좋았기에 언젠가는 그녀들과 같은 반이 될 수 있도록 묵묵히 학원을 다녔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학원에서 돌아온 지혜를 보고는 그녀의 어머니가 반겨준다·
근엄한 표정 그보다는 더 심각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한 아버지가 오늘은 웬일로 집에 일찍 들어와 있었다·
“지혜야 화장실 가서 손 씻고 여기 좀 앉아봐·”
“아 네·”
“세수도 해야겠네·”
강력계 형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야근은 일상이었다·
심지어 아침에 출근했는데 평일 오후 네 시에 마범일 형사가 집에 있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세수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부모들은 언성을 높이고 싸우고 있었다·
레퍼토리라도 비슷하면 좋겠건만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싸워댔다·
아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구가 훨씬 작은 어머니였지만 마형사에게 말싸움으로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지혜가 뻘쭘하게 자리에 앉았다·
“마지혜 너 방학 때 요즘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야?”
지혜를 학원에 보내는 것도 탐탁지 않아하는 마형사가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잘 알지도 못하는 애 교육에 참견좀 마라며 발끈했다·
“대항전에 나가면 가산점 있다니까 애가 미리 연습하겠다는 건데 당신은 뭐가 그리 불만이야·”
“나였으면 그거 준비할 시간에 공부를 더 해서 기말고사를 잘 봤겠다·”
“그래서 학원도 3개나 보내고 있잖아· 지혜도 열심히 하려는 거 안 보여? 언제는 학원 보내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더니·”
“마지혜 아빠 봐봐· 공부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 학원 선생님이 그러더라· 너 요즘 수업에 집중 못하고 맨날 존다고·”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럼 다음 학기에는 1등 할 수 있어?”
마지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등? 꿈도 꾸지 못하는 자리이다·
세피론 아카데미에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 노나메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녀가 자신없게 고개를 내젓자 마형사가 말을 달리했다·
“그럼 10등은?”
10등도 불가능하다·
윤시후 서유나를 비롯해 수많은 재벌가 아이들과 같은 레벨로 올라가야하는데 현재 56등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20등도 어려울 것 같아?”
“네··· 20등도 좀···”
반액장학금의 최소 기준도 못 미치자 마형사는 팔짱을 끼며 마음을 굳혔다·
“그럼 전학가자· 나는 지혜가 아카데미에 계속 다니는 거에 회의적이야·”
“당신 진짜! 지혜가 어떻게 들어간 아카데미인데!”
“중등부 고등부까지 합하면 애 대학 들어갈 때까지 10년이나 남았어! 심지어 성적도 계속 떨어져서 중등부에 올라갈 지도 모르는데 가족끼리 계속 떨어져서 살자고? 안 돼 다같이 인천 가·”
이제는 고등부를 어디 나왔느냐가 대학보다 중요해진 세상이 도래했지만 아직 마형사의 머릿속에서는 대학이 훨씬 중요했다·
“인천? 아빠가 갑자기 인천에 왜 가요?”
“지혜야 일단 방에 들어가 있어· 엄마 아빠끼리 더 얘기해볼 테니까·”
“얘기는 이미 다 끝났는데 뭘 더 얘기해! 그리고 마지혜 너 대련연습이니 뭐니 하는 거 다 끊고 학원이나 똑바로 잘 다녀· 아니 앞으로 대련은 할 생각도 마· 알겠어?”
“하지만 저 대련은 진짜 잘하고 선배들도 다 이길 수 있는데···!”
“마지혜 그냥 아빠가 하는 말 들어· 그렇게 위험한 걸 평생 하면서 살 수는 없어· 여보도 지혜 지금 다니는 학원이나 똑바로 다니라고 교육하고· 이미 3개도 무리인 게 뻔히 보이는데 돈만 아깝게 뭘 더 보내라는 거야? 어!”
“지혜야 빨리 들어가봐·”
결국 어머니가 지혜를 등떠밀어 방에 보낸 덕분에 다시 부엌 식탁에는 외동딸을 둔 부부만이 남게 되었다·
마형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픽픽 내쉬었다·
“그래서 인천으로 언제 발령나는 건데?”
“빠르면 9월· 이미 주요 업무는 인수인계까지 다 끝마치고 다들 놀자 판이야· 업무 공백 생겨도 관여하지도 말래·”
“아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강남에 살던 사람을 갑자기 인천으로 쫓아내버린다고? 경찰 공무원이 무슨 군대도 아니고·”
“낸들 아나· 법 바꾸는 사람 마음인 거지···”
서울 강력범죄수사2계는 현재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이라는 태풍이 몰아칠 전망이었다·
유착 비리를 차단하기 위한 명목으로 8년 이상 근속형사를 타 권역으로 전출시키는 것도 모자라 업무 유사성이나 입직 경로등도 고려하지 않은 인사 결정에 내부적으로는 다들 뿔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까라면 까는 게 공무원이다·
그들의 갈 곳 없는 불만은 결국 내부를 떠돌다가 특정인물을 콕 짚어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특히나 이 사건의 주범으로 꼽히는 마범일 형사는 동료들로부터 찬밥 신세가 되어버렸다·
굳이 죄를 따지자면 천정호 지검장과의 사적인 연락이 오갔는데도 이를 보고하지 않음으로 인해 정치권에서 물어뜯을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이었다·
뇌물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모함은 더욱 가관이었다·
“하아 이 은혜도 모르는 썩을 놈들 진짜 이 일도 다 때려치고 싶네··· 나 이 앞에 담배 한 대만 피고 올게·”
“그럼 가는 김에 음식물 쓰레기좀 버리고 와·”
“··· 가서 지혜나 달래줘· 방에서 애 우는 소리 들린다·”
어린 소녀가 서럽게 훌쩍이는 소리 때문에 마범일 형사의 마음은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ystone님 7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전역 너무 축하드리고 마나인방이 고된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연재해보겠습니다!!
결국 천정호 지검장에 이어 마범일 형사도 희생양이 되어버렸군요· 나메가 얼마나 분노할지 상상도 되지 않네요··!!
마나인방 20만 추천수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주에 마나인방 표지와 이모티콘이 나올 예정입니다!! 많이들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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