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6
“하나만 물어볼 게 있어 나메야·”
“뭐든지·”
“아까 나갔을 때 스승님이 나한테 많이 실망하신 눈치였어?”
내가 아까 전 포션을 복용하기 위해 캡슐 밖으로 나왔을 때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으음···”
그녀가 상대한 인물들이 만만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 중에는 하루에 14시간씩 게임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한술 더 떠서 2군 현직 프로게이머까지 합세해 그녀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였다·
한번도 쉬지 않고 내리 46판을 한 에미카를 기특하게 생각할까 아니면 15패나 내주어버린 그녀를 책망할까·
“에미카가 직접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런가···”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지· 에미카가 여기서 날 이긴다면 지난 패배를 모두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야·”
“그럼 너는 이 게임에서 얼마나 강해?”
나는 웃음으로 답변을 돌려주었다·
“말해 뭐해· 직접 싸우면서 느껴봐· 우리 전투력은 몇으로 할래?”
로우파워 대련부터 하이파워 대련까지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는 1vs1 모드·
그녀도 다양하게 조절해가면서 평소 자신의 실력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는 구간을 찾아내었다·
“일단 서로 5천부터 시작해보자·”
“겨우 5천···? 뭐 알겠어·”
에미카의 현실 신체능력을 생각한다면 최소 1만5천은 넘겨야 할 듯 싶었지만 일부러 나를 위해 봐주는 듯 싶었다·
전투력 5000·
지금 이 몸으로는 100미터를 대략 11초 안에 주파할 수 있는 능력·
과거의 기억을 잠시 끌어와보면 마나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도 육상선수들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차피 가상현실에서는 별로 안 아프니까 내가 너무 거칠게 나온다고 해서 놀라지는 마·”
“응 이제 충분히 익숙해진 것 같아· 채찍이든 4도류든 여기서 더 신기할 것도 없으니까· 게임 후배로서 한 수 잘 부탁할게 나메야·”
“익숙해져? 지금쯤 머리카락을 전부 쥐어 뜯어버릴 정도로 화가 나고 미쳐버려야 할 텐데· 지금 에미카는 뭐라해야 할까··· 너무 평온한 거 있지?”
“나메야?”
검이 손에 착 감겼다·
이 느낌은 다른 생을 살게 되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 같네·
건조해진 윗입술을 혀로 살짝 핥으며 에미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왜 그녀가 국가교류전에서 패배했을까?
단순히 일본에서만 적수가 없을 뿐이고 세계대회에서는 훨씬 재능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직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전부 꽃 피우지 못한 것이다·
기술이라는 제약에 묶이고 어른들의 조언에 묶이다 보니 스스로 쇠사슬을 차고 움직이는 듯한 답답한 모습을 줄곧 보여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나?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비로소 재능을 개화한다·
아무래도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그녀를 클라우스처럼 무작정 절벽에서 떨어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절벽까지 몰아붙이는 아주 귀찮고 빙빙 돌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배움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 그러니까 견뎌봐·”
* * *
어째서 아바타 하나만 바꾸었을 뿐인데 이리도 다른 위압감을 풍길 수 있단 말인가·
나메가 허공에 검을 붕붕 휘둘러보자 ‘정말 예쁘다’라는 감정이 점점 ‘멋있다’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순간 에미카에게 깊은 위화감이 들었다·
‘정말 이 사람이 나메가 맞나?’
원인 모를 감정 때문에 검을 쥔 에미카의 손에 힘이 착 들어갔다·
‘아니야 언제나 차분하게· 언제나 침착하게 배운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그녀는 시청자들의 충고를 잊지 않았다·
[노네임님이 스토리 모드 1위인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이 사람 완전 탈인간이거든요? 가상현실에 오래 살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육체의 제약을 아예 안 받는다고 생각하면 편해요·]
[옛날 컴퓨터 게임의 무빙핵··· 아 핵이 뭔지 모르려나? 아무튼 무빙핵은 보고 피하기라도 하는데 노네임은 공격을 미리 다 예상하고 경로까지 읽어버리니까 훨씬 까다롭죠·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못 이길 걸요?]
시청자마다 그녀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나메의 아카데미 대항전 데뷔를 그토록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현실에서 신체수행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가상현실게임도 높은 확률로 잘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은 성립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노네임처럼 천외천의 재능을 보유하고 있으면 분명 다를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전투력 5천이면 에미카의 3년 전 경지와 비슷할 것이다·
그녀는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검에 오러를 밀어 넣었다·
‘온다!’
살기를 품은 나메의 검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동시에 더없이 싸늘한 눈이 스쳐 지나간다·
챙-!
검을 받아낸 에미카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검법이 달라도 에미카에게는 저것이 올바른 검로인지 아닌지 구별해내는 눈쯤은 가지고 있었다·
‘완벽해·’
꼬투리 하나 잡을 수 없을만큼 깔끔한 일격이었다·
검을 배워본 적이 있었나·
안타깝게도 생각을 더 이어나갈 겨를이 없었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뭐?”
튕겨진 검이 또다시 옆구리를 향해 찔러 들어온다·
반사적으로 유연한 손목을 비틀어 검을 아래로 향하여 막는 에미카·
파앙-!
“흐윽!”
바로 그 순간 검로가 기이하게 뒤틀리더니 검이 그녀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전투력이 낮을수록 더더욱 공격을 쉽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
적은 양의 오러가 반토막나며 벌써부터 에미카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나메의 공세가 멈추지 않는다·
“끝까지 집중해! 계속 어깨 내려갈래!”
어깨를 말해놓고선 나메의 검이 이번엔 자신의 무릎을 향했다·
국가교류전에서 당한 트릭에 두 번은 당할 수 없었다·
에미카가 안간힘을 다해 검을 회수하여 무릎을 막으려는 찰나·
콰지지직-!
‘어깨?’
어깨에 내려꽂힌 브로드소드·
그녀의 팔이 처참하게 뭉개지며 체력이 대량으로 까였다·
“분명 무릎이었는데···!”
“미리 말했잖아 어깨라고·”
그녀의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마치 인대가 끊어진 것처럼 팔이 대롱대롱 매달려 그녀의 몸을 따라왔다·
그제서야 에미카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거리를 벌려 다시 간격을 재었다·
“참나 그 기회를 놓쳐? 다시·”
결국 한 팔로는 검의 무게를 전부 감당해낼 수 없었다·
나메가 검에 체중을 담아 내려찍자 그녀의 검이 허공에 빙그르르 돌아 바닥에 떨어졌다·
앞선 경기에서 봐왔던 꼼수 따위는 일절 쓰지 않은 정당한 검과 검의 대련에서
에미카는 완벽하게 패배했다·
[Perfect Game!]
[NoName Win!]
“알 때까지 계속 할 거야· 나는 너희 스승들처럼 친절하지 않으니까·”
똑같은 상황 똑같은 간격·
이번에도 거리를 좁히는 건 나메쪽이었다·
에미카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천년에 한번 나오는 일본 제일의 기재 카츠하타 에미카·
전판의 상황이 그녀의 머릿속에 그리며 앞으로 펼쳐질 공방을 그려나갔다·
‘여기서 전진방어·’
드디어 수평을 맞춘 어깨가 나메의 첫 일격을 가볍게 막아내었다·
고민할 틈도 없이 바로 우상단베기의 자세를 취했다·
나메는 손쉽게 에미카의 검을 튕겨내며 다시금 그녀의 복부를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하체로부터 힘이 폭발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지금이 바로 기회!’
나메의 동작이 너무 컸다·
막거나 피하기만 해도 몸의 빈틈이 크게 노출될 터·
다리에 오러를 실어 거리를 크게 벌렸다가 언제든지 다시 튀어나갈 수 있도록 상체는 앞으로 기울였다·
나메가 바닥에 두 발을 내려놓았을 때가 공격 신호였다·
“뭐해? 여기서 안 멈출 건데?”
“···!”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간질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른발이 바닥에 닿으면 다음은 왼발이 바닥에 닿는게 인간의 기본적인 보법이었다·
그러나 나메는 다시 오른발을 박차고 거리를 벌린 에미카를 향해 한번 더 돌진하였다·
챙-!
“흐업!”
“좋아 그렇게· 계속 간다?”
에미카의 무의식이 나메의 검을 막아냈다·
올려베기·
검도에서는 최대한 지양해야 할 악습관이 저절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나메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에미카가 처음으로 선보인 동작인만큼 이제부터 그녀의 모든 행동은 본능적인 영역의 결과물일 것이다·
나메는 에미카에게 벽 너머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이제 여기를 넘을지 말지는 오로지 네게 달렸어·’
나메의 검이 공기를 찢으며 그녀의 자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들어왔다·
이는 에미카의 수련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왜 수련을 하고 연습을 하는가·
이는 계산의 영역을 본능의 영역까지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하나의 동작을 취하는 이유에는 수십가지 서술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구태여 그런 과정을 번거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챙-!
나메의 검이 도로 튕겨져 나왔다·
‘목숨이 달렸는데 생각은 무슨·’
카가가강-!
두 검이 비스듬하게 맞붙으며 날카로운 소리가 진동했다·
복잡하고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는 대련 속에서 여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때 재밌어?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지?”
두 여성의 얼굴이 지근거리까지 근접했다·
서로의 숨결마저 느껴지는 가까운 거리이다·
“나메 넌 도대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전투보조 시스템이냐고?”
전투보조 시스템은 동작과 동작 사이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에미카의 지적에 여인은 선홍빛 혀를 내밀며 대꾸해주었다·
“안 알려줄 건데·”
* * *
상대전적 9 대 1·
10번째 판에서 드디어 에미카가 나메의 견고한 방어를 뚫고 풍만한 가슴에 검을 박아넣는데 성공했다·
마왕을 물리친 용사처럼 해맑은 웃음을 터뜨린 에미카·
나메가 중간중간 치졸한 수를 써서 도발해보아도 그녀는 계속 히죽히죽 웃기만 하였다·
나메마저 질겁하게 만드는 집착에 그녀가 두 손을 들고 전투력 설정을 바꾸었다·
“그런데 전투력 10만으로 하면 어떻게 돼?”
“사실 그 때부터는 초능력 대전이라 별로 의미는 없어·”
“한번 해볼래·”
“진짜?”
“어? 어···”
갑자기 나메가 설정창을 열었다·
[▶Custom 1 – 해제]
[▶Custom 2 – 장착]
똑같은 얼굴 똑같은 체형 똑같은 의상·
대체 뭐가 달라졌는지 에미카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다른그림찾기를 해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엘프의 긴 귀가 다시 인간의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에는 검은색 뿔 한 쌍이 곱게 자라있었다·
“악마?”
“아니 마왕· 중2면 한창 이런 거 좋아할 나이 아니야 언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집군님 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순애드리프트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나메 사탕비에 보태겠습니다!! 아가나메는 단 거라면 가리지 않고 모두 잘 먹는답니다!!
가짜글쟁이님 77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양아치 나메한테 파르페 상납금을 뜯기셨군요!! 대신 행운이 깃드는 마법을 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망나메에서 마왕나메로 진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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