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7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참가자들의 동작을 예견하여 카메라를 조절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모자이크 처리를 해주는 AI 옵저버·
나메의 돌발적인 자해는 미래예지에 가까운 인공지능의 검열마저 비껴나갔다·
약 1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유리조각이 손바닥에 박히는 장면이 생중계되었다·
모자이크 너머로 보이는 불그스름한 색채가 그녀의 팔을 적신다·
“아니 노나메 학생이···! 지금 자기 팔을···! 팔을 그었어요! 아니 아무리 통각 동기화라고 해도 이건···!”
재빨리 화면이 다른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관중들과 중계진들은 다같이 패닉에 빠졌다·
“지금 또 세피론 운영위원회 측에서 비허가 마법 사용에 대한 항의를 제기하였다고 합니다! 어어··· 이재환 참가자가 ‘레드우드의 결계’에 수면제 성분을 섞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내용인데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저희도 정말 어안이 벙벙한 상태입니다만 만약 사실이라면 알테어 아카데미 중등부의 몰수패는 물론이고 이재환 학생도 큰 징계를 면치 못할 것 같네요· 제발 아니기를 바랍니다 알테어 아카데미···!”
“옵저버가 지금 노나메 학생이 흘린 피를 비추고 있습니다· 경기 중단을 해야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적지 않은 양으로 보입니다·”
“조직재생 마법으로 상처를 회복하는 노나메 학생···! 아 완벽한 시전입니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대련장에 남아있는 참가자들의 강력한 경기속행 의사로 성분분석은 일단 보류되었다·
하지만 마도사 출신의 중계진들은 마음 한 켠에 남은 찝찝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마나 파장 스크린에는 잘 잡히지는 않지만 저희가 현장에서 느끼는 바로는 바닥에 흘린 피에 미약한 마나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노나메 학생은 히에로니무스 처치법을 행동에 옮긴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히에로니무스 처치법이요?”
“예· 신경계를 간섭하는 마법에 직격당했을 때 마나를 피에 녹여 배출하는 방법입니다· 사실 웬만한 신경계 간섭 마법은 한 시간 정도면 침샘이나 땀샘으로 저절로 배출이 되지만··· 당장 경기를 강행하려면 마냥 기다릴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히에로니무스 요법은 특전사들이나 배우는 응급처치법인데··· 대체 노나메 학생이 어떻게 알고 했는지 모든 게 의문투성이네요!”
종이에 베이거나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이었을 터·
피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대련장을 빠져나와 숨을 골랐고 몇몇 학부모들은 경악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면 알테어 아카데미는 이미 초상집의 분위기였다·
특히나 이미 경기를 치른 후배들과 앞으로 고등부 경기가 남은 선배들이 그러하였다·
‘3학년들이 진다고? 그것도 8살 꼬마아이한테?’
전승의 기적을 펼쳐온 알테어의 4인방이 겨우 한 소녀에게 전멸당했다·
알테어의 인재들을 세계에 퍼뜨릴 대회가 겨우 노나메라는 이름 석자를 알리기 위한 장소로 변했다·
“아무리 천재라지만 이건···”
나메가 가상현실에서 수많은 이론마법 지식을 접해보았다 한들 그녀가 캡슐에서 구출되어 실제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건 겨우 16개월 전이다·
“말이 안 되잖아···”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행보에 등골이 싸늘해진다·
참가자들은 분명 전력을 다했다· 아니 전력을 다하는 걸 넘어서 그들의 한계마저 깨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미 중등부에서도 악랄하기로 정평이 난 이재환과 조수연의 3서클 마법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한 출력으로 시전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승리를 예상했다· 오히려 나메의 안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욱 컸을 정도·
그런데 결과가 어떠한가?
아직 나메의 방벽은 절반이나 넘게 남아있다·
“그때 내가 잘못 봤던 게 아니었어··· 저런 건 본다고 해서 따라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야·”
알테어 아카데미의 신연호가 돌연 자리를 떠나며 읊조렸다·
이미 그는 알테어 측의 패배를 직감했다·
세상에는 가끔 불가해의 존재가 하나씩 튀어나온다·
그리고 알테어 아카데미는 그저 천재지변을 만났을 뿐이라고 속으로 낙담하고 있었을 때·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터지며 대련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뭐야!”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신연호·
나메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나며 순식간에 대련장의 구석까지 내몰렸다·
휘몰아치는 모래폭풍 속에서 삼각형을 이룬 3개의 마법진이 그녀를 겨냥했다·
[합동시전: 상대습도 조정]
[합동시전: 난기류]
[시전: 증기운 폭발]
격렬한 전투 속에서 깨진 안경을 벗어던진 오덕재는 압도적인 마나량으로 마법진의 대원을 그렸다·
복잡한 방정식을 회로술식으로 구현하고 찰나의 순간에 계산을 끝마쳐 계를 고정시킨다·
더 많은 변수 설정으로 마법진이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그의 팔다리에 구불구불한 혈관이 볼록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꿋꿋이 룬문자를 하나씩 채워나가더니 끝끝내 오덕재는 ‘합동시전’의 진수를 완성시켜보였다·
고온다습한 영역에서 태어난 작은 바람이 불씨를 머금고 몸집을 불려나간다·
순식간에 하늘을 뚫을 듯한 거대한 크기로 자란 토네이도가 맹렬한 기세로 나메에게 쏘아졌다·
“아니 무슨 아카데미생이 트리플 캐스팅을···!”
신연호가 넋을 잃고 소리쳤다·
“나메야! 이건 너무 위험해!”
“버티려고 하면 안 돼! 빨리 도망쳐!”
관객석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나메를 찾았다·
건장한 성인 남성도 충격파로 넘어뜨려버릴 강대한 마력이 피부로 느껴졌다·
20킬로도 되지 않은 가벼운 몸무게라면 아무리 오러로 본인의 몸무게를 늘려보려고 해도 분명 하늘 위로 솟구쳐 날아가버리리라·
“나메야 이제 그만하면 됐다! 노나메!”
목청이 터져라 소리치는 천교수의 얼굴이 경련하듯 떨렸다·
이제껏 중등부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선보이지 못한 ‘트리플 캐스팅’의 등장에 아카데미 대항전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 * *
모든 걸 불태울 기세로 휘몰아치는 화염 토네이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트리플 캐스팅···’
더블 캐스팅은 노력의 영역이다·
한 손으로 네모를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세모를 그리는 연습을 극한으로 응용한 것이 더블 캐스팅이다·
하지만 트리플 캐스팅은?
엄지로는 네모를 검지로는 세모를 중지로는 동그라미를 그리는 수준이라고 비유하면 될 것이다·
뜨거운 열풍이 다가온다·
“결계마법에 이상한 장난을 쳤던 선배들에 비하면 훨씬 멋있는데요!”
환희 가득한 목소리로 칭찬을 건넸다·
바람소리에 묻혀 내 말이 저쪽까지 전해졌으려나 모르겠네·
이제는 내가 대응할 차례이다·
오랜만에 써보는 파훼술식이었지만 왜인지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가장 먼저 가연성의 혼합가스를 분리시킨다·
폭발의 충격파는 1atm 미만으로 위압감에 비해 그리 강하지는 않다·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마나 덩어리에 손을 집어넣어 마류의 병목 지점을 찾아냈다·
‘지금!’
[파훼: 증기운 폭발]
콰과광-!
토네이도가 안에서 폭발하며 세갈래로 갈라졌다·
하지만 전보다 맹렬한 불길이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지체할 것 없이 그 다음은 난기류를 정상화 시키는 파훼술식을 작성해야 한다·
현재 난기류의 강도는 3단계 시비어(severe)·
난류확산항과 레이놀즈 수를 정상값으로 조절하고 운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변환시킴으로써 유체의 속도를 늦춘다·
[파훼: 난기류]
마지막으로 상대습도 조절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지·
두 번째 파훼술식에서 얻은 열에너지를 활용해 온도를 높임으로써 포화 수증기량을 강제로 높인다·
[파훼: 상대습도 조정]
3개의 회로술식을 다시 압축시켜 화살촉의 형태로 빚어냈다·
그 순간 두 갈래의 토네이도가 바로 앞까지 들이닥쳤다·
콰아아아아앙-!
몸을 날려 폭파지점을 피하고 대련장 외벽을 따라 있는 힘껏 달렸다·
뿔 한쪽을 희생해 나온 여분의 오러를 두 다리에 집중했다·
다리가 짧은만큼 더욱 힘차게 발을 굴려야 했다·
덕분에 달릴 때 웃긴 모양새가 나오겠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에 젖어들 여유가 전혀 없었다·
[시전: 단조]
격렬히 달리는 도중에 콘크리트 외벽에서 활 모양의 무기를 뽑아들었다·
활의 양단에 아라베스크의 실을 엮어 활시위를 만든다·
화살촉에는 방금 전 생성한 파훼술식의 응집체를 각인시켰다·
촤아아악-
무릎을 피고 자세를 낮추어 순식간에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내가 달렸던 방향으로 휘날린다·
팔을 쭉 뻗고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겨 내 볼살에 조정시킨다·
숨을 흡 들이키고 한쪽 눈을 감는다·
‘조준··· 그리고 발사·’
쉬이이이익-!
손가락을 놓는 순간 화살은 활시위를 떠났다·
하늘에 뜬 달처럼 빙빙 돌아가는 삼각형의 합동시전 마법진 정중앙에 화살이 턱하니 박혔다·
[합동시전 파훼: 증기운 폭발 – 난기류 – 상대습도 조정]
쨍그랑-!
마법진이 깨지고 시전되지 않은 마나가 폭포수처럼 흘렀다·
만족스러운 결과에 나는 활을 허공에 던져버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아슬아슬했어요· 트리플 캐스팅이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네요·”
슬쩍 던진 말에 오덕재는 담담한 어투로 대꾸했다·
“나메야 아까 우리 아카데미 친구들 말인데· 진짜 누가 누구보고 오타쿠라는지··· 정말 웃기지 않았어?”
“네? 아 뭐 살짝·”
“아카데미에서는 가르친 적도 없는 마법을 대항전에서 자랑스럽게 쓰고 있지· 또 자기네들 인맥빨로 남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신성마법 결계마법을 배워놓고선 온갖 이상한 이름을 붙여대지 않나· 그러면서 자기네들이 천재라고 떠드는 게 정말 꼴이 웃겨서 말이야·”
“그런가요·”
“그깟 계산 좀 빨리 할 줄 아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 그런데 아카데미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모두 천재라고 불러· 난 인정할 수 없지만·”
“그럼 선배가 생각하는 천재의 정의는 뭔데요?”
“평생토록 좋아하는 것·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사랑에 빠져야지만 난 그 사람을 천재라고 생각해· 사랑한다는 감정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니까· 아 오해는 하지마· 생긴 건 이래보여도 나 일본 애니 안 좋아하니까· 아이돌도 마찬가지고·”
그건 조금 의외인데·
“그럼 선배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세요?”
“응· 난 마법이 좋아· 남들보다 앞서가지는 않아도 딱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마법 하나만 보고 살 수 있을 것 같거든· 너는 어때 노나메? 넌 정말 마법이 좋아서 이 길을 걷고 있는 거야?”
“저는 선배와 좀 다르게 생각해요· 남들보다 앞서갔으면 좋겠고 누가 절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마법이 좋아요· 이거 하나만큼은 진심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역시 너라면 다를 줄 알았어· 진짜 천재구나?”
“시간이 없으니 잡설은 여기까지만 하죠· 아··· 그럼 선배는 이런 마법들을 전부 어디서 배운 거죠?”
트리플 캐스팅을 제쳐놓고서라도 그의 마법진 하나하나는 정석적이었으며 완전무결했다·
내 질문에 그는 뭘 그런걸 다 묻느냐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당연히 교과서에서 배웠지· 백번씩 읽다보면 스스로 깨닫는 게 하나씩은 나오거든·”
마력을 끌어올리는 오덕재· 어떻게 생겨먹은 오러하트인지 솟구치는 마나가 심상치 않았다·
광기어린 눈빛을 쓸어내며 나도 마지막 남은 오러를 이번 공격에 전부 쏟아내기로 결심했다·
이런 영특한 아이를 위해 맛보기 정도로만 보여주는 건 괜찮겠지·
황금색 오러를 손에 꽉 쥐어 담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의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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