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5
시스티나 경당에 걸린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감상하듯 사람들은 다같이 고개를 뒤로 젖혀 텅 비어버린 유령도시를 눈에 담아냈다·
상공 수백 미터까지 날아오르는 독수리의 시점에서 본 도시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고 때로는 미니어처 같기도 하였다·
환상적인 풍경을 본 사람들은 웃는 자와 웃지 못하는 자로 나뉘었다·
“너무 예쁘다···”
“여긴 어디일까? 로마? 피렌체?”
“사진 찍어놨다가 나중에 찾아보자!”
이면의 세상을 보여주는 얼음 거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증기로 승화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가 어린이들의 뺨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들은 꺄르르 웃으며 마법의 신비로움을 몸소 체험했다·
하지만 김석일 라온 부클랜장만큼은 다른 사람들과 웃음을 함께 나눌 수 없었다·
“7년··· 7년 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갱년기가 일찍 온 탓일까·
중년 남성의 얼굴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나온다·
“그 좁은 캡슐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분명 이런 넓은 세계에서 뛰놀고 싶었겠지···”
데카르트의 세계관 이론에 따르면 심상세계의 확장은 기본적으로 내면의 고독을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차라리 처음부터 타인의 존재에 대해 몰랐던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타인이 존재함에도 그들과 끝끝내 교감할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은 분명 나메를 저 깊은 내면으로 이끌어냈을 것이다·
“하물며 같은 7년도 아니야·”
겨우 7년만에 이런 넓은 세계를 구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서번트 신드롬 환자들처럼 아마 그녀의 시간은 남들보다 느리게 흘러갔을 터·
체감상 10년 20년을 갇혀 지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석일은 얼음거울이 사라질 때까지 말문을 잇지 못하고 나메를 서글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나메가 우리 클랜에 도움이 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클랜보다는 사람이 먼저인데·’
김석일은 사람을 그동안 경제적인 관점에서의 자원으로만 바라본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감정을 가지고 자기주체성을 가진 존재이다·
따라서 라온 클랜과 미래에 아무런 연관이 없더라도 그녀의 앞길을 지지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게 인간 김석일이 굳힌 결심이었다·
극은 계속되었다·
[사실 대마법사 로잘린에게는 마녀가 내린 무시무시한 저주가 있었어요· 바로 마법을 쓰면 쓸수록 어려진다는 것이었죠·]
“뭐? 내가?”
“노나메 빨리!”
“으··· 응애?”
“더 크게!”
“아이 씨··· 응애!”
[마나를 모두 사용한 로잘린은 한 살 아기로 어려져 로미오와의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로잘린을 딸로 입양해서 다같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후아!]
5시 45분·
나메가 만들어낸 뜻밖의 마법 감상 타임 때문에 연극은 15분이나 연장되었다·
시간의 압박에 쫓긴 내레이터는 급하게 이야기를 지어내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결말을 만들어냈다·
“브라보!”
김석일은 진심을 담은 기립박수를 치고 청중들이 이에 호응하듯 휘파람을 불었다·
내레이터는 어지간히 목이 탔는지 500ml 생수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준 라온 클랜원들이 다같이 나와서 마무리 인사를 건넨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박수소리가 한참동안 이어진다·
“으음?”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 김석일이 제자리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마지막까지 박수를 끝맺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천규진 교수였다·
“아니···! 나메 아버님 아니십니까! 여기 계신지도 모르고 제가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김석일의 허리가 90도로 굽어졌다·
천교수가 손사래를 치며 굽신거리는 김석일을 일으켜 세웠다·
“아유 괜찮습니다· 나메의 고집을 들어준 라온 클랜이야말로 정말 감사드리죠·”
“혹시 이따가 따님 앉으실 자리는 있으신지요? 뭣하면 제 자리라도 내어드릴 테니·”
“아아 필요 없습니다· 나메는 다음 연극에도 나온다니까·”
“예? 그게 무슨···?”
“헨젤과 그레텔 말입니다·”
“아니 나메가 창천남궁 놈들 시연에? 어째서···?”
방금 전 김석일이 굳게 다짐한 내용이 조금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래 뭐 애가 그럴 수도 있지··· 굳이 우리 클랜의 이해득실과 연관 짓지 말자·’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기분이라 영 찜찜했다·
“나메가 한동안 마법이 고팠나본데 이렇게 클랜 측에서 흔쾌히 비용을 지불해주시니 너무 고마워서 제가 나중에 밥이라도 한번 사겠습니다·”
“아 밥···! 네네 좋죠! 언제든지 불러만 주신다면 찾아뵙겠습니다! 겨우 몇천만 원 푼돈으로 자라나는 새싹의 밑거름을 만들어주는··· 이보다도 보람찬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허허!”
“라온 클랜장께서 통이 정말 크시군요·”
“하하 전 아직 직무대행일 뿐입니다· 말씀만은 감사드립니다만·”
천규진과의 독대 오찬의 기회를 날리면 안 된다는 욕망에 휩싸인 김석일은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그래 그깟 애들 연극이 뭐라고! 이런 기회는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게 아니지!’
그때였다·
띠링-!
한국마력공사측에서 직통으로 날아온 문자·
내용을 확인한 김석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한국마력공사에서 (특수목적마법지원합동사무소-클랜)라온님께 청구서를 발송하였습니다· 결제기한 내 납부 부탁드립니다·
청구목적: 광역 중위서클(5) -glacies imago- 마법 시전
청구금액: 208439100원(전체: 240993100원)
결제기한: 2051/12/31
청구금액 32554000원은 ㈜■■물산에서 대리납부되었습니다·
청구 내역에 대한 문의는 청구업체로 연락바랍니다· +더보기]
“2··· 2억! 무슨 5서클이!”
목에 핏대를 세운 김석일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허허·”
천교수가 인심 좋은 미소를 보였다·
천하에 둘도 없는 부녀사기단이 악마처럼 느껴지는 것은 절대로 기분 탓이 아니리라·
* * *
한달(漢達)과 구래달(仇萊達)이 검은 도복을 너풀거리며 마녀에게 쫓기고 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무대라는 공간상의 제약 때문에 내 주위를 빙빙 도는 느낌이다·
세 사람의 과실을 면밀하게 따져보았다·
남매는 주거침입죄와 손괴죄를 저질렀고 마녀는 이에 감금치상 특수협박으로 응수했으며 남매는 다시 마녀를 화계마도로 불태워버리는 살인미수를 저질렀다·
만약 재판을 하게 된다면 마지막을 과연 정당방위로 볼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겠지·
물론 이 연극 속 세상에서 올바른 재판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붉은 뿔이 달린 어여쁜 오리여! 어서 우리를 저 강 건너편으로 데려다주게!”
“식인을 즐기는 무서운 구음마녀가 우릴 쫓아오고 있단 말일세! 이젠 체력이 정말 바닥일세!”
한달··· 아니 헨젤과 그레텔을 협행에 나선 후기지수들의 좌충우돌 대탈출 스토리로 각색해버린 극은 나조차도 지켜보고 있기 버거웠다·
내레이션 언니는 아예 해설을 포기한 듯 일찌감치 마이크를 내려놓았고 창천남궁 클랜원들은 후배들의 재롱에 낄낄대며 웃었다·
그래도 인기는 꽤 좋았다·
아크로바틱한 장면들이 자주 연출되었기 때문에 어린 초등학생 친구들이 열렬한 호응을 보내줬기 때문이다·
대충 마음을 굳혔다·
노란색 오리 잠옷의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불편한 오리 신발을 질질 끌고 그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뾱뾱뾱뾱-!
오리발에서 뽀짝뽀짝거리는 괴악한 소리가 나오면서 군중들의 이목을 단숨에 끌었다·
그리고 바닥에 대자로 엎드렸다·
“절 밟고 가세요·”
강 건너는 걸 도와줘야 하긴 하는데 또 그냥 보내주기는 싫었다·
옛날에 나를 토벌하려고 든 어린 귀족들이 생각났으므로·
어차피 아까의 마법으로 마나도 다 떨어진 참이라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뭐 자신 있으면 경공술이라도 펼쳐 보시든가·
* * *
[노나메: 나 상 받음·]
[아델라: 바빠·]
[노나메: 이것만 봐봐·]
[아델라: ?]
[노나메: (사진을 보냈습니다·)]
[노나메: 인기배역상 트로피야· 귀엽지?]
“하아암· 끄으으으윽···”
간간이 몰려오는 졸음을 하품으로 내쫓으며 폰을 붙들고 늘어졌다·
매직 드림 컨테스트의 단체상은 귀한 절경을 보여준 라온 클랜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결이네 큰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더라·
사람이 사소한 것에도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른이 되면 동심을 잃어버리나보다·
인기배역상은 관객들의 엄중한 투표를 거쳐 결승전에서는 ‘로잘린 vs 오리’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어째서 오리가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로잘린이 345표 오리가 155표를 받으며 최종 승리는 로잘린이 가져갔다·
그래서 받은 금빛 트로피가 바로 이 네버랜드 마스코트 ‘쀽뺙이’이다·
‘아· 그냥 어린 애들이 단순히 오리를 좋아하는건가? 생각해보니 네버랜드 마스코트도 오리네·’
컨테스트가 끝나고도 관중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마왕의 뿔을 홍보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최대주주로서의 몫을 다 했다고 판단하고 슬슬 집으로 이동했다·
천교수는 이미 한참 전에 곯아떨어진 상황·
자율주행모드로 운전대가 열심히 혼자서 슥슥 돌아가고 있다·
너무 심심했던 나머지 아델라에게 계속 톡을 걸어보는데 이 녀석은 통 연락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음?”
[그룹채팅: 「고독한 나메방」 #노나메 #고독한 #짤 #고독한노나메방 #잡담X]
[1487/1500명 | 개설일 2051· 7· 23·]
실시간 검색어에 뜨는 거대한 규모의 채팅방·
나는 홀린 듯이 그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뭔데 한 방에 사람들이 1500명씩이나 있는 거지?
세피론 아카데미 초등부가 500명이 채 안 되는데 1500명이면 그 3배 규모이다·
[노나메님이 들어왔습니다·]
[공지사항: 1· 대화 금지(텍스트콘 허용)
2· 입장 시 인사 대신 나메짤 2개 올려주세요·
3· 노나메(노네임) 사진 움짤 동영상만 가능 (묶어보내기 권장)
4· 나메는 사랑입니다·
규칙을 어기면 예고없이 강퇴될 수 있습니다·]
귀여운 문체로 쓴 공지사항이 날 반겨준다·
텍스트를 써볼까 하다가 글이 마음에 걸려 손가락을 멈칫했다·
채팅방 참가자 목록을 둘러보니 내 이름을 사용한 인원만 자그마치 수백 명이었다·
“뭐야?”
갑자기 띠링하고 울리는 알림음·
(노나메 네버랜드 오리 코스튬·jpg)
(따봉나메·jpg)
(코피나메·jpg)
(나메가 높이 평가·jpg)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5분이 지나가자 방의 개설 목적과 문화를 알아갈 수 있었다·
“입장 시 짤 2개를 올려달라고? 난 그런 거 없는데·”
초상권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내가 그 사진들을 일일이 저장하지는 않았다·
잠깐 앞좌석과 뒷좌석을 나누는 커튼을 치고 조명을 켰다·
[카메라]
셀카·
이번생은 고사하고 전생은 당연하고 전전생에서도 입시원서를 넣을 때 말고는 스스로 찍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듣기로는 45도 각도가 잘 나온다고 했는데 팔을 쭉 뻗어서 올려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조명 때문인지 창백한 피부와 살짝 초췌한 인상이 합쳐져 남들에게 보여지기 썩 좋지 않은 모습 같았다·
그래도 이 부끄러운 짓거리를 세네 번 더 하느니 그것도 귀찮아서 그냥 대충 전송 버튼을 눌렀다·
(사진1·jpg)
(사진2·jpg)
“흠···”
두번째 사진은 특별히 인기배역상 트로피와 함께 찍었다·
딥페이크니 뭐니 하도 그런 기술이 발달한지라 나도 나를 증명해줄 수단 하나쯤은 필요했기 때문이다·
“뭐야 별 반응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폰을 던진 순간 격렬한 진동음이 울리며 시트를 울렸다·
[읽지 않은 메시지: 135]
깜짝 놀라 다시 폰을 켜서 그룹채팅방에 들어가본다·
(헉나메·jpg)
(이왜진나메·jpg)
(나메(о゚д゚о)나메·jpg)
(뿔난나메·jpg)
(너 대체 누구야 나메·jpg)
(안녕하세요나메·jpg)
(음하하나메·jpg)
(짤줍줍나메·jpg)
(감사하나메·jpg)
(엘사나메·jpg)
(렛잇고나메·jpg)
“오우···”
세상은 정말 넓고 신기한 사람들은 많다는 게 정말 실감이 났다·
[노나메: 안녕하세요·]
그래도 내 사진 하나로 1500명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게 썩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아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과 일방향적인 잡담을 나눴다·
다행히 강퇴는 안 하더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LevLucy님 3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300화 축하 정말 감사드려요!! 나메티콘3도 언젠가는 꼭 출시해보겠습니다!! 대신 답례로 내일인가 모레쯤 마나인방 여러가지 표지 시안 중 선택하지 않은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늘 하나를 받아봤는데 아델라와 나메가 엄청나게 귀염뽀짝헉헉 하더라고요 ㅎㅎ··!!
아무것도 안 해도 인기뿜뿜한 ‘킹리’!! 글라키스 이마고로 전생 세계라도 안 보여줬으면 오리가 우승할 뻔 했네요··!!
고독방에 나타난 병약미소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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