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2
편집자 서마루의 하루는 오후 2시에 시작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났던 시절과 비교하면 밤낮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최근 ‘NoName Official’의 업로드 주기가 절반으로 줄었다· 다시말해 작업량이 두배로 늘어났다·
최근 2~30대 여성 시청자층이 대거 유입되면서 게임뿐만 아니라 나메의 브이로그 수요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서마루는 새벽동안 밀린 영상편집 및 썸네일 작업을 전부 끝마치고 상쾌한 하루를 맞이했다·
거실로 미적미적 기어나와 브이튜브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나태지옥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그를 감옥에서 꺼내준 건 서유나였다·
“오빠 저녁 먹어!”
“점심 먹으라고?”
“차라리 아침이라고 하지 그래?”
시간은 어느덧 오후 일곱 시·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텔레비전에서는 UFC 방송이 한창 중계되고 있었다·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노나메님! 혹시 저 기억하세요? 저희 그때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봤잖아요!]
“어? 노나메?”
서마루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하고 핸드폰을 손에서 놓쳐버렸다·
그의 귀는 멀쩡했다·
UFC VIP석에서 팬들에게 싸인을 휘갈기는 소녀 틀림없는 노나메였다·
“쟤가 왜 저기 있어!”
핸드폰을 다급하게 찾는 손 나메의 이름을 찾아내고는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서마루: 야 너 UFC 직관 갔어? 아니 내 말은··· 너 원래 이런 거 좋아했냐?]
답장은 끝끝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답장이 없더라도 나메의 근황은 중계방송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흑심인지 뭔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카메라맨이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나메의 반응을 계속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1라운드가 끝납니다! 아아 진짜 위험했습니다! 대단한 싸움이네요!]
[한번에 끝날 수도 있었거든요! 서종찬 선수 어린 팬의 열렬한 응원이 들렸던 건가요! 아아 따봉을 날려주는 모습!]
[노나메 학생이 있는 쪽인 것 같습니다만··· 마침 카메라맨이 얼굴을 비춰줍니다! 아하하하 나메가 기립박수와 함께 환호를 보내주고 있네요! 이러면 힘이 나죠! 서종찬 선수 네 할 수 있습니다!]
* * *
1분이라는 짧은 휴식시간 동안에도 카메라는 최대한 많은 장면을 화면에 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팬들의 기립박수 선수들의 몸 상태 등등·
1라운드가 끝나자 나메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위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주위에서 지켜보는 팬들이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양 선수간의 테크니컬한 싸움이 벌어진 2라운드가 끝나고 또 다시 그녀가 화면에 잡혔다·
나메는 어느새 신발까지 벗고 의자 위로 올라가 있었다·
자칫 눈살이 찌푸려질 수도 있는 광경이었겠지만 다행히도 키가 워낙 작아서 뒷사람의 시야를 가리지는 않았다·
트윈테일 머리를 양손으로 질끈 쥔 나메는 경기에 완전히 몰입한 듯 싶었다·
이윽고 그녀는 선수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독순술에 일가견이 있던 캐스터가 그녀의 입모양을 읽어냈다·
“아프지 아우터? 아 카프킥 카운터! 카프킥 카운터를 조심하라 뭐 대충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걸까요?”
“하하하하 아이가 격투기를 하루이틀 본 게 아닌가 봅니다! 2라운드에서 서종찬 선수가 카프킥으로 재미를 많이 봤지만 자카에프 선수도 이쯤되면 카운터 기회를 엿보고 있었겠죠· 과연 서로 어떻게 대처할지·”
“지금 바로 3라운드가 시작됩니다!”
3라운드는 모든 관객들이 눈치챌 정도로 옥타곤 경기장 안의 기류가 바뀌었다·
서종찬과 자카에프는 서로 강력한 한방을 노리기 위해 탐색전을 노리고 있었다·
서종찬의 브라질리언 킥은 회피로 일관했던 자카에프였지만 유독 카프킥에는 카운터 콤비네이션으로 응수했다·
‘이거다!’
서종찬의 예리한 눈이 번뜩였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짧은 시간에 똑같은 기술을 쓰면 똑같은 대처가 나올 것이라고·
그는 스탠스를 바꾸고 무게를 싣지 않은 로우킥으로 일부러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매서운 속도로 자카에프의 오른쪽 어깨가 팽팽하게 당겨진다·
‘지금!’
코끝을 스친 주먹을 뜬눈으로 확인한 서종찬이 라이트 훅으로 자카에프의 턱에 적중시켰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절정으로 치닫는 경기 관객들의 함성소리가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다·
이와 동시에 나메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결과가 정해진 경기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듯 환희에 찬 표정은 어느새 태연한 무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 * *
누군가가 생각하기에는 짜릿한 KO 역전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자카에프의 뒤돌려차기를 버텨낸 맷집으로 이미 서종찬 선수의 승리 가능성을 엿보았다·
그럼에도 100%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가혹한 승부의 세계가 바로 UFC였기에 내가 판단한 게 그대로 들어맞았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애써 표정관리를 해야겠지·
서로를 존중하는 선수들의 따뜻한 인터뷰를 찬찬히 관람했다·
이때만큼 가슴이 훈훈해지는 때가 없었다·
선수들이 가족들과 격한 포옹을 나누는 동안 나도 슬슬 짐을 챙겼다·
퇴장하기 직전 자카에프 선수가 반바퀴를 돌아 내 앞을 지나치며 느끼한 윙크를 날려주었다·
“?”
이걸 뭐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서종찬 선수도 카메라를 이끌고 내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스태프들이 손짓으로 이쪽으로 와보라는 시늉을 한다·
“네 저요?”
의문스러운 감정을 품고 난간에 배를 대고 매달렸다·
긴 머리카락이 앞으로 쏠렸다·
“아니 나메야! 내가 나메님 팬인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 응원하러 와줬어요!”
“네? 아 저도 서종찬 선수님 팬이에요···! 오늘 경기 정말 잘 봤습니다·”
“진짜요? 제 와이프가 칭찬해주는 것보다 더 기쁜 걸요? 와하하하핳! 어흑!”
서종찬 선수는 목청 높여 웃다가 1라운드에서 바디샷을 맞은 곳에 고통을 호소했다·
“이거 라이브에요?”
“당연히 그럼 라이브지!”
“아하···”
진짜 괜찮은 건가?
광고 계약조건에 품위유지 조항이 있긴 했지만 UFC 직관 정도는 정상참작이 아닐까 내적갈등이 짧게 일어났다· 불법도 아닌데 뭐 어때·
“코치님들한테 전해 들었거든요· 나메가 막 카프킥 카운터 조심하라고 계속 소리질렀다고·”
“그거야 뭐··· 뻔하잖아요·”
“내가 너무 뻔하게 경기 운영을 했었나? 아하하 농담이고 응원하러 와줘서 고마워요· 사실 이 경기 지면 은퇴할까도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어린 팬이 와줘서 아 끝까지 계속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기회되면 우리 체육관도 꼭 한번 놀러와주고!”
“브이튜브 각 때문에요?”
“헉 어떻게 알았지!”
“왜 벌써부터 노후대비 생각을 하시고 그래요? 아직 팔팔하신데 조금 더 열심히 해봐요·”
내가 응원하는 선수가 도리어 내 팬인 상황이 신기하기만 했다·
‘한국인이라면 제발 서종찬 좀 응원합시다’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국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선수인데 말이다·
“그럼 은퇴는 안 하신다니까 제가 하고싶은 말 다 해도 되죠?”
“네네! 귀여운 아가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1라운드부터 기선제압한답시고 체력을 너무 많이 빼셨잖아요· 홈그라운드라고 의욕만 앞섰다가 졌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리고 자카에프 선수 카운터 습관을 캐치하신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로기 훼이크 체크 확실히 안 된 상태에서 무턱대고 달려들다가 카운터라도 맞았으면 그대로 판정패 당할 수도 있었던 거 아시죠? 차라리 평소에 하시던 원투 스트레이트로 반응속도 간보다가 가드 빈 곳만 찾아서 때리고 그래도 버티면 테이크다운으로 파운딩 꽂았으면 제일 확실했는데·”
“그··· 그만! 이러면 내가 진 것 같잖아!”
“어쨌든 꼭 챔피언이 되는 그날까지 응원할게요· 모든 노력이 결실을 맺어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야 이거 완전 병 주고 약 주고네! 어후 이게 대항전 우승자? 무섭다 무서워···”
서종찬 선수와의 대화는 여기서 끝맺었다·
스태프들의 재촉으로 말을 더 못 나눈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한 분야의 정점에 있는 사람은 역시 깊이부터가 다르다·
이 짧은 15분의 전투를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들였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오러를 사용할 수 있기에 오러를 배제하는 훈련은 몇 배로 고통스러워진다·
두 손으로 충분히 들 수 있는 무게를 한 손으로만 들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런 고통을 인내하고 또 도전하는 자만이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거겠지·
‘그럼 나는 대체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거지?’
그런 공허하고 씁쓸한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던 날이었다·
* * *
살면서 리무진을 타보는 날도 오네·
소파처럼 되어 있는 시트에 편히 누워 저번 주 경기 영상 하이라이트를 쭉 시청했다·
[V-Tube Clip]
[서종찬 선수에게 훈수 두는 노나메][조회수: 1605049회]
[베스트 댓글]
-(서종찬TV):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노나메? 백호체육관으로 따라와 한판 붙자!(좋아요: 3·5천)
└ 형님··· 애 상대로 너무 추합니다···
└ 자카에프 멋지게 이겨놓고 꼭 이렇게 추해져야만 했냐?
└ 32살 vs 8살 가슴이 옹졸해지네요ㅋㅋㅋㅋㅋ
-내가 누구? 노나메와 같은 UFC 시청자·(좋아요: 4·8천)
└ 캬 어떻게 8살 소녀 취미가 UFCㅋㅋㅋㅋㅋㅋ
└ 심지어 격잘알인 게 ㅈㄴ 웃김ㅋㅋ
-나메의 산타복이 빨간색인 이유는 순록들의 피가 묻은 걸 숨기기 위함이다·(좋아요: 2·6천)
└ 루돌프랑 스파링 떴네·
└ 스파링ㅋㅋㅋㅋㅋ
└ 애를 무슨 사이코패스로 만들어버리냐ㅋㅋㅋㅋ
└ 근데 노나메 쫑알대는 거 진짜 귀여움 치사량 초과라고···
[노나메 콜라보 스킨케어세트 구입한 자카에프][조회수: 639226회]
“또한 오늘 아름다운 경기를 관람하러 온 노나메에게 따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트래쉬 토크의 일부였어도 그녀에게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고 혹시나 그 과정에서 아이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까봐 정말 우려된다· And I also 나메 좋아· 그래서 모던 아울렛에서 노나메 콜라보레이션 화장품 잔뜩 구매했다·”
[베스트 댓글]
-얘는 대가리 돌아갔냐? (좋아요: 2·3천)
└ 아직도 그로기 상태네ㅋㅋㅋㅋㅋ (좋아요: 1·8천)
└ 불곰국 형님 제발 정신 좀 차리십쇼ㅠㅠㅠㅠ
“핳· 귀엽네·”
“나메방장님 많이 바빠? 어제 광고주분들로부터 연락이 와서 지금 말해줄까 하는데·”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5번 매니저 이보름은 방송 초창기부터 내 스케줄 관리를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내년이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주제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내 시종 노릇을 자처했다·
이게 바로 도둑맞은 ‘을’이라는 걸까·
재벌들은 이마저도 즐기는 모양이다·
“뭔데?”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벌써 연락이 오다니·
예상이야 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모던 아울렛에선 UFC를 직관하러 가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상의 튀는 행동은 조금만 자제해달래· 나메 행동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네티즌들이 기묘한 합성짤을 만들어내는 게 곤란하다는 입장이라네?”
“뭐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나한테 하는 말은 아니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네·”
“엄··· 그렇게 해석이 되나?”
“응·”
“아 글구 좋은 소식도 있음! 나이키는 스포츠웨어 매출이 더욱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인센티브 지급을 고려한다는 거 있지?”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반응이 이렇게나 천차만별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결국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하면 된다·
커튼을 걷어 바깥의 서울 시내 풍경을 확인한다·
목적지는 서종찬 백호 체육관·
서종찬 선수는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내게 합방을 제안했다·
덩달아 체육관 홍보 광고라는 명목으로 적지 않은 금액을 소매넣기까지 당한지라 더욱 이번 방송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그의 열렬한 팬인 입장으로서 거절했었지만···
이렇게라도 정당한 값을 지불해야 나중에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안 나온다는데 거절할 명분이 서지 않았다·
“근데 나까지 데리고 가는 이유가 뭐야? 혼자 가기 심심해서?”
“보름 언니를 데리고 간 이유? 신설된 체육관이라 여성 스파링 상대가 없어서 샌드백 대신 데리고 왔다고 말하면 안 되겠지?”
“뭐··· 뭣?”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전생에서 마도사의 꿈을 접고 검술과 마법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세상이 개막장으로 돌아가서 몸이 열개라도 부족했던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내게 무술을 가르쳐줄 스승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다보면 마법을 못 쓸 때도 있고 검을 놓칠 때도 있는 법이다·
현대 mma 기술을 조금이라도 구사할 줄 알았다면 도움이 된 순간들이 분명 있었겠지·
복싱은 풋워크가 검술과 비슷하고 그나마 팔을 쓰는 거니까 괜찮았지만 주짓수나 레슬링쪽은 아예 문외한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우고 오자·
“그럼 방송 킬게·”
“야 노나메 그게 무슨 말이냐구! 난 일반인이야! 일반인! 박실장님 차 돌려요!”
[NoName]
[Travel&Outdoors – 아픈 건 싫으니까 공격력에 올인하려고 합니다· (서종찬 백호체육관)]
[유료광고포함]
[방송 시간 – 0:00:01]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알빠노혹등고래님 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하루하루가 기대되는 에피소드를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익명의 후원자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나메의 세상은 절대로 환상 같은 게 아닙니다!! 통속의 뇌 꿈 모두 절대로 아니고요!! 진짜 세상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강조드릴게요!!
후추맛프링글스님 22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인생픽이라니 너무 감사합니다··!! 명작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나인방이 독자님들의 기억 속에 평생 남을만한 소설이 되었으면 합니다!!
혹시 까먹으셨을 것 같은 분들을 위해··!! 이보름=고양이교미가제일좋아 이하루의 9살 터울 언니이기도 합니다·
유나네 가족도 대출을 받아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아직 대출금을 갚을 게 태산이라 나메한테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지만요·
인생픽 22위 감사드립니다!! 인생픽 22위 감사드립니다!!
나메의 근본 컨텐츠 중 하나인 도장깨기가 나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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