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3
“힝 나 살면서 운동 한번도 안 해봤는데···”
이보름이 위축된 어조로 내 귀에 대고 소곤댔다·
귀에 들어간 바람이 간지러워서 머리를 부르르 털었다·
앞장서서 안내를 해주던 서종찬 선수가 뒤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때가 있잖아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거 없어요·”
“앗 들렸어요?”
“그리고 여기 오시는 회원님들 모두 목표가 달라요· 누구는 프로 선수를 목적으로 누구는 다이어트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하시죠· 목적지는 다르지만 다함께 으쌰으쌰 훈련하다보면 막 없던 의지도 샘솟고 그럴걸요?”
“보름 언니같은 히키코모리한테 딱이네요·”
“그렇지! 운동을 하면 사회성도 좋아지니까!”
헬스장에서 흔히 보이는 기구들이 설치된 프리웨이트 공간을 가로질렀다·
파란색 매트가 망망대해처럼 깔려있는 메인훈련 공간에서 열댓 명의 남성들이 정자세로 앉아 우리를 반겨주었다·
“백호체육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와아아아아!”
“노나메 귀엽다!”
“나메야 우리의 새로운 관장님이 되어줘!”
사람들의 열렬한 반응에 생방송 시청자들도 웃음으로 채팅창을 도배했다·
-서종찬은 꺼져라! 노나메 환영해!
-한국 UFC 레전드 vs 8살 천재 미소녀면 닥후지ㅋㅋㅋㅋㅋ
-서종찬 월클 다 됐네· 노나메도 만나보고·
-캬 체육관 깔쌈한 것좀 보소·
서종찬 선수가 카메라와 함께 체육관 투어를 할 동안 나는 매트 위에 폭삭 주저앉아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천장에 달린 샌드백이 일정한 주기로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다·
거기에 리듬을 맞추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시간을 보냈다·
“오래 기다렸지! 나메한테 복싱 글러브 맞는 게 없어서 오픈핑거 글러브라도 껴야할 것 같은데 괜찮아?”
나야 오히려 손가락이 밖으로 드러나 있는 게 편하지·
그가 건네준 장갑을 받아 손에 착 껴본다·
약간 헐렁하긴 하지만 찍찍이를 꽉 조이면 괜찮은 수준이다·
“나메는 예전에 운동해본 거 있어?”
“유연성 스트레칭 위주로만 틈틈이 하고 있어요·”
“시청자 여러분들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 나메가 몸이 전체적으로 엄청 말랐어요· 여기 이 손목 얇은 것 좀 보세요· 내가 두 손가락으로 세게 쥐면 뼈가 아작날 것 같다니까?”
-네 이놈! 천만 나메단의 분노가 정녕 두렵지 않더냐!!!
-손가락으로 수박도 부수는데 어린애 손목 쯤이야ㅋㅋㅋㅋ
-아카데미 대항전 대체 어케 이겼음?(진짜모름)
눈에 띄는 채팅을 보고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거랑 대항전은 다르죠· 거기선 몸을 지켜주는 방벽도 있고 무엇보다 본인의 오러를 쓰잖아요· 여러분들이 몸무게로 체급을 나누는 것처럼 오러를 쓰는 것도 체급 같은 거예요· 저같은 숙련자는 굳이 따지자면 헤비급이겠지만·”
-헤비나메 ㄷㄷ
-ㅋㅋㅋㅋㅋ헤비급(19kg)
-근데 따지고보면 다 맞는 말임· 오러 쓰는 인간을 맨몸으로 절대 못 이기지·
-인생 ← 밸런스패치 ㅈ망한 게임인 것 같으면 개추
-난 오러하트 어떻게 다루는지 감도 못 잡겠던데 이럴 거면 대체 왜 달려있는지 모르겠다·
└ 님도 세 번째 다리 평생 쓸 일 없을 텐데 잘만 달려있잖슴·
└ (삭제된 채팅입니다)
└ (삭제된 채팅입니다)
“야야야 나메야! 예전부터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서종찬 선수가 갑자기 손을 휘적이며 채팅창을 가렸다·
“네 어떤거요?”
“저번에 대항전에서도 그렇고 또 언제더라? 한국대학교에서 대련했을 때도· 돌려차기 동작이 엄청 깔끔하던데·”
“아 카이··· 카포에라요?”
“역시 그거 카포에라였구나! 근데 카포에라는 또 언제 배웠대?”
“독학이에요· 대련 특성상 다리를 써야하는 타이밍이 자주 나와서요·”
전생에서 배웠어요 같은 뜬구름 잡는 말보다는 천 배 정도 신빙성 있는 이야기니까·
잡담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원래는 팔굽혀펴기나 플랭크 스쿼트로 몸을 풀지만 나메한테는 너무 고강도 운동이니까 평범하게 준비운동만 하자!”
“우리 방장님은 내가 도와줄게! 헤에헿·”
구석에서 도망갈 기회만을 엿보던 이보름이 슬그머니 내 뒤로 다가왔다·
“뭔 준비운동을 도와줘? 그 정도쯤은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
어디까지나 오러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 체력이나 근력이 꽝일 뿐이지 운동신경만 떼놓고 본다면 꽤나 좋은 편에 속했다·
목과 어깨를 간단하게 풀어주고 손목 발목을 빙그르르 돌렸다·
아카데미 체육시간에 배웠던대로 손에 깍지를 끼고 무릎을 편채로 바닥까지 허리를 굽혔다·
매일같이 연습한 보람이 있었는지 손바닥 전체가 바닥에 쉽게 닿았다·
역시 어린이의 몸은 유연하다·
“다음은 위쪽으로!”
“위쪽으로 흣!”
이보름이 뒤에서 두 팔을 낚아채 위로 쭈욱 잡아당겼다·
순간적으로 몸이 허공에 붕 떠서 바둥거리다가 간신히 바닥을 찾아 발을 디뎠다·
“뭐 뭐하는 거야?”
“이렇게 하면 키가 더 빨리 큰댔어! 나메야 뭐해 관장님 따라 빨리 숫자 세야지! 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확실한 거지?”
턱걸이 같은 걸 하면 척추가 올바르게 펴지고 성장판에 자극도 되면서 키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학설은 들었지만···
이 매니저가 하는 말은 왠지 모르게 다 의심이 간다·
“하항 귀여웡! 다음은 왼쪽으로 쭉! 꺄 나메야 배꼽 보인다!”
“아니 그렇게 확 잡아당기지 마! 옷까지 같이 말려 올라가잖아!”
“다음은 오른쪽으로 쭉쭉 쭈욱! 오오 나메 무럭무럭 키 크고 있어! 113! 114! 115 성층권 돌파!”
이 이상의 횡포를 참아내기에는 내 인내심이 부족했다·
밭다리걸기와 함께 그녀의 복부를 앞으로 밀쳐 넘어뜨렸다·
이보름의 팔을 내 몸통에 끌어안고 어깨 관절을 내 다리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리고 이렇게 엉덩이를 살짝 들어서 눌러주면·
“끼야아아아아악! 팔! 팔 아파아악!”
완벽한 암바 완성이다·
“다시는 내 키 가지고 놀리지 마·”
* * *
서종찬 선수가 주짓수 서브미션 기술 시범을 먼저 보여주면 이후에 나메가 따라하는 식으로 방송이 진행이 되었다·
“나메야 트위스터 시연해볼래?”
“1번 상대방의 등을 잡아 자신쪽으로 당긴다·”
“흐익!”
포옥-
바닥에 앉아있는 이보름의 등 뒤에서 푹신 안겨오는 보드라운 피부·
나메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라벤더향 샴푸냄새가 온몸에 베어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보름은 황홀한 미소를 지으며 나메가 이끄는 대로 기꺼이 몸을 맡겼다·
“2번 바닥과 닿는 부분의 다리를 고정시켜놓는다·”
“하으!”
바깥에서 휘감아지는 나메의 다리·
허벅지 살결끼리 부딪히는 느낌이 정전기가 오듯 찌릿찌릿했다·
“3번 몸을 일으켜 내 팔을 상대방 반대쪽 겨드랑이에 넣는다· 흠··· 저기까지 닿으려나·”
“후앗!”
이보름의 겨드랑이를 지나 그녀의 왼팔 위로 나메의 팔이 겹쳐진다·
“4번 양손으로 목을 감아서 당겨준다·”
목 뒤로 뱀처럼 타고 올라오는 손가락들·
이보름이 눈을 떠서는 안 될 금단의 영역까지 내몰린 순간 나메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동작을 멈췄다·
“저기까지 손이 안 닿는데요···”
“자세는 완벽한데··· 이것도 좀 어렵네·”
‘트위스터’ 코브라 트위스트의 그라운드 버전 목과 척추를 분리시키는 잔혹한 기술이다·
하지만 노나메는 그냥 소중한 애착인형을 껴안은 아이처럼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흐흫 나메야 이제 나 간지러워! 그만그만!”
“언니는 왜 이렇게 간지럼을 많이 타?”
“그냥 내 체질이 원래 그런 걸 어떡해!”
연이은 기술 실패로 점점 나메의 인상이 점점 구겨졌다·
주짓수에서는 어느 정도 동등한 체격이 받쳐줘야 시행할 수 있는 기술들이 많았다·
결국 또 키가 문제였다·
자신이 작은 키와 짧은 팔다리를 가진 아이라는 걸 자각할 때마다 나메의 기분은 점점 다운되었다·
“언니가 보기엔 어땠어?”
그래도 중간중간 기술이 잘 들어갔는지 나메가 확인차에 질문을 던졌다·
“완전 업계포상이었어! 나메야 난 오늘 끌려온 걸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 운동 완전 최고!”
“뭐래·”
눈치없는 이보름이 성불한듯한 표정으로 자비로운 미소를 날렸다·
실시간으로 시청하던 팬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절규에 가까운 원성이 쏟아졌다·
-우리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ㅋㅋㅋ 이걸 면전에다 대고 말하네ㅋㅋㅋㅋ
-왜 매니저만! 이 좋은 걸 왜 너만 해!
-평생동안 저주하겠다 고양이교미가제일좋아!
-나도 나메한테 목 졸리고 싶다ㅠㅠㅠㅠㅠ
-채팅 ㅅㅂ 개어지럽네ㅋㅋㅋㅋㅋ
-노나메의 진심 껴안아주기··!! 효과는 굉장했다!!
-그래도 재능 지리는 듯? 한번 보고 막힘없이 다 따라해버리잖아·
-몬가 결과가 이상하긴 했지만ㅋㅋㅋ··· 그래도 말랑했으면 만사 오케이다 그죠?
“오늘 가르쳐주신 건 나중에 가상현실에서 따로 연습해서 보여드릴게요·”
-헉 그럼 우리도 가능성이···?
-엘프공주님 허벅지 딱대라 아주 그냥ㅋㅋ
-다음 샌드백 지원해봅니다!
-뭔 가능성이여 이 방에는 무슨 마조새끼들밖에 없냐?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나메한테 트위스터를 당하고 싶다···
-진짜 제대로 당하면 님 식물인간 되는데요?
-목숨과 맞바꾼 업계포상ㅋㅋㅋㅋㅋ
나메도 수확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종아리를 뭉개버리는 카프 슬라이서 팔을 비틀어버리는 기무라 락 정도는 여건에 따라서 도전해볼만도 했다·
하지만 신체적 조건의 한계 때문에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
평소에 워낙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노나메였기에 오늘만큼 놀리는 맛이 일품이었다·
분에 찬 나메가 글러브를 꽉 조이고 훈련장 구석으로 조용히 움직였다·
* * *
통-
구석에 매달려있는 검은색 샌드백을 주먹으로 두드려보았다· 확실히 무겁다·
계속 손을 대고 있을 때마다 마나가 빨려나가는 기분이 드는 게 방마나 제품인 것 같았다·
-똑똑 거기 안에 누구 계신가요?
-나메공듀님 왔어요!
-나메 우리가 너무 뭐라 해서 살짝 삐친 듯?ㅋㅋㅋㅋㅋ
-이모가 잘못해쪄ㅠㅠ
-뭘 해도 이렇게 귀여우면 반칙이지·
나는 타격 지점을 선정하기 위해 자세를 잡고 정확한 부위에 원투잽을 날려주었다·
퉁퉁-
여전히 샌드백은 뒤로 밀려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커엽ㅋㅋㅋㅋㅋ
-샌드백 처음 만졌을 때 특징: 오뚜기인줄 알고 때렸는데 그냥 ㅈㄴ 단단한 돌덩어리 그 자체임·
-나메는 아가야··· 나메는 아가펀치 때릴고야···
-자세 좋고! UFC 취미가 빈말은 아니었구나!
-아니 빈말로라도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잖아ㅋㅋㅋㅋㅋ
이번엔 오른쪽 주먹에 오러를 담아 뒷손 스트레이트를 내질렀다·
텅-!
“오·”
-와!
-이게 움직이네ㅋㅋㅋㅋ
-냐메쨩 스고이네!
-나메야 너 좀 친다?
-근데 샌드백이 애한테 너무 높다ㅠㅠㅠ
-뭐하려궁?
이 정도가 딱 격투기에 입문한 아마추어 성인들이 내지르는 위력일 것이다·
방마나 제품이면 오러를 써도 상관이 없다는 거겠지?
두 다리에 황금빛 오러를 전부 불어넣었다·
기역자로 꺾어지는 복도에서 서종찬 선수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여기서 마음껏 뛰어도 되죠? 층간소음이라던가·”
“딱히 상관없지? 여기 지하니까·”
“아 맞다 그랬지· 감사해요·”
오러하트가 정순한 황금색 빛을 내뿜으며 몸을 둘러쌌다·
“후우···”
굳은 결심으로 나온 심호흡·
한걸음 거닐 때마다 오러가 다리 전체를 불태웠다·
매트가 하필 또 영롱한 바다의 색이라서 마치 물 위를 거니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황금빛 오러로 다리에 무장을 하고 강하게 진각을 밟아 앞으로 또 앞으로 내달렸다·
쿵쿵쿵쿵-!
엄청난 가속도 마찰이 강한 매트에 발을 강하게 고정시킨다·
치이이익-
발바닥이 정말 뜨겁다· 살갗이 타버린 게 아닐까하는 어처구니 없는 잡념마저 든다·
그리고 공중도약·
달나라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몸이 몹시나 가벼워졌다·
이 전능감을 만끽하고선
발 정강이 무릎 허벅지 허리· 그리고 다시 허벅지 무릎으로 반바퀴를 주행한 오러가 마침내 반짝반짝 발현이 되었다·
이대로 몸을 한바퀴 돌린다·
도움닫기의 에너지가 계속 아래로 내려가 내 발등에 전부 집약되었다·
[카이젠 황궁무술: 그믐달 차기]
카이젠의 초대 황제가 하늘을 향해 돌려차기를 하였더니 보름달이 그믐달로 쪼그라들었다는 신화에서 유래된 기술·
쾅-!
임팩트와 함께 폭탄 터지는 소리가 체육관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역시 스트레스 해소에는 샌드백만한게 없···’
후두둑-
“어?”
발치에 석고 가루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여긴 분명 실내일 텐데?
그리고 부스러기들의 정체를 얼마 안 가 곧바로 깨닫게 되었다·
[‘민트초코마라샹궈’님이 10000원 후원!]
-천장··· 갈랐다고···
[‘나메아빠는농부’님이 25000원 후원!]
-저희 업계에서도 이런 건 포상이 아닙니다···
샌드백이 터지는 것도 모자라 천장까지 날아가서 석고보드를 뚫어버린 것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후원자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맛있는 한편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나메는 특식이에요!!
알빠노혹등고래님 22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조회수와 선작보다도 항상 인생픽 지표가 제일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그만큼 믿고 따라와주시는 독자님들이 많이 계신다는 거니까요!!
어제 아포가토에 카페인이 들어가있다는 걸 까먹고 먹었다가 밤을 꼬박 새버렸네요· 하루종일 비몽사몽했던 것 같습니다··!! 오타나 비문이 있다면 댓글 남겨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집들이 왔다가 집을 부숴버린 나메!! 미래가 캄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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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ane Sniper [Matan’s Shooter]](https://cpunovel.b-cdn.net/wp-content/uploads/2024/04/arcane-sniper.jpg "Arcane Sniper [Matan’s Shoo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