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6Chapter 166
드뷔시의 달빛이라는 노래가 있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피아노의 선율·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떠오르는 작은 소리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연결하며 마음의 수면에 오묘한 파장을 일으킨다·
처음 내가 그 노래를 접했던 것은 한 대형 마트의 화장실이었다· 하지만 손을 씻으며 가만히 선율을 느끼는 동안에 나는 마치 고요한 밤바다에 가라앉는 듯한 신비로운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드뷔시는 어떤 달을 봤던 것일까·
달은 매일 똑같은 자리에 떠올라 밤하늘을 비춘다· 구름에 가려지는 날이 있지만 달은 어딘가 떠나지 않고 항상 그 자리를 지킨다·
그 말인 즉 오늘 세상에 첫 숨을 터트린 아기가 아닐지언정 누군가는 반드시 달을 본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스릉·
뽑아 든 검을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천천히 움직였다· 검과 공명하는 가라앉은 공기· 그 안에서 만들어진 작은 울림이 공터를 서서히 메운다·
나의 검에서 빠져나온 마력이 하늘을 수놓으며 차갑고 깊은 빛을 창조하자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나의 검로를 따라왔다·
“그대는 달을 본 적이 있더냐·”
천월신공을 처음 배울 당시에 화영이 나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월광검법 제일식 月光劍法 第一式
신월 新月
달빛을 그저 스쳐 가는 것이 아닌 온전한 마음으로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나는 검을 움직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향해 나의 이야기를 펼쳐 냈다·
소나기가 지나간 여름의 어느 날 고된 노동과 허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하던 중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달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든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걷던 와중 작은 물웅덩이에 비친 세밀한 빛이 눈에 띠었을 뿐·
자연스럽게 고개가 올라간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심하게 떠오른 달의 파편이었다·
그저 매일 같이 떠오르던 달· 하지만 그 달을 본 순간 나는 그 달이 나를 닮았다 생각했다·
“그 달이 그대에게 무엇을 말하더냐·”
위로가 되었다·
그림자와 구름에 가려져 반절도 남지 않은 처량한 달이었지만 그 근본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나의 삶도 분명 그러하리라 여겼다·
나에게 던져진 물음은 단순했다·
“앞으로 나아가라 하더냐? 그것이 아니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 있는 희망의 불씨를 움켜잡아 꺼버리라 하더냐?”
천월신공의 비급서에 나오는 구결들·
나는 화영이 나를 가르쳤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 나의 인생을 읊었다·
어제에도 분명히 하늘의 중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하나의 빛이 나의 마음에 들어와 꺼져가던 불씨에 희망이라는 장작을 던졌다·
따스했다·
이유 따위는 모른다·
그저 달빛을 보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는데 그 이유가 꼭 필요할까 싶었다·
“보았다면 무엇을 느꼈느냐· 말했다면 무어라 말했느냐·”
나의 검에서 흘러나왔던 빛들이 점차 각자의 길로 흩어지며 하늘과 땅을 비춘다·
어느 빛은 공터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어느 빛은 아이들의 앞에 자리를 잡아 이어지는 나의 검무劍舞를 더 선명하게 조명한다·
그렇게 하늘에 작은 별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두 번째 초식이 펼쳐졌다·
월광검법 제이식 月光劍法 第二式
황홀경 怳惚境
가만히 무언가를 관찰하게 될 때만 보이는 그대로의 것이 있다·
드뷔시 또한 무언가를 보며 달빛을 작곡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만월이었을지 반월이었을지 각월이었을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다·
혹여나 하늘에 뜬 달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나처럼 수면에 비친 달빛을 봤을 수도 있고 어느 여름 밤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미미한 기운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만월 반월 각월 따위가 아니었다·
달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였다·
“하늘을 보아라· 지금 무엇이 보이더냐· 그곳에는 항상 만월이 있다· 구름에 가려진 채로 그림자에 숨겨진 채로· 허나 그 근본은 불변하는 것·”
곳곳에 자리 잡은 마력의 점들이 서서히 하나의 줄기로 합쳐지며 공터에 거대한 원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나의 경계· 검이 가장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내가 선택한 나의 세상이었다·
어둡기만 했던 공터는 이미 환해진 상태였다· 허나 그 정도가 과하지 않았다· 원래 깨달음이란 겨울의 밤처럼 서서히 다가오다 섬광처럼 순식간에 나타나는 법이니·
월광검법 제삼식 月光劍法 第三式
일섬 一閃
인생은 한순간에 시작되어 한순간에 끝이 난다·
허나 그 인생의 끝에 남는 것이 미련일지 후련함일지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몫·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자의 역할은 그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대의 세상은 어떠한가· 그대의 만월은 어떠한가·”
공터를 에워싼 빛이 아이들의 얼굴을 비춘다· 가까스로 서로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연약한 빛· 하지만 같은 빛을 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가 있고 주저앉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그대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하였는가· 아니면 그 자리에 만족하며 머물기를 선택하였는가·”
강해지는 것에 있어서 노력과 꾸준함은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굴레가 있기에 자유가 의미가 있고 어둠이 있기에 빛이 가치가 있다· 허나 많은 이가 굴레를 벗으려고만 하고 어둠을 잊으려고만 한다·”
세상을 살아가며 오는 고난과 시련들· 그것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경험이었다· 극복하면 강해지고 달아나면 더 강한 시련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세상을 만들어 냈던 빛의 원이 서서히 강렬해졌고 나의 검에 깃들었던 백색 마력이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번지기 시작했다·
나는 검을 들어 서서히 내리그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월광검법 제사식 月光劍法 第四式
반월참 半月斬
허공에 만들어진 반월이 나의 세상에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허공에 떠오른 반월을 보며 입을 벌린다· 그것은 무공 수업을 참관하겠다고 말한 객주도 마찬가지·
나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한다·
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며 느끼는 것이 모두가 다르듯 나의 반월을 보며 느끼는 것도 저마다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한 단계가 남아 있었다·
“후우···”
월광검법의 마지막 초식·
세상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느낀 것을 통해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깨닫는다· 깨달음을 토대로 자신의 세상을 구축하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내린다·
그렇게 나의 세상을 만드는 것·
주변에 흩어졌던 마력이 조용히 소용돌이치며 하나의 기류를 만들어 낸다·
깨달음의 표상· 마치 세상의 신이 된 것처럼 세상을 비춘 빛이 홀로 공터를 차지한 나의 곁으로 몰려든다·
빛이 있었다· 태양과 같이 세상을 모두 비출 수 있는 강렬한 광채가 아닌 지친 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은은한 서광이·
월광검법 제오식 月光劍法 第五式
만월 滿月
그날 무림에는 하나의 달이 있었고 화향루의 뒤뜰에는 두 줄기의 월광이 있었다·
***
그날 나는 묵는 방이 바뀌었다·
2층의 일반 객실에서 객주의 방보다 넓은 귀빈들만 사용할 수 있는 화향루의 초호화 스위트룸으로·
무공 시연을 보여주고 객잔으로 들어오자마자 객주가 나에게 제시한 것이었으니 거짓말은 아닐 터였다·
“···왜죠? 이건 좀 과한 것 같습니다만·”
객실 이용료 또한 무료· 그리고 원한다면 기간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조건에 나는 의문을 표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이렇게 해 드리는 게 맞지요!”
하지만 객주는 되려 손사래를 치며 나를 만류했다·
“제가 상상한 것··· 하니 상상하지도 못한 무언가를 초월한 세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음 그 정도인가요?”
물론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초가 아닌 천월문의 무공을 보여준 것은 맞았다·
물론 화영과 했던 약속을 깨트리고 무공을 함부로 보여준 것이라 좀 찝찝한 감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크게 보상을 하려고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입니다! 지금 저기 아이들 보이십니까?”
그의 손짓에 아직 방에 돌아가지 않은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라면 일이 끝나자마자 적당히 팔다 남은 3등품의 조잡한 약과 따위를 주섬주섬 양손에 챙겨 들어갔을 아이들이 웬일로 상기된 얼굴을 한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청났지?
-말이 필요해? 무공을 배우면 그런 걸 할 수 있는 거야?
-아명이 괜히 무공무공 노래를 부른 게 아니었구나···
-나 지금 한 번 해볼래·
아직도 천월신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아이 하나가 빗자루를 가져와 슬금슬금 휘두르자 다른 아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빗자루를 들고 온다·
그것마저 없는 아이들은 주방에서 숟가락을 들고 오기까지 하니 방금 내가 펼쳤던 무공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혹시 아명에게 그것을 가르치실 겁니까?”
“아니요· 그건 가르칠 수 없습니다· 스승님과 약속을 해서 함부로 전해서는 안 되거든요· 게다가 아이들이 배우기에는 너무 무리기도 하고·”
다양한 무공을 익히며 느꼈던 점이 있다면 그 무공의 끝에는 항상 특정한 깨달음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깨달음이라는 것도 경험에서 비롯되어 오는 것·
내가 얻은 천월신공의 가르침은 천월天月을 통해 느낀 세상을 검에 담는 것이었고 그것은 탑에 오르기 전에 있었던 나의 삶과 탑을 오르기 시작하며 생긴 사건들이 우연히 겹치며 찾아온 깨달음이었다·
만류귀종 萬流歸宗
모든 물줄기와 물결은 결국 바다에 닿아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고단한 노력이 필요한···
“응?”
그때 나의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천하제일인이자 무림의 공적인 량의 기록이 탑의 꼭대기에 있었던 진짜 이유·
모든 가르침과 무공의 끝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그리고 모든 무공을 익혀본 자라면 그리고 그가 세기에 다시는 없을 천재라면···
“설마 모든 무공을···?”
복잡하게 얽혀 있던 임무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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