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7
혼돈의 숲 내부는 마력이 너무 풍부한 나머지 공간이 약간 뒤틀린 곳이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결계라 생각하면 편하다. 하지만 여타 결계와 달리 푸는 건 불가능하다.
마력이 풍부한 탓에 결계가 발생한 곳은 비단 혼돈의 숲 내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가 많은 곳 예를 들자면 화산 지대나 바다의 트라이앵글 존 같은 경우다.
트라이앵글 존은 지구로 치자면 버뮤다 삼각 지대다. 그런 곳은 대부분 인외마경에 가깝다.
“여기 나침반일세. 나도 하나밖에 못 구하겠더군.”
“왜요?”
“두 개를 달라고 하니 의심스러운 눈을 보내서 말일세. 나도 눈치가 있어야지.”
그런 곳에서 자유롭게 오가기 위해서는 특수 나침반이 필요하다. 루나는 로드로부터 나침반을 건네받았다.
로드의 말에 따르자면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하나밖에 못 구했다고. 괜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다.
어차피 나침반은 자기가 계속 들고 있을 거라 큰 상관은 없다. 시바르한테 줬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즉시 밖으로 나오게나. 괜히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네.”
“그리고 가급적이면 시바르 혼자 두지 말게나.”
무슨 애를 맡기는 것도 아니고. 루나는 로드에게 갖가지 충고를 들었다.
시바르가 무력적으로 밀릴 일은 거의 없으니 사고만 치지 말라는 게 대부분이다.
혼돈의 숲은 한 번 길을 잃는 순간 절대 못 빠져나오는 곳.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하루 있다가 올 건데 뭐.’
내부로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전 감각 및 증진을 위해서다.
혼돈의 숲 내부는 매우 강한 몬스터들이 즐비한 곳. 거기서 충분히 실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 가면 위험하니 보험용으로 시바르와 함께 가는 것이다. 애당초 시바르가 먼저 가자고 했지만.
“시바르 형제님. 거기서 이상한 거 먹으면 안 돼요. 아셨죠?”
“응.”
“배고프다고 벌레 같은 거 막 먹지 말고. 또…”
루나가 로드에게 설명을 듣는 동안 시바르는 리제에게 당부를 받고 있었다.
무력적인 면에서는 괜찮아도 시바르가 이상한 걸 주워먹을까 봐 걱정하는 모습.
시바르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 반응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준비도 다 됐으니 이제 출발하게나. 무기는 다 정비했나?”
“네.”
“했어요.”
모든 준비는 끝났다. 숲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으니 식량을 갖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은근 짐이 많아졌지만 상관없었다. 루나는 시바르가 등에 맨 배낭을 바라봤다.
저 안에 든 건 대부분 식량이다. 시바르가 워낙 많이 먹다 보니 많을 수밖에 없다.
무기도 달랑 하나만 들고 갔다. 시바르는 애용하는 라그나로크 루나는 검 하나가 끝이다.
“가자.”
“그래.”
이윽고 루나는 시바르와 함께 혼돈의 숲으로 들어섰다.
로드가 미리 언질을 했는지 입구의 경비병도 아무 말 없이 들여보내줬다.
혼돈의 숲 내부는 외곽을 지나치고 좀 걸어야 진입할 수 있다. 루나는 나침반을 꺼냈다.
‘아직 나침반이 돌아가고 있네.’
특수 나침반은 오직 혼돈의 숲 내부를 기준으로 제작된 물품이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 쓸모가 없다.
지금 바늘이 고정되지 않고 흔들 때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아마 안쪽까지 진입하면 어느 순간 바늘이 고정될 터. 그녀는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옆을 바라봤다.
“음…”
“…”
시바르가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오직 앞만 보면서.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민감한 얘기를 꺼내도 됐지만 어떤 주제를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숲은 시바르의 진정한 고향과 같은 곳. 그것도 혼돈의 숲 내부는 시바르가 자라온 곳이다.
‘거기서 태어나지 않았으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시바르가 처음으로 ‘생각’을 했을 때가 언제였을까.
루나는 어떤 식으로 말문을 틀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시바르.”
“?”
루나의 부름에 시바르가 고개를 돌렸다. 의문에 찬 표정이다.
이렇게 마주보니 새삼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돌멩이 보듯이 보고 있었는데 뭔가 신기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녀는 하고 싶은 질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 어때?”
“…?”
루나의 질문에 시바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사실 이것도 말문을 틀기 위한 작업에 가깝다. 루나는 이다음으로 원하는 질문을 꺼냈다.
“너는 여기서 태어… 난 건 모르겠지. 그런데 여기서부터 시작한 거 맞지?”
“응. 눈을 뜨니 여기였어.”
“눈을 뜨니 여기? 마치 그전에 눈을 감은 적이 있다는 소리처럼 말하네?”
장난식으로 말한 거다. 조용한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한 말.
그러나 시바르 입장에서는 살짝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전의 기억이 뚜렷했으니.
아주 평범하고 평범했던 지구에서의 시절. 평범하면서도 화목한 가족과 만나 일생을 보냈다.
그 기억만큼은 잊혀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았다. 비록 얼굴은 차츰 잊어갔지만 추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응. 가끔 궁금해. 시바르의 부모님은 누구일까 하고.”
“평범할 거야.”
“악마의 후손인데 평범하다고?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루나는 피식 웃었다. 시바르는 존재만으로도 특별하다.
정말로 시바르의 부모가 악마인지 잘 모르겠지만 범상치 않은 인물인 건 확실하다.
“한 번쯤 만나보고 싶긴 해. 시바르의 부모님.”
“만나서 뭐하려고?”
“그냥 인사 정도? 시바르를 착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말 꺼내려고.”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시바르는 야생에서 자랐음에도 도덕성이 뛰어난 편이다.
비록 갖가지 사고를 치긴 했으나 그것도 주체가 본인이 아니었다. 친구 혹은 지인을 욕했을 때 폭력을 저질렀다.
폭력적이긴 해도 이타적이다. 모순되는 말이긴 하지만 시바르가 아무런 이유없이 남을 해칠 사람은 아니다.
‘남을 위해서 기꺼이 손을 쓴다는 게 걸리긴 하지만…’
그래서 걱정스러웠다. 꿈에서 시바르는 학살자 그 자체였으니.
도대체 뭐가 실망스러워서 이타적인 사람이 그렇게 변한 걸까.
물론 그 상황이 정말로 ‘미래’인 것인지 확실치 않았다.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고 보니…’
시바르가 지내고 있던 동굴의 벽화. 그 벽화에서는 수많은 미래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루나가 알고 있는 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바르가 알고 있는 미래에 자기자신의 모습도 알고 있을까. 루나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
“…”
“할 말 있어?”
“그…”
과연 이걸 말해도 되는 것일까. 루나는 망설였다.
아무래도 민감하디 민감한 문제다 보니 시바르도 입을 다물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에 루나는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네가 그렸던 벽화. 기억나지?”
“응. 기억하고 있어.”
“거기에 너는 있었어?”
“…”
직설적인 물음에 시바르가 눈을 느릿느릿 깜빡거렸다. 그리고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시바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답을 꺼냈다.
“아니? 나는 없었어.”
“그래? 그럼 네가 알고 있는 미래랑 지금이랑 얼마나 다른데?”
“원래 할아버지는 많이 아팠어. 포로 아니 라타토스크도 밖에 안 나왔고. 많이 바뀌었어.”
“음…”
미래가 바뀌었다. 저 하나가 루나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줬다.
시바르가 알고 있는 미래가 자기자신은 없다. 이건 솔직히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자기자신이 없는 게 아니라 자기만 쏙 빠져있는 게 아닐까. 제 3자의 입장으로 미래를 보는 식으로.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
질문을 통해 하나하나 알아가는 수밖에 없다. 중간 다리를 잇는 것부터 시작이다.
시바르가 알고 있는 미래와 자신이 본 미래. 과연 둘 중에 무엇이 진실일지.
‘악마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건… 자살 행위겠지?’
설령 물어도 아는 악마는 매우 적을 것이다. 사실상 리제 한 명밖에 없다.
이에 루나가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을 때쯤이었다.
케에에에에엑!!
숲 전체에 울려퍼지는 기괴한 포효. 루나와 시바르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발걸음을 멈췄다.
숲 외곽에서는 전혀 듣지 못했던 소리다. 이에 루나는 그 즉시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의 바늘이 한 곳으로 고정돼 있다. 숲 내부로 진입했다는 의미다.
“시바르.”
“응. 잡으러 가자.”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안으로 들어왔다는 말만 꺼내려 했는데 시바르는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물론 몬스터를 잡긴 할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당부할 생각이다.
“나랑 절대 떨어지지 마. 나침반은 나에게 있고 식량은 너한테 있으니까. 알겠지?”
“응.”
“그리고 웬만하면 전투는 내가 할게. 너는 옆에서 도와주고.”
“알았어.”
“좋아. 그럼…”
스르릉-
루나는 검을 뽑았다. 관리를 잘한 덕택에 은빛이 감도는 검.
뒤이어 그녀는 약간 긴장한 낯빛으로 시바르에게 말했다.
“가자.”
*******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옆에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직접 나서는 건데.
지금 내 고개는 수평이 아니라 살짝 위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하늘 말이다.
펄럭! 펄럭!
웬 비행 몬스터 하나가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혼돈의 숲 내부에 비행 몬스터가 서식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어찌 됐든 간에 사라지고 있다.
문제는 그 비행 몬스터의 발톱에 잡혀 있는 사람이다. 그 발톱에 아주 익숙한 노란 대가리가 잡힌 상태다.
마치 납치를 당하는 것 같달까. 괜히 나서겠다고 깝쳤다가 저 사달이 나버렸다.
[으아아아아아.]
루나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하늘에서부터 울려퍼지고.
“…저 노란 머리가.”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나가 사고를 쳤습니다. 정확히는 사고를 당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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