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9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했었다·
신실할배가 이렇게 은밀히 가져와달라고 말을 할 정도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일지·
필시 악마를 퇴치하는 것에 있어 굉장히 효과적인 도구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지금·
“··지금 이걸 가져다달라고 하신거··?”
“그렇다네 미안하지만 빌려주는 건 불가능하네· 이세계에는 한권밖에 없으니 말이지·”
“빌릴 생각도 없어요·”
신실할배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바로 만화책·
심지어 그냥 만화책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동인지였다·
심지어 페이지가 꽤나 두꺼웠다·
한권 분량이 아니라 여러권을 엮어만든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이걸 구하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나? 초월에게 따로 부탁해서 겨우겨우 얻어낸 책이라네·”
“그렇군요·”
에렌부르크에서부터 열심히 운반한 물건이 동인지라니·
그 사실을 알자 굉장히 허탈했다·
사제 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제가 개인적으로 부탁한 물건인데·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신실할배에게 물었다·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 아닌가요? 그런거 보면·”
“나는 예외라네·”
“아··· 네·”
하긴·
누가 신실할배에게 동인지를 본다고 뭐라하겠는가·
교리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간섭할 사람도 딱히 없을텐데·
스스로의 양심 문제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큼큼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지·”
“그러시죠·”
신실할배는 금새 동인지를 다시 포장하고는 위엄넘치는 모습으로 다리를 꼬고 앉았다·
동인지를 보고 신나하던 것이 부끄러웠던 모양·
“일단 내가 먼저 질문하지·”
“네·”
“바루크에 집이 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악마가 왜 있는거지?”
“제 부하입니다·”
이건 사실이었다·
춘식이는 내가 하는 말이라면 모두 따르니까·
애초에 내가 거두지 않았다면 진작에 명을 달리했을 존재였다·
나 덕분에 살아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살면서 악마를 부하로 삼는건··· 한번 보기는 했는데 어쨌든· 불법인건 아는건가?”
“그렇게 따지면 사제님이 아까 손에 들고 흥분하신 동인지도 불법 아닌가요?”
“동인지는 불법이 아니라네· 교리상으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는 말이지·”
신실할배는 정말 자신은 꿇릴 것이 없다는 표정을 하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대답을 해보라는 듯한 눈빛·
‘··어떡하지·’
마음만 같아서는 신실할배를 처리하고 싶기는 했지만 신실할배 정도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면 후폭풍이 엄청나다·
자칫하면 교단과 싸워야한다는 말·
그건 굉장히 싫었다·
“그래서 원하시는게 뭘까요?”
이렇게 말을 하는걸 보면 어쨌든 원하는게 존재한다는 말·
괜히 시간을 질질 끄는 것보다는 여기서 원하는걸 알아내야 한다·
빨리 침대에 누워 쉬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신실할배는 차를 한모금 들이키더니 입을 열었다·
“원하는건 딱히 없네··· 하지만 부탁할건 있지· 만약 이 부탁을 수락한다면 여기서 있던 일은 모두 없던 일로 해주겠네· 성직자들도 바루크에 많이 파견을 해주고·”
“성직자의 파견은 애초에 약속하신 일인데·”
“원래 약속은 자주 바뀌고는 한다네·”
“오···”
정말 얼척이 없는 말이었다·
사제라는 양반이 약속이 자주 바뀐다는 말을 하다니·
양심이라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게 분명했다·
“일단 부탁부터 들어봐야 제가 수락을 하든 말든 할 것 같은데·”
“간단하네 룩펠턴에 있는 성지에서 몇가지 일을 도와주면 된다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걸세· 내가 보증하지·”
룩펠턴이라·
에렌부르크에서 돌아온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움직여야 한다니·
굉장히 귀찮기는 했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군단장을 다 처리하기 전까지는 쉬지 못한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말·
그렇기에 차라리 룩펠턴에 있는 ‘성지’라는 곳에 가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아보였다·
‘성지면 뭐라도 다르겠지·’
성지는 허락없이는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이참에 들어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뜻·
“알겠습니다·”
“오 좋은 선택이라네·”
“그대신 서로 계약을 하죠·”
이미 신실할배의 말에 속았기에 두번 다시 같은 실수를 범할 생각은 없었다·
확실히 대비해야지·
아공간에서 종이 하나를 꺼낸다·
그리고는 갤러리를 켜 코코낸내를 부른다·
ㄴ진짜씹거지임:빨리 올라오셈
ㄴ진짜씹거지임:급함
그리고 잠시 후·
“아 왜 부르는데·”
지하에서 코코낸내가 올라왔다·
이제 모든 준비물은 갖춰졌다·
“너 계약 관련된 마법 잘 알지?”
“그렇기는 한데·· 왜·”
“지금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사제님이 거짓말을 치실까봐·”
“아· 그런거면 진작에 말을 하지·”
그렇게 말하자 코코낸내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띠링-!
ㄴ코코낸내:지금 계약서 해야하는데
ㄴ코코낸내:제약 좀 풀어줘봐
ㄴ코코낸내:계약서 진짜 위력 좆되게 해드림
ㄴ진짜씹거지임:ㅇㅋ
코코낸내의 말을 듣고 잠시 코코낸내를 억제하고 있던 제약을 살짝 풀었다·
그러자 코코낸내에게서 느껴지는 탁한 마나·
“···불경하군·”
“닥쳐 틀딱·”
코코낸내는 한마디로 신실할배를 제압하고는 계약서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어떻게 마나가 흘러가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마나가 탁해서 그런가·
그리고 잠시 후·
“다 됐다· 이제 여기에 서로 계약내용 적으면 돼·”
코코낸내는 그렇게 말을 하곤 주변에서 의자를 하나 끌어와 앉았다·
계약을 끝까지 지켜볼 요량인 것 같았다·
“허허··· 그러면 먼저 계약내용을 작성하겠네·”
“그러시죠·”
말도 안되는 내용을 작성해도 완벽히 계약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무슨 내용을 작성하는지 지켜봤다·
‘룩펠턴에 있는 성지에서 일해야 하고 이 일이 끝나면 지금 있는 집과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발설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세세한 부분은 나중에 고치면 되니까·
그렇게 계약이 시작됐다·
*
“···드디어 끝난건가?”
“아마도요·”
계약서를 계속해서 작성하다보니 어느새 계약서가 세장이나 됐다·
워낙 쓸게 많다보니 분량을 초과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도 어느새 두시간을 훌쩍 넘겼고·
하지만 방심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은근슬쩍 스리슬쩍 계약서에 장난질을 해놨을 수도 있으니·
그리고 잠시 후·
“그러면 둘다 동의한걸로 알고 계약 진행할게·”
중간에서 졸고 있던 코코낸내가 일어나 계약서를 들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웅-!
가슴팍에 어떠한 술식을 새기려는 기운이 느껴졌다·
“자자 그거 계약이니까 둘다 거부하지 말고·”
술식을 밀어내려던 찰나·
말을 듣고 술식을 받아들이자 심장에 어떠한 술식이 새겨진 느낌이 들었다·
아마 눈앞에 있는 신실할배도 마찬가지겠지·
“저쪽은 신성력이 있는데 계약 안 통하는거 아닌가?”
혹시 모를 가능성이 있기에 물어보자-
“그럴 가능성 없음·”
코코낸내가 확답을 했다·
이러면 믿을만하지·
결정적으로 신실할배의 표정이 증거였다·
마치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라는 감정이 얼굴에서 드러난다고 해야하나·
“그러면 이제 헤어지죠·”
이제 계약도 마쳤겠다·
신실할배와 헤어질 차례였다·
*
“잘 들어가세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바로 문을 닫았다·
신실할배와 같은 공간에 오래 있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었으니·
그렇게 신실할배가 돌아가고 나자 코코낸내는 하품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저 틀딱 은근 강하니까 조심해· 잘못하다가 당할 수도 있어·”
“확인·”
우리 집의 결계를 없는 것마냥 뚫고 들어올 때부터 그건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코코낸내는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
‘오랜만에 마나를 썼을테니까·’
코코낸내가 우리집에 온 이후로 첫번째로 쓸모있던 순간이었다·
그런 생각을 코코낸내를 들어 한쪽 구석으로 옮겼다·
일단 여기는 내 침대고 나도 자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코낸내를 깨워 지하로 보내는건 야박하니까·
그렇게 눈을 감기 전 갤러리를 켜 오늘 일어난 사건들을 확인했다·
‘음?’
개념글에 익숙한 닉네임이 있었다·
그 닉네임은 바로 ‘퇴폐적인’·
오랜만에 나타난 그 이름에 바로 글을 클릭했다·
[작성자:퇴폐적인]
[제목: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내용:그동안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있어 사과드립니다· 대형 고닉인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함부로 행동하고 말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눈치를 보며 갤질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죄의 의미로 쿠론툼에 있는 ‘갈릭 여관’으로 찾아오시면 선착순으로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그렇게 린치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갤질이 너무나 하고 싶어 돌아왔다는 뜻·
심지어 공짜 밥까지 뿌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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