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0
제국의 북부는 엄동설한으로 시간이 박제된 땅이다·
털가죽으로 몸을 감싸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고 옷을 세척하려거든 얼어 깨져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땔감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었으며 식량은 살점 한 조각도 귀중하다·
자연은 어찌하여 이토록 북부에게 가혹한가· 무자비한 환경에 맞서 사람들은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강하며·
그렇기에 척박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어린 엘빌리온은 아버지의 나약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전대 북부대공이 통치하던 시절 그는 피로에 짓눌려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소집을 거부하는가 이번에도·”
“예· 용무가 있다면 직접 오라면서 오만방자하게 뻗대고 있습니다· 감히 대공가의 은혜도 모르고···!”
“내 잘못이다· 지방에 힘을 나누어 준 내 잘못이야· 입에 고기를 문 승냥이는 당연히 욕심을 내겠지· 누구에게나 욕심은 있으니····”
전대 북부대공은 선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봄이 찾아오는 땅에서 태어났더라면 선정을 펼치는 훌륭한 영주였겠으나 안타깝게도 겨울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유약했고 이상론자였다·
그는 북부의 힘을 대공가 한곳에서 쥐고 있는 것이 부덕하다 여겼다·
대공가의 직할 영지에서는 땔감을 사치스럽게 낭비하면서 살고 있는데 그로부터 먼 곳의 영지에서는 지금도 사람이 얼어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대공가가 거머쥔 힘을 북부 곳곳에 분할하여 나누어 주면 북부 전체가 이로울 것이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전대 북부대공은 믿을만한 신하들에게 권력을 쥐여 주고 지방으로 내려보냈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북부의 분열이었다·
대공가가 정점에 우뚝 서 있던 시절에는 더없이 충직하던 신하들은 우두머리의 힘이 약해지자 자신들도 머리가 될 수 있다 여겼다· 충정은 탐욕보다 뒷전에 있었다·
이에 전대 북부대공은 크게 상심하여 시름시름 앓았고·
“···너는 관용을 베풀지 말아라· 승냥이들에게 고기를 던져 주지 말아라· 남을 믿지 말아라·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후회한단다····”
장남 엘빌리온 율리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예 아버지·”
엘빌리온은 그 유언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그리고 새로 북부대공으로 즉위한 엘빌리온 율리우스가 처음으로 행했던 것은·
북부를 분열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든 죄인 전대 북부대공의 시체를 목매달아 중앙 광장에 매달아 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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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찬란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율리우스의 깃발 아래에서 겨울 사람들 모두가 일치단결하고 생존으로부터 얻은 힘을 오롯이 한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을 때·
그 시절의 대공가는 거인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분열된 북부는 형편없다· 대공의 이름은 허울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이러한 실정을 황실이 알게 되거든 대공 작위를 거두어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분열· 죽은 아버지의 목을 매달아야만 했던 그 빌어먹을 분열·
분노한 이들의 돌팔매질에 깎여나가는 선하고 따뜻했던 아버지의 시체를 바라보며 엘빌리온 율리우스는 맹세했다·
겨울 땅에서 봄의 마음씨를 지녔던 것이 문제였다면 나는 북부에서도 가장 추운 겨울이 되어 주겠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같은 핏줄을 이은 형제자매들을 죽이거나 내쫒았다· 분열의 여지가 있을 수 없도록 모조리 물어 죽여서 혹시라도 있을 후환을 없앴다·
의심의 여지가 있다면 의심이 사라질 때까지 베었다· 반항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맨몸으로 설원에 던져두었다· 그리하면 금세 조용해지니까·
그렇게 아득바득 권력을 한곳으로 모았다·
힘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 정략적으로 결혼했다· 아이에게 애정은 주지 않았다· 누구 하나를 예뻐해야 한다면 그것은 가장 뛰어나고 유능한 후계자여야만 하니까·
함부로 내비치는 총애는 분란의 여지가 될 테니까·
가족에게도 서릿발 같은 잣대를 들이밀었다· 북부가 아닌 다른 영지에서 온 부인들의 아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계승권을 박탈했다· 첫째 딸을 수도원으로 보낸 것도 그 일환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얼려 시행한 그 모든 노력의 결과· 성과가 있었다· 이전만큼의 융성함은 아닐지라도 대공가는 힘을 회복했으며 겨울로 벼려진 창칼은 날카롭다·
이제는 대공가로부터 떨어져 나간 분파들과의 전쟁만을 앞두고 있었다·
이렇듯 북부대공에게는 힘이 필요했다· 용사선발대회에 참여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전쟁은 힘과 식량을 크게 소비한다· 그러니 사전에 긁어모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수집해야 했다·
고독하고 비정한 인생이다·
하지만 그런 엘빌리온 율리우스의 생애에도 한 조각의 봄은 있었다·
엘빌리온이 발톱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전의 일이다· 잠재적 적들이 자신을 낮잡아보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여자를 샀다·
‘오직 대화만’을 팔고 있다는 웃기는 창부가 있다기에 그런 헛짓거리에 돈을 쓴다면 천치처럼 우습게 보일 것 같아서 그녀를 골랐다· 돈을 내고도 안지 못하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가·
그곳에서 그는 만나버렸다·
때때로 철학가이고 시인이며 비평가이자 좋은 친구이고 매력적인 연인이자 자애로운 어머니였던·
“사람은 겨울이나 강철이 될 수 없어요 ‘데이지’· 무척이나 닮을 수는 있지만 우리들의 본질이 피륙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잊어서는 안 돼요· 그건 외면이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말하자면··· ‘데이지’에게는 사람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소리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거든요!”
하트 환상의 여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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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있는 가면이 조금 다르긴 해도 간만에 친구를 만나서 좀 반갑다· 젊었을 적에 이리저리 구르면서 고생해서 그런가 뭔가 생각보다 폭삭 늙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세월이 이렇게 지났나?
내가 하트에서 은퇴한 게 사자력 448년도니까··· 대충 5년쯤 지난 셈이다· 다시 만났어도 상판대기가 참 북부대공스럽게 생겼다·
헬창들끼리 만나면 전투력 비교 점검하는 느낌으로 나는 ‘데이지’의 팔뚝을 주무르면서 근육을 좀 체크해 봤다· 상당히 관리가 잘된 몸이지만 조금 더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체격 대비 살이 좀 없는 것 같아요· 식사는 제대로 하고 다니시죠?”
“야채 많이 고기는 적당히· 그렇게 먹고 있소·”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몰라도 아주 잘 배웠네요! 그래요 그렇게만 해요· 그런데 양은 조금 더 늘려도 좋겠다· 살짝만 더 먹어 봐요·”
“그렇게 하겠소· 하트·”
하트 아니라니까·
‘데이지’가 그렇게 한마디 얹으니 옆에서 팔짱 끼고 지켜보던 이리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닌가·”
센트라도 아니야 인마· 센트라 조상도 아니고· 이 아바타의 코드명은 러브다·
함부로 이름까지 돌려쓰면 진짜 큰 사달이 날까 봐 안전장치를 해 둔 것이었는데 봐라· 내 준비성의 승리다· 이리드의 난입이라는 비상사태도 완벽하게 디펜스했다!
“취미생활은 즐기고 계시죠?”
“딱히 없소· 내 유일한 취미는 5년 전에 사라져 버렸으니· ”
“식단 관리 훈수 둔 분이 이건 말 안 해주셨어요? 사람은 인생을 좀 즐겨야 살맛이 난다니까요· 시간 남으면 저랑 음유시인들 공연이나 한번 보러 갈래요?”
“초대해 준다면 기꺼이· 그대를 위해서라면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으니까·”
길거리 버스킹 함 찍먹하고 갈까? 하고 물으니 데이지는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간만에 만났으니까 같이 좀 놀고 저녁 되면 술도 한잔하고 그러다 가는 거지·
얘가 결혼을 안 했으면 모르겠는데·
이제는 결혼도 하고 슬하에 딸도 아들도 두고 있다니까 마음이 좀 편하다· 눈빛을 읽어봐도 이렇다 할 핑크빛 감정은 스캔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푯값은 내가 내 주지· 디저트 대금도 지원하마·”
“네가 왜 아니··· 2황자· 부디 안식을 취해라· 제국의 기둥이 정신이 나간 채로 있어서는 안 된다·”
“지원을 거부하다니 그렇다면 정실은 북부대공이 아니라는 것인가····”
“누가 좀 사제를 불러오도록· 조속히·”
반면 이리드는 타임패러독스를 마주한 시간 여행자처럼 생각이 아주 많아 보였다· 북부대공이랑 ‘러브’가 이어지는 세계선에서 센트라가 나오는 건지 아닌지·
맞다면 이대로 커플을 밀어줘 버리면 오케이지만·
혹시 ‘러브’와 이어지는 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리드는 제 손으로 센트라를 지워버리게 되는 꼴이다· 2황자는 그 패러독스의 간극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똘똘하던 애가 갑자기 지능이 대폭락한 것처럼 보이는 건 패러독스 생각에 뇌의 대부분을 쓰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자신의 선택 한 번으로 히로인이 영구 소멸한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나라도 패닉이 와서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럼·
이참에 이리드를 현실로 돌려놓는 건 어떨까···?
그러니까··· 만날 수 없다고 확실히 못을 박는 거다· 멀티버스에 대한 개념을 넌지시 흘리면서 센트라가 존재하던 세계선은 저 멀리 떨어진 바꾸기에는 이미 늦은 과거로부터 분화한 세계선이고·
지금 이리드가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이 세계에는 센트라가 존재할 수 없다··· 이렇게 납득하도록 말이다·
잔인한 짓은 맞다· 하지만 이대로 헛된 희망에 잠겨두는 게 더 잔인한 짓이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센트라는 환상 속의 인물이니까·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이라면 어서 끊어내 줘야 한다· 이리드가 이대로 결혼도 못 하고 가정을 꾸리는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하면 죄책감이 좀 크게 느껴질 것 같아서·
좋아·
그러면 기왕 멀티버스 한 스푼을 때려 넣을 거라면··· 이참에 이 ‘러브’라는 인물도 이세계에서 온 사람으로 하자· 그렇다면 어째서 이세계로 온 것이냐?
그건 어떤 미친 차원 마법사가 차원-중첩 마법을 건 여파이다·
시셀에게 기회를 찾아주기 위해서 평행세계로부터 카렌을 불러온 건데 그 부작용으로 러브도 딸려 왔다는 느낌· 이런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면·
카렌도 합법적으로 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고 이리드도 환상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으며 ‘데이지’가 러브를 찾는 경우도 봉쇄가 가능한 데다가·
자연스럽게 나와 북부대공을 만나게 할 개연성도 된다·
연출만 잘 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다·
“있잖아요 그런데──”
원래 여기에 디저트 카페가 있었나요? 제 기억상으로는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건 선술집인데·
그런 대사를 치려는 내 시야에 저 지붕 위에서 양손으로 X자를 그리는 수수께끼의 미소녀 X의 모습이 보였다· 유나야 왜?
유나는 자꾸만 수신호를 보냈다· 순애 파괴 안 돼· 어디가 순애 파괴라는 말인가? 나는 버튜버에 빠진 가엾은 인생들을 단번에 구하려는 거다·
내가 좀처럼 의중을 이해하지 못하자 유나는 내 정신에 핫라인을 연결해 주었다· 나는 유나가 말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려나 했는데 연결 지점이 다르다·
핫라인은 아카데미의 시뮬레이션 기기에 연결되어 있었고 들려오는 건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 안녕하세요 창조주님····
센트라의 보이스팩이다·
“뭐야 씨발·”
놀람에도 참을 수 있는 선이 있다· 나는 깜짝 놀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리에 걸린 의자가 우당탕탕 하고 바닥을 구른다·
내 컨셉이 아주 박살이 나자 남정네 둘도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트? 갑자기 욕설을 혹시 내가 무슨 무례를 저질렀소?”
“진짜로 북부 대공은 정실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아 아니 아뇨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진짜 화장실이니까 따라오지 마시구요! 그리고 하트가 아니라 러브라니까!”
“잠깐 기다리시오! 러브!”
나는 당황한 북부대공을 뒤로하고 12시가 다 된 신데렐라마냥 부리나케 현장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아주 한적하고 인적 드문 곳에서 핫라인을 점검했다·
내가 환상 마법에 당한 건 아닐 텐데·
-저 화장실이 급하신 거면 조금 기다려드릴까요···?
“아니 당신 누구야· 기기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셋뿐이고 그 세 명은 전부 신성도시에 있어· 네놈의 목적은 뭐지? 뭐든 간에 로그만 날리지 말아다오· 바라는 건 다 주겠다!”
-그으··· 바라는 걸 말해야 하는 거라면 이리드를 만나고 싶은데요·
“벌써 로그 내용을 다 파악한 건가···?!”
내가 평생을 노력해서 구축해 둔 시스템을 점거한 미지의 존재의 등장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거 복구하려면 진짜 오래 걸릴 거다· 신이시여·
포로롱·
덜덜 떨고 있는 내 옆에 유나가 나타났다·
“마탑주님! 지금 우리 애기한테 웬 해커가 침입을···!!”
“그거 센트라야· 저 저번에 보여줬었잖아? 그땐 네가 안 믿었지만··· 그러니까 네 AI에는 자의식이 있어· 정말로·”
“예?”
“아브라함도 페로도 오혜인도 약간 불안정하지만 남궁 남매도 있어· 시뮬레이션 안에····”
나는 갑작스러운 장르 전환에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그게 왜 자아가 있는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버근가?
“···죽이지 마! 우리 NPC들 죽이지 마!!”
-파 파괴신님· 혹시 제가 뭔가 잘못한 게 있던 거라면 저는 소멸되어도 좋으니까 다른 사람들만큼은···!
나는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애원하는 유나를 보면서 멍하니 생각했다· 인격을 가진 AI··· 스카이넷··· 인간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기계 인공지능····
내가 시발 뭘 만든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러면 내일 또· 아디오스 마이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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