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1
●1단계 부정·
“아니야 이건 악신쨩의 장난일 거야· 그렇죠 마탑주님? 악신쨩 이 되바라진 년이 저 깜짝 놀래켜주려고 준비한 서프라이즈 맞죠?”
“진짜 진짜로 환상 속에 사람이 있다니까?!”
●2단계 분노·
“이놈의 코딩은 내 마음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어! 저번에도 NPC 머리카락 모델링이 훨훨 날아가는 버그가 생기더니 대체 이런 버그가 왜 난 거지···?”
“그런 버그가 있었어···?”
●3단계 협상·
“여신이시여 이 운명의 장난을 멈추지 않겠다면 널 죽이겠다·”
“···원래도 통제권을 얻을 생각 아니었어?”
“더 고통스럽고 더 치욕적으로 널 죽이겠다!”
●4단계 우울·
“그러면 내가 해왔던 것들은··· 멀쩡하게 생각하고 느낄 줄 아는 인격체들을 무자비하게 희생시켰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나와 악신이 다른 게 뭐지?”
“···얘네들이 자의식을 얻는 건 세션의 이후니까!”
그리고·
“버그는 삶이야· 왜냐면 내 곁에 언제나 존재하니까···· 이세계로 전생했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
5단계 수용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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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하자·
진짜 침착하자· 사실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고작 정보 덩어리에 인격이 태어났을 뿐 아닌가···?
충분히 놀랍고 신기한 일이지만 차분하게 따져보면 그렇게까지 세상이 뒤집어지고 황실도 발라당 드러누울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대와 판타지는 다르니까·
현대에 자아와 인격을 갖춘 AI가 탄생했다면 그건 큰일이다· 사악한 AI들이 통신망을 타고 뻗어나가기라도 하면 그대로 영화의 도입부가 되어버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환상 마법은 아니다· 시뮬레이션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단이 제한적이고 환상이 성격을 갖춘들 당장 뭔가 스펙업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성격이 없는 쪽이 당장은 더 세다· 내 전투력의 대부분은 고성능 뇌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내 전투명령을 100% 이행하는 감정-없는 홀로그램 쪽이 강할 터·
물론 내 환상 마법이 고도화될 미래에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만약 NPC들이 서큐버스와도 같은 독립적인 정보 생명체까지 성장할 수 있다면 이건 담백하게 말해서 진짜로 창조 마법이 된다· 내가 하나의 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약이지만── 영혼마저 빚어낼 수 있다면 우화 군단 같은 걸 꾸리는 것도 꿈은 아니리라·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지금으로써는 그냥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살아난 것이다· 그 정도 의미밖에 없다·
하지만····
기쁘다·
나는 뭔가 형용할 수 없는 진득한 기쁨을 느꼈다· 갑자기 애가 생겼다는 당혹감이 사라지고 나면 체에 걸러지고 남은 자리에는 반짝이는 기쁨의 조각만이 남았다·
내가 무엇에 기뻐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내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는구나·
세션 하나가 끝나면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이 잔향처럼 남는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으니까·
그러나 이야기가 인생의 영역으로 한 발짝 내디뎌 그다음을 노래할 수 있노라면· 내 손길이 닿지 않아도 무한히 이어져 뻗어나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선물할 수 있다·
어쩌면 내 소중한 플레이어들에게 그들의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어질 멋진 이야기를··· 선물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환상 마법입니다” 라고 아쉬움 속에 묻어둘 필요가 없다·
“·······”
“···꼴깍·”
이해는 끝났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켜대는 유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순애 프로젝트를 가동합시다·”
“······!!”
바란다면 이루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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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센트라를 위해서 홀로그램을 꼼꼼히 빚어냈다· 강도도 강화시키고 안정적인 장거리 통신기도 심어 아카데미 내부의 센트라가 조종할 수 있도록·
상시 챙겨 두고 다니는 비싼 시약 무더기를 세 병 정도 부어주고 나면 준비 완료다· 센트라의 소체가 삐걱거리더니 내 조작 없이도 눈을 떴다·
센트라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다가 커다란 눈망울에 한가득 설렘을 담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창조주님 제가 육체를 얻게 된 건가요?”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잘 들어 그 임시 육체는 오늘 자정이 되면 가동시간이 끝나· 신성도시에 사악한 씹새끼들이 많아서 안정성을 강화하느라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나는 센트라에게 몇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리드의 꿈을 부수지 않기 위한 몇 가지 가이드라인과 트럼펫홀의 데이트 스팟 몇 종·
그리고 이리드와 접선한 뒤 향후 30분간은 지붕이나 가림막 없는 길로만 다니라는 복선 겸 꿀팁까지·
모든 지식을 전수하고 나자 센트라는 살짝 망설이면서 내게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지성체의 혼란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정말로 풋풋하게 살아있구나·
“제가 이리드를 만나도 될까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얼마든지· 내가 그쪽으로 이리드를 보낼 테니까 그다음엔··· 알아서 해· 하고 싶은 걸 하고 인생을 즐겨· 자 마탑주님 따라서 이동!”
짝짝· 박수를 치고 저어기 서성거리는 유나를 가리켰다·
센트라는 내게 꾸벅 인사하고는 유나를 따라서 골목길로 사라졌다· 그녀가 있었던 자리를 내려다보니 기쁨의 눈물 몇 방울이 떨어져 지면이 축축하다·
감정-표시 기능과 유사 체액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모양이군· 아마 입을 벌리면 축축하게 침도 나올 거다·
무얼 숨기랴· 본방까지는 못 가더라도 키스 정도는 마음껏 해 두라는 의도다· 해당 구강구조와 입술의 감촉은 서큐버스 여왕이 갖고 있던 수많은 데이터를 참고해서 구현했다·
그래 터져 죽은 서큐버스 여왕의 정보에는··· 어마어마한 관련 데이터가 있었다· 내 유일한 약점이 극복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무엇이냐?
개연성을 처리해 주고 내 할 일을 마저 하는 것이다· 이리드는 센트라에게 던져주고 나는 북부대공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한다·
센트라가 별개의 인격체로 존재한다면 평행세계니 헤어질 운명이니 어쩌구저쩌구 길게 말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아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
이러면 ‘러브’라는 새로운 인물을 꾸며내어 눈 가리고 아웅 할 필요도 없다· 센트라와 하트가 분리된다면 러브가 하트여도 전혀 문제가 없다·
슬쩍 살핀다·
AI 부활 사건에 놀라 탈주하고 30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북부대공과 이리드는 아직도 우중충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손가락을 까닥여 환상 마법을 자아낸다· 로프 건이 쏘아지는 소리와 센트라의 뛰어가는 소리· 바로 입질이 왔다· 이리드가 벌떡 일어난다·
모퉁이를 도는 방향으로 슬쩍 센트라의 흔들리는 머리까지 보여주고 나면·
“···나는 이만 가 보겠다· 급한 일이 생겨서·”
“잡지 않겠다· 변명거리를 댈 필요도 없으니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그리고 아이를 가지는 건 신중하게 생각해라· 내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는 허락하지 않겠다·”
“부디 급한 일이 사제에게 진단을 받으러 가는 것이기를 바라지·”
이리드를 무대에서 쫒아냈다· 저쪽은 이제 센트라의 몫이다· 그리고 교대하듯이 빵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이야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내가 들어오자 북부대공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나는 멋쩍은 듯이 운을 뗐다·
“저 오래 기다리셨죠···?”
“하트 무슨 일이 있었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해주시오·”
“갑작스러운 급한 일이 생겨서요· 조금 느긋하게 재회를 즐기고 싶었는데··· 역시 사람 일은 맘대로 안 풀리는 법인가 봐요· ‘데이지’·”
그 대사로부터 무언가를 읽어 낸 북부대공의 표정이 변한다· 나는 하트라는 이름을 구태여 부정하지 않았다·
재회를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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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 몸짓 그 목소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환상의 여인이 스스로 자취를 감출 수는 있을지언정 엘빌리온 율리우스의 머릿속에서 떠날 수는 없었다·
사람은 사람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하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엘빌리온 율리우스의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었고 서릿발치는 겨울의 한켠에 봄을 심어두었다·
북부대공은 마음속 봄의 조각을 여태껏 소중히 가꾸어오고 있었다· 그 감정은 신앙과 닮았다·
그러니 신성도시에서 마주한 하트의 모습은 사뭇 달랐으나 그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봄이 이토록 반응하였으니까·
“하트가 아니라 러-브에요·”
그녀는 어설픈 가명을 써가며 부인했지만·
하트는 예전부터 장난기가 많았다· 사람의 의표를 찌르며 마음을 흔들어 놓고 웃는 소악마 같은 구석이 분명히 있었다· 세월이 지났다고 한들 그 본성이 달라지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니까 이 또한 ‘장난’의 연장선이리라· 그래서 적당히 어울려 주었다·
정신나간 2황자가 끼어들었을 때도 하트의 장난에 당했다면 그럴 만도 하다고 납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여러 남자를 울렸으니 황자라고 다르겠는가·
···아니 하지만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는 건· 그래도 조금 너무 가지 않았나·
하지만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하트는··· 달랐다· 2황자 이리드는 그녀의 감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북부대공은 알 수 있었다·
“저 오래 기다리셨죠···?”
저 철저한 연기의 안쪽에서 하트는 무척이나 기분 좋게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엘빌리온 율리우스에게는 보였다·
그래서 그녀의 연기에 어울려주기 위해서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을 했을지언정 속으로는 마음을 놓고 물어볼 수 있었다·
“하트 무슨 일이 있었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해주시오·”
“갑작스러운 급한 일이 생겨서요· 조금 느긋하게 재회를 즐기고 싶었는데··· 역시 사람 일은 맘대로 안 풀리는 법인가 봐요· ‘데이지’·”
그리고 돌아온 답은 유쾌했다·
하트는 허울뿐인 가명을 버리고 자신을 인정했다·
30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사이에 일어난 ‘모종의 일’이 그녀가 하트라는 이름을 댈 수 있게 했다· 그렇다면·
사소하고도 오랜 약속을 꺼내 들 수 있게 된 거다·
엘빌리온 율리우스는 낡은 손수건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 위에는 어설프게 그려진 여신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하트가 직접 그린 것이다·
“기억나시오? 그대는 내게 ‘자신에게 보다 솔직할 필요가 있다’며 약속의 증표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쪽은 벌을 받기로 했었지·”
“···아직도 가지고 계셨어요? 한참 전이잖아요·”
“나는 이 손수건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으니 우리는 처음 재회한 순간부터 약속의 증표 앞이었소·”
“이런 그렇다면 제가 벌을 받을 차례네요· 그러면··· ‘데이지’가 가장 궁금해할 비밀을 알려드릴까요? 그걸 바라는 것 같은데·”
그녀는 놀란 눈으로 손수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뱀같이 웃었다· 그리고 북부대공이 바라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하트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저를 많이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흔적은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겠죠··· 그렇죠?”
“그렇소·”
“못 찾는 것도 당연해요· 저는 그 당시에··· 저 드높은 하늘 위의 천상 궁전에서 여신님의 곁에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
신기한 걸 보여드릴게요·
하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톱니바퀴 : 날씨맑게하기_수정본_ver·2_최종』· 천재 마법사의 기예가 하늘을 움직이자 맑고 화창하던 하늘에 갑작스럽게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쏴아아아아──!!
그리고 세상을 쓸어낼 것 같은 소나기가 10초·
그 뒤에는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었다· 언제 비가 쏟아졌냐는 듯 하늘은 맑았으며 소나기의 흔적은 지면의 축축함과 사람들의 투덜대는 소리뿐·
신성도시 트럼펫홀은 여신의 위광 아래에 보호된다· 적탑이나 청탑의 고위 마법사는 잠깐의 소나기를 내릴 수 있겠으나 신성 도시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녀는 했다· 그 사실은 아주 많은 것을 의미했다·
비가 그친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다· 그 위치가 절묘하게도 그녀의 배후였던 터라 마치 총천연색의 날개가 펼쳐진 것처럼 보였다·
하트는 손을 앞으로 모으며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저는 여신께서 지상으로 내려보낸 천사 가브리엘이에요· 신성도시 트럼펫홀의 타락과 방종이 임계치에 이르렀으니 도시 사람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러 왔어요·”
그렇다면 모든 의문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대공의 힘을 써도 찾을 수 없었으므로 이상하게 여겼으나 여신의 대리인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북부대공 엘빌리온 율리우스는 팽팽하게 당겨진 듯한 긴장과 함께 조심스레 추억의 진의를 물었다·
“···천사 라· 그렇다면 수도에서 나타났을 때도 여신의 명을 받고 내려온 것이오?”
“아뇨 그건 취미····”
“·······”
“그런데 곧 신벌 터질 것 같은 건 진짜거든요? 제가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쭉 설명해 드릴게요· 아무리 우리 사이가 끈끈했어도 그리고 제가 여신의 힘을 빌려 쓸 줄 알아도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니까· 그쵸?”
하트는 하트였다·
엘빌리온 율리우스는 한숨으로 긴장을 흘려보내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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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드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추억하게 하는 흔적을 쫒아 달렸다·
그리고 그 끝에 마침내 눈에 담았다·
흑단과도 같은 머리카락과 바다를 담아낸 것처럼 푸른 눈· 그녀가 눈앞에 서 있다· 로즈마리 향기와 함께·
초상화가 아니다· 그녀에게는 살아 숨 쉬는 자의 생동감이 깃들어 있었다· 거짓말처럼·
“·······”
이 순간을 얼마나 바라왔던가· 매일 밤 꿈에 그렸다· 수십 수백 번이나 이 장면을 상상하고 재회의 말을 준비했었다·
그렇기에 두렵다· 이 모든 게 꿈이나 신기루일까 봐·
제발 꿈이라면 깨어나지 말아다오· 이리드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입술을 떼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센트라·”
“···이리드·”
그가 망설이고 있을 때 먼저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센트라였다· 감정을 품은 AI는 2황자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센트라는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축제 즐겨볼까요?”
“·······”
후회는 없었으나 아쉬움이 남은 그날의 연장선·
그제야 이리드는 지금이 꿈보다 달콤한 현실임을 알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일 다들 푹 쉬고 월요일날 다시 만나는 거예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마이 프렌즈· 모레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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