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0
덜그럭 덜컹·
값싸고 낡고 무척이나 덜컹거리는 마차가 오솔길을 따라 죽 달렸다· 마차를 끌고 있는 건 늙은 노새였는데 이동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진지하게 너보다 내가 더 빠르겠어·”
“푸르륵·”
“얘한테 눈치 주지 마슈· 이 나이 먹고 이만치 달리면 열심히 하는 거지·”
“눈치 주고 싶었던 건 맞는데 어차피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은데요·”
노새는 귀를 심드렁하게 파닥거렸다· 네가 뭐라고 하든 자기 페이스대로 가리라는 고집이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산보 정도의 속도로 걷는 주제에 심심하면 갓길에서 풀을 뜯거나 용변을 보는 탓에 그마저도 느렸다·
덜커덩 덜컹·
“아휴····”
나는 지붕 없는 마차에 발라당 누웠다· 하늘이 죽이게 시퍼렇고 구름도 예쁘다· 하지만 내 마음은 갑갑하기만 하다·
딱히 노새가 느려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 숲길에서 마차라도 발견한 게 행운이다·
이마저도 없었더라면 직접 두 발로 한참 걸어서 적탑을 찾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근처 지리도 모르고· 이 정도면 운수 좋은 날이라는 걸 안다·
다만 조금 조바심이 나서 그렇다·
우우웅- 피익·
마력을 끌어올려도 시원찮다·
원래는 다른 괴물들처럼 빵빵한 엔진은 아니었어도 남들 돌아가는 만큼은 끌어올려졌었는데 지금은 마력기관의 출력이 말이 아니다· 늙은 노새다·
30분할이 났는데 마법 능력이 예전 같기를 바라는 건 욕심인가?
뭐 괜찮다·
흩어진 데이터들만 다시 모으면 회복될 능력이고 갑자기 능력 리셋 이벤트를 겪었어도 나는 나다· 세상에 감사하면서 살자·
그렇게 급한 일도 없다· 신성도시 건은 알아서 잘 풀리고 있을 테고····
마지막까지 강제 텔레포트를 버티면서 관측한 결과 ‘그것’은 내 몸뚱이와 함께 신성도시에 얌전히 남아 있었다· 내 생각에 조금 보안이 흔들릴지언정 그게 세상에 풀려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옆에 유나가 딱 붙어 있다는 것도 안심 포인트이지만·
‘그것’을 억제하는 것은 내 미쳐버린 성능의 연산능력이었다· 때문에 나는 몸을 정보로 바꾸어가는 과정에서 일부러 머리는 배제했다·
동시에 『모듈』들을 하나하나 지정하여 분할 최대한 몸을 남겨두는 선에서 정보화된 부분만 『강제추방』의 대상이 되도록 했다·
따라서 내 몸뚱이의 연산능력 소실은 거의 없다· ‘그것’의 봉인은 안전하다는 의미이다·
즉·
“···억 단위의 암산이 이제 안 되네·”
몸뚱이에 연산능력을 몰빵했으므로 떨어져 나온 내가 좀 바보 멍청이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게 일반인이 바라보는 세상인가· 가끔씩 종이비행기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격추하는 게 소소한 취미였는데 이제는 풍향 계산이 조금 어렵다· 아쉽게 됐다·
계산능력과 마력이 날아가 버린 내게는··· 뭐가 남지?
이히히히힝-!!
“크하하하! 거기 멈춰라! 이곳은 우리 산적단이 지배하는 길이니 이용료를 내야지!”
“아이구 노새 끌고 다니는 농부한테 돈이 어디 있겠슈!”
“이용료를 낼 수 없다면 옷이라도 벗어서 내놓아라! 마차도 버려두고 가!”
뭐가 남긴·
나는 갑작스레 출몰한 산적 무리들 앞에 당당히 나섰다· 그리고 입술을 한번 핥아서 적신 뒤에 컨셉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자 산중호걸 형님들· 제 말을 10분만 들어보시면 생각이 좀 달라질 겁니다·”
“······?”
혓바닥만큼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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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그마한 길을 막아서서 돈도 안 될 것 같은 작은 마차를 습격한다는 건··· 세력이 무척이나 작은 산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무장 상태도 좋지 않고 쪽수도 셋뿐이지 않던가·
눈치를 보니 농민이 산적으로 전향한 케이스인 것 같았다· 살기 팍팍하니 칼 한 자루 들고 산길로 내려온 거겠지·
그래서 공감 전략으로 갔다·
나는 서글픈 농민의 애환을 녹여낸 썰풀이를 통해 삥을 뜯으려는 산적으로부터 지원금 몇 푼을 받아낼 수 있었다·
“어흐흑···! 부디 네 여동생이 낫길 바란다!”
“예 살펴 들어가십쇼 행님!”
나는 90도 인사로 사라져가는 산적들을 배웅했다· 이렇게 적당히 여비를 챙길 수 있었다· 마차값은 지불할 수 있겠군·
마부는 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대서사시에 무척이나 걱정하며 딱한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정말로 여동생이 중병에 걸렸슈?”
“당연히 구라죠·”
“···허 세상을 맨몸으로 다니는 이유가 있었구먼·”
그래 마법 능력은 낮아졌어도 내 경험과 지혜만큼은 오롯이 남아 있다· 게다가 TRPG를 위한 테크닉들도 손실된 부분 없이 온전하다·
덜그럭 덜커덩· 마차는 운행을 재개했다·
늙은 노새는 조금 전의 산적 습격으로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이전에 비해서 이동속도가 1·5배가량 빨라졌다· 좋은 일이다·
이후로는 별일 없었다· 친절한 마부는 나를 근처 도시에 내려주었고 나는 도보로 적탑까지 도달했다· 자탑보다도 세 배쯤 큰 사이즈가 인상적이었다·
자 어쩔까·
100%의 나였더라면 악신쨩처럼 태연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나는 가진 재주가 상당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지나가던 승화맨이 내게 칼침을 놓지 않고서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지지는 않는다·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무섭다· 저런 산적 정도는 말이 안 통했어도 처리할 수 있었지만 만약에 오우거나 청소 골렘 같은 괴물을 만난다면?
그대로 세상과 작별이다·
내게는 흉흉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니 유나와 유리가 나를 찾아주기를 기다릴 겸 그녀들에게 연락도 넣을 겸 유사시에 필요한 전투력 보충을 위해서·
나는 적탑의 마법사가 되어 화염 마법을 배우기로 했다·
적탑의 문지기-마법사에게 다가가자 반응이 있었다·
“누구세요?”
“저 마법 배우러 왔는데요· 혹시 적탑 입문 가능한가요?”
“···그게 이렇게 무작정 온다고 되는 게 아닐 텐데? 돌아가세요· 이렇게는 마법사 못 돼요· 추천서든 금이든 둘 중 하나는 가져와야지·”
“아 그래요?”
그런데 너 말이 통하잖아·
“혹시 마법진 하나에는 마법진 네 개 분량의 마력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응···?”
·······
나는 성공적으로 적탑의 견습 마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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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파의 마법을 공부하면 숙련도 보너스가 초기화된다·
그건 한 영혼이 두 개의 우화를 발현할 수 없는 것과 맥락이 같다· 환상 마법에 익숙해진 마력기관으로 화염 마법을 쓰려고 하면 기존의 최적화된 구조가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참아왔다· 골렘에게 패배하는 수모를 겪고도 환상 마법 외길을 걸었다· 그거 잠깐 서럽다고 내 환상 마법 숙련도를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특수한 정보 생명체· 버리고 싶은 부분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적탑에서 화염 마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서 집으로 귀가한 뒤에 남겨두고 온 육신과 융합하기 전에 필요 없어진 화염 마법을 ‘삭제’해버리는 거다·
이러면 먹뱉이 가능하다·
배신이 아니다· 나는 환상 마법을 결코 배신하는 게 아니다·
나는 홀로그램에 물리력 넣겠다고 뼈 빠지게 연구하는데 남들은 딸깍 한 번으로 파이어볼 쏘고 다니는 걸 부러워했던 적은 절대로 없다·
금탑의 골렘 조종을 갈고 닦았으면 굳이 환상 마법이 아니었어도 리얼한 TRPG가 나오지 않았겠냐는 사악한 의심은 내 마음에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러니까 조금만·
아주 살짝만 해 보는 거다· 그냥 잠깐 화염 마법의 맛만 보고 나올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익히는 거지 절대로 화염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눈앞에 표적이 있다· 적탑에는 편의시설로 사로와 표적이 제공되고 있었다· 그래 쏴서 부숴야 하는 야만적인 마법이니까 이런 시설이 있는 건 당연할지도·
두근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묘한 배덕감이 느껴진다· 나는 진짜로 다른 학파의 마법을 써버리는 거구나····
배운 화염구 주문에서 걸리적거리는 부분을 다 뗀다· 최적화가 안 된 것들을 바로잡고 내가 쓰기 편하도록 커스텀도 마쳤다· 그리고 이제····
“『미니 불작살』·”
슈우우우욱·
붉은 잔광을 남기며 쏘아진 화염 작살은 후미의 추진체로 2차 가속하여 표적에게 정확히 착탄했다·
그리고 환상 마법에서는 나지 않는 폭음이 들려왔다·
콰앙──!!
아·
짜릿하다·
부쉈다· 딸깍 한 번으로· 이렇게 편하게·
저질러 버렸다·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끊임없는 피드백과 마력 안정화 조율을 하지 않고도 마법에 실체가 있고 심지어 표적을 부술 수도 있다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리고 이 타격감은····
버그다· 밸런스 패치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당장 누군가에게 제보해서 이걸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이 마법이 내 거라는 거잖아·
“흐 흐흐····”
나도 남자다·
당연히 커다란 전함과 커다란 대포에는 관심이 있고 짜릿한 화력은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버린다· ‘너무 큰 폭발은 없다’· 나는 이 명언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 얻었다!
“하 아하하하하하하──!!”
나는 한바탕 후련하게 웃었다· 그렇게 즐거움을 토해내고 나면 빈자리에는 묘한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조금 더·
조금 더 큰 폭발·
이 세상은 너무 위험하다· 조금 더 스펙업을 하자· 적어도 오우거를 한 번에 지워버릴 정도의 화력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탑에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연구실이 필요하다· 작고 아늑한 연구실이·
“어이 신입! 멋대로 사격장을 쓰면 안 돼! 사격장 이용은 3년차부터고 엄연히 여기도 위계질서가 있····”
“연구실·”
“···?”
“연구실 내놔──!!”
나는 선배 마법사에게 ‘제가 급히 연구할 건이 필요한데 혹시 당신의 연구실을 빌려 써도 되겠습니까?’라고 정중하게 물었고·
다행히도 적탑의 선배는 너그럽게 허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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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학생 셀비어는 간만에 적탑으로 돌아왔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는데 신성도시 트럼펫홀에서 벌어진 대사건 때문에 제국 전역이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인력부족을 실감한 황실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아카데미의 교수진들마저 끌어다 썼다·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강의가 휴강 상태가 되었고 학생들은 의도치 않은 미니-방학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셀비어는 아카데미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지팡이로 사람 패는 법도 그렇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역시 『환상 마법 대응』이다·
과목의 의의는 ‘환상 마법에 대처하는 법을 익히자!’ 였지만 어떤 미친 마법사에 의해서 ‘끔찍한 촉수 미궁이나 다가오는 벽 위험한 던전 속에서도 싸우는 법을 익히자!’ 로 변질되었기에·
어떻게 보면 알차게 배웠고 어떻게 보면 더럽게 힘들었다·
“···으흐으으·”
셀비어가 얕은 한숨과 함께 배낭을 내려 두고 뻐근한 어깨를 빙빙 돌려 근육을 풀어주고 있으려니· 그녀와 면식이 있는 적탑 마법사가 말을 걸어왔다·
“야 셀비어··· 마탑에 미친 새끼 한 명이 들어왔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잖아? 이번엔 또 어떻길래 그래 적탑주님한테 첫날부터 고백을 박았던 제스랑 비슷한 느낌?”
“말도 마 그 정도가 아니야· 마탑에 들어온 첫날부터 선배 연구실을 뺏고 3급 비품창고를 멋대로 싹 털어가더니··· 이제는 후우· 직접 봐·”
적탑의 마법사는 설명이 곤란하다는 듯 복잡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고는 셀비어를 적탑 동부 시설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폭발 또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형제님· 저희는 폭발과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였습니다· 폭죽으로 은하수를 만들 수 있다면····”
“저희 마법에 죽어갈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가시는 길을 화려하게 보내 드려야 여한이 없을 텐데· 저희는 살상마법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장례의 가치를 탐구할 때가 온 겁니다!”
“폭발아 혹시 내 말 들리니? 괜찮다면 내가 너랑 대화를 나눠도 될까?”
웬 미친놈들이 수상한 사이비 집회를 열고 있었다·
“봐봐 그 미친 새끼가 하나둘 사람을 포섭하더니 이 꼴을 만들어 놨다니까! 그런데 그게 듣다 보면 또 틀린 소리는 아닌 것 같아····”
“·······”
좀 익숙하다·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뒤틀어놓는 어딘가 맛이 간 마법사라···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듣자 하니 신성도시로 출장을 갔다 하던데·
셀비어는 폭발 신앙에 심취한 마법사들 사이를 지나 그들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설마설마하던 미친 마법사가 있었다·
“···교수님 여기서 뭐 하세요?”
“아·”
“진짜 뭐 하고 있는 건데요 왜 적탑에 있는 건데?!”
환상 마법의 대가라서 아카데미 교수까지 하던 양반이 왜 적탑의 신입 마법사가 되어 이상한 짓을 벌이는지 셀비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간만에 이 시간에 뵙네요 마이 프렌즈· 오늘은 하이퍼 얼티밋 미라클 모닝을 한 김에 살짝 일찍 와봤습니다·
내일은 평소대로 그 언저리 시간에 뵙겠습니다·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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