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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Chapter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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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51

핏물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순수한 힘의 크기만으로 시조와 비견되었던 역사적인 엘더 여백작 에르제뷔트가 우리를 향해 느긋하게 다가오고 있다. 엘더와 맞서게 된 나는 낭패한 얼굴로 말했다.

“마담 에르제뷔트. 우리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서로 인사만 나누고 웃으면서 헤어질까요?”

“불가하지요. 시조께서는 당신을 정녕 특별하게 여기는 듯하니.”

탁. 접선을 접은 에르제뷔트는 넘치는 혈기를 옷처럼 둘렀다. 평범한 인간은 손가락만 놀려도 짓눌릴 것 같은 거대한 힘이 그녀에겐 가볍게 느껴진다.

그만한 힘을 갖고도 티르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을 느꼈는지 나를 노리고 있다. 이거 참 등골이 서늘해지는걸.

“하나 애첩인 당신은 전혀 시조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더이다. 후훗. 권력을 노리고 시조를 홀리다니… 정녕 경국지색의 애첩이로군요. 그래도 시조께선 여전히 미련이 있을 터이니. 그대라면 시조의 공격을 막을 훌륭한 방패가 되겠지요.”

그것도 인질로 삼으려고.

뭐 나는 개방적인 사람이라 인질이 되는 것 자체에 큰 거부감은 별로 없다. 힘 없는 사람은 그렇게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면 좋으니까.

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티르는 내가 개입한 탓에 소망을 얻고 이 상황에 처했는데 인질이 되어 바람을 이룰 기회를 놓친다고?

어림없는 소리. 그래서야 어디 가서 소원을 들어준다고 말도 못해. 나는 즉각 말대꾸하고 나섰다.

“특별하지 않다고요? 누가 그래요? 제가 티르에게 준 게 얼마고 받은 게 얼만데.”

“기만은 거기까지만 하시죠 인간의 왕.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시조께선 아무것도 모를지 몰라도 우리는 그토록 순진하진 아니하니.”

“그러는 당신은 나에 대해 뭘 아는데요? 주워들은 것 가지고 아는 척하는 당신은 뭐 좀 더 특별해요?”

지들이 독심술사인 줄 알아. 아는 척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다고.

“누가 들으면 인간 사이에는 경중이 없는 줄 알겠어요. 능력 하나로 죽음에서 되돌아와 흡혈귀라는 존재를 만들고 인간 수천수만 명을 죽이고 그 피를 취했으며 흡혈귀를 이끌고 나라까지 세운 시조 티르칸쟈카. 거기다 예쁘고 순수하며 강렬한 소망을 품고 있던 티르가 당신보다 덜 중요해 보여요?”

인간의 왕에게는 같겠지. 그러나 나는 반쪽짜리 인간의 왕이다. 달리 말하면 관념적인 존재인 짐승의 왕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소리.

나는 내 주변 인간의 생각밖에 읽지 못한다. 다른 짐승의 왕은 종을 아우르고 그 관념을 가지지만 나는 평범하고 약하며 대표할 수 있는 건 주변 몇 명이 전부다. 능력의 한계가 나에게 인간의 왕답지 않은 우선순위를 만든다.

그러니까 가까운 사람에게 더 정을 느낄 수밖에 없어.

“인간의 왕이고 자시고 당신을 위해 인질이 되어주진 않아요. 티르의 편을 들면 모를까 늙고 못생기고 티르를 질투하기만 하는 당신 도움이 되고 싶진 않거든요.”

“…질투? 소첩이 시조를?”

“맞잖아요? 설마 부정할 리는 없겠죠? 당신 행적은 역사책에도 낱낱이 적혀있는데.”

힐데가 눈으로 제발 좀 닥치라고 외치고 있다. 그렇지만 뭐 저쪽도 그냥 보내줄 생각 없어 보이고.

궁금하잖아? 감정이 없다는 흡혈귀를 긁었을 때 뭐가 튀어나올지.

“당신은 인간일 적에도 사람을 죽인 뒤에 피를 잔에 담아 마셨잖아요? 흡혈귀가 피를 마시니까 그들처럼 되고 싶어서. 그것도 모자라서 굳이 피로 욕조를 채워 목욕했죠. 매끈하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가 부러우니까.”

“…지레짐작은.”

“지레짐작도 역사학자들이 수백 년에 걸쳐서 해내면 학문이에요. 당신 같은 늙다리는 너무 틀에 박혀서 낱낱이 해체되었다고요.”

에르제뷔트가 위협적으로 접선을 펼치고 입가를 가린다. 폭발하기 직전 감정을 꾹꾹 눌러담고 있다는 신호다. 얼마 안 있으면 터질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불을 붙여주기로 했다.

“티르가 부러웠죠? 아름답고 강력하며 두려움 그 자체인 시조처럼 되고 싶었죠? 배신을 주도하고 티르의 피를 취하려고 한 것도 시조가 사라진 자리를 취할 기회였으니까? 정말 너무 투명하게 속이 시꺼멓잖아요. 불로불사에 권력욕까지 완전 ‘틀’에 박힌 인물상이네요.”

“후후후. 그딴 저급한 도발에 제가 흔들릴 것 같나요?”

“저에게는 이미 티르가 있는데 댁 같은 늙다리에게서 뭐 떨어질 게 있다고 흔들어요? 비듬?”

내 언변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에르제뷔트는 내 의도를 그대로 따라주었다. 

“죽여버리겠어요.”

흡혈귀는 감정이 없다곤 하지만 글쎄. 애초에 감정이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 붙이는 구실에 불과하다. 흡혈귀가 지금까지 감정이 없다고 알려진 건 시조 티르칸쟈카가 그들의 피를 지배하여 억압하고 있던 탓. 티르가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면 에르제뷔트를 뭐라고 놀려도 반응조차 안 했겠지. 에르제뷔트를 욕했다고 티르 기분이 나빠지진 않으니.

그런데 지금은?

“살려서 시조께 갖다 드리려고 하였는데 마음이 바뀌었어요. 여기서 죽고 당신의 목을 진상하겠나이다. 살아있지 않아도 시조의 마음을 어지럽히기에는 충분할 터이니.”

애초에 에르제뷔트는 나를 잡을 셈이었다. 살릴지 죽일지 여부는 취향 차이. 각자 장단이 있다.

그리고 조금 전 내 발언으로 에르제뷔트는 ‘취향’을 조금 바꾸었다. 죽이는 쪽으로.

이게 감정적인 선택이지. 뭐가 감정이겠어?

핏물이 퍼진다. 땅에 벽에 온갖 물건에 덩굴처럼 감겨오른다. 꿈틀거리는 핏물이 점점 뻗어나가는 모습은 마치 새로 핏줄이 돋는 것 같아 소름이 다 끼쳤다.

혈기를 억지로 흘려보내 지배한다. 권력욕의 화신 에르제뷔트는 제 성질을 반영하듯 혈기를 이용해 지배력을 발휘한다. 붉게 물든 벽돌 희끄무레한 가로등 탁자와 의자가 뚜벅뚜벅 걸어서 다가온다.

일인군단. 태양 말고는 대적할 게 없다는 권능을 홀로 휘두르며 에르제뷔트는 부채를 뻗었다.

“도망쳐보세요 인간의 왕. 피덩굴의 세상에서.”

그리고 도시가 나를 향해 기울어졌다.

농담이 아니다. 시장 거리에 있던 모든 집기는 물론이거와 건물에 벽까지 나를 짓누르려고 한다. 인간의 기교 따윈 하나도 없는 순수한 힘의 격류가 몰아친다. 달아나려고 몸을 돌리는데 그 순간 벽이 접히면서 내 퇴로를 틀어막았다.

흡혈귀처럼 신비를 가진 족속들은 상대하기 어렵다. 심리전? 그것도 가진 패가 엇비슷할 때나 하는 거다. 하물며 불사의 흡혈귀는 아예 판돈이 다르다. 내가 아웅다웅 점수를 따도 상대방은 푼돈에 불과하니.

다행인 건 1:1은 아니라는 점.

“아이 씨! 이 쓸데없는 아버님! 진작 지게에 메고 뛰쳐나갔어야 했는데!”

힐데가 내 손을 잡아끌면서 동시에 기공을 담아 벽을 세게 걷어찼다. 폭사경 폭발의 성질을 가진 기공이 안쪽에서부터 벽돌을 날려 보냈다. 한순간 드러난 틈으로 나와 힐데가 몸을 던졌다.

도망치는 사람들 비명 지르는 사람들 아무것도 모른 채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 거리에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드글드글했다. 저 무리를 빠져나가는 건 독심술이 있다고 해도 어렵다.

“인파 속에 숨을까요?”

“에르제뷔트라면 다 죽이고 그 피까지 쓸 거예요! 가능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

힐데와 나는 벽을 짚고 빙글 돌았다. 모퉁이 너머로 내달리는데 발뒤꿈치를 깨물듯이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흘긋 돌아본 나는 새빨간 핏물이 급류처럼 밀려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흡혈귀의 땅. 인간의 왕이라도 이곳에 온 이상 가축과 마찬가지.]

에르제뷔트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양쪽 벽을 타고 핏물이 주르륵 뻗어나간다. 에르제뷔트 자신이라면 몰라도 그녀의 권능은 명백히 우리보다 빠르다. 하물며 지배의 매개체는 피. 다른 것이었다면 막거나 벨 수 있겟지만 벽돌 사이사이를 스며드는 피는 마땅히 대적할 수단이 없다.

“성검 착검.”

물론 내 이야기다.

‘상대는 흡혈귀. 그렇다면 ‘제’가 취해야 할 행동은~.’

힐데가 가슴 사이에서 빛을 뽑아냈다. 점멸하는 빛은 검이라기보다는 벼락처럼 보였다. 형태 없이 일렁이던 성검은 힐데가 마음속으로 하나의 상을 그리자 점차 압축되었다.

‘‘나’는 성기사. 사특한 빛을 베어내는 신의 검. 저주받을 흡혈귀에게 천벌을.’

자신의 신앙을 제련하여 만들어낸 형태는 커다란 양손검. 힐데는 커다란 성검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크게 휘둘렀다. 후웅 거대한 참격이 바람을 가르며 혈류가 흐르는 벽을 베었다.

벽은 멀쩡했다. 그렇지만 벽을 따라 흐르는 혈류는 그렇지 못했다. 빛에 그을린 혈기가 새카맣게 변색되어 자국이 되었다. 혈류는 더 흘러들어오지 못하고 막혔다.

[…성기사?]

“굳건한 믿음은 오직 악만 베나니. 빛 아래 그을릴 시간이다 흡혈귀.”

힐데의 기백이 바뀌었다. 양손검을 치켜든 채 굳건하게 서 있는 모습은 진정으로 신에게 선택받은 기사처럼 보였다.

간호사복을 입은 채라서 좀 이질감은 들었지만 어쨌든.

[이 땅에 성기사를 데려오다니…. 아니 성기사가 이 땅에서 신앙을 숨기고 있었다니?]

원할 때만 성기사가 되는 힐데는 천년을 산 흡혈귀도 놀라운 모양이다. 뜻밖의 상황에 잠시 상대를 가늠하던 에르제뷔트는 이내 공격을 재개했다.

[죽여야 할 게 하나 더 늘었을 뿐. 신앙도 성기사도 이 땅에서는 가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드리지요.]

혈류가 방향을 바꾸었다. 우리를 따라오는 대신 우리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며 주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힘과 무게로 짓눌러버릴 심산이다.

점차 다가오는 혈기에 맞서 힐데는 빛을 더욱 밝게 일으키며 외쳤다.

“사특한 흡혈귀 따위가 신앙을 논하다니. 빛으로 불태워주마! 천신이시여 드높은 천상에서 ‘저’를 지켜보소서!”

‘그래도 한때 성검대에 몸을 담은 보람은 있네요. 하아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진 건 아니지만요.’

신이 없어서 다행이다.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건 듣기 좋은 말에 속아서 보상을 팍팍 뿌려대는 치매 노인네와 다를 바가 없으니까.

곧이어 휘몰아치는 피의 소용돌이가 온갖 물건을 머금고 날아왔다. 벽돌 의자 집기 접시는 물론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단도와 날붙이까지 은밀하게 날아들어 나와 힐데를 노렸다. 힐데는 더욱 큰 빛으로 폭풍에 맞서 싸웠다. 빛이 피를 그을 때마다 검붉은 궤적이 쩍쩍 갈라져 떨어진다.

그러나 혈기는 막을지언정 그 안에 담긴 물리력까지 다 상쇄할 수는 없다. 힐데는 날아드는 벽돌 몇 개는 몸으로 받아내야 했고 기공으로 막아 다치진 않았지만 그 충격에 뒤로 점차 밀려났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운신할 수 있는 영역이 점차 좁아졌다. 굳건히 버티던 힐데는 검을 꼭 쥔 채로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천신이시여…. 이게 다죠? 에라이. 때려 쳐요! 아버님 신에게서 뜯어낼 수 있는 건 이게 한계에요! 뭐 다른 수 없어요?!”

“잠시만요. 개량 중이에요.”

“무슨 개량이요?”

“품종이요.”

드루이즘은 다루기 까다롭단 말이지. 그래서 거의 쓰지 못했는데. 이제 조건이 좀 충족되었다.

딛고 있는 건 땅. 마실 것은 피. 흐릿한 햇빛 대신 혈기 속 마력으로 충당한다.

남쪽 어느 땅에는 짐승을 먹고 자라는 식물이 있다. 이빨처럼 생긴 잎사귀로 짐승을 잡아채고 그 위에 뿌리를 내려 체액을 빨아먹는다. 흡혈귀가 존재하기 전부터 피를 마시던 풀에서 가지를 뻗는다.

무성한 덩굴식물은 제 홀로 서는 대신 다른 풀에 기대 자라는 법을 익혔다. 표면을 뒤덮어 햇빛을 빼앗고 그것을 양식 삼아 자란다. 덩굴에서 가지를 뻗는다.

대드루이드 네비다의 근원의 나무 서로 다른 가지에서 뻗어나간 두 열매. 그 둘을 서로 접목한다.

겹쳐있는 건 두 장의 카드. 스페이드 10과 9. 손끝으로 스페이드 9를 밀어낸다.

그와 동시에 피를 잔뜩 머금은 붉은 덩굴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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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OFPV, 전지적 1인칭 시점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 a mere con artist, was unjustly imprisoned in Tantalus, the Abyssal Prison meant for the most nefarious of criminals, where I met a regressor. But when I used my ability to read her mind, I found out that I was fated to die in a year… and that the world would end 10 year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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