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8
인간과 짐승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
지구력? 이족보행? 마력? 셋 다 맞는 말이지만 제일 큰 건 바로 머리 즉 지능이다.
인간은 다른 짐승보다 유독 지능이 발달되어 부족한 신체 능력을 최대한 덮었다.
다양한 언어 또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며 그 언어를 기반으로 수많은 문명을 쌓아올렸다.
마력도 인간을 먹이사슬 최강자에 올리는 데에 큰 역할을 했으나 지능만큼은 아니다.
리제나 로드 같은 괴수를 제외하고 당장 나조차 도구가 없으면 실력이 급감하는 편이다.
지능을 기반으로 둔 도구의 발달. 특히 ‘창’의 발명은 전투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었다.
“아마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 있을 거다. 힘을 사용하는 것도 일종의 방법인데 어째서 감점이냐는 거지. 몇몇은 본인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할 테고.”
말보로가 시험 내용에 대해 더 언급했다. 사실 듣고 나서 똑같은 생각을 하긴 했다.
교수들이 어떻게든 날 견제하려고 발악하는구나라고. 하지만 막상 들으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간단하게 투척을 예시로 두겠다. 그냥 힘을 이용해 던져도 되지만 각종 기술을 담을 수도 있지. 예를 들자면 4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던지면 더 멀리 날아가는 식으로 말이야.”
저 설명을 듣고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머리를 쓰라는 거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다소 불공평한 것이 이 힘을 두고 왜 머리를 쓰냐는 것이다.
아닌 말로 맨손으로 호두를 으깰 수 있는데 망치가 필요하냐는 뜻이다.
“기말고사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전 어떤 주제를 내려주는지 알려줄 거다. 그때까지는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으니 열심히 공부하도록. 질문 있나?”
“만약 이론을 잘 세워놓고 실습에서 망치면 어떻게 됩니까?”
어느 한 학생이 좋은 질문을 꺼냈다. 이론과 실습의 간극이다.
이론이 좋아도 실습이 불가능하면 전부 의미가 없고 실습이 좋아도 이론이 부족하면 의문점을 낳을 터.
약간 코드랑 비슷하다. 이게 왜 작동이 되는 걸까? 라며 의문을 갖고 왜 작동이 안 되는 걸까? 라며 의문을 가질 것이다.
“아주 좋은 질문이다. 사실 이론의 비중이 대폭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기인하고 있지. 바로 타인이 대신 실습을 이행해줄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이 실습을?”
“그럼 사실상 반 전체가 하는 거잖아?”
혼자가 아니라 반 전체가 타인의 이론을 시험할 수 있다. 정말 훌륭한 형평성이다.
오죽하면 여태까지 불만을 품고 있던 학생들마저 눈을 동그랗게 떴을 정도. 실로 납득이 가는 이유다.
“부족한 힘을 기술로 채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쉽게도 그러면 형평성에 어긋나겠지. 반대로 마법을 쓰면 훨씬 좋은데 마법을 못 쓰는 경우도 있고.”
“…”
“아까도 말했지만 기술 및 도구의 사용은 가능하다. 무식하게 맨몸으로 바위에다가 주먹질을 하지 말고 망치를 이용하라는 소리다.”
말보로는 그리 말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뒤이어 피식 웃더니 마치 나 들으라는 것처럼 말했다.
“동방에서는 이런 말이 있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누구는 계란으로 바위를 부술 것 같아서 말이야.”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계란은커녕 맨 주먹으로도 바위를 부수는 게 가능하다.
이론의 비중이 늘어난 건 저러한 이유 때문인 모양이다. 내 존재 때문에 난이도가 대폭 낮아질 테니까.
더군다나 아카데미인만큼 실전에 가까운 주제를 내놓을 게 뻔하다. 이곳은 과학을 연구하는 시설이 아니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도록. 일주일 전까지는 평범한 수업이 진행될 테지만 중간중간 힌트를 줄 예정이다. 뭐 힌트라 해봤자 대충 어떤 게 나올지 다들 알 테지. 질문 더 없나?”
“내가 해도 되겠나?”
듣기 좋은 남자의 중저음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아주 익숙한 목소리다.
이에 고개를 뒤로 돌리니 카라스가 손을 들고 있었다. 특유의 반짝반짝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말이다.
처음에는 그가 손을 들 때마다 말보로도 흠칫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말보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해도 된다. 무슨 질문이지?”
“다른 사람이 대신 실습을 해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감점은 없나?”
“감점이야 있다. 하지만 극히 미미한 수준이지. 따지고 보면 직접 이행했을 때 가산점을 준다고 보면 되겠군. 그리고 또 한 가지.”
말보로는 좌중을 둘러보더니 강조하는 어조로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만약 한 사람에게 5명 이상이 부탁할 경우 그 사람들은 전부 0점 처리할 예정이다.”
“…”
“그러니 너무 편안하게 생각하지 말도록.”
확실히 여기 와서 느낀 거는 교수들이 매우 유능하다는 것이다.
최대한 형평성을 갖추는 건 물론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최대한 방지했다.
정치적으로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다지만 역시 교수는 교수. 만만하게 볼 사람들이 아니다.
“또 다른 질문은 없나?”
“협동은 불가능한가? 2인 1조로 이론과 실습을 각자 맡는 식으로.”
“불가하다.”
“아쉽군.”
저거 설마 나랑 같이 하려는 건 아니겠지. 나는 최대한 카라스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다른 건 몰라도 카라스는 분명 기상천외한 이론을 내세울 게 분명하다.
다 필요없고 이러한 시대상에서 공산주의를 설파하지 않았는가. 이것만으로도 답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부탁이 아니라 자의로 실습을 대신 치러줄 수 있다는 점. 이것도 알아줬으면 좋겠군. 이론이 엉터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으니까.”
“오.”
오는 뭐가 오야. 슬슬 불안해지네.
나는 뒤쪽에서 카라스가 탄성 아닌 탄성을 지르자 그를 힐긋 쳐다봤다.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미소였던지라 도통 무슨 계획을 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디 시험 주제가 쉬웠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카데미이니 상당히 어렵겠지.
“질문이 없다면 수업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다. 부디 열심히 노력할 수 있도록.”
오전 수업이 끝나고 자연스레 오후 수업으로 넘어갔다. 오후 수업은 자율 훈련.
원래 수요일마다 자율 훈련 그것도 육성자에게 훈련을 받지만 오늘은 글로리아와 크로노스가 없다.
듣자하니 잠깐 자국 쪽에 문제가 생겼다는데 둘 모두 동시에 돌아간 걸 보면 두 제국 간의 문제인 듯싶었다.
“교수들도 참 고생이다. 시바르 때문에 고생하고 있잖아.”
잠깐 휴식 중에 카라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카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늘 그랬듯이 탄탄한 복근이 드러난 복장이다. 여름이라서 옷이 더 시원해진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방금 전 나랑 격투기 훈련을 했던지라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옆에서 보니 날렵한 콧대가 더욱 돋보였다.
“그래도 최대한 형평성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계시잖아요. 사실 전 규칙을 듣고 조금 놀랐어요. 저런 식으로 형평성을 맞출 수 있구나 라고.”
“나도 그래. 5명 이상 시바르한테 실습을 맡기면 0점 처리라고 했을 때 다 조용해진 거 있지? 그거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카라가 그리 말하며 나에게 물병을 건네줬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물을 마셨다.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이 마셔야 했으니 입을 대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번 시험도 재미있을 것 같네. 주제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다들 잘하겠지. 시바르는…”
내가 물을 마시는 동안 카라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물을 마시다 말고 눈을 치켜떴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는 대답. 그 대답에 카라가 피식 웃더니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얘는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겠다. 어차피 시험도 신경 쓰지도 않을뿐더러 이론이고 나발이고 필요없으니까.”
자연스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카라. 그 손길에는 다정함과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단순한 쓰다듬 한 번만으로 입꼬리가 올라갈 것 같다. 하지만 대놓고 표현할 수 없으니 몸으로 대신 화답했다.
좀 더 쓰다듬어 달라는 것처럼 엉덩이를 카라 쪽으로 옮기는 식으로.
카라도 내 화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니에요. 이번에는 실습의 비중이 적잖아요? 그러니 이론을 잘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시바르는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니까? 그렇지?”
“응.”
점수에 신경 썼다면 벌점을 그만큼 얻지는 않았겠지. 기물 파손으로 까먹은 것만 해도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더군다나 제일 중요한 악마 침공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시험 같은 건 뒷전으로 미루어도 상관없다.
“거 봐. 시바르도 동의하잖아. 너희는 열심히 공부해.”
“…”
카라가 의기양양해하자 그레이스가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습.
하지만 여태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루나가 있다. 그녀는 곰곰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정곡을 제대로 찔렀다.
“그건 그냥 언니가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시바르랑 같이 놀려고?”
“…”
이제는 카라가 할 말이 없어질 때였다. 루나가 본심을 제대로 짚었다.
뒤이어 그레이스도 정말 그렇냐는 식으로 바라보자 카라는 머리를 긁적였다. 머쓱하다는 반응이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너 은근 예리하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속이 훤히 보이던데요?”
“눈치 없는 건 여전하네.”
“제가요?”
루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드러냈다. 저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어쨌거나 본심이 들통났으니 카라도 한 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이론을 세우는 동안 나랑 놀려는 시도는 끝났다.
“그러면 시바르 씨도 이론을 열심히 세워야겠네요.”
“근데 시바르는 가짓수가 너무 많지 않을까요? 뭘 하든 간에 다 통할 텐데.”
“음…”
루나의 말에 그레이스와 카라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냥 멀뚱멀뚱거릴 뿐이었다.
이어서 그레이스가 팔짱을 끼더니 한 가지 질문을 건넸다.
“시바르 씨.”
“응.”
“만약 시바르 씨 앞에 거대한 바위가 굴러온다고 쳐요. 그럼 시바르 씨는 어떻게 할 건가요?”
“부순다.”
“아니. 절대 부술 수 없는 바위예요.”
“막는다.”
“…”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무식하다면 무식한 답변이 내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저게 최선이자 최고의 효율이다. 굳이 피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럼 거대한 몬스터가 습격했다고 쳐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다리를 부수고 무릎을 꿇린다. 뒤를 점해 올라탄다. 머리를 부순다.”
“…”
그레이스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 저거 실제로 본 적 있어요. 망키를 죽일 때 딱 저랬는데.”
“정말 저랬어? 저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네. 5초 만에 죽였는데요?”
“이야. 대단한걸? 그러고 보니 우스크도 단신으로 죽였구나.”
“…”
루나의 증언 덕분에 그레이스는 더욱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몸이 편하면 머리가 고생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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