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8
기념일 축제가 한창 준비되는 동안 루나는 행사장 곳곳을 둘러보기 바빴다.
미리 구조를 파악해야 앞으로의 계획을 순조롭게 짤 수 있고 혹시 모를 악마들을 발견할 가능성도 높다.
사람들은 악마가 아카데미를 습격할 거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 만면에 웃음기를 띤 채 준비에 나서고 있다.
하기야 이 상황에서 누가 믿겠나. 악마가 습격할 거라고 외친다면 미친 사람 취급받겠지.
‘징조는 아주 약간이지만 보이는 것 같은데.’
징조라함은 혼돈의 숲이다. 혼돈의 숲에 출입 금지 명령이 떨어진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갔다.
본래라면 중간에 해제할 예정이었지만 악마의 등장으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로드는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괜스레 난리를 피우게 된다면 악마측에서 계획을 수정할 수도 있다고. 그래서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희생이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면모가 있다.
계획이 착착 들어맞기만 한다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을뿐더러 희생도 줄일 수 있으니.
더군다나 외부인이 밀려들어왔기에 전투 인력도 상당수 배치된 상황이다. 몬스터가 습격해도 안심할 수 있다.
‘그래도 불안한 이유는 뭘까?’
몬스터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밀려오는지도 모르고 악마가 얼마나 강한지도 모른다.
일단 적어도 파란색을 갖고 있던 사냥꾼이 정찰대였으니 그보다 높은 색이 오는 건 확정이다.
그러니까 로드나 리제와 같은 남색 말이다. 남색의 악마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지 유추하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두 분이 질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로드와 리제에 대한 평가는 이리 말할 수 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사람들.
멀리서 보면 작디 작은 봉우리처럼 느껴지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오를 수 없는 태산처럼 높다.
굳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그리 느껴졌으며 능력치를 엿 볼 때마다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로드는 신체 능력’만’ 따지면 시바르와 비슷하거나 약한 편이다.
그럼에도 대련 때마다 시바르를 어린아이 다루는 것마냥 농락하고 다녔다.
‘나는 언제쯤 그 정도로 강해질 수 있을까?’
루나는 그간 단련을 통해 단단해진 팔을 주물렀다. 최근 들어 실력이 우상향을 그린 건 맞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그냥 감자나 다름없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카라보다 약한 게 현실이다.
물론 카라도 강한 편이라 비교는 무리지만 욕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왜 다들 나보고 재수없다 하는 건지.’
실력이 우상향을 그리는 것과 별개로 루나는 본인의 성장이 느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재수탱이 그런 재수탱이가 없다.
누구는 개고생을 하면서 얻는 기술을 하루 아니 몇 시간 사이에 얻으니까.
그걸 활용하는 건 별개라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루나는 다른 의미의 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작 본인은 아직도 약하다며 투덜거리기 바빴지만. 만약 시바르가 봤다면 머리를 한 대 때렸을 것이다.
위이이이잉!
그때 광장 전체에 시끄러운 경보가 울려퍼졌다. 귀를 찌르다 못해 불쾌하게 느껴지는 알림이다.
광장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전체에 퍼지는 경보음. 루나를 비롯한 행인들이 그 경보에 모든 활동을 멈췄다.
“뭐지?”
“갑자기 경보음?”
난데없는 경보음에 어리둥절하는 사람들. 루나도 처음에는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악마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며 슬쩍 검에 손을 가져갔다.
[까아아악!]
경보음 다음으로 하늘 위에서 웬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루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윽고 상공을 배회하고 있는 새 아니 비행 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경보음이 저것 때문에 울린 모양이다.
기념탑의 존재로 비행 몬스터가 접근하기 어려운 편이다. 특정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은.
-우우웅!
그때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피부로 느껴졌다. 루나는 고개를 돌려 그 파동의 진원지를 찾았다.
감각이 느껴진 곳은 다름아닌 기념탑. 기념탑 전체가 푸른색으로 일렁였다.
-콰아아아아!
곧이어 상층부에서 고열의 푸른색 광선이 발사되었다. 매우 빠른 속도 그리고 어마어마한 출력이다.
하늘을 배회하던 비행 몬스터도 그 광선에 적중당했다. 예상을 한참 상회하는 속도에 회피조차 못 한 모습.
이윽고 푸른색 광선이 사라지자 하늘은 매우 깨끗해졌다. 얼마나 강한 출력이면 털 하나조차 남지 않았다.
“뭐야? 길을 잃은 놈이었나?”
“불쌍해라.”
행인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루나는 기념탑과 하늘을 번갈아 봤다.
말로만 들었던 대공 마법이 작동된 것이다. 지상은 몰라도 상공은 사람이 어떻게 조치하기 힘든 법.
그래서 아카데미측은 기념탑의 힘을 빌려 대공 마법을 설치한 것이다. 보통 군대에서나 쓸 법한 마법이다.
‘시바르도 저걸 맞았다가는 그대로 사라지겠지?’
문자 그대로 비행 몬스터가 소멸했다. 저걸 맨몸으로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리라.
루나는 잠깐의 소란을 뒤로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의심스러운 부분은 최대한 찾을 예정이다.
그러나 기우인 것인지 아니면 너무 이른 건지 몰라도 의심스러운 구석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악마의 마법진도 전부 처리했고 로드는 단의원이라는 사람과 만나러 간다고 들었다.
‘…진짜 할 게 없네?’
감자도 이런 감자가 없다. 루나는 광장 벤치에 앉아 멀뚱거렸다.
아직 축제 준비가 한창이라 딱히 즐길거리도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불안하다.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갈까 생각했으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각자 할 일을 하고 있겠지.
‘시바르는 지금쯤 뭐하고 있으려나?’
루나는 벤치에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가는 행인이 있었으나 시바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일단 머리카락이 검은색인 것부터 시작이다. 이다음으로는 남들보다 키 큰 사람을 찾으면 될 터.
“루나.”
“?”
“여기서 뭐해?”
그 사람이 바로 옆에서 나타났다. 루나는 눈을 끔뻑이며 말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니 시바르가 특유의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또한 그 옆에는 푸른 머리를 가진 여자가 서 있다.
시바르는 몰라도 여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사람들 중에 안경을 쓴 사람은 없었으니.
“시바르? 그리고 옆에는…”
“아 안녕하십니까! 시바르 님에게 투자를 받고 있는 제인이라고 합니다!”
제인이 힘차게 인사하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이에 루나가 떨떠름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그 소개 덕분에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듣기만 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아 네. 안녕하세요. 루나라고 합니다. 비전투직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신지?”
“아 그건…”
제인은 대답 대신 시바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바르가 볼 일이 있다는 의미다.
이에 루나가 시바르를 쳐다봤을 때였다. 시바르가 손에 쥐어져 있던 ‘검’을 보여줬다.
“이거.”
“이건…?”
“우스크 검.”
“우스크 검?”
루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러고 보니 시바르와 약속한 게 있었다.
실력이 오른다면 우스크 검을 선물해주겠다는 약속. 아무래도 뒤늦게나마 그 약속을 이행하러 온 듯했다.
“응. 이거 줄게. 너 써.”
“저 정말로?”
“응.”
시바르의 확언에 루나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 염원하던 검이다.
카라가 매번 우스크 곡도로 화려한 춤사위를 벌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비록 아직 카라만큼의 실력이 아니지만 앞으로의 일이 있으니 만약의 위해 준 모양이다.
“고마워! 앞으로 잘 쓸게!”
“조심해서 써.”
“당연히 그래야지.”
우스크 칼날로 제작된 검은 매우 위험하다. 일단 예리함 자체가 최상위권이다.
얼마나 날카로우면 시바르의 단단한 몸에도 박힐 정도다. 절단까지는 불가능해도 베는 건 가능하다.
“아. 제인 씨가 안에만 있으니 공기도 쐴 겸 나온 거라고?”
“응. 이제 다시 돌아갈 거야.”
“빨리 돌아가고 싶네요…”
겸사겸사 처음 안면을 튼 제인과 얘기도 나눴다. 바깥을 돌아다닌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제인은 벌써 죽상이다.
내향인 특유의 기 빨림이 벌써부터 드러난 모습. 이런 곳은 여전히 거북하다나 뭐라나.
“아. 그러면 루나 씨도 부모님이 안 계시는 건가요?”
“네. 혹시 이상해요?”
“아닙니다! 저도 없습니다!”
“…”
의외로 루나와 제인은 묘하게 대화가 잘 통했다. 일단 패드립을 서슴없이 꺼내는 것부터 시작이다.
화법 자체가 비슷하다 보니 통하는 게 있달까. 게다가 루나는 남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다.
본래 내향인은 누군가 옆에 있다면 눈치를 보는데 루나는 그런 부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자기 할 일만 하는 스타일. 게다가 화법도 오묘하게 닮아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좋은 대화였습니다!”
“저도 좋았어요.”
좋은 대화는 무슨. 패드립만 날리기 바빴는데.
시바르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제인과 떠났다. 루나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있었다.
시바르와 만나기도 했고 이제 진짜 할 게 없다. 그녀는 검을 만지작거리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건 쓸모가 있으려나?’
루나가 꺼낸 건 다름아닌 용사의 의안이다. 마력을 넣을 때마다 기묘한 현상을 일으키는 기물.
과연 이게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때마침 할 것도 없으니 이용하기로 정했다.
만약 자신의 가설이 맞다면 이 의안에 마력을 넣을 때마다 신비한 현상이 일어났으니.
-우웅
이에 루나가 의안에 마력을 넣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확인이다.
전처럼 미래로 유추되는 상황이 펼쳐질지 아니면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드러날지.
이윽고 루나는 눈에 미약한 압박감이 들어오자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푸른색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똑같은…’
-파직!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루나의 시야에 갑작스러운 스파크가 튀겼다.
그와 함께 이루어지는 화면 전환. 풍경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꺄아아아악!!]
[케헤헤헤! 죽어! 죽어!]
[으하하하! 으하하!]
문제는 그 풍경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루나는 입을 살짝 벌리며 경악했다.
유혈이 난자하고 뼈와 살이 난립하고 있다. 죽음을 목도한 비명과 광기에 찬 웃음소리.
몬스터도 아니다. 악마도 아니다. 그 무엇도 유혈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니었다.
‘맙소사…’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며 또 죽이고 있다.
배에 검을 꽂아넣는 사람. 목을 꺾어버리는 사람. 머리를 돌로 찍는 사람.
심지어 이건 약과다. 맨손으로 눈을 후벼파는 사람과 어린아이를 잔인하게 두들겨 패는 사람까지.
문자 그대로의 지옥도가 펼쳐진 광경. 다른 의미의 학살의 현장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파직!
하지만 그 현장도 얼마 가지 않았다. 스파크가 튀면서 화면이 전환됐으니까.
방금 전의 학살이 모두 허구였다는 듯 평화롭기 그지 없는 풍경이 앞을 비추었다.
광기 어린 미소는 행복함을 담은 미소로 비명 소리는 축제 준비의 시끌벅적함으로.
‘…’
루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오직 단 하나의 생각만이 돌아다녔다.
‘무조건 막아야 해.’
진짜 재앙이 따로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부모없는 사람들의 모임: 제인 시바르 루나(패드립 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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