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4
루나에게 극딜을 얻어맞고 결심할 수 있었다. 정신병자로 취급될 바에야 야생인으로 살자고.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왔을뿐더러 지금 말해봤자 아무도 못 믿을 게 뻔하다. 루나의 설명이다.
실제로 맞는 말이기도 해서 절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더니 오늘이 딱 그렇다.
“아참. 루나.”
“응? 왜?”
“아까 그 사람 보고 선물이니 빚이니 뭐니 했잖아.”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주식을 가르쳐 준 것과 별개로 선물은 알려주지 않았다.
나도 주식에 깊이 관여하지 않을뿐더러 어디까지나 미래를 알고 있기에 안전하게 하는 편이다.
선물을 하다가 쫄딱 망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곳곳에 갈등이 터져 가격 변동이 심하다.
“뭘로 했어?”
“음… 일단 너도 선물이 뭔지는 알지?”
“미래의 물건을 지금 사는 거.”
개념 정도는 대충 알고 있다. 실제로 행한 적이 별로 없을 뿐.
안전한 길을 두고 위험한 짓은 할 생각이 없다. 잘못하면 빚만 쌓이는 구조다.
도대체 루나는 무엇을 선물로 구한 것일까. 이 부분이 의문이 들었다.
“그럼 이야기가 쉽겠네. 난 그냥 주식으로 했어.”
“주식도 선물이 가능해?”
“원래 그걸로 하는 거래.”
“으음…”
그런 거라면 안전하려나. 주식은 괜찮지만 선물까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돈은 벌고 싶다면 충분히 벌 수 있는 상황이다. 혼돈의 숲 내부에 강한 몬스터 몇 마리 잡으면 끝.
안전한 길을 두고 위험한 길을 선택하다니 여러모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주식했어?”
“타타르에서 캐고 있는 마석.”
“…”
옛날에 주식을 처음 했을 때다. 타타르에서 마석 광산을 발견해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그후로 루나는 주식에 맛들렸는지 몰라도 자주 들락날락하더라. 결국 선물까지 손을 댄 모양이다.
‘…그거 지금이 고점이지 않나?’
고점과 별개로 시기가 제일 중요하다. 타타르도 환 제국처럼 내전의 위험성이 큰 나라다.
헥토르는 스스로를 왕으로 단정짓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상태고 그걸 아니꼽게 보는 시선들이 많다.
최악의 경우 나라가 사분오열 찢어질 위험이 있다. 그걸 얼마나 잘 수습하느냐에 따라 가격 변동이 커질 터.
“언제 팔기로 정했어?”
“만기일이 3개월이라는데? 그래서 그때 했지.”
“3개월이라…”
곧 새학기 즉 3월이 다가오는 시간대다. 3개월 뒤면 방학이겠지.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타타르에서 난리가 날 일은 없을 것이다.
난리가 난다면 동방 쪽에서 난리가 나겠지. 적어도 동방 쪽과 관련된 주식은 안 하는 게 좋다.
“동방 쪽은 하지 마.”
“무슨 일이 터지는 거야?”
“아마도. 당장은 아니지만.”
루나의 선물은 내 손을 떠났다. 설사 빚쟁이 된다 하더라도 내 책임은 아니다.
‘근데 내 책임이 아니더라도 책임져야 하잖아?’
이 년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선물을 한 거지? 그냥 잠자코 주식이나 하지.
그 생각이 들자 루나가 괘씸해졌다. 나는 이게 맞냐는 표정으로 루나를 쳐다봤다.
모 자연인 프로그램에서 나온 유명한 명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딱 그런 표정일 것 같다.
“왜 그래? 나도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거야.”
“…정말로?”
“응. 진짜로.”
“나중에 나한테…”
“에이. 내가 안토니오도 아니고.”
가만히 있던 안토니오가 두들겨 맞았다. 안토니오는 그러고도 남지.
하지만 그조차 선물은 하지 않은 걸로 기억하고 있다. 리스크만 따지자면 루나가 더 막심하다.
부디 타타르가 만기일까지 멀쩡했으면 좋겠다.
“만약에 내가 나중에 돈 좀 대신 갚아달라고 하잖아? 네가 날 혼돈의 숲 내부에 집어던져도 좋아.”
“정말이지?”
“응. 정말로.”
“말 바꾸기만 해 봐.”
말 바꾸기 힘들도록 계약까지 해야지. 때마침 카라도 있겠다 조만간 자리를 빌려 계약을 하면 될 것이다.
이후로 다시 안으로 들어간 뒤 로드가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다른 사람도 떠나지 않고 잡담만 나누고 있었다.
로드가 돌아온 시간은 대략 30분이 흐른 후였다. 슬슬 해도 지고 있었으니 다들 돌아갈 때가 됐다.
그전에 할 말을 하고 가야지. 나는 떠나기 전 로드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냐?”
“저 당분간 숲에서 지내도 돼요?”
“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반응은 로드가 아니라 그레이스로부터 나왔다.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날벼락이라도 떨어진 듯한 표정이다. 기껏 돌아왔는데 이런 말을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몸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지낼 필요가 있다.
“혼돈의 숲 외부인가 아니면 바깥인가?”
“내부요.”
“내부라면… 조금 그렇긴 하다만…”
내부에서 지낸다고 하자 로드도 영 아니라는 반응을 내비쳤다.
당연하지만 아카데미로 돌아가기 위해 나침반을 들고 갈 예정이다. 이건 필수다.
더구나 몸 상태가 변하는 그 즉시 복귀할 테니 문제는 없었다. 일단 이것부터 설명해야지.
“제 몸 때문에 그래요.”
“몸?”
“몸이요?”
“보면 지금 털이 많아요.”
대충 내 상태를 알려줬다. 그 사이 털이 좀 더 자란 느낌이다.
프로즌에서 먹고 자고 하다 보니 몸이 이리 변했다. 당장 내일이면 털이 수북해질 거다.
그러니 적절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혼돈의 숲 내부에서 지낼 필요가 있다.
“음… 맞는 말 아니야?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알겠지. 그러니 너무 뭐라 하지 마.”
카라가 나를 두둔해줬다. 그레이스도 맞는 말이라 생각한 건지 불평할지언정 반대하지 않았다.
“그레이스 씨.”
“네?”
“그레이스 씨는 털북숭이 시바르가 좋아요 아니면 그냥 시바르가 좋아요?”
“…”
여기에 엘리의 추가타까지.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난 향수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네.”
“…”
루나루나는 무시하자. 정말이지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는 화술은 언제 들어도 대단하다.
대충 결론이 났지만 혼돈의 숲 내부로 진입하는 건 내일부터 가능하다고 로드가 제안했다.
나침반도 얻어야 하고 식량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 가지 당부했다.
“먹이사슬 최강자를 만나도 가능하면 무시하거라. 또 귀찮아질 테니.”
“네.”
먹이사슬 최강자를 만나도 가급적 전투를 피할 것. 예전에 한 번 겪은 문제 때문이다.
한때 지배자 역할을 맡았던 나와 포로리가 동시에 사라지면서 혼돈의 숲이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그걸 수습하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지금이야 외부를 영역으로 만들었기에 문제는 없다.
‘그런데 그놈 심장을 먹어야 할 수도 있는데…’
나는 로드의 눈치를 봤다. 그가 당부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어겨야 할 수도 있다.
뒷수습은 온전히 내 몫이겠지. 하지만 혼돈의 숲 출입 금지령은 여전한 상황이다.
원래라면 수업 공간으로 활용될 여지가 충분한 장소라 교수들 입장에서도 머리가 아플 것이다.
“기간은 얼마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어림잡아서 3~4일 정도?”
리제의 의견이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레이스도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 잡담을 조금 나누다가 각자 기숙사로 돌아갔다. 내일부터는 평범하디 평범한 생활이 이어질 것이다.
로드의 저주도 해결됐고 아카데미 붕괴도 막았다.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왔느냐? 기다리고 있었다.”
“응. 저기서 기다려줘.”
“그래.”
약속대로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단예린도 함께 불렀다. 그 사이 그레이스는 씻는다며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단예린의 은밀한 손짓이 이어졌다. 그레이스가 들어가자마자 슬그머니 내 뒤로 오는 것이 아닌가.
-주물주물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성추행(?). 단예린이 은근한 손길로 내 엉덩이를 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흠칫한 것도 잠시 개의치 않고 식사 준비에 들어섰다. 자주 즐겨먹는 스테이크다.
“하아. 이 감촉. 얼마나 그리웠는지…”
“…”
“나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벌써부터 깨는구나. 벌을 주고 싶을 정도로.”
단예린이 내 어깨에 턱을 얹히며 속삭였다. 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다.
달뜬 숨소리에 묻어있는 유혹에 정신이 순간 아찔해졌으나 가까스로 막았다.
겨우 이런 터치만으로 나를 자극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엘리를 통해 단련(?)된 몸이다.
‘뭔가 짜릿한 것 같기도 하고…’
단예린은 이런 스릴에 중독된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하지 않겠지.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너부리를 찾았다.
만약 너부리가 지켜보고 있다면 하지 말라고 할 텐데 지금 너부리는 사료를 먹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어도 밥은 못 참는 거겠지. 다행이라면 다행인 부분이다.
“아참. 단예린.”
“둘만 있을 때는 예린이라 부르거라. 딱딱해서 싫으니.”
“알았어. 예린.”
“말하거라.”
“나 또 며칠 동안 자리 비울 거야.”
“뭐?”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운다고 말하자 단예린이 멈칫했다. 서로 밀착한 자세라 움찔거림이 생생하다.
나는 그녀가 납득할 수 있도록 아까 했던 말을 그대로 꺼냈다. 그러면 그럴수록 단예린의 숨소리가 점차 안정되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터. 이윽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단예린이 입을 열었다.
“나는 그대가 어떤 모습이든 간에 상관없다만?”
“내가 싫어. 관리하기 귀찮아.”
“흠.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러면…”
-스윽
“?!”
나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예린의 손길이 스쳐지나간 부분 때문이다.
원래라면 엉덩이를 위주로 쓰다듬었는데 방금은 그보다 훨씬 앞이었다.
고간까지는 아니어도 바로 근처를 쓰다듬는 손길. 몹시 당황스러웠다.
“스읍… 하아… 좋은 냄새로구나.”
“…”
“이 향기를 똑똑히 기억하겠다.”
그러면서 그 손에 코를 박기까지. 눈까지 살짝 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봐도 여우라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단예린을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되냐는 반응이다.
“…예린.”
“왜 그러느냐?”
“아냐… 아무것도…”
“후후.”
그후로도 단예린의 음험한 손길은 이어졌다. 손길이라기보다는 스킨십이다.
몸을 서로 밀착한 나머지 그녀의 커다란 흉부마저 고스란히 느껴졌으니까. 매우 적나라한 감촉이다.
덕분에 참느라 고생했다. 여기서 텐트라도 쳤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게 뻔하다.
-덜컥
머지않아 그레이스가 다 씻었는지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단예린은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조용히 멀어졌다.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으마.”
멀어지기 전에 내 귓가에다 속삭이는 건 잊지 않았다.
“반려여.”
“…”
정말 무서운 여자다.
******
다음 날. 나는 예정대로 모든 준비를 갖춘 채 혼돈의 숲 내부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환영식인지 온갖 몬스터와 짐승들이 반겨줬지만 아무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아.”
문제는 정말 아무 문제 없이 편안하게 지냈다는 것.
그 어떤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지내서 그런지 몰라도.
“나른하다.”
나는 일주일이 넘어도 숲을 떠나지 않았다.
돌이 되고 싶은 기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바르: 이게 섹X지
님! 재미있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댓글 하나씩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