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9
제인은 기계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과학의 나라 산티아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수많은 기계들을 목격했으며 자연스레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중 가장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건 단연코 증기 기관차다. 거대한 철덩어리가 오직 기계의 힘으로 움직이는 모습.
여기에 특출난 재능과 열정까지 합쳐져 제인은 누구보다 기계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퍼엉!
‘…이게 아닌가?’
물론 재능이 받쳐준다 해도 실패가 없는 건 불가능하다. 성공은 원래 실패와 실패가 쌓여 이루어지는 결과물이다.
첫 작품이 예상치 못한 폭발을 일으켰을 때 여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제인은 누구보다 ‘이론’에 치중했다.
이론이 완벽하다 해서 결과물이 좋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확률은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제인의 목표는 보조 기구였다. 이 세상은 위험 요소가 사방에 쌓여있다.
과학이 발달해도 이는 다르지 않았다. 산업 재해로 팔다리를 잃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그녀의 할아버지도 산업 재해로 인해 다리가 불편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의족이 있어도 불편한 건 똑같다.
비록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으나 제인의 목표는 그대로였다. 사지가 불편한 사람을 위한 발명품을 만들자.
‘마력은 체내 곳곳에 뻗어있어. 기계와 일체화시킨다는 개념으로 간다면 될 거야.’
보조 기구 하나를 위해 기본적인 의학 지식도 배웠다. 어디까지나 간단한 지식이다.
그리하여 온갖 지식들을 섭렵하고 이론까지 모두 세운 후에야 제작에 나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고난이 있긴 있었지만 매우 소중한 인연을 만나 아무 문제 없이 진행이 가능했다.
“음…”
그리고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난관이라기보다는 예상을 벗어난 결과가 나왔다.
원래라면 보조 기구가 목표다. 일상 생활부터 시작해서 위험한 곳에 나서는 사람들을 위한 기구.
무거운 바위를 한 손으로도 들게 해주거나 한 번의 도약만으로도 높은 위치에 다다를 수 있게 해주는 도구.
“출력이 너무 과한데?”
기구의 목적 자체는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제인은 로드로부터 다시 돌려받은 부츠를 보며 고민했다. 과열로 잠깐 망가지긴 했어도 금방 수리한 부츠다.
단순한 근력 증가와 더불어 기동성을 위해 제작한 부츠. 헌데 성능이 너무 좋아서 문제다.
‘과열 문제가 있긴 해도 시바르 씨의 마력 때문에 그런 거고…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긴 해.’
제인은 이론을 적어놓은 판과 부츠를 번갈아 봤다. 작동이 잘 되서 좋긴 한데 너무 잘 되서 문제다.
으레 천재가 다 그렇듯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면 차근차근 파고드는 법. 제인도 한동안 문제를 파고들었다.
‘고딘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마법 지식 때문인가? 그건 아닌데.’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제인은 몇날며칠을 지새우며 연구에 돌입했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어이없게도 계산을 잘못한 것이다.
대충 0 하나를 빼고 계산했다고 보면 편하다. 문제는 0은 때로 무시무시한 힘을 보인다는 것.
‘어… 잠깐만. 이러면 나도 바위를 부술 수 있는데?’
단순한 보조 기구를 넘어서 ‘강화’에 가까웠다. 제인은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강화 또한 목표에 부합했지만 그 정도가 매우 심해졌달까. 예상 외의 작품이 튀어나왔다.
어린애가 어른을 이기는 정도가 아니라 일반인이 오우거와 힘싸움을 할 수 있을 정도다.
‘마력 소모가 심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건 차차 해결하면 될 거야.’
아무리 강력한 갑옷이어도 움직이지 못하면 고철 덩어리나 다름없다. 그래서 한 가지 생각한 방법이 있다.
슈트와 달리 아직 이론 단계지만 질량을 에너지 즉 마력으로 치환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하지만 그에 합당한 물질부터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일단 마석부터 실험할 생각이다.
‘아니면 갑옷 자체의 효율을 올리든가. 이게 가장 나을지도 모르겠네.’
둘 다 해도 된다. 제인은 무럭무럭 피어나는 이론들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보다 출력이 과했던 것이 자충수가 아닌 다른 길을 내놓았다.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그리하여 수업도 빠진 채 작업에 몰두한 결과 제인은 상상만으로 존재하던 걸작을 제작할 수 있었다.
“돼 됐다! 드디어 만들었어!”
꿈에 그리던 염원이 눈 앞에 나타났다. 제인은 눈을 반짝거리며 작품을 쳐다봤다.
언뜻 본다면 기사들이 착용하는 풀 플레이트 아머와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인체 공학적이다.
내 몸처럼 움직일 필요가 있었기에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다. 단점이라면 착용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이것도 다른 사람이 보조해준다면 그리 문제가 될 건 아니었다.
‘빠 빨리 시바르 씨에게…!’
보여줄 생각이었지만 너무 열정적으로 몰두해서 그럴까.
시바르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인은 과로로 쓰러졌다. 때문에 시험까지 이틀 정도 늦어졌다.
그러면 뭐하나. 누가 뺏어갈 것도 아닌데. 제인은 건강을 되찾자마자 시바르와 함께 공방을 방문했다.
방문하기 전에 말끔히 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얼마나 안 씻었으면 몸에 구정물이 나올 정도로 더러웠다.
이윽고 공방에 도착하고 제인은 완성된 강철 슈트를 시바르에게 공개했다.
“이 영광을 시바르 씨에게 바치겠습니다! 어서 빨리 착용해주세요!”
“정말로? 내가 먼저?”
“네!”
제인은 시바르에게 착용을 권유했다. 안경 너머로 그녀의 푸른 눈에 존경과 감사가 깃들어 있었다.
이 모든 건 시바르의 투자 덕분이다. 그가 투자하지 않았더라면 꿈은 이루어 질 수 없었을 터.
꿈이 이루어진 순간만큼 행복할 때가 있을까. 그녀는 터질 듯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제인이 안 해도 돼?”
“네! 전 시바르 씨가 먼저 착용하기를 원합니다!”
“왜?”
“그냥 그런 기분입니다!”
그냥 시바르가 먼저 착용했으면 좋겠다. 제인은 그런 마음이었다.
시바르도 제인의 마음을 알았는지 고분고분 따랐다. 다만 착용 자체는 제인의 보조가 필요했다.
평생 갑옷을 입은 적도 없었고 워낙 생소하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착용감은 어떠신가요?”
“조금 무거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죠?”
“응.”
이후로 얼마나 무거운지 또 움직이는 데에 불편함이 없는지 등등.
동력이 없는 채로 활동하면서 문제점을 찾았다. 제인도 옆에서 지켜보며 꾸준히 기록했다.
“동력이 없을 때는 평범한 갑옷이라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이제?”
“마력을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제인이 기대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혹시 몰라 과열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도 마련했다. 시바르의 마력은 남들보다 출력이 높았으니까.
시바르도 이 점을 알고 있었기에 강도를 조금 낮출 생각이었다.
“그럼 천장 열어줘.”
“네? 천장이요?”
“응. 날아야지.”
“하 하지만 그전에 근력 증가부터…”
제인이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였다. 시바르는 그런 그녀를 보다가 어느 한 영화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 영화에서 나온 대화다. 지금처럼 첫 가동 시험 때 꺼낸 명대사다.
“제인.”
“네?”
“때로는 걸음마 전에 뛰어야 할 때도 있어.”
사실 저리 말해봤자 ‘정상인’이라면 무조건적으로 거부했을 것이다.
겨우 이론만 내놓은 상태인데 무작정 시도했다가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군요! 정말 멋진 말입니다!”
“그치?”
“네!”
하지만 제인은 이미 시바르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의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지는 수준인데 믿지 않으면 손해다.
아니. 손해를 넘어 그를 향한 실례 혹은 모욕이다. 투자자의 말씀이 곧 명령인 법.
제인에게 있어서 시바르는 마약보다 달콤한 ‘꿈’을 이루게 해준 사람이다. 수발을 들라고 하면 기꺼이 들 것이다.
또한 그가 불편한 게 있다면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도움을 줄 것이리라. 그런 마음이었다.
“열었습니다!”
“알았어.”
이윽고 개폐식 천장을 개방하자 시바르가 위를 올려다 봤다. 뒤이어 두터운 갑옷에서 요란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갑옷 표면에서 미약한 붉은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회로와 같은 모습이다.
-쿠우우우우!
발밑과 손바닥에서 에너지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무거운 강철 슈트가 서서히 비상했다.
제인은 황홀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전부 지켜봤다. 흘러내린 안경을 올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어서 에너지 분출이 점차 강해지고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콰아아아아!!!
시바르가 활짝 열린 천장을 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우와아아아아!!!”
마치 어린아이가 무서운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굉장한 탄성을 지르면서.
제인은 하늘 너머로 날아간 시바르를 쳐다보다가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이 광경을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돼 됐다! 됐어! 해냈다고!!”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다. 마법이 아닌 순수한 기계의 힘으로.
제인은 환호한 것도 잠시 시바르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다가 울컥해졌다.
저 광경을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착오와 고난을 겪었을까. 눈물이 왈칵 새어나왔다.
‘…이제 뭘 만들어야 하지?’
동시에 걱정됐다. 원하는 걸 만들었으니 다음에 뭘 제작해야 할까.
다른 건 몰라도 시바르가 계속 투자했으면 좋겠다. 아니 거짓말을 해서라도 투자를 받고 싶었다.
유일한 연결고리가 바로 투자였으니까. 꿈을 이루게 해준 은인임과 동시에 떨어지기 싫은 사람이다.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 자신의 재능을 알아준 은인. 평생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훌쩍. 필요하신 게 없으시려나?”
제인은 눈물을 닦고는 안경을 다시 착용했다. 감동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져서 기분이 묘하다.
“어? 어디 갔지?”
그런데 이상하다. 하늘을 올려다 본 제인이 의문을 품었다.
하늘을 빙빙 배회하던 시바르가 사라졌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공방 지대에서 빠져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행인들에게 묻고 싶었지만 제인은 천성이 내향인. 묻는 것조차 힘들었다.
시바르에게 투자 권유를 한 것도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낸 거지 그 이상은 없다.
“야. 아까 봤어?”
“누가 마법으로 날아다닌 거?”
“당연히 봤지. 엄청 빠르던데?”
그러다 흘려들을 수 없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제인은 그 대화를 조용히 엿들었다.
“새로 세운 기념탑 발동 범위가 어떻게 되더라?”
“아마 전보다 높을걸? 대신 방어막이 새로 생겼잖아.”
“아. 그렇지. 그거 때문에 추락한 거겠지?”
기념탑. 그 말을 듣자마자 제인은 머리에 벼락이 치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에 기념탑이 무너진 이후 새로 건설한 기념탑은 전보다 훨씬 좋은 사양으로 건설됐다.
우선 가동 범위가 넓어졌으며 아카데미 전체에 방어막이 둘러싸였다.
다시 말해 시바르가 뭣도 모르고 방어막과 충돌했을 수도 있다.
그 과정이 떠오르자 제인은 큰 용기를 내며 행인에게 물었다.
“어 어디로 갔습니까?”
“뭐 뭐요?”
“아까 봤다던 그거! 어디로 떨어졌습니까?”
“저 저기로 떨어졌을걸요…?”
“감사합니다!”
제인은 행인에게 감사를 전하고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부디 시바르가 무사하기를 빌면서.
그렇게 떨어진 곳으로 달려간 결과 그녀는 시바르가 어디에 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잘 모르겠지만.
“자. 다시 한번 말해보게. 자네가 누구라고?”
“…시바르요.”
“아니지. 아니야. 떨어졌을 때 아이 엠 아이언맨이라 했잖나. 자네는 이제부터 아이언맨일세.”
시바르는 정말 어이없게도 로드의 거주지에 떨어졌다. 지난번이랑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제인은 뻥 뚫린 천장과 그 밑에서 손 들고 벌을 서고 있는 시바르를 번갈아 봤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다.
“또 자네인가? 이번에는 아예 완성품을 제작했군.”
“아. 그게…”
“시끄럽고 자네도 시바르 옆에서 손 들고 벌 서있게.”
“네…”
어쩌다 보니 나란히 벌을 서게 된 제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추락 후 시바르: 아임 엠 아이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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