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2
유나이티드 아카데미의 입학식은 일반적인 입학식과 매우 유사하다.
수많은 입학생들은 강당 중앙에 배치된 의자에 앉고 그 주위에 관계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다.
관계자가 아니어도 입학식을 지켜보는 건 가능하다. 강당이 워낙 넓어 수용 인원이 많기 때문이다.
[선서. 유나이티드 아카데미 신입생 일동은 재학 중 학칙을 준수하고…]
이번 신입생 수석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선서문을 읊었다. 강당 전체에 수석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활발하면서 당찬 것이 듣기 좋은 미성이다. 나는 저 목소리의 주인공을 본 적이 있다.
‘역시 수석이구나.’
프로즌 공녀 레이나다. 그녀가 이번 학기의 신입생 수석으로 들어왔다.
무력 하나만큼은 매우 출중한 레이나이니 수석을 따는 건 어렵지 않았을 터.
그나마 문제라면 의사소통인데 공부 머리가 유독 나빠 아직까지 공용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할 것이다.
“프로즌의 공녀라… 소문으로만 들었지 수석으로 입학할 줄은 몰랐는데.”
“…”
“게다가 소문대로 동방 출신이 많이 보이는군. 흥미로워.”
다 좋은데 너만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옆에서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다름아닌 카라스다. 마트라 제국의 황태자이자 다음 대 차기 황제.
이 인간이 왜 내 옆에 앉았냐면… 나도 모른다. 그냥 구경하려고 왔건만 자연스레 옆에 앉더라.
덕분에 온갖 시선이란 시선은 다 받기 시작했다. 속이 점점 쓰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어쩌면 레이나보다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카라스.”
“음? 왜 그러지?”
“네 동생들. 왜 저기 있어?”
나는 손가락으로 입학생들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맨 앞자리를 차지한 회색머리들이다.
마트라 제국의 망나니 그것도 최악으로 유명한 망나니 듀오가 떡하니 앉아있더라.
인간인지 짐승인지 모를 정도로 욕망에 충실한 쌍둥이 남매들. 그들이 입학생들 사이에 껴 있었다.
특히 남동생 쪽 그러니까 레오는 엘리를 강제로 취하려 했다가 술병으로 대가리를 얻어맞았다.
사고뭉치를 넘어 망나니 그 자체인 쌍둥이인데 어찌 하여 아카데미에 입학했는지 모르겠다.
“아. 그거 말인가?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닐세. 그냥 심심해서 불렀지.”
“심심해서?”
고작 심심하다는 이유로 저 망나니들을 아카데미로 끌어들여?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쌍둥이 남매는 발암 물질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모른다.
그나마 카라스가 있어서 자제하겠지만 이런 말이 있다. 개가 똥을 끊는다고.
분명 언젠가 큰 사고를 칠 년놈들이다. 나와 다른 의미의 폭탄인 셈이다.
“나라고 해서 스트레스가 안 쌓이는 건 아닐세. 황실에 있을 때는 저 못된 동생들 덕분에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최근은 아니지.”
“…”
“내가 황실에 없다 보니 풀어진 것 같아서 말일세. 오랜만에 오붓하게 형제들끼리 대화도 하고 좋지 않나?”
“어… 알았어.”
대충 애착 인형 비슷한 건가. 나는 떨떠름해졌다.
애착 인형이라기보다는 샌드백에 가깝다. 대충 무슨 원리(?)인지 알 것 같다.
쌍둥이 남매는 언젠가 사고를 친다. 그 사고를 빌미로 쌍둥이를 갈궈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미리 경고했다네. 붉은 눈의 야생인도 함께 지켜볼 테니 머리가 깨지기 싫으면 조용히 지내라고 말일세.”
“왜 날 끼워?”
“재미있잖나.”
재미있기… 는 하겠지. 술병으로 레오의 머리를 깼던 손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다면 함부로 행동하기 힘들 터.
물론 제 버릇 남 못 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카라스.”
“말하게.”
“그걸 대놓고 말해도 돼?”
문제는 우리가 있는 곳이다. VIP석도 아니고 아무데나 대충 앉은 자리다.
그래서 주위에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우리의 대화를 듣고 눈치를 보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카라스는 아무렴 상관없는지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큰 문제는 없잖나? 오히려 소문이 퍼지는 게 낫지. 그래야 헛짓하지 말라는 경고가 와닿을 테니까.”
“…”
“신입생 연회가 기대되는군. 그때 자네도 참석했으면 하는데.”
또 술병으로 레오 머리통을 깨라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나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망나니 남매도 중요하지만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레이나다. 망나니 남매들은 분명 그녀에게 관심을 줄 터.
레오는 이성적인 의미로 관심을 줄 게 뻔하고 다이애나도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라 견제할 게 뻔하다.
‘애초에 은따 비슷한 걸 당하니까.’
레이나는 안타깝게도 동급생 사이에서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한다. 우선 동방 출신이 많다.
원래 사람은 동향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많은데 타지에서는 그런 경향이 매우 강해진다.
물론 이번에 입학한 동방 출신들이 대부분 가문 출신들이라 애매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걸 배제하고도 레이나에게 치명적인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의사소통이다.
‘왈도식 대화체면 누구라도 무시할 테니까.’
레이나를 표현하자면 딱 이렇다. 여포의 무력과 머리를 가진 사람.
무력 하나는 굉장한데 머리 정확히는 공부 머리가 부족한 편이라 공용어도 못 뗀 상황이다.
딱 무시당하기 좋은 조건이다. 하물며 프로즌은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된 반면 아카데미는 아니다.
소위 말하는 ‘가면’을 써야 유리한데 레이나는 당돌한 성격이라 좋든 나쁘든 관심을 받기 딱 좋다.
[다음은 총장님의 훈화 말씀이 있겠습니다.]
선서가 모두 끝나고 로드의 훈화가 이어졌다. 로드가 단상에 등장하자 약간의 웅성거림이 퍼졌다.
아무래도 로드의 외모가 전보다 훨씬 젊어졌으니 의아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 전보다 젊어진 느낌인데… 설마 실력이 상승한 건가? 이건 예상치 못했군.”
“…”
이것 봐라. 당장 카라스마저 깜짝 놀란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는가.
그만큼 로드의 위상이 드높다는 걸 방증하며 동시에 안 그래도 높았던 위상이 더 높아진 것이다.
반로환동을 거쳤다는 건 실력이 상승했다는 증표였으니. 아카데미의 억제기가 더욱 강해졌다는 뜻이다.
[흠흠.]
로드가 헛기침을 하자 소란스러웠던 좌중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도 로드의 말을 경청했다.
로드는 주위가 조용해지자 한번 둘러보더니 특유의 점잖은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모두 활기찬 표정이에요.]
공적인 자리라 그런지 평소와 달리 존댓말로 훈화를 시작하는 로드. 언뜻 보면 평범한 훈화처럼 들릴 것이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시고 부디 몸 건강히 졸업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하지만 그의 훈화는 고작 30초도 안 되어 끝났다. 훈화가 끝나자마자 로드가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너무 짧은 훈화에 당황했을까. 신입생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이거 맞냐는 반응을 드러냈다.
사실 저 짧디 짧은 훈화는 1년 전 입학식 때와 다르지 않았다. 원래는 로드도 길게 하는 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귀찮아진 바람에 대충 짧게 하고 끝낼 뿐이지. 그의 성향이다.
‘이거 말고는 딱히 없지 않나?’
행사 관계자들도 로드가 짧게 끝낼 것을 예상했는지 아무런 막힘없이 진행시켰다.
훈화 다음에는 신입생들이 우르르 몰려 어디론가 이동했는데 아마 본인의 기숙사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나도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 이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찰나였다.
“시바르.”
“안 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만?”
말을 안 해도 뻔하다. 동생들 얼굴 좀 보자라는 식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망나니들의 얼굴은 보기 싫다. 특히 레오는 보자마자 죽빵을 갈길 것 같다.
신입생 연회 때 엘리가 당할 뻔한 치욕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동생들 보러 가자는 거. 맞지?”
“역시 내 마음을 잘 아는군. 갈 텐가?”
“안 가.”
“가면 레오 얼굴을 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네.”
“가자.”
그러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 나는 그 즉시 카라스를 따라갔다.
기왕이면 근처에 병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넘겼다.
아.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하는 거지만 다짜고짜 때릴 생각은 아니다. 내가 미친놈도 아니고 그러겠나.
게다가 당장 만나는 건 아니다. 각자 기숙사를 배정받은 후에야 따로 만남을 가질 것이다.
아마 그전까지 얘기나 나누겠지. 이목이 집중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혀 형님?”
“오라버니?”
“오. 사랑하는 동생들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망나니 남매들은 기숙사로 가지 않고 강당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마 인맥도 다질 겸 얼굴도 확인할 겸 겸사겸사 가만히 있던 거겠지.
다만 당황한 표정을 보면 카라스가 올 줄은 생각치도 못한 모양이다.
그덕택에 안 끌어도 될 관심을 전부 끌게 됐다. 무려 마트라 제국의 황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 그런데 옆의 그 놈은 설마…?!”
쌍둥이 중 레오가 나를 보며 경악했다. 삿대질까지 하는 걸 보면 나를 아는 게 확실하다.
못 알아봤으면 섭섭할 뻔했다. 설령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기억나게 만들었을 거고.
“안녕. 오랜만이네.”
“네 네 녀석! 감히 내 앞에서 반말을…!”
꼴에 황족이라고 허세를 부렸다. 그러나 사실 저게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황족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만이 가능한 일이고.
나는 트라우마 때문에 말을 더듬거리는 레오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카라스에게 말했다.
“카라스.”
“응?”
“어디 병 같은 거 없어?”
“…”
그 질문에 레오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렸다. 안색이 파래지는 건 덤이다.
쌍둥이 중 여자 다이애나도 들은 바가 있었는지 어색하게 웃을지언정 입을 떼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황녀답게 정말 예쁜 여자인데 정조가 개판이고 개념마저 상실해서 별로다.
“오 오랜만이네요. 성함이…”
“시바르.”
“아. 네. 시바르 씨였죠. 저 기억하시나요?”
“응. 다이애나.”
“기 기억하시는군요. 호호.”
어색함을 풀기 위해 서로 간단한 통성명을 나눴다. 그나저나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카라스의 페이스에 말려버린 나머지 어쩌다 보니 대화를 하게 됐다. 괜히 부담스럽다.
이에 화장실을 핑계로 빠져나가려던 찰나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나저나 오라버니. 이 신사분은 어째서 데려오신 건가요?”
“아. 시바르 말인가? 앞으로 얼굴을 많이 보게 될 걸세.”
“어째서죠?”
다이애나의 물음에 카라스가 특유의 맑은 눈으로 대답했다.
“나와 함께 조교로서 자네들을 가르칠 수도 있거든.”
“네?”
“?”
아니. 잠깐만.
‘이 새끼 그걸 어떻게 알았지?’
혹시 이 새끼도 미래를 보는 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카라스: 미래를 보는 건 아님. 단지 똑똑할뿐
님! 재미있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댓글 하나씩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