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3
보통 조교는 3학년 이상부터 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아카데미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3학년부터는 실습이 주가 되어 외국으로 나가는 일이 꽤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1학년 조교는 2학년이 맡는 편이다.
겨우 2학년이 조교를 맡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가능하다고 대답하겠다. 조교라 해봤자 교수를 보조하는 것밖에 없다.
대충 비유하자면 훈련소 신병들을 인솔하는 조교와 비슷할 것이다. 때문에 ‘실력’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조교를?”
“흠? 난 자네가 할 줄 알았다만?”
“고민하고 있었어.”
그런데 카라스는 용케도 내가 조교를 할 거라고 눈치를 챈 모양이다. 아니면 그냥 대충 지은 말이든가.
이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게 평소에 카라스와 만난 적이 거의 없다. 카라스는 카라스대로 바쁘더라.
딱히 교류한 것도 없는데 단번에 눈치챈 걸 보면… 솔직히 조금 위험한 인간이다.
사람의 심리를 너무 잘 읽는다 해야 하나. 카라스의 최대 강점이다.
‘저걸로 사람 약점을 꽉 쥐는 게 가능하지.’
망나니 남매가 카라스에게 아무것도 못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둘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정말 무서운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괜히 빨간맛 사상을 홀로 생각해낸 게 아니다.
“이 이 자식이…”
“이 자식?”
“이 이 사람이 조교를…?”
레오도 어지간히 놀랐는지 속된 말을 할 뻔했다. 내가 한쪽 눈을 치켜뜨자 금방 꼬리를 말았지만.
레오 다음으로 다이애나가 의문을 드러냈다. 다소 다혈질적인 레오와 달리 다이애나는 이성적이었다.
“그… 오라버니? 이 분이 정말 조교로 활동하는 건가요?”
“아마 그렇겠지.”
“실력은 그렇다 치고 인도를 잘할 수 있을지…”
다이애나의 지적은 실로 합당했다. 그래서 별로 기분 나쁘거나 그러지 않았다.
대부분의 수업을 교수가 맡는다지만 시험 같은 건 조교의 역할이 은근 크다.
교수들은 보통 직접 나서기보다는 멀리서 지켜보는 편이니까. 따라서 돌발 상황은 조교가 맡는 편이다.
‘고문이나 폭탄 조끼 같은 건 예상 못 했겠지.’
또한 내가 조교를 자원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레이나다.
레이나는 1년 동안 아카데미를 다니다가 결국 자퇴를 하는데 아까 말했듯이 교우 관계 문제 때문이다.
평소 활발하고 당찬 성격이지만 혼자만 프로즌 출신이다.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아예 없다.
하물며 이번 신입생들은 동방 출신이 많아 그런 점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대놓고 왕따는 아니어도 투명인간 취급이지 뭐.’
레이나와 친해져서 나쁠 건 없다. 오히려 나중에 큰 전력이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더구나 공왕과 그녀의 오빠들이 금이야 옥이야 키운 케이스인지라 프로즌과의 관계가 크게 개선될 터.
나는 그녀가 보다 더 나은 교우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일단 가장 시급한 건 공용어 문제.
아무리 공부 머리가 부족한 레이나라지만 공용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야 앞날이 편해질 것이다.
“소개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군. 시바르 자네는 가도 좋네.”
“그래.”
나는 손을 대충 흔들어 주고 자리에서 떠났다. 떠나기 전에 레오와 다이애나를 보는 건 잊지 않았다.
앞으로 얼굴 볼 일이 많으니 서로 잘하자는 무언의 표현이다. 다이애나는 몰라도 레오는 좀 찔리겠지.
특히 다이애나는 나를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미약하게나마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문란하다는 소문이 아카데미에도 퍼지면 어떻게 되려나?’
인성도 그닥 좋지 않아서 가까워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특히 다른 여자들이 가만히 안 있겠지.
나는 그냥 레이나만 지켜보면 된다. 저들은 카라스가 잘 관리(?)할 것이다.
안 좋은 소문이라도 흐르면 마트라 제국의 명성에 큰 먹칠을 가하는 셈이니까.
어쩌면 황제가 직접 복귀 조치를 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버릇을 드러내면 말이다.
“저기요!”
“?”
입학식도 슬슬 끝났겠다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내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고개를 돌리니 푸른 머리카락에 당찬 인상을 지닌 미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더라.
기숙사로 간 줄 알았던 레이나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이상하네. 붉은 눈은 맞는데…”
“…”
“혹시 형제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나 형제 없어.”
없어진 미래에서도 형제 없이 쭉 외동으로 살았다.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레이나는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 중앙에 툭- 튀어나온 머리카락 한 올이 물음표를 그렸다.
전에는 털모자를 쓰고 있어서 몰랐지만 저 더듬이 같은 머리카락이 레이나의 상징이다.
당차고 활발하지만 어리숙한 그녀의 면모를 드러내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엥? 그럼 누구세요? 제가 아는 사람이랑 얼굴이 똑닮으셨는데. 눈도 빨갛고.”
“네가 생각하는 사람 맞아. 나 시바르야.”
“아앗! 정말이에요?”
“응.”
혹시 몰라서 그때 있던 일까지 모두 알려줬다.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번개곰을 잡았을 때만 해도 충분하다.
그러자 레이나의 얼굴이 화사해졌다. 다른 사람과 달리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
‘에휴. 이런 애를.’
나는 레이나가 왈도체로 떠들든 말든 그녀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이렇게 끼가 넘치고 해맑은 애를 따돌림 문제로 자퇴시키다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만약 그녀가 1년만 더 일찍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면 두루두루 친해졌을 텐데 안타깝다.
“잘 부탁합니다! 앞으로요!”
“그래. 잘 가.”
“힘차게 가세요!”
“힘차게가 아니라 안녕히.”
내가 공용어를 지적하자 레이나가 앗! 하며 자기 입을 가렸다. 그리고는 히히 웃기까지.
문득 엘리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러나 적어도 엘리는 공부 머리가 좋은 편이다.
“공용어 열심히 배워.”
“잘할게요!”
레이나는 팔까지 휘저으며 기숙사로 떠났다. 그 해맑고도 당찬 모습에 미소가 약간 새어나왔다.
저 미소는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부디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신입생들끼리 대련을 하지 않나?’
아마 그때 레이나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다. 머리는 몰라도 무력은 굉장한 편이니.
그거 때문에 시선이란 시선은 다 끌게 되지만 결국 독이 되는 케이스다.
아무리 그래도 공녀인데 따돌림은 말이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악의는 예상을 뛰어넘는 법.
하물며 레이나의 저 착해빠진 성격을 보면 예상할 수 있다. 문제가 생겨도 속에 꼭꼭 담아두는 성격이다.
‘그전에 조교는 누가 되려나?’
*****
아카데미는 학년마다 교수가 따로 배정되는 것이 아닌 아예 한 반에 교수가 배정되는 방식이다.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 교수가 끌고 가는 편이며 교수들의 책임감도 덩달아 강해질 수 있다.
물론 정치와 관련된 알력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교수들의 책임감이 강하다는 건 변함이 없다.
“하아…”
따라서 2학년 1학기 시작부터 말보로가 한숨을 쉬는 건 당연하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최근 말보로가 한숨을 쉬는 일이 많아졌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본인이 맡은 반 때문이다.
다른 반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반면에 유독 자신이 맡은 반은 시시때때로 사건을 일으켰으니.
특히 그 중심에는 아카데미에서 큰 인지도(?)를 끌고 있는 시바르다.
‘이번에는 또 어떤 기상천외한 짓을 저지를지…’
시바르는 상식과 거리가 먼 야생에서 넘어온 학생. 그로 인해 별의별 사건사고를 터뜨리고 다녔다.
특히 시험 때마다 말보로를 포함한 교수들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는데 2학년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교수들끼리 으쌰으쌰하면서 회의를 나눴다. 시바르가 사고를 칠 것을 디폴트로 두고 수업을 진행하자고.
지금이야 어느 정도 문명의 상식을 받아들였다지만 사고를 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교수들이 내놓은 의견이다.
‘애는 착해서 다행이긴 한데…’
불행 중 다행인 건 시바르가 선하다는 것. 그가 저지른 폭력 사태조차 상대쪽이 잘못한 경우가 많다.
단지 몸도 좋고 머리도 똑똑한 나머지 예상을 초월한 기행을 저지를 뿐이다.
인간은 몸이 약해 도구를 사용하지만 시바르는 몸도 좋은데 도구까지 사용하니 머리가 아픈 셈.
이번에는 또 어떤 기행을 저지를까. 말보로는 착잡한 마음도 잠시 반으로 들어섰다.
“모두 방학은 잘 지냈나? 오늘부로 자네들은 2학년 수업을 듣게 될 거다. 2학년이라 해서 크게 다른 점이 없지만 현장 체험 학습 등. 외부에 나가는 수업이 있으니 그리 알도록.”
2학년 수업은 1학년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단지 환경만 달라질 뿐이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이 하나 있는데 때마침 말보로가 그 부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참. 자네들이 1학년 때 본 적이 있겠지만 2학년부터 조교생이 선출될 예정이다. 뛰어난 실력과 통솔력이 필요하지.”
“다른 반도 선출되는 건가요?”
“그래. 그리고 각자 희망하는 학생들끼리 모아 대련을 할 예정이다. 한 사람당 두 번씩 붙어 승리가 가장 많은 학생이 조교로 선출되지.”
기본적인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이 점은 모든 학생들이 이해하고 넘어갔다.
통솔력 같은 부분도 문제가 없다. 말이 통솔력이지 무력이 곧 카리스마로 귀결되는 편이니까.
실력주의인 아카데미에 딱 어울리는 방식이다. 말보로는 모든 설명을 끝내고 제안했다.
“자. 그럼 오늘은 조교 희망자부터 고르겠다. 조교를 희망하는 자는 손을 들도록.”
그 말을 하자마자 적지 않은 인원이 손을 들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마트라 제국의 황태자.
그러고 보니 동생들이 입학했다고 했었나. 말보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마찬가지로 마트라 제국의 공녀부터 시작해 붉은 머리의 타타르 공주까지.
대부분 예상했으나 딱 한 명. 딱 한 명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어.’
그 사람을 본 순간.
‘저 녀석이… 왜…? 어째서?’
말보로의 머릿속에서 우주가 펼쳐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말보로 머릿속: 대충 인터스텔라 브금 흐르는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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