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6
주말이 흐르고 다시 주중이 찾아왔다. 2학년 수업은 1학년 수업의 심화 과정 및 현장 체험 학습이 주를 이루는 편이다.
수업 자체가 크게 변하지는 않아도 난이도만 올라갔다 보면 편할 것이다. 우선 첫째 주는 오리엔테이션이다.
오리엔테이션이라 해봤자 눈에 띄는 건 없다. 그냥 앞으로 어떤 수업을 진행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당장 다음 주에는 신입생들 사이에서 대련 이벤트가 이루어진다. 세계 곳곳에서 귀빈들이 모인다는 의미다.
“교수님. 그때 저희 2학년은 뭘 하면 되나요?”
“우린 할 게 없다. 가서 팝콘이나 뜯도록.”
따라서 수업도 없다. 이게 무슨 생 날먹이냐 할 수 있는데 날먹 맞다.
그렇다고 2학년들이 탱자탱자 노는 건 아니다. 신입생 대련이 이루어지는 일주일 동안 할 건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자유 대련이라든지 아니면 1학년 때 배운 지식을 복습한다든지 등등.
신입생 대련 이후부터 정말 바빠지니 마지막 자유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자네들도 원한다면 대련을 관람할 수 있다. 다만 조교 후보생은 관람이 어려우니 그리 알도록.”
“혹시 그때 대련을 하는 건가요?”
“정확하다.”
아쉽게도 나는 조교 후보생이라 대련을 직접적으로 관람하기는 힘들다. 레이나가 싸우는 걸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소울 월드에서 레이나가 단연코 압도적인 무력을 지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커다란 배틀액스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실력자다.
그 실력으로 관심이란 관심은 죄다 받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그 관심이 시기로 바뀌어 힘든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조교는 한 반당 3명씩 총 9명이 배정되는 편이다. 하지만 현재 1명은 이미 선출된 상황이지.”
“먼저 선출됐다고요?”
“그래. 가이아 교단의 성직자다. 성직자는 매우 희귀한 편이기 때문이지.”
“…”
아마 에리카일 확률이 100%일 것이다. 소울 월드에서도 에리카가 조교로 선출됐다.
가이아 교단은 전세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교단이다. 귀족이라 해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다.
특히 동방에서는 ‘풍수지리’ ‘배산임수’ 등등. 땅과 깊은 연관이 있는 학문이 많아 가이아의 위세가 드높다.
괜히 대지모신이라 추앙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 동양쪽이 관상이나 명당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관심이 깊은 법이다.
“소식을 들으니 다른 반에서 각각 5~6명 정도 되는 후보생이 나왔다더군. 조교 후보생은 다음 주부터 대련을 치를 것이다. 한 명당 2번씩 말이지.”
“그냥 한 명은 먼저 뽑는 게 어때요? 괜히 피만 볼 것 같은데.”
안토니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소 비아냥거리는 어조였으나 동시에 맞는 말이다.
내가 대련을 치른다면 상대방 쪽에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터. 그걸 미연에 방지하자는 뜻이다.
카라나 루나는 상위권 강자여도 ‘해 볼 만하다’라는 인식이 있는 반면 나는 아니다.
그냥 ‘시발 뭐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재앙 그 자체다.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실제로 그렇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
안토니오의 저격성 발언에 말보로가 나를 힐긋거리며 동조했다. 쓴웃음은 덤이다.
하지만 이미 되도 않는 가위바위보 확률을 뚫고 후보생으로 선출된 나다.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른 건 몰라도 선출은 공평하게 할 예정이다. 아 물론 대련을 통과한다고 해서 무조건 통과하는 건 아니다.”
“중간에 뭐가 있나요?”
“우리는 자네들을 잘 알고 있는 반면 1학년 교수들은 자네들을 모르지. 따라서 간단한 면접이 이루어질 거다.”
면접이라. 그러고 보니 소울 월드에서도 얼핏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대련이 중심이어서 대충 넘어갔을 뿐. 더구나 선택지도 따로 없이 얼굴만 비추는 거라 큰 의미는 없었다.
‘대련보다 면접이 더 힘들겠네.’
면접은 말을 잘해야 할뿐더러 인상을 깊이 새기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루나를 쳐다봤다.
루나는 특유의 멍청한 표정으로 말보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얘는 과연 면접에서 어떤 헛소리를 날릴까.
의외로 정상적인 면접이 진행될 수도 있지만 혼돈의 주둥이를 고려하면 그건 또 아닐 것 같다.
“면접이라 해도 인성 검사에 가까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참고로 징계를 받은 기록이 있다면 감점을 받을 수 있다.”
“엇.”
“엣.”
징계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마자 나와 카라가 반응했다. 여기서 징계를 받은 사람은 나와 카라밖에 없다.
특히 카라는 징계를 받은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나 또한 커다란 사건 몇몇으로 징계를 받았다.
말보로는 그런 우리의 반응을 예측한 것인지 특유의 근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말을 잘 해야 할 거다. 우리가 필요한 건 무력이지 폭력이 아니니까.”
“…”
“면접은 대련 이전에 실시될 예정이다. 수요일 자유 훈련 시간 때 시간을 내겠지.”
“으음…”
카라가 침음성을 흘렸다. 생각보다 빡센 면접 내용에 머리가 아픈 모양이다.
머리가 아픈 건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다. 나 또한 징계는 생각치도 못한 부분이라 곤란하다.
이윽고 수업이 끝나고 말보로가 밖으로 나가자 카라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니. 징계를 보는 건 생각도 못 했지…”
“이참에 저한테 넘겨주는 게 어때요?”
침울한 카라를 그레이스가 살살 놀렸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다.
이에 카라가 인상을 구기며 어림도 없다는 뉘앙스로 대답했다.
“누구 좋으라고? 두고 봐. 내가 얼마나 선량한지 알려줄 테니까.”
“네. 네. 열심히 노력해보세요.”
“음…”
빈정거리는 그레이스와 달리 루나는 카라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 표정 속에 담긴 생각을 읽었을까. 카라는 루나를 바라보며 한쪽 눈을 치켜떴다.
“넌 또 무슨 생각하고 있냐? 바른대로 말해.”
“아뇨. 그냥…”
“내가 선량하지 않다고?”
루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뭘까. 카라가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을 때 루나가 입을 열었다.
“카라 언니 착한 거 맞잖아요.”
“그렇지? 네가 뭘 좀 아…”
“사회봉사 100시간을 묵묵히 한 걸 고려하면… 네. 착하죠. 손이 매울 뿐이지.”
“…”
고도의 돌려까기인 건지 아니면 루나 특유의 혼돈 내뱉기인지 매우 헷갈렸다.
물론 카라 입장에서는 고도의 돌려까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사회봉사 100시간은 여러모로 임팩트가 크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서 때릴 수도 없다. 때리는 순간 속 좁은 사람이 되는 셈이다.
그야말로 가불기 그 자체. 카라는 입술을 푸들거리며 억지로 웃었다.
“그 그래? 내 손이 매운 걸 네가 어떻게 알까?”
“맞아봐서 알잖아요.”
“혹시 더 알고 싶지 않니? 더 매콤할 텐데.”
“어… 아뇨? 언니의 징계 기록을 위해서라도 사양하겠습니다.”
카라가 웃으며 주먹을 쥐자 루나가 정중히 사양했다. 이럴 때는 눈치가 참 빨라요.
아무튼 면접에서 어떤 질문이 날아올지 고민해야 하는 건 변함이 없다.
소울 월드에서도 스킵됐던 부분이었던지라 은근 아니 꽤 어려울 것이다.
‘미리 연습이라도 해야겠다.’
지구에서 취업할 때 자주 쓴 방법이 있다. 취업하기도 전에 이리로 날아왔지만 어찌 됐든 알긴 안다.
이름하여 질문 예상하기. 말 그대로 질문을 예상하고 그에 따라 대답하는 거다.
얼핏 들으면 쉬울 수도 있는데 막상 면접 때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카라. 카라.”
“응?”
“카라는 어떻게 답할 거야? 면접할 때.”
“글쎄. 일단 질문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
때마침 카라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특히 나와 카라는 이 질문이 분명 날아올 게 뻔하다.
폭력 사태로 인한 징계를 받았는데 받은 이유 혹은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겠나. 이런 식으로.
나는 대충 생각한 바가 있지만 카라는 모르겠다. 애초에 소울 월드에서 조교를 희망하지 않았다.
“이런 질문이 온다면 어떡할 거야? 징계를 받은 이유를 물을 거 같은데.”
“그거라면 뭐… 적당히 잘 포장해야지. 서로 간의 마찰이 있었다라는 식으로.”
“그러면 더 안 될걸요? 차라리 그날 이후 기록이 깔끔한 걸 강조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레이스가 옆에서 도와줬다.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다.
당시의 카라는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아니다.
1학년 재학 당시 징계를 받은 기록이 하나도 없었으며 지난번 스토킹 사건에서도 꿋꿋이 참았다.
과거의 카라였다면 스토커 얼굴에 죽빵을 놓다 못해 두들겨 팼겠지. 하지만 진저리만 칠 뿐 끝까지 인내했다.
“과거의 나는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식으로 하면 되려나?”
“그게 훨씬 낫네요. 교수님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그럼 시바르 너는? 너는 뭐라고 할 거야?”
루나가 나에게 물었다. 호기심이 가득 찬 눈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다들 궁금해 하는 얼굴이다.
카라보다는 횟수가 적지만 임팩트 하나하나가 굉장한 징계 이유가 대부분이다.
특히 동급생의 혀를 자른 건 로드가 적절히 커버해서 망정이지 자칫하면 퇴학까지 이루어졌을 사안이다.
“음… 생각한 건 있어.”
“뭔데?”
“나는 사람을 때린 적이 없다.”
“…?”
헛소리 아닌 헛소리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내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짐승은 아니다. 짐승은 때리지 않는 이상 말을 듣지 않는다.”
“…”
“내가 폭력을 사용한 이유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렸다. 이런 식?”
“큰일날 소리를 하네.”
“그러게요.”
다들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아무래도 다른 대답을 모색해야 할 듯했다. 기숙사로 돌아가면 그레이스와 상담을 해야겠지.
‘나는 그렇다 치고 카라스는 무슨 대답을 하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조교 후보생 중에는 카라스도 포함돼 있다.
징계 기록은커녕 생활 자체가 깔끔한 그라지만 예상 질문 중에 이런 것도 있다.
어째서 조교직을 원하는 것인지. 또한 조교가 되어 얻는 게 뭐가 있는지 등등.
“카라스.”
“음? 할 말이라도 있나?”
“너는 뭐라고 답할 거야? 조교가 되고 싶은 이유 같은 거.”
그래서 직접 물었다. 카라스는 노트에 뭔가 적다 말고 조용히 덮었다.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 볼 생각은 없어서 노트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아. 면접에 대한 이야기로군.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는다네.”
“왜?”
“오히려 반문하고 싶군. 나를 뽑지 않을 이유가 있나?”
“…”
상당히 재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카라스만큼 신입생들을 ‘통제’하기 쉬운 사람이 또 없을 거다. 무려 제국의 황태자다.
제아무리 동방의 귀족들이 힘을 합친다 해도 카라스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할 터.
애초에 동방 정확히는 동쪽의 나라들이 연합을 세운 이유가 마트라 제국과 그라나다 제국 때문이다.
그러니 카라스가 조교가 된다면 교수들 입장에서는 통제하기 상당히 쉬울 것이다.
‘이게 그 낙하산인가?’
그런데 공수부대네. 그것도 베테랑 중의 베테랑으로 이루어진.
납득이 가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카라스: 공수부대
카라: 평범한 조교
루나: 그냥 루나
시바르: 대장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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