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8
사실 카라는 원래 조교가 될 생각은 없었다. 조교가 된다고 해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차별만 오질나게 받을 텐데 뭐하러.’
아카데미 입학부터 지금까지 카라는 사람에 대한 염증이 꽤 많이 생긴 상황이다.
다행히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런 경향이 옅어지긴 했지만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다.
특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조금 꺼려졌는데 그녀의 첫 인상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이다.
남들과 대비되는 구릿빛 피부. 새빨간 머리카락. 초록색 눈동자. 은근히 큰 체격 등등.
이러한 조건들이 합쳐져 남들다 ‘다르다’라는 인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다들 익숙해져서 괜찮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또한 출신이 타타르라는 이유만으로 모진 차별을 겪었으니.
더구나 당시에는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폭력 사태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퇴학을 간신히 면한 것도 기적이다.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지간해서 혼자 다녔다. ‘다르다’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으니.
하지만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건지 그러한 시선들이 다른 곳으로 몰려들었다. 알다시피 그 주인공은 시바르다.
출신을 넘어 태생 자체가 의문덩어리였으며 문명과 거리가 먼 야생에서 온 소년.
그 소년의 등장은 카라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일단 시바르와 친해진 것부터 시작이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기본적으로 선량한 시바르의 곁에 선량한 사람들이 모였으며 카라도 포함돼 있었다.
혼자만 피부색이 달라도 시바르에 비해서는 한참 약과였다.
‘자기를 차별한다는 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네.’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이 수두룩한 카라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몇 번 눈으로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시바르는 평소 성격이 무던한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건지 대부분 무시하는 편이었다. 자기 일만 꾸준히 하는 느낌.
물론 가끔 가다 주먹을 날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상대쪽이 잘못한 거라 다들 넘어갔다.
그 후로 시간이 흘러 갖가지 다양한 사건사고를 겪고나니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렸다.
‘이상하네. 그냥 가만히 있었다고 시선이 이리 달라지나?’
자신을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 그것도 180도에 가깝게.
원래라면 차별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게 기본이었는데 최근에는 평범한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순수한 궁금증으로 묻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몇몇 사람은 차별이라 생각했는지 눈치를 볼 정도. 눈치를 볼 때는 도리어 이쪽이 더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좋은 현상이긴 하지만 카라로서는 떨떠름한 일이다.
‘이유를 모르겠네. 뭐가 변했나?’
카라는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시바르에게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가진 후에 변한 건 맞다.
역겹기 그지 없는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 반성함으로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졌으니.
무엇보다 주먹이 나가는 일이 한참 줄어들었다. 예로부터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카라는 항상 그랬다.
하지만 어느 기점부터 폭력이 나쁘다는 걸 깨닫고 최대한 말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취하기 시작했다.
선을 넘는 순간 그냥 신고하고 넘겼다. 당연히 그런 학생들은 심한 징계를 받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만…’
그래도 데인 게 많다 보니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새로운 사람과 만날 때마다 이러한 경향이 강해졌다.
피해망상일 수도 있지만 새로 만난 사람들의 시선은 늘 비슷했으니까.
타타르가 교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긴 현상이지만 카라는 거기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
따라서 가능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보다 아는 얼굴을 만나는 걸 선호했다. 뿌리 깊게 박힌 상처로 인한 방어 기제였다.
“뭐? 조교? 갑자기?”
“응.”
“대체 왜?”
“새로운 사람 만나고 싶어.”
하지만 시바르는 달랐다. 비슷한 상처를 가졌을 텐데 새로운 만남을 원했다.
카라로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시바르에게 적지 않은 차별적 대우가 이루어졌다.
당장 첫 시험부터 별 같잖은 이유로 전투 제한이 걸렸지 않았는가. 야생에서 왔기에 도덕성이 없다는 이유다.
물론 도덕성이 없는 건 교수였고 그 교수는 시바르에게 제대로 걸려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다.
그걸 보며 깨달았다. 시바르는 적어도 아무 이유 없이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더구나 생각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 괜찮겠어? 걔들은 너를 모를 텐데.”
“그래서 더 궁금해.”
“으음…”
카라는 침음성을 흘렸다. 원래 무례는 무지로부터 오는 법이다.
루나의 주둥이처럼 숨 쉬듯이 저지르는 무례가 아니라 정말 몰라서 저지르는 무례가 은근 많다.
더 심한 건 알고 있는데도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도 많다는 거다. 그런 경우는 싸우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카라가 세상을 살면서 겪은 바가 있다. 선을 걸쳐서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시바르가 그걸 알까?’
여태까지 시바르가 폭력을 저질렀던 경우는 대체로 하나로 귀결됐다. 상대쪽에서 무례를 넘어 모욕을 퍼부었을 때다.
하지만 카라는 그보다 더 악랄한 사람들을 지켜봤다. 선을 넘을 듯 말 듯 무례를 범하고 이쪽이 먼저 나서게끔 유도하는 놈들.
그런 놈들을 주먹으로 다스렸지만 돌아오는 건 징계였다. 저쪽이 먼저 도발했다 항변해도 큰 소용이 없었다.
문명과 사회는 폭력을 악으로 취급하니까. 필요악이라 해도 악은 결국 악이다.
‘총장님이 도와준다 해도 괜히 복잡해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시바르가 걱정스러웠다. 분명 시바르도 자신 못지 않게 상처가 많을 터.
기본적으로 성격마저 선량하다. 혀를 뽑았던 사건마저 로드를 욕보여서 그랬다고 말했다.
자신을 욕하는 건 상관없어도 친한 사람을 욕하는 건 못 참는 성격. 선량하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상처를 잘 받는 편이다. 자기가 꾹 참으면 된다는 마인드였으니.
‘에휴. 호기심이 문제지.’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호기심은 인간으로서 응당 지녀야 할 감정이다.
하물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인맥을 꾸려야 사람이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시바르의 호기심이 고양이와 같다는 것. 호기심 많은 고양이가 사고를 치는 건 예견된 미래다.
“알았어. 그럼 나도 조교할게.”
“카라도?”
“네가 걱정되서 그래.”
다시 말하지만 조교를 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이게 다 시바르 때문이다.
싸울 때는 헥토르 못지 않게 든든하지만 일상은 반대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하다.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또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니까. 악마가 아카데미에 습격한 이후부터 더욱 그렇다.
한 눈 파는 순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유형. 호기심은 또 쓸데없이 많은 바람에 사람 마음을 애태웠다.
‘귀여워서 봐주는 거지.’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정말 사랑스러울 정도로 귀엽기 때문이다.
도도하게 구는 것 같으면서도 가끔 애교를 부리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동물.
시바르가 딱 고양이에 부합하는 사람이다. 도도하기보다는 무뚝뚝함에 어울리지만 아무튼 고양이다.
그런 애가 애교까지 부린다면… 솔직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상상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힘들 때 옆에서 도와줘야지.’
카라는 확신했다. 아직 시바르는 사회의 쓴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고. 인생 선배로서의 직감이다.
만에 하나 시바르가 상처를 받는다면 잘 보듬어 줄 필요가 있다. 특히 그의 성격을 고려하면 더욱이.
남을 욕하는 건 못 참아도 자기를 욕하는 건 참는 성격이다. 분명 무슨 일이 있어도 꾹꾹 참겠지.
싸우는 건 잘해도 처세술이 상당히 부족한 그였으니 이번 기회에 도와줄 것이다.
‘개인 욕심이 아니라 시바르가 걱정되는 거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욕심 반 걱정 반이다. 어쩌면 일석이조가 될 수도 있는 상황.
때마침 그레이스도 조교 후보에서 탈락했으니 상당히 좋은 고지를 점한 셈이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시바르가 상처 받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보듬어 주고 싶을 뿐이다. 마음이 넓을지언정 여리디 여린 시바르다.
당장 중태에 빠진 로드를 고치겠다고 홀로 프로즌으로 갔지 않았는가. 심성이 매우 착한 아이다.
“아. 시바르 왔네. 면접은 잘했어?”
“그럭저럭. 카라는?”
“예상 질문이 다 나와서 쉬웠지.”
면접이 끝나 다시 돌아온 훈련장. 카라는 자율 훈련 중에 시바르가 돌아오자 반갑게 맞이했다.
언제나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그의 표정을 읽는 건 힘들었지만 얼굴만 봐도 즐거웠다.
훗날 저 얼굴이 애처롭게 변하고 신입생들 가르치기 힘들다며 안기는 날에는…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카라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순간 음흉한 상상이 떠올라 하마터면 위험했다.
시바르는 그걸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넘어갔다.
“흠흠. 아무튼! 너는 교수들이 무슨 질문했어?”
“그냥 사회에서 뭐가 중요하냐고 물었어.”
“그래? 신기하네. 그래서 대답은?”
“언어가 중요하다고 했어.”
시바르는 면접에서 있던 일을 그대로 말했다. 물론 짐승은 패야 된다는 말은 아꼈다.
굳이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해봤자 잔소리만 들을 것 같다.
“그래서 언어가 중요하다는 거구나. 다른 점을 최대한 줄여야 하니까.”
“응.”
“…”
카라는 시바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었다.
시바르는 벌써부터 본인과 다른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깨달은 모양이다.
차이와 차별은 명백히 다르지만 시바르가 그걸 인지했다는 것부터 문제다.
어쩌면 본인의 출생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겠지. 시바르는 결국 악마의 후손이었으니까.
시바르라는 사람을 알면 알수록 카라의 마음은 더욱 안쓰러웠다. 보듬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뭐… 노력하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주변에 좋은 사람도 많잖아?”
“응. 맞아. 카라도 좋은 사람.”
“고마… 어?”
카라는 웃으며 대답하려다가 말고 크게 당황했다. 순간 자연스러워서 넘어갈 뻔했다.
방금 시바르는 공용어로 말하지 않았다. 익숙하디 익숙한 모국어 타타르의 언어로 말했다.
이에 카라가 놀란 눈으로 시바르를 쳐다봤다. 그러자 시바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카라는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은 나도 좋아해.”
“시 시바르? 그 그거 우리 말… 맞지?”
“응. 맞아.”
이번에도 타타르 언어다. 카라는 순간 멍해졌다.
그러면서도 시바르는 본인이 생각한 그대로 말을 꺼냈다.
“말했잖아. 차이 좁히고 싶다고.”
“그 그렇지.”
“그래서 배웠어. 헤.”
마지막으로 혀를 삐죽 내밀며 장난스레 굴기까지. 고양이가 딱 애교를 부리는 모양새다.
카라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갈색 피부 위로 돋아나는 홍조를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와. 진짜…’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은 거세게 콩닥거리고.
‘덮치고 싶네.’
이성과 감성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
[신앙이 상승합니다!]
“응?”
뭐야. 신앙이 왜 상승하는 거야.
‘내가 뭐 했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바르: 덩치 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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