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9
면접도 잘 쳤겠다 남은 건 후보생들끼리의 대련이다. 이게 면접보다 훨씬 쉽다.
원래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머리를 굴려야 하는 면접이 제일 어렵다.
게다가 근래들어 대련 혹은 전투를 할 기회가 나지 않아 몸도 은근 쑤시던 참이다.
마음 같아서는 숲에 들어가서 사냥을 하고 싶었으나 로드가 한사코 말리더라.
그때 내가 농땡이를 피워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웬만해서는 출입 금지다.
‘슬슬 금지령을 풀기 위해서인가?’
그런 식으로 물으니 대충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나더러 더욱 조심하란다.
괜히 사냥하다가 학생들과 마주치면 이상한 신고가 들어올 거라나 뭐라나.
다만 완전히 금지한 건 아니고 신입생들이 놀라지 않게끔 조심하라는 이야기다.
“이번 신입생들도 숲 출입은 힘드려나?”
“소문으로는 출입 금지를 풀어준다던데?”
“앗. 그럼 이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거야?”
금지령이 풀린다는 소문이 꽤 널리 퍼졌는지 반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들렸다.
숲 내부도 지배자들이 등장하면서 균형이 얼추 맞춰진 상황이고 외부도 문제가 없다.
대신 걱정되는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건 바로 내가 아니라 포로리의 존재다.
‘신입생들이 들어가면 이상한 소문이 흐르려나?’
웬 다람쥐를 발견했는데 철산고를 맞아 기절했다든지.
아니면 다람쥐를 사냥하려다가 꼬리에 얻어맞고 어디 한 군데가 부러졌다든지.
마지막으로 다람쥐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펼치더니 벼락이 떨어졌다든지 등등.
별의별 소문이 흐를 게 분명하다. 지금 포로리는 생명력을 모두 회복해 숲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아예 자기 세력도 만들었더만.’
사냥꾼에게 당했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포로리는 숲에 자기 세력을 구축했다.
정확히는 감시자들이라 해야겠지. 악마들과 관련된 징조가 보인다면 그 즉시 대치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그 세력들은 대부분 다람쥐들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포로리의 지역은 다람쥐가 많다.
나야 뭐 크게 상관없는 부분이라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중에 다람쥐의 숲으로 칭해질 것 같다.
“그나저나 오늘 대련하는 거 봤어?”
“당연히 봤지. 프로즌 공녀가 제일 강한 거 같던데?”
또한 신입생들이 입학할 때마다 이루어지는 대련도 진행됐다.
나는 바빠서 직접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내 예상대로 레이나가 선전하고 있었다.
카라만큼은 아니어도 레이나도 나름 무력이 출중한 편이었으니. 신입생들 중에서 제일 강할 거다.
‘실전 경험도 은근 풍부한 편이고.’
부족 통합 시절 카라처럼 시도 때도 없이 사람과 싸운 건 아니지만 레이나도 실전 경험은 있다.
프로즌은 자원이 풍부하여 도적 같은 건 없지만 외부에서 범죄자가 유입되는 편이다.
일단 혹독한 환경 때문에 프로즌에 도착하기만 하면 추적이 어려우니까.
더구나 일반 병사가 해결하기 어려운 몬스터도 다수 포진돼 있기에 레이나가 직접 나서는 경우가 많다.
‘곰탱이 한 마리 잡자고 멀리까지 올 정도지.’
여기에 쾌할한 성격과 열정까지 합쳐져서 실력이 출중할 수밖에 없다.
비록 사랑만 받고 살아와서 왈가닥에 눈치가 없다는 점이 문제지만 이는 차차 고치면 될 터.
지금은 그녀가 상처받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조교에 지원한 것이다.
“근데 저 사람들은 왜 있어?”
“저 사람들이라니. 교수님들이잖아.”
신입생들이 대련을 하는 동안 우리도 따로 대련을 할 예정이었다.
따라서 구경꾼이 아닌 심판역으로 교수만 남긴 채 대련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 사람들 왜 왔어?”
“그거야 우리도 모르지?”
원래라면 그렇다. 원래라면 말이다.
나는 일반 대련장 관중석에 모여 있는 교수들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신입생 대련은 일반 대련장이 아닌 특수 대련장에서 진행되며 교수들도 당연히 거기에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왜인지 몰라도 몇몇 익숙한 교수들이 일반 대련장 관중석에 앉아있더라.
신입생들을 지켜보느라 바쁜 사람들이 어째서 여기 있는지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잖아? 그냥 점수를 매기는 거라 생각해.”
“음. 그런가?”
“그런 거지.”
나는 카라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울 월드에서의 상황과 달라서 당황했던 모양이다.
어차피 대련의 승패에 따라 승점이 갈리는 방식이니 교수가 참관해도 큰 문제는 없다.
반대로 눈도장을 제대로 찍을 수 있을 수도 있다. 난 그럴 계획이다.
‘지든 이기든 레이나가 있는 반으로 배정되는 걸로 아는데… 여기서는 잘 모르겠네.’
무엇보다 카라스의 존재가 매우 크다. 카라스는 분명 망나니 남매가 있는 반으로 배정될 터.
특히 레이나와 망나니 남매가 같은 반이 됐다는 소문이 있다. 소문이 아니라 진짜겠지.
조교는 한 반당 3명이었으니 나머지 2명을 고르는 셈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을까.
‘이리 되면 루나나 카라와 떨어지는 건 확정이구나. 아니지. 에리카도 생각해야 하나?’
에리카는 가이아 교단인 만큼 통제하기 제일 어려운 반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문제는 그곳이 망나니 남매가 있는 반이라는 것. 이리 되면 둘 다 만날 수 없다.
‘어색하겠네.’
카라스는 망나니 남매에게만 신경을 쓸 테고 나머지는 나와 에리카가 담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나마 카라스는 괜찮아도 에리카는 조금 껄끄럽다. 여태까지 나한테 한 일이 있었으니.
비록 리제가 어느 정도 교정했다지만 혹시 또 모른다. 애가 다른 의미로 사고뭉치여서 불안하다.
“다음 학생 입장해주세요.”
카라와 노가리 까는 동안 내 차례가 온 모양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그럼 고생하고 와. 상대가 욕해도 그냥 넘어가고.”
“알았어.”
나는 아무런 무기도 챙기지 않고 통로를 지나 대련장에 도달했다.
때마침 상대방도 통로에서 나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 걸 보면 다른 반인 모양이다.
그냥 적당히 상대하다가 기절시키고 와야지. 사람을 때리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뭐야? 설마 무기도 없어?”
“응.”
“하. 참나. 저번 난투 때 보니까 조금 강하기만 하고 별거 없었는데.”
“…”
사실 스트레스가 조금 쌓이긴 했다.
*****
관람석에 앉은 교수들은 대부분이 1학년을 담당했지만 2학년을 담당하는 교수도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말보로였다. 원래였다면 신입생들의 대련을 지켜볼 예정이었다.
하지만 친구인 척하는 원수가 느닷없이 시바르의 대련을 보고 싶다고 끌고 왔다.
그리고 그 친구는 바로 옆에 앉아있었으며 1학년을 담당하는 교수인 디스였다.
“정말 직접 볼 필요까지 있냐? 어차피 시바르는 너네 반에 넣을 거라니까.”
“눈으로 봐야 조절할 수 있잖아. 제일 강한 애를 우리 반에 넣어야지.”
“에휴.”
말보로는 디스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조교 선출을 승점제로 하는 이유는 반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성적 순으로 균형을 맞춰 반이 배정된다 믿고 있다. 이게 가장 편리한 방식이니.
하지만 마냥 그렇지 않았다. 아카데미는 반 배정을 성적 순이 아닌 배경 순으로 나누는 편이다.
다시 말해 높으신 분들의 자제를 한 반에 몰아넣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다고 통제가 쉬워지는 건 아니다. 내가 그랬어.”
“그때는 완전한 야생인이었고 지금은 아니잖아.”
“그거 말고 임마. 쟤가 있다고 해서 애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힘들다고.”
신분에서 나오는 차별 및 파벌 싸움을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지만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대부분 우뚝 서려는 욕심이 강하다.
또한 사람의 본성인지 몰라도 본인들만의 세력을 구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리 되면 각종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제아무리 아카데미가 작은 사회라 해도 정치가 엮이는 순간 골치아파지는 법이다.
그렇기에 높은 신분들을 아예 한 반에 몰아넣어서 세력 구축이 힘들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너희 반은 잘됐잖아? 타타르 공주도 있어. 입학 수석도 있어. 마트라 제국 공녀도 있어. 그라나다 대장군 동생도 있어. 나는 안 된다는 거야?”
“그건 아닌데… 하 씨.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말보로는 디스의 반박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디스의 말에서 틀린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사실 말보로의 반도 상당히 빡센 편이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갈등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시바르가 동급생의 혀를 잘라버린 사건? 그건 그 동급생 쪽의 인성이 파탄 난 거라 취급하기도 애매하다.
아무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으레 있을 법한 따돌림이나 파벌 문제는 없었다. 그냥 자기들끼리 놀고 끝이다.
“예상 외로 학생들이 착한 거지. 그거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저 녀석 때문인 것 같은데? 솔직히 나누기 쉬운 주제가 저 녀석 말고 더 있겠어?”
“으음…”
그것도 반박하기 어려웠다. 시바르가 들어오고 나서 반 분위기가 달라진 건 사실이었으니.
시바르가 하도 말썽을 피우다 보니 화두에 오르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걸로 친해지는 학생들도 있었고 아니면 멀어지는 학생도 있었다.
원래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라고 하지 않았나. 다들 자기 일이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성적도 크게 납득하는 편이고.’
성적과 관련된 부분에서 태클을 걸었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없었다.
교수들이 어떻게든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똥꼬쇼 아니 노력한 흔적이 시험 곳곳에 묻어나왔으니.
그 노고를 학생들도 알아줘서 약간의 항의만 할뿐 그 이상으로 뭐라 따질 수도 없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대신 쟤가 사고 쳐도 난 모른다.”
“에이. 또 무슨 사고를 친…”
-콰앙! 쾅!
디스가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였다. 대련장에서 커다란 소음이 울려퍼졌다.
이에 대련장을 쳐다보니 이게 무슨 일일까. 시바르가 사고 아닌 사고를 치고 있었다.
본래 대련은 상대방과 수 싸움을 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이는 ‘힘’의 차이가 적을 때의 이야기.
“이야…”
“어…”
그리고 시바르와 상대의 차이는 극명한 수준이다. 그렇기에 기술이고 나발이고 없다.
지금의 상황도 그렇다.
-붕! 붕!
시바르는 수 싸움은커녕 상대방의 발목을 붙잡고 풍차처럼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닥으로 몇 번 내려꽂다가 다시 풍차처럼 돌리고 또다시 내리꽂기를 반복했다.
맨 처음 그 소리도 시바르가 발목을 붙잡고 바닥에 패대기를 치는 소리였다.
“끄으으으륵…”
바닥에 꽂힌 학생이 침음성을 흘렸다. 죽기 직전의 신음과 비슷하다.
시바르는 그런 학생을 무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유유히 안으로 들어갔다.
일방적인 싸움. 아니 이걸 싸움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싸움이 아니라 폭력이다.
“저래도?”
“…”
“저 녀석 우리보다 강할걸? 내가 장담하지.”
대련이 끝나자 말보로가 피식 웃으며 디스에게 물었다. 통제할 수 있냐는 질문이다.
이에 디스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소문으로는 사탕 하나 주면 조용해진다던데?”
“그딴 소문은 어디서 들었냐?”
“몰라. 그런 소문이 돌긴 했어.”
“에휴.”
말보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먹어봐야 아는 녀석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그래도 애는 착해요
님! 재미있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댓글 하나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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