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0
신입생 대련이 아닌 조교직을 선출하기 위한 대련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우선 시바르 카라 루나 이 세 명은 다른 학생에 비해 실력 차이가 나는지라 상위권에 안착했다.
카라스는 이들보다 전투력이 떨어져도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교수들이 특정 반에 넣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1학년 교수들이 상위권에게 관심을 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능하면 시바르랑 같은 반이 되면 좋겠는데.’
상위권 중 한 명이자 시바르와 같은 반인 루나는 생각했다. 시바르와 같은 반이 됐으면 좋겠다고.
원래 그녀는 카라와 마찬가지로 조교가 될 생각이 없었다. 조교가 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시바르 때문이다.
시바르가 온갖 차별을 받을까 봐 걱정되는 건 아니고 단지 목적을 알고 싶었을 뿐이다.
‘시바르가 이상한 짓을 해도 허튼 짓은 절대 하지 않아.’
평소 그를 관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의외로 그녀의 판단은 매우 객관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성적 호감 때문에 판단이 흐려지는 반면 루나만큼은 뚜렷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시바르가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으니 더욱 객관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시바르는 결코 허튼 짓을 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하고 있는 상태다.
조교직에 직접 나선 것도 인맥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필시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리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는 무슨 목적인지 모르겠네.’
이번에는 무슨 목적을 가졌는지 도통 예측하기 힘들었다.
새로운 얼굴을 보기 위해 조교가 된다는 거? 겉보기에는 충분히 말이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루나 입장에서는 누구를 찾는다는 말처럼 들렸다. 처음에는 악마와 관련된 건가 싶었다.
‘그건 또 아닐 텐데. 악마는 절대 못 들어와.’
기념탑이 새로 건설된 이상 악마는 절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범위도 늘어났다.
기념탑의 범위는 무려 혼돈의 숲 외곽마저 감쌀 정도였는데 듣자하니 로드가 건의한 거라고.
물론 기념탑의 영향을 받을 정도라면 굉장히 강한 몬스터라는 뜻이니 큰 변화는 없었다.
‘도대체 누구일까? 누구길래 신경 쓰는 걸까?’
지금까지 시바르가 먼저 다가간 사람들은 대부분 범상치 않았다.
카라부터 시작해서 공작가 영애인 그레이스. 괴짜 공학자 제인 등등.
이외에도 시바르에게 먼저 접근한 사람도 범인과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누구와 가까이 지내기 위해 조교 후보가 된 걸까.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또 여자인가?’
상당히 가능성이 높다. 루나는 시바르의 주변인을 떠올렸다.
검성 로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여자다. 심지어 그 여자들 대부분이 시바르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무슨 페로몬이라도 뿌리는 건지 몰라도 시바르 앞에서 바보가 되는 여인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그런 매력을 가졌는데 당연한 걸지도.’
당장 자신도 시바르 선보인 ‘월보’에 흠뻑 빠졌지 않았는가. 그때만 생각하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야생인’ 시바르가 아닌 ‘무대 위’의 시바르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 무대를 녹화한 영상 구슬은 기숙사에 고이 보관했다.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는 물건이다.
심심할 때마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싹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또한 하루의 끝을 알리기도 했고.
‘원하는 반이 아니어도 시바르가 알려주겠지?’
아무튼 시바르는 분명 이유가 있어서 조교직을 선택했을 것이다.
설령 원하는 반이 되지 않는다 해도 자신이 된다면 기꺼이 도움을 줄 예정이다.
그러니 지금은 열심히 하자. 어느 반이 되든 간에 할 일만 하면 끝이다.
“시간을 내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다시 돌아와 모든 대련이 끝난 현재. 루나는 2학년 교수가 아닌 1학년 교수들과 대담하고 있었다.
면접 당시에는 각 반의 교수들 대표가 모였으나 지금은 아니다. 디스를 제외하면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아마 디스가 담당하고 있는 반의 교수들이겠지. 앞으로 얼굴을 익혀야 할 수도 있다.
“다름이 아니라 자네를 부른 이유는 매우 간단해. 시바르라는 학생에 대해 궁금한 게 있거든.”
“시바르요?”
“그래.”
시바르에 대해 궁금하다고 하자 루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눈치챘다.
아무래도 시바르는 앞의 교수들이 담당하고 있는 반의 조교가 될 모양이다.
“조교 중에서는 자네와 카라 학생이 같은 반이라서 말이야. 질문 몇 개를 하고 싶어서 이리 불렀다지.”
“질문이요?”
“별로 큰 건 아니야. 다만 학생도 알다시피 소문이 조금… 굉장하잖아?”
소문이 굉장하다. 에둘러 말했지만 어떤 표현인지 금방 깨달았다.
당장 시바르가 저지른 사건사고만 해도 아카데미 역사에 떡하니 기재될 정도다.
심지어 중간 고사의 규정을 바꿨다고 할 정도였으니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알 것이다.
“네. 뭐… 무슨 말씀인지 알겠네요.”
“이해해주니 정말 고맙군. 아 물론 그렇다 해서 시바르 학생에게 불이익이 가는 건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감사합니다.”
불이익이 없다면 시원시원하게 말해도 될 것 같다. 물론 시바르를 최대한 좋게 포장할 것이다.
괜히 나쁘게 말했다가 관계가 꼬일 수도 있었으니. 원래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듣는 법이다.
‘아닌가? 반대인가?’
루나가 속으로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가장 먼저 디스 옆의 교수가 질문했다.
동방 출신인지 동방풍 복장에 기묘한 약초향을 풍기고 있는 남자였다.
“듣자하니 야생에서 온 바람에 벌레 같은 것도 먹는다 하는데… 맞나?”
“네. 지금도 먹어요.”
“으음… 그러면 어떤 벌레가 위험한지 알고 있는가? 곧 있으면 숲의 출입 금지령이 풀리는데 어떤 벌레가 증식했는지 몰라서 말일세. 그래서 조교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그 질문을 들은 루나는 이리 생각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이런 거는 시바르에게 직접 묻는 게 더 낫다. 하지만 영 부담스럽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루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시바르의 먹성을 깨닫고 특유의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알긴 알 거예요. 그래도 먹을걸요?”
“위험하다는 걸 아는데 먹는다고?”
“네. 몸이 튼튼해서 그런지 몰라도 탈이 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심하게 아픈 적은 있어도 벌레 때문은 아니다. 주머니 속에 보관돼 있는 의안 때문이겠지.
동방의 교수는 루나의 대답을 듣고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래도 되나? 싶은 얼굴이다.
“혹시 시바르에게 벌레 먹이려고 했어요? 겸사겸사 처리할 겸?”
“응? 아 아니. 그 그 그건 아닐세.”
맞는 거 같은데. 심하게 당황하는 걸 보면 반쯤 확실하다.
독성이 깃든 벌레를 해치우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바르는 먹으면 끝이니 교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쉽고 간단한 방법이다.
“이번에는 제가 질문할게요.”
“네. 질문하세요.”
“시바르 학생의 마법적 소양은 어떻죠? 매우 뛰어난 편인가요?”
안경을 쓴 여교수의 질문이다. 루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바르는 마법사가 아닌 전사다. 가끔 마법을 쓸 때가 있지만 매우 드물다.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에요. 애초에 저희 교수님도 마법 쓰지 말라고 당부하셨어요.”
“어째서죠? 당부라니?”
“사용했다가 천장이 물줄기에 뚫렸거든요.”
“…”
“아니면 훈련장 전체가 불회오리에 휩싸이거나.”
마법적 소양이 부족한 게 아니라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서 문제라는 뜻이다.
출력이 강한 붉은 마력의 소유자다 보니 마법도 타인보다 월등히 강하다.
이를 좋은 곳에 쓸 수 있다면 좋겠으나 안타깝게도 시바르는 조절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니 사고가 터져서 시말서를 쓸 바에야 차라리 포기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치유 능력은 어떤가?”
“손가락 잘려도 알아서 자라던데요?”
“…사람인가?”
“사람은 맞아요. 조금 강한 사람이지.”
루나는 교수들의 질문을 하나하나 정성껏 대답했다.
비록 특유의 주둥아리 때문에 교수들을 혼란에 빠뜨리긴 했으나 이는 어느 정도 의도한 것이다.
“말을 안 듣는 학생들을 해칠 가능성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 이건 확신할 수 있어요.”
“대련 때 사람을 패대기 치던데?”
“…어지간하면 없을 거예요.”
시바르를 야생인으로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그래야 교수들이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
혹여 시바르를 화나게 만든다면 해치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루나는 그걸 직접 목격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시바르는 그때의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절대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는 안 된다.
“시바르는 지금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어요. 교수님들이 무엇을 우려하는지 저도 잘 알고요.”
“으음… 그건 우리도 잘 알고 있다네. 다만…”
“통제가 과연 가능할지… 통제만 할 수 있다면 아주 훌륭한 조교가 될 수 있을 텐데.”
“아참. 말 나온 김에 이거 하나만 더 물어보자. 루나 학생.”
“네?”
“그…”
디스는 입을 열다 말고 잠깐 멈칫거렸다. 그러면서 눈치를 보기까지.
다른 교수들도 디스의 반응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는데 정작 디스는 머쓱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뻘쭘한 시간이 지나가는 줄 알았지만 디스는 용기를 내어 질문했다.
“그… 소문이 있어서 말이지.”
“무슨 소문이요?”
“붉은 눈의 야생인과 친해지려면 사탕을 줘라. 이런 소문.”
대체 어디서 나온 소문인 걸까. 루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바르에게 사탕을 주는 사람은 꽤 많다. 로드부터 시작해서 반 학생들까지.
시바르도 가릴 것 없이 잘 먹는 데다가 단 음식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고를 칠 때마다 로드가 사탕 주지 말라고 엄격히 다스렸지 않았는가.
“맞는 말이긴 한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준비는 해야겠지.”
“정말 통할 거라 생각해?”
“밑져야 본전이잖아.”
교수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듯했다. 사탕을 준비하는 건 확정된 모양이다.
이후로도 몇몇 질문과 대답이 오가면서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 시바르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윽고 질문할 거리가 떨어졌을 때쯤 디스가 마지막 질문을 날렸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네.”
“기록으로는 시바르 학생의 치악력이 굉장하다던데 맞나?”
“치아로 검을 부러뜨린 적이 있어요.”
엘빈과 대련했을 때였다. 시바르는 그의 검을 치아로 부러뜨렸다.
그 행동의 임팩트가 워낙 컸던지라 시바르의 유명세(?)가 널리 퍼져나갔지.
디스는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시바르 학생이 사람을 문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야생은 보통 입이 주무기인 짐승이 많아서 말이야.”
“에이. 시바르는 사람을 물지 않아요.”
루나는 걱정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차라리 손으로 사람을 찢고 말지.”
“…”
“…”
“…”
쥐 죽은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나: 시바르는 사람을 찢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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