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2
“시바르를 다스리는 법을 알려달라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던 로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얼굴에 의문이 가득했다.
현재 그는 거주지가 아닌 본관의 총장실에서 느긋하게 놀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여태껏 설명했듯이 총장이라 해봤자 이렇다 할 권력은 마땅히 없었으니까. 대신 권위가 말도 안 되게 높다.
그래서 보여주기용 보고가 아닌 이상 교수들과 의논을 나누는 일은 잘 없다. 굳이 있다면 행사 정도다.
“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그걸 왜 굳이 나에게 묻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다만?”
로드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총장실까지 찾아와 상담 아닌 상담을 진행한 대상은 다름아닌 디스다.
그도 눈이 있고 귀가 있는 만큼 아카데미에서 떠도는 소문 정도는 알고 있다.
하물며 그 소문의 중심지가 유명한 사고뭉치라면 더욱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시바르를 선택한 건 자네일세. 자네뿐만이 아니라 교수들이 시바르를 조교로 선택했다고 들었다만?”
“맞습니다.”
“확실한 수가 있는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었던 모양이군?”
“…”
정곡을 찌르는 말에 디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할 말이 없다는 반응이다.
로드의 말마따나 시바르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다른 교수들과 의논도 나눈 참이다.
그러나 며칠 동안 시바르를 지켜보면서 수많은 우려가 나왔다. 우선 종잡을 수가 없다.
분명 무슨 짓을 할 것 같은데 도대체 뭘 할지 좀처럼 예상할 수 없었다.
예상이라도 할 수 있다면 미리미리 대응할 수 있을 텐데 지난번 관찰로 깨달았다.
어떤 조건을 내놓아도 시바르는 규격 외의 행위를 벌인다고. 당장 절친한 친우인 말보로마저 해탈했지 않았는가.
“…잘못하면 시바르 학생은 물론이고 신입생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흠. 자네가 아카데미에 재직한 지 몇 년이나 됐지? 내가 총장직에 올랐을 때와 시기가 비슷한 걸로 안다만.”
“10년 정도 됐습니다.”
“10년이라. 꽤 오래 했군.”
아카데미 교수는 소위 말하는 철밥통과 거리가 멀다. 복잡한 이유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교수 개인적 사정과 더불어 소속 국가의 정치적 문제가 얽히는 경우가 많으니까.
따라서 10년 이상 동안 재직했다는 건 교수로서 베테랑에 가깝다는 말이다.
“총장님. 전 교수로 지내면서 수많은 학생들을 지켜봤습니다. 맹인 학생도 지도했고 정신에 문제가 있는 학생도 가르쳤죠.”
“흠.”
“하지만 시바르 학생은 뭔가 다릅니다. 분명 규칙을 따르는 건 확실한데 규칙 바깥에 있는 분야를 적재적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규칙대로 행동하는 것을 합법이라 치고 규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불법이라 치자.
시바르는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가는 ‘편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다.
전투가 제한됐을 때는 물 고문과 폭탄조끼를 이용했고 이번 실습에는 아예 호수 안에서 매복했다.
물 고문과 폭탄조끼 같은 경우는 도의적으로 명백히 잘못된 거라 새로운 규정으로 지정될 정도였다.
“자네가 걱정하는 건 즉 시바르가 조교직을 수행할 때도 사고를 칠 것 같다는 건가?”
“그것도 있지만 시바르 학생이 교묘한 방법으로 교수의 통제를 벗어날까 봐 걱정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로드는 디스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뭘 걱정하는지 대충 알 것 같다.
시바르는 맹한 인상과 달리 머리가 비상하다. 두뇌회전이 빠른 걸 넘어 사람을 엿먹이는 데에 재능이 있다.
문명을 벗어난 야생에서 살아서 그런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 건지 몰라도 편법의 달인 수준이다.
현재 디스가 걱정하는 건 그 재능으로 교수의 통제를 벗어나 신입생들을 입맛대로 다스리는 것이다.
이리 된다면 교수의 위신은 실추될 거고 최악의 경우 단합력이 콩가루처럼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다.
‘시바르가 그럴 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만.’
하지만 시바르는 그러지 않을 거다. 이건 확신할 수 있다.
아직 디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시바르는 소문과 달리 심성이 매우 선하다.
은혜는 무조건 갚기 위해 노력하며 원한은 배로 돌려주는 스타일. 은원 관계가 확실하다.
무엇보다 적을 만들지 않는 성격이다. 먼저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원만한 관계를 선호했으니.
말보로를 비롯한 교수들도 이를 잘 알고 있어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비록 실습 때마다 온갖 기행을 저지르긴 해도 사이 자체는 괜찮은 편이다.
“그나저나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시바르와 친한 사람도 있을 텐데.”
“사실…”
디스는 살살 눈치를 보면서 말을 흐렸다. 말해도 되냐는 무언의 표시다.
로드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이에 디스도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총장님께서 알게 모르게 시바르 학생을 보호하는 경향이 계신 것 같았습니다.”
“이유는?”
“징계 기록 및 벌점 기록을 찾아봤습니다. 석연찮은 부분이 꽤 많더군요.”
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간다.
실제로 로드는 알게 모르게 아니 거의 대놓고 시바르를 비호하고 있었으니.
애당초 시바르가 맨 처음 아카데미에 도달했을 때 그를 데리고 다닌 사람이 로드다.
정식 입학을 할 때도 로드가 도움을 줬으며 이외에 자잘한 부분들도 도와줬다.
사실상 부모 역할을 한 것과 똑같다.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내가 도움을 주긴 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도 시바르를 잘 몰라서 말이네.”
“으음…”
“여의치 않으면 내 이름을 팔아도 돼. 말 안 들으면 내가 직접 회초리로 때린다고 말하면 되겠지.”
“…겨우 그걸로 충분합니까?”
디스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가당키나 하는 소리냐는 어조다.
로드도 그 반응을 대충 예측했는지 피식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여유로운 태도다.
뒤이어 찻잔에 남은 차를 마시더니 묘한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안 되겠지. 말을 더럽게 안 듣거든.”
“…”
“포기하면 편할 걸세. 방향 조절을 할 수 있지만 속도 조절이 불가능하거든.”
마지막으로 로드는 꽤 중요한 충고를 입 밖으로 꺼냈다.
“최대 속력에서 누군가와 부딪히지 않게끔 조절하게. 그러면 될 거야.”
******
시간이 흘러 나는 정식으로 조교가 됐다. 조교가 됐다지만 아직 신입생들에게 소개를 하지 않았다.
내가 1학년일 때도 조교를 따로 소개하지는 않았다. 그냥 자연스레 녹아들었을 뿐이지.
게다가 조교가 됐다 해서 바로 신입생들을 돕느냐. 그건 아니었다.
조교가 할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실습실 청소다.
“이번 학년부터 숲의 출입이 풀릴 겁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은 실습이 진행될 숲을 조사해야 하죠.”
동방의 의학자이자 교수가 설명했다. 새하얀 수염으로 하여금 신선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2학년 의술 및 응급처치 담당이 이연화라면 1학년은 이 사람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숲을 비운 탓에 어떤 동물이 사는지 또 어떤 위험한 벌레가 서식하는지 모릅니다.”
“저희가 그것들을 없애야 한다는 거군요.”
“정확합니다.”
나와 같은 반 조교가 된 카라가 말하자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다.
지금 내 주위에는 카라뿐만 아니라 다른 반의 조교가 될 사람들도 한데 모여 있다.
실습이 이루어질 숲은 모든 반이 사용해야 하니 모든 반의 조교가 모이는 것이다.
‘각 반의 교수가 조교들을 인솔하는 방식이겠지?’
나와 같은 반이 된 조교는 카라와 카라스다. 루나는 따로 떨어졌다.
루나는 나와 다른 반이 되자 몹시 아쉬워했는데 어째서 그녀가 아쉬워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는 얼굴과 같은 반이 된 걸로 안다. 분홍색 머리카락의 성직자 에리카다.
‘에리카가 이쪽으로 올 줄 알았는데 의외네.’
가이아 교단 소속인 만큼 통제하기 쉬울 텐데 잘 모르겠다. 카라스가 있어서 그런 걸지도.
아무튼 지금은 내 할 일만 하면 될 것이다. 나는 인솔 교수의 뒤를 따라갔다.
“혹시 이 중에서 벌레를 못 만지는 분이 계신가요?”
너그러운 인상의 교수가 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한 질문일 터.
카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자랐으니 벌레에 대한 내성이 충분한 반면 카라스는 모른다.
이에 모든 사람이 카라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시선이 집중된 카라스는 특유의 맑은 눈으로 답했다.
“걱정 말게. 감금됐을 때 쥐랑 바퀴벌레로 생명을 연장한 적이 있다네.”
“어… 알겠… 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대답이 튀어나오자 교수가 크게 당황했다.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벌써부터 저러면 안 되는데. 앞으로 놀랄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시바르.”
“응?”
“자네는 바퀴벌레를 먹은 적이 있나?”
“손바닥만한 거 먹었어. 고소해.”
“흠. 나는 별로 맛없었는데 말이지. 자연에서 자란 바퀴벌레는 다른 건가?”
“꼭 그런 주제로 대화를 나눠야겠어?”
나와 카라스의 대화를 카라가 중간에 끊어버렸다. 비위가 상한다는 얼굴은 덤이다.
사막에서 성장한 그녀도 벌레를 먹어본 적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 표정이다.
확실히 주제가 조금 맛이 갔긴 했지.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게 웃기긴 하다.
카라가 이런데 인솔 교수는 어떨까. 아쉽게도 앞장 서고 있어서 표정을 살펴볼 수 없었다.
“오. 때마침 적절한 예시가 하나 있군요. 여러분. 저기 나무에 매달린 벌레가 보이십니까?”
잠시 후 교수가 화색을 띄우며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그가 가리킨 쪽을 바라봤다.
나무 중앙에 웬 핑크빛이 보였는데 나도 모르게 절로 흠칫거렸다.
분홍색 하면 좋지 않은 기억들만 떠올라서. 생각만 하면 괜찮은데 색을 보면 이상하다.
“보이네요. 저게 뭐죠?”
“아주 안 좋은 벌레입니다. 조매미라고 독성을 지닌 데다가 나무에게도 큰 피해를 주죠.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갈 테니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벌레입니다.”
설명을 좋아하는 사람인 걸까. 교수가 벌레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했다.
카라와 카라스는 그냥 그렇구나 라는 식으로 들었으나 나는 아니다.
나는 교수가 설명하는 동안에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응? 어디 가는…”
“냠.”
그리고 나무에 붙은 중국매미 비슷한 걸 입에 넣었다. 나쁜 벌레니까 빨리 처리해야지.
겸사겸사 맛도 좀 보고. 혼돈의 숲에서도 본 적이 없는 거라 맛이 궁금하다.
“우물우물.”
“…”
“우물. 투!”
쓰기만 하고 진짜 맛없다. 나는 땅바닥에 바로 뱉었다.
굼벵이는 적어도 고소하기라도 하지 이건 뭐 코딱지를 뭉친 맛이다.
“그… 학생?”
“응?”
“그거 독이 있는 건데…”
교수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생각해 보니 이 사람들은 처음(?)이구나. 저리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앞으로 저런 거 많이 볼 거예요.”
카라는 교수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고.
“그건 무슨 맛이지?”
카라스 이 미친놈은 미친놈다운 질문을 꺼냈다.
“코딱지 뭉친 맛.”
그걸 대답해 준 나도 영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아나? 혹시…”
“닥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카라스: 그걸 어떻게 아시오?
시바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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