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4
시바르가 거주지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 각 팀은 기말 고사에 집중했다.
우선적으로 루나가 팀장으로 속해있는 팀. 팀장이 루나지만 전반적인 계획 수립은 그레이스가 맡고 있다.
루나도 자신은 전략전술 같은 건 잘 모르고 괜찮은 계획이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라는 입장이었다.
“저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성을 먼저 점령할 것인지 아니면 무기를 차곡차곡 모을 것인지.”
그레이스는 팀원들을 불러 전반적인 계획부터 알려줬다.
부활소이자 본대는 약간의 보급을 포함하여 지휘소 같은 양상을 띠고 있었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지도를 깔아 계획을 공유하기 편했으며 더 나아가 각종 도구도 존재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건 지형 파악 및 다음 점령지를 확인하는 거예요. 보급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어떤 형식으로 나오는지 전혀 모르니까요.”
“그럼 정찰조를 꾸려서 주변 파악부터 하는 게 좋겠네요.”
“네. 각각 구역부터 파악하고 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죠.”
이번 기말 고사는 중간 고사와 달리 사전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중간 고사는 교수들이 많은 정보를 알려줬지만 이번에는 대부분 뭉뚱그려 설명해줬다.
보급이 나오는 점령지마저 어떻게 돼 있는지 보급이 어떤 형식으로 나오는지 방어 시설은 잘 갖춰져 있는지 등등.
하나 같이 직접 확인해야 되는 것들이라 계획을 세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머리가 아파올 일이다.
따라서 전술보다는 전략의 비중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레이스도 이를 잘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바르 씨는 내일이나 이틀 후부터 찾을 예정이에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무턱대고 찾아갔다가 기습을 당할 수도 있으니.”
의외로 그레이스는 처음부터 시바르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개인의 욕심(?)과는 별개로 전체적인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후 팀원들과 다양한 의견을 주고 받은 뒤로는 조부터 꾸렸다.
총 15명의 인원을 4/4/4/3 형식으로 나누었으며 3명이 속한 조는 지휘조다.
지휘조에는 그레이스 루나 이연주 이 세 명이 도맡았으며 나머지는 정찰조와 전투조였다.
‘다행히 불만은 없어보이네요.’
팀들도 그레이스가 짠 조와 계획에 불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레이스는 공작가 영애. 권위와 더불어 타고난 카리스마까지 보유했다.
더군다나 루나마저 자연스레 그레이스와 같은 조가 됐으니 불만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었다.
“정말 괜찮겠어요? 이러다 저쪽에서 시바르를 먼저 찾기라도 한다면 곤란할 텐데.”
바깥으로 나가 주변 지형을 파악하던 도중에 루나가 질문했다. 약간 걱정된다는 목소리다.
그레이스는 잘 모르고 있으나 시바르의 무력은 결전병기 그 이상이다. 혼자서도 시험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다.
비록 자신에게 지휘 능력은 없다지만 시바르에 대한 것만큼은 빠삭하다. 그렇기에 이 정도 의견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설령 저쪽에서 먼저 찾아도 시바르 씨가 바로 계약을 맺지는 않을 테니까요.”
“무슨 근거로요?”
자신만만한 그레이스의 대답에 루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애착 인형 아니 그녀의 절친이었던 이연주도 마찬가지.
이에 그레이스는 주변의 풍경을 작은 종이에다가 대충 그리면서 대답했다.
“저희가 오지 않았잖아요. 시바르 씨도 저희가 올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상대팀의 계약은 보류할 가능성이 있겠죠. 이 시험에서 시바르 씨는 절대적인 갑이거든요.”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결국 저희 팀이 찾아와야 본격적인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거군요.”
“정확해요.”
이연주의 말에 그레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도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는 표정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시바르는 이 시험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기어라고 하면 기어야하는 수준.
물론 시바르의 성격상 그런 명령까지는 하지 않을 테니 결국에는 살살 구슬릴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가 내밀 계약은 뭐예요? 이게 가장 중요하잖아요.”
루나의 질문에 그레이스가 순간 멈칫거렸다. 그와 동시에 목이 서서히 붉게 달아올랐다.
다행히 억지로 누른 덕분에 얼굴까지는 붉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피부가 하얀 탓에 약간 눈에 띌 정도였다.
뒤이어 그레이스는 주변 지형을 대략적으로 기록하던 수첩을 덮더니 헛기침을 했다. 목덜미는 여전히 붉었다.
“흠. 흠. 그건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시바르 씨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제가 직접 찾아가서 계약서를 내밀 거예요. 다만 시바르 씨가 좋아할만한 계약이라는 것만 알려드릴게요.”
“조금만 알려주실 수는 없나요? 전에 제가 조언까지 해드렸잖아요.”
하지만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었다. 이미 카라도 시바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레이스가 비장의 수를 숨겨놓았다는 식으로 말하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옆에 이연주가 듣고 있다지만 크게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같은 팀에다가 여자이지 않은가.
그레이스도 비밀을 끝까지 안고 가기에는 영 불편했는지 약간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음… 죄송하지만 비유적인 표현으로만 써도 될까요? 당장 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러운 거라서…”
“시바르를 안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거라고요?”
“…안는다고요? 시바르를?”
여기서 혼돈의 주둥아리가 다시 한번 터졌다. 이연주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는 무언의 질문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루나는 뭐가 잘못됐는지 전혀 모른다는 듯 특유의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네. 연주 씨도 알겠지만 시바르가 야생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포옹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 그거라면 이해가 가네요. 포옹은 예로부터 고독의 치료제라고 들었어요.”
다행히 이어진 설명에 바로 납득했다.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태도다.
“그리고 모성애가…”
“자. 거기까지. 이 이상 말했다가는 시간만 갈 테니 그만하죠.”
루나의 주둥이가 또다시 칼춤을 추려는 순간 그레이스가 황급히 막았다.
만약 거기까지 말했다가는 기껏 풀었던 이연주의 오해가 더 커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궁금하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니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할게요. 괜찮죠?”
“저는 상관없어요.”
“저도요.”
“좋아요. 그럼 어떤 거냐면…”
그레이스는 말을 하다가 말고 잠시 멈칫했다. 동시에 겨우겨우 가라앉았던 홍조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대한 억누르려 노력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말은 꺼냈다.
“사 사탕보다 달콤하고 케이크보다 부드러운 것! 저는 그걸 줄 예정이에요!”
“사탕보다 달콤하고 케이크보다 부드러운 것? 그런 게 있어요?”
“혹시 보급에 나오는 건가요?”
비유적 표현에 루나와 이연주 모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드러냈다.
그러는 사이 그레이스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살살 문질렀다. 어떻게든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흐으… 보급에 나오는 건 아니에요. 저도 책에서 본 거라서…”
“어떤 책이요?”
“…”
루나와 다르게 이연주는 입을 다물었다. 대충 어떤 책인지 알 것 같았으니.
애착 인형이자 절친한 친구로 지내면서 그레이스의 취향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지난번 강간 미수 사건 당시에도 자신이 직접 동화책을 건네줬지 않았는가. 그러니 저것도 동화책에서 나왔겠지.
“죄송해요. 거기까지는 말씀드리지 못해요.”
“음… 일단 음식인 건 맞죠?”
“…”
가끔 보면 루나도 예리할 때가 많았다. 정작 본인은 아무 생각없이 툭툭 내던진 거지만.
그레이스는 루나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조차 못하다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으 음식은 아니에요! 하지만 누구나 다 줄 수 있는 거죠!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요!”
“아하. 그럼 저도 도와드릴게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요.”
루나 딴에는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서 그리 말한 것이다. 그 어떤 의도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그레이스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창피해하던 그녀가 순간적으로 정색했으니.
안 그래도 카리스마 넘치던 인상이라 루나로서는 살짝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 때문에 선을 넘은 건가 싶었다.
“루나 씨.”
“…네.”
“이건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루나 씨의 도움은 필요없어요.”
“…그런 거라면야.”
도대체 계약의 정체가 뭐길래 저리 딱딱하게 구는 건지 모르겠다. 나중에 직접 확인해야 될 듯싶었다.
이처럼 루나가 계약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이연주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레이스 씨?”
“말씀하세요.”
“설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건 아니죠? 책에서 많이 나오는…”
이연주가 언급한 책은 당연하게도 동화책이다. 그리고 동화책에서 항상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레이스도 그 장면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다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새침하게 반응했다.
“저 저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쪽도 여기까지는 고려하지 못했을걸요?”
“그러다 이상한 소문이 돈다면…”
“괜찮아요. 시험을 잘 치를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겉으로는 시험을 위해서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속내는 달랐다.
‘시험이 끝나면 소문이 퍼질 거고 신입생 연회 때도 영향을 끼치겠죠. 신입생 연회 때는 고위급 인사도 방문할 테니 시바르를 당당히 소개시킬 수 있어요. 그때 당당히 말하는 거죠.’
그레이스의 ‘전략’은 기말 고사 그 이후까지 뻗어있었다.
******
[신앙이 상승합니다!]
열심히 노래를 듣는 도중에 신앙이 상승했다.
이제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신앙이 상승하는지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흠~ 흠흠. 흠.”
지금은 발 뻗고 여유나 부리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카오스: 팝콘 준비 중
님! 재미있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댓글 하나씩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