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6
아닌 밤중에 리제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겼다.
덕분에 리제와 가까워진 것 같아 기분이 나아졌다. 거리감이 가까워진 느낌.
평소에 성녀보다는 권성폼이 떠올라 가까이 가기가 꺼려졌지만 이제는 아니다.
-퍽!
“쿠억?!”
“자자. 일어나세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너무 가까워져서 죽을 것 같다. 나는 배를 움켜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권성폼의 리제가 솥뚜껑만한 주먹으로 내 배를 가격했기 때문이다.
분명 철강왕 특성을 가졌고 마력까지 운용했음에도 내장이 다 터진 고통이다.
“시바르 형제님은 곤충입니다. 외피는 단단해도 내부는 말랑하죠.”
“콜록! 콜록!”
나를 곤충으로 비유하는 리제였으나 나는 기침을 하기 바빴다.
피부는 멀쩡한데 그 안의 장기가 이리저리 꼬인 것 같은 고통이다.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
“하지만 장기를 단단하게 만들 수는 없는 법이죠. 따라서 마력으로 보호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콜록! 으으…”
“내부의 마력을 순환시키는 걸 이용하면 됩니다. 내부에 충격이 가해질 때 그 순환되고 있는 마력이 흡수하는 식이죠.”
말은 쉽지. 저걸 터득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재능이 필요할까.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꿇었던 무릎을 천천히 폈다. 무릎을 펴고 당당히 일어서니 리제가 눈앞에 있었다.
성녀폼이 아니라 권성폼으로 당당히 서 있는 그녀. 팔짱까지 껴서 그런지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과연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이 인간을 이길 수 있을까. 심지어 악마의 하드 카운터다.
‘진짜 리제를 적으로 두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적으로 뒀다면 스토리고 나발이고 쥐 죽은 듯이 지냈을 것이다.
설령 스토리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는 않았겠지.
‘진짜 억제기 그 자체네.’
악마들조차 리제의 눈치를 보는 실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터.
나는 리제와 당당히 마주하며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리제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어제의 부드러운 미소가 아닌 깔끔한 치열이 돋보이는 살인 미소다. 덕분에 위압감이 한층 더 강해졌다.
“포기하지 않는 굴지의 정신. 언제 봐도 변하지 않는군요.”
“더 하자.”
“좋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재생력을 끌어올리긴 위해서는 이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지금 리제와 내가 하고 있는 훈련법은 하나밖에 없다. 재생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
손가락이 절단되는 것까지는 재생할 수 있지만 리제는 그것보다 상위 단계를 원하고 있다.
단순한 외상이 아니라 내장까지 재생시키는 그야말로 극한의 재생력.
말 그대로 악마의 재생력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 전에 퇴마당할 거 같은데…’
신성력이 아니라 맨손으로 때리는 건데 너무 아프다. 신성력을 담았다면 내장이 지져지는 고통을 겪었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맨살에 닿기만 해도 염산을 들이부은 것 같은데 내장은 얼마나 아플까.
아무튼 리제가 알려준 방법이니 순순히 따를 예정이다. 단순무식해도 효과는 보장할 수 있다.
“이 훈련이 끝나면 손가락을 잘라보도록 하죠. 재생력을 확인해야 되니.”
“…”
미친 방법 같기는 해도 훈련인 건 확실하다. 범인으로서는 절대 하지 못할 훈련.
더 웃긴 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생력이 상승한 게 체감이 됐다.
“시바르 형제님은 여기까지. 조금 쉬다가 로드 씨에게 가세요.”
“아야야…”
나는 잘려나갔다가 깔끔하게 재생된 손가락을 문지르며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리제는 땡깡을 부리던 그레이스를 억지로 끌고 왔다. 체력이 가장 약한 그녀이니 더 힘들겠지.
이처럼 기념일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간에 우리는 특훈에 나섰다. 검성과 성녀 밑에서 이루어지는 특훈 말이다.
리제는 피지컬을 로드는 기술적인 분야를 맡고 있다. 덕분에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물론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피지컬이든 기술이든 둘 모두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루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었으니 특훈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힘들지? 여기 포션.”
“고마워.”
더 나아가 엘리가 직접 포션까지 지원해줬다. 대충 눈치 챘겠지만 숲에서 갖고 온 약초로 제작했다.
나는 엘리로부터 포션을 넘겨받고는 입에 털어넣었다. 쓰면서도 단맛을 뒤로 하고 피로했던 몸이 점차 나아졌다.
방금 전에 피지컬(?) 훈련을 했으니 근육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 이 포션을 그걸 보조하는 것이다.
“맛있다.”
“달지? 설탕을 좀 넣었거든.”
“그래도 돼?”
“응. 설탕이 흡수를 도와주거든. 오히려 넣는 게 나아.”
엘리의 포션 제조 능력도 날이 갈수록 수직상승하고 있었다.
사실상 로드의 주치의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해독을 위해 매번 약초를 달였다.
더 나아가 악마의 끄나풀이나 다름없는 의원이 준 독초를 역으로 이용하기까지.
본인 말로는 물에 달이면 치명적인 독이 되지만 불에 구우면 영양가 높은 음식이 된단다.
“안아줄까?”
“땀 나.”
“괜찮아. 안아주는 것 정도야 뭐.”
꼬옥-
엘리가 그리 말하며 나를 안아줬다. 마치 하늘의 구름에 닿은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졌다.
포션도 포션이지만 이게 포션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마음의 안정을 얻어 마력 순환이 더욱 활발했으니.
도대체 이 지방덩어리가 뭐길래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주물주물-
푹식한 포션 주머니를 베개 삼아 반쯤 드러누웠을 때였다. 엘리가 내 볼을 만지작거렸다.
자세가 자세다 보니 고개를 위로 올리기만 해도 엘리의 얼굴과 딱 마주할 수 있었다.
내 볼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은 걸까. 엘리는 시골 처녀 특유의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올려다 보니 새삼 엘리도 예쁘다는 게 느껴졌다. 피부도 깨끗하고 외모 자체도 귀족 못지 않았다.
“부우-”
“아~ 바람 빼줘. 더 만지고 싶단 말이야.”
일부러 볼에 바람을 넣으니 투정까지 부린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이행했다.
이윽고 그 상태 그대로 고개를 내려 앞을 쳐다봤다. 리제는 그레이스를 맡고 있다.
그리고 카라와 루나는 로드가 맡고 있었는데 1대1 대련이 아니라 2대1 대련이다.
그러니까 카라와 루나가 합심하여 로드를 상대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것도 둘 모두 진검을 든 채로.
-채앵! 휘익! 채캉!
진검을 들고 있어서 그런지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선명하다. 나는 그들의 대련을 유심히 지켜봤다.
어째서 1대1이 아닌 2대1로 하고 있냐면 ‘연계’ 때문이다. 로드가 말하길 세상은 정정당당하지 않다고.
꺾기 힘든 적을 상대할 때는 당당하게 다구리를 쳐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조언을 꺼냈다. 그걸 연습하는 것이다.
‘팔이 4개가 아닌 이상에야 고전한다고 했나.’
실제로 루나와 카라의 합작에 로드가 조금씩 밀리고 있다.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면 말이다.
사람의 팔다리는 각각 2개다. 따라서 실력이 비슷한 적이 한 명만 더 늘어나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설령 실력이 부족해도 상대의 연계가 뛰어나다면 그 간극이 급격하게 좁혀진다. 덧셈이 아니라 곱셈이 되는 식이다.
‘음…’
나는 세 사람의 대련을 유심히 지켜봤다. 카라와 루나의 연계는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비록 루나의 경험 부족으로 카라가 메인이었으나 루나도 만만치 않았다. 부족함 없이 채워줬다.
하물며 가끔 가다 특유의 재능을 필두로 한 번뜩임까지. 재능과 더불어 육안이 뛰어나기에 가능한 연계다.
‘그래봤자…’
-채캉!
“윽!”
로드가 카라의 검을 깔끔하게 쳐올렸다. 힘을 예상치 못했는지 카라의 두 팔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깔끔하게 비어버린 상체. 이에 로드가 정확히 심장 부분을 찌르려던 찰나 바로 옆에서 루나가 끼어들었다.
카라가 자세를 잡을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끼어든 모습. 아까 말했던 대로 부족함을 채워주는 연계다.
하지만 로드가 누구인가. 산전수전 다 겪다 못해 정점의 자리에 오른 ‘검성’이다.
-퍼억!
“케흙?”
루나가 미처 검으로 방어하기도 전이었다. 로드가 어깨치기로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그녀가 미리 끼어들 걸 예측하여 일부로 어깨부터 들이민 것이다.
-툭
루나가 나가떨어지면서 로드의 검 끝은 카라의 심장에 닿았다. 사실상 죽은 거나 똑같다.
카라는 어안이 벙벙한 눈길로 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두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항복의 의미다.
“항복하겠습니다. 저희가 졌네요.”
카라의 항복 선언에 로드도 검을 수거했다. 로드도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러는 사이 어깨치기에 밀려났던 루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불만스러워하는 얼굴.
사실 이 대련은 루나를 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패배했으니 불만스러운 거겠지.
“아주 훌륭하네. 날이 가면 갈수록 발전하는군.”
“제가 아니라 루나를 말하는 거죠?”
“물론일세.”
“매번 지는데도요?”
루나가 먼지를 털면서 투덜거렸다. 본인은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루나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처음엔 카라를 보호하기 급급했다. 언제 공격에 나서야 할지도 전혀 몰랐고.
그그러나 지금은 완벽한 공방일체를 이루고 있었다. 비록 로드의 일격에 당했으나 이건 어쩔 수 없다.
‘무슨 자세를 0.1초 만에 잡아?’
로드가 카라의 심장을 검으로 찌를 때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분명 자세가 찌르기였다.
그러나 루나가 움직임과 동시에 자세를 어깨치기로 바꾼 것이다. 미리 예측한 것도 아니다.
“너무 과욕 부릴 필요는 없네. 목적은 어디까지나 연계니까 말일세.”
“으음…”
“아직 부족한 게 많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방해가 아니라 연계가 된다는 것 자체가 훌륭한 거지.”
로드는 그리 말하며 내 쪽을 쳐다봤다. 나는 여전히 엘리의 가슴을 베개 삼아 드러누워 있다.
뒤이어 그는 피식 웃더니 나를 검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돼지를 보게나. 나조차 저 돼지랑 연계하는 건 힘들다네.”
“흥.”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토라졌다. 그런 내가 귀여웠는지 엘리가 내 볼을 만져주며 웃음을 흘렸다.
어째서 로드가 저 말을 하는 거냐면 말 그대로 나는 연계 자체가 힘든 스타일이라 그렇다.
우선 실력 차이부터 극명할뿐더러 야수마냥 난동을 피우는 것이 내 싸움 방식이다.
어벤져스로 비유하면 헐크를 담당하고 있달까. 무식하게 강해서 웬만한 히어로는 털어버리는 괴물.
그런 헐크가 다른 누군가와 연계하는 걸 본 적이 있나? 적어도 나는 없다.
그나마 토르가 있겠지만 초반만 그랬다. 이후에 캡틴 아메리카와 함께 싸웠지 헐크는 아니다.
‘아직 힘조절이 미숙하기도 하고.’
자칫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연계고 뭐고 혼자 싸우는 것이다.
굳이 가능하다면 리제가 있겠다만 음… 솔직히 방해만 될 것 같다. 팀킬하는 순간 대참사다.
“자네들은 여기까지 하고 시바르.”
“…”
“시바르?”
못 들은 척해야지. 절대 삐져서 그런 게 아니다.
…솔직히 조금 섭섭하긴 해도 지금은 일어나기 싫다.
이 구름처럼 포근한 베개를 어떻게 포기하는가. 5분만 더 있다가 가고 싶다.
“시바르. 총장님께서 부르시잖아. 일어나야지.”
“…조금만 더.”
“안 돼. 우리 시바르 착하지? 자 일어나자.”
하지만 엘리가 밀어내면서 내 목표는 너무나 간단하게 사그라 들었다.
섭섭함 스택이 더 쌓이는 느낌이다.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무기는 라그나로크와 선혈의 대검. 로드는 기술적인 부분을 채워주는 거라 모든 무기를 갖고 왔다.
“아까 한 말은 흘려듣게나. 자네에게 맞춰줄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래.”
“알아요.”
“나중에 사탕이라도 줄 테니 삐죽인 입술을 돌려놓게.”
그렇다면야. 나는 삐죽였던 입술을 도로 내렸다.
단순하디 단순한 내 반응이 웃겼던 걸까. 로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후로 대련이 시작되고-
“너무해요. 왜 나만…”
나는 개처럼 털렸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개처럼 털렸다.
아무리 그래도 봐주는 기색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빈틈이 보이는 즉시 검으로 매타작을 갈기더라고. 분명 검으로 ‘때렸는데’ 온몸이 아프다.
“자네가 더 강해지길 원하니까. 게다가 잘 지치지도 않잖나?”
바닥에 드러누운 나에게 로드가 놀리듯이 말했다. 적어도 반은 진담이겠지.
나는 웃음기를 머금은 로드를 원망스레 쳐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로드가 나를 아낀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겠지.
지금까지 보모를 넘어 부모 역할을 하고 있다. 리제와 다른 의미의 억제기 역할도 하는 중이고.
‘부모님도 로드랑 비슷한 심정이었겠지?’
자식은 매번 사고를 치는데 그렇다고 미워할 수가 없다. 미워해도 금방 풀리기 마련이고.
내 영혼이 이 몸뚱아리에 들어오지 않았어도 올바르게 성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부모의 정과 로드가 주는 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비록 시대상의 한계로 도덕적인 부분에는 문제가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기준이 다르다.
“할아버지.”
“응? 왜 부르나?”
나는 내 옆에 앉은 로드를 불렀다. 독특한 콧수염과 더불어 인자한 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의 스토리였다면 로드는 지금쯤 중독으로 골골거렸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멀쩡하다.
하지만 절대 방심할 수 없다. 제아무리 로드여도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인간이다.
더불어 나나 리제처럼 초월적인 재생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치지 마요.”
차라리 내가 다치고 말지. 재생력으로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준 걸까. 로드가 순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손을 뻗더니 내 머리를 툭툭- 두드려줬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손바닥이다.
“자네나 다치지 말게. 또 어디 가서 사고치지 말고.”
“저 이제 사고 안 쳐요.”
“글쎄…”
로드는 피식 웃더니 미심쩍다는 뉘앙스로 입을 열었다.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저 못 믿어요?”
“응.”
“…”
단호하디 단호한 대답 뒤로 로드의 촌철살인이 이어졌다.
“동방에 이런 말이 있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고.”
“됐어요.”
삐져버리고 말 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삐돌이 시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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