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8
처음에 든 의문은 ‘왜?’였다. 악마는 왜 나를 데려가려고 안달인 것일까.
당장 내 뒤를 허겁지겁 쫒아오는 러스트의 표정만 보더라도 촉박함이 느껴졌다.
사냥꾼은 어둠 속에 숨어서 잘 모르지만 아마 비슷한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명령을 충실히 임하는 녀석이었으니 그냥 쫒아오는 거겠지.
‘이 몸뚱이가 그리 중요한가?’
악마의 유일한 후손이자 기적의 산물. 악마들에게 이 신체는 매우 중요한 모양이다.
하지만 상징으로 치부하기에는 집착이 조금 심하다. 분명 의도가 있을 터.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상황이 받쳐주지 않았다.
지금 할 일은 악마들을 아카데미에서 내쫒는 것. 그리고 나서 스토리를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잡히지 않도록 도망치자. 리제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중간중간 몬스터가 난입했으나 내 몸놀림을 따라잡을 수 없다. 더군다나 아카데미 지리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리제가 있는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괜히 몬스터만 더 끌어들일 수 있고 꼬일 수 있으니까.
“얘야!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뒤에서 러스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남색의 악마답게 두 다리가 허공에 떠 있다.
인간이 남색의 마력을 얻을 시 공간을 마음대로 주무른다면 악마는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다.
또한 남색인 만큼 공간도 어느 정도 주무를 수는 있으나 지금 러스트는 아니다. 전에 말했다시피 그녀는 서포터.
거리가 떨어졌음에도 향기가 코로 찔러들어왔던 것처럼 각자마다 고유의 능력을 갖고 있다.
로드는 공간을 베는 데에 특화돼 있고 리제는 흰 수염마냥 공간을 부수는 데에 특화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특정 행동을 취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로드와 리제도 결국 ‘행동’을 통해 공간을 다스릴 수 있다. 그 이상은 보라색만 가능할 터.
다시 말해 도망치기만 해도 유리한 건 나라는 뜻이다. 게다가 내가 아무 의미없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다.
-서걱!
“아악! 저 자식이…!”
“제가 맡겠습니다.”
함께 도망쳤던 로드. 그가 멀리서 지원하고 있었으니까.
멀리서 이루어진 공간 베기로 러스트의 몸통이 반으로 분리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몸통이다. 상하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장난감처럼 덩그러니 놓였다.
일반적인 악마였다면 진작에 죽고도 남았을 치명상. 하지만 남색의 악마는 남색의 악마.
말끔하게 분리되었던 러스트의 상하체가 스스로 수복되었다. 자석처럼 분리된 면끼리 달라붙더라.
‘장기는 어떻게 회복하는 거지?’
생명이 존재하지 않은 악마여도 장기를 비롯한 기관은 다 있다. 말 그대로 생명만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방금 전 러스트의 몸이 분리되었을 때도 새까만 장기가 후두둑 떨어지더라.
내가 인체의 신비 아닌 신비를 느끼는 사이 러스트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이 누나도 슬슬 화가 나려고 하거든? 얘기를 좀 들어보지 않겠니?”
“싫어.”
대충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대충 알 것 같다. 나는 빠른 단답 후에 두 다리를 움직였다.
뒤에서 러스트가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말끔하게 무시했다. 어치피 급한 건 저쪽이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나는 앞의 막다른 길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내 기억상 여기는 막다른 길이 아닐 텐데. 내가 기억을 잘못한 건가.
“드디어 잡았구나. 이 말썽꾸러기 녀석.”
“…”
“여기까지 몰아넣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뒤에서 러스트의 고혹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의아함을 밀어두고 뒤를 돌아봤다.
이제는 완전히 잡았다는 듯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적대감은 하나도 없었다.
‘어쩐지 냄새가…’
중간중간 달콤한 향기가 난다 싶더니 러스트가 술수를 부린 모양이다. 환영 마법만큼은 광대와 함께 최상위권이었으니.
나는 점점 접근하는 러스트를 보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뒤편은 물론이요 양옆까지 완전히 막혀 있다.
“이제 도망칠 생각은 버리렴. 이미 결계까지 설치했으니까.”
“…”
“그 망할 년놈들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가족이란다. 싸울 필요가 하나도 없어.”
그거야 당신들 생각이고. 이 몸뚱이는 가족이겠지만 내용물은 전혀 아니다.
나는 결계를 쳤다는 말에 재차 주위를 둘러봤다. 진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아 결계를 친 건 확실하다.
‘이것도 환각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 다시 혀를 씹었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머리에 벼락이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환각이 아니다. 정말로 막다른 길이었다.
“왜 데려가?”
“응?”
“나 왜 데려가? 가기 싫어.”
나는 그리 물으며 발을 살살 끌었다. 정확히는 뒤로 끄는 척하면서 단어를 썼다.
러스트는 내가 뒤로 물러나는 걸로 생각했는지 조금씩 앞으로 다가왔다.
“세상이 우리를 악마라 불러서 그렇니? 아니야. 비록 사정이 있어 역사의 패배자가 됐지만 악마는 절대 아니야.”
“그럼 뭐야?”
“기생충에게 생명을 빼앗긴 피해자 라고 보면 믿어주겠니?”
“아니.”
말은 그리 했지만 반 정도는 믿었다. 악마들은 분노를 터뜨릴 정당한 이유가 있다.
마신전쟁 이후 조용히 살고 있다가 기껏 후손을 얻었는데 그 후손을 빼앗겼다? 단체로 들고 일어나겠지.
당장 아카데미 붕괴의 궁극적인 목표가 이 육체인 걸 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터.
“안 가도 돼. 난 여기가 좋아.”
발로 끌면서 만들고 있는 마법진이 거의 다 완성됐다. 나는 시선을 밑으로 힐끔거렸다.
그러는 사이 러스트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강하게 호소했다.
“여기 있으면 그 기생충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너는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고!”
“지금도 행복해.”
“너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여기도 있어.”
“후우…!”
답답하다 못해 속이 꽉 막혔는지 러스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설득하는 것도 잘 참는 것이다.
동시에 궁금했다. 만약 내가 악마측으로 넘어간다면 그 이후에는? 그 이후에는 어떤 꼴을 당하는 걸까.
“간다면?”
“뭐?”
“간다면? 난 어떻게 돼?”
“말했잖니. 행복해질 거라…”
“어떻게 행복해져?”
어떻게 그러니까 어떤 일을 겪고 행복해지냐. 자세히 알려달라.
그 의미를 품은 채 묻자 러스트가 약간 주춤거렸다. 자세히 말하기 꺼리는 게 확실하다.
“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하지만 기생충들이 하는 짓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그러니까 그게 뭐야. 알려줘.”
“인간 세상의 상식을 받아들인 너는 이해하기 힘들 거야. 우리는 우리만의 상식이 있단다.”
주옥 까고 있네. 가이아 못지 않게 뒤가 구린 일을 벌이고 있구나.
어쩌면 소멸했다던 마신을 소환하기 위한 제물로 삼지 않을까. 소울 월드의 최후반부가 딱 그렇다.
‘보라색’에 해당하는 악마들의 신이라 칭해지는 존재가 스스로를 제물로 삼아 마신을 부활시켰으니.
나는 코웃음을 치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면 절대 안 간다.
하물며 내 궁극적인 목표와 거리가 억만 년 떨어져 있는데 갈 이유가 하나도 없다.
“안 가. 난 여기가 좋아.”
“…그럼 어쩔 수 없구나.”
러스트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와 동시에 내 어깨가 무거워졌다.
“강제로라도 데려가는 수밖에.”
“…”
러스트가 그리 말하며 손을 휘저었다. 분명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향기를 뿌렸을 터.
냄새를 맡는 건 물론이거니와 숨을 쉬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에 숨을 최대한 참았다.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났으니 숨은 반드시 쉬어야지. 얼마나 참을지 볼까?”
내가 숨을 참자 러스트가 마음껏 비웃으며 팔짱을 꼈다. 풍만한 가슴이 유달리 돋보였다.
크기로만 따지면 엘리와 엇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이는 전부 쓸데없는 생각이다.
나는 러스트에게서 시선을 뗀 후 바닥을 쳐다봤다. 내가 원하는 단어가 전부 완성돼 있다.
이윽고 내 두 발에다가 마력을 집중시킨 뒤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외쳤다.
“콰앙!!”
-콰아아앙!!
내 발밑에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하고 그 추진력으로 인해 내 신체가 앞으로 쏘아졌다.
러스트는 폭발과 동시에 총알처럼 쏘아지는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
그도 그럴 것이 만약을 대비해 바닥에 썼던 단어는 ‘한글’이다. 러스트가 알아볼 리가 만무하다.
-뻐억!
“끄악!”
추진력을 이용한 어깨치기 즉 철산고가 러스트의 명치에 적중했다.
사방을 감싸고 있던 마나가 순식간에 사라짐을 느꼈다. 러스트의 결계가 사라진 것이다.
머지않아 막다른 길에서부터 빠져나온 나와 러스트. 나는 그녀에게 후속타를 날리지도 않고 몸을 움직였다.
-덥썩!
“억!”
“쿨럭! 놓칠 줄… 알고?!”
서포터여도 남색은 남색인 걸까. 그만한 충격을 받았는데도 악착같이 내 다리를 붙잡았다.
안 그래도 방금 전 그 폭발로 다리가 얼얼한데 좀 놓았으면 좋겠다.
-찌지직!
“어?”
“아?”
러스트가 다리를 놓긴 놓았다. 하지만 그녀가 원해서 놓은 건 아니다.
왜냐하면 내 발목이 무슨 치즈마냥 쭈욱- 찢어졌거든. 아까 그 폭발을 버티지 못한 모양이다.
일반인이었다면 다리가 터져나가다 못해 신체 자체가 날아갔겠지. 그나마 내구성이 강한 나여서 버틴 거다.
-털썩!
반대쪽 발도 만싱창이였는지 내 몸이 절로 무너졌다. 반대쪽은 그나마 회복이 되려는 기미가 보였다.
하지만 오른발은 아니다. 러스트가 강한 힘으로 붙잡는 바람에 완전히 떨어졌다.
붉은피가 뚝뚝 흐르는 것도 모자라 뼈가 완전히 다 드러났다. 보기만 해도 흉측하다.
“내 내 다리…”
저거 재생은 되는 걸까. 혼란스러움을 넘어 패닉이 닥쳐왔다.
이대로 간다면 러스트에게 붙잡히는 것도 모자라 평생 발 없이 살아야 하겠지.
“미 미안해.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러스트도 만만치 않게 당황한 듯했다. 그녀는 엉망진창으로 찢어진 발목에다가 내 발을 붙여줬다.
신속한 대처 덕분에 내 다리는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복구할 수 있었다.
“잘 움직이지? 아프지는 않고?”
“…”
발목도 잘 돌아가고 힘도 잘 들어갔다. 나는 황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안심한 표정을 짓는 러스트. 안도의 한숨까지 쉬는 걸 보아 나를 향한 애정은 진심인 듯했다.
‘…어째서?’
대체 이 몸이 뭐라고 이 중요한 상황조차 나를 걱정한단 말인가. 머리가 혼란으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혼란이 미처 가기도 전이었다.
-콰악!
“꺼윽!”
“시바르!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러스트의 목에 웬 곡도가 정확히 박혔다. 그와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카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으 응. 괜찮아.”
“다행이다.”
-파지직! 파직!
“꺄아아악!”
러스트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카라가 목에 곡도를 박은 것도 모자라 벼락까지 사용했기 때문이다.
신성력보다는 아니어도 굴라크의 벼락은 악마에게 큰 효력을 발휘하는 편이다. 그래서 저리 아파하는 거고.
물론 헥토르가 아닌 이상 큰 피해는 주지 못할 거다. 어디까지나 유의미한 피해일 뿐.
“빨리 도망가! 성녀님께서는 다른 악마를 쫒아갔으니까!”
“어 어… 응.”
나는 얼떨결에 카라의 손을 잡고 도망쳤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러스트를 확인하는 건 잊지 않았다.
그사이 무시무시한 회복력으로 재생했는지 목을 부여잡고 일어서는 러스트.
그녀는 켁켁! 기침을 뱉더니 고개를 들며 이쪽을 쳐다봤다.
“망할 굴라크…! 기생충 자식이…!”
러스트는 치아를 빠득빠득 갈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이쪽을 노려봤다.
방금 전 상냥한 태도로 나를 걱정해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도대체…’
이 몸뚱이가 뭐길래 이리 걱정한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악마를 왜 보는 거야? 설마 홀렸어?”
“…조금은?”
“야이씨. 정신 차려! 지금 중요한 순간이라고!”
카라의 충고에도 러스트에게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충 납치 및 세뇌 당한 조카 때문에 고생하는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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