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7
수치사 아닌 수치사를 당하고 나서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자유의 몸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다.
여태껏 소식이 없는 제인을 찾아가는 것. 소식이 없다지만 제인은 아카데미 붕괴 속에서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아카데미 붕괴 직후 사상자 조사를 했을 때도 제인은 없었으니까. 일단 사망자는 확실히 없었다.
올림푸스 산맥으로 향했을 때 따로 말은 하지 않았으나 엘리가 따로 전해줬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진행도도 확인할 겸 겸사겸사 방문하는 것이다.
‘이제 슬슬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을 텐데.’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았다면 1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 아마 산티아에서 완성했겠지.
하지만 그리 된다면 모든 연구 실적 및 발명품을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으로 빼앗길 것이다.
그 계기로 제대로 타락해서 악마 쪽으로 넘어가는 거고. 오히려 악마들이 제인의 재능을 잘 활용했다.
‘이런 것만 보면 인간도 악마 못지 않다니까.’
거짓이 말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자기 스스로의 날개마저 뜯어버렸다고.
인간에게는 날개가 없다. 그러나 직접 날개를 만들어 높디 높은 하늘을 지배하기까지 이르렀다.
되돌아 보면 거짓은 의미심장한 말을 많이 꺼낸 편이다. 마냥 무시할 수 없는 노릇.
게다가 용사에게 반말과 욕설을 뱉은 리제마저 거짓에게만큼은 존대로 대했다.
‘오늘은 조용하네.’
제인의 공방으로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방학이어서 그런지 특유의 망치질 소리는 나지 않았다.
혹시 오늘은 쉬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이 부드럽게 열리는 걸 보아하니 안에 있는 건 확실하다.
-위이잉!
“응?”
문을 열자마자 웬 소음이 귀에 들어왔다. 나는 의문어린 표정으로 앞을 쳐다봤다.
앞을 바라보니 대포 같은 게 나를 조준하고 있더라. 그 대포에서 빛이 나는 건 덤이다.
-콰앙!!
“쿠얽?!”
대포에서 빛이 발사됨과 동시에 복부에 커다란 충격이 꽂혔다. 워낙 빠른 스피드라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
힘 또한 얼마나 강한지 뒤로 밀려나다 못해 벽에 처박힐 정도였다. 다행히 벽을 뚫거나 그러지 않았다.
“아고고…”
“어 어? 시 시바르 씨?!”
배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리는 동안 낯익은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소스라치게 놀란 모양이다.
이에 고개를 드니 다소 꾀죄죄한 몰골의 제인이 후다닥 달려오고 있었다. 복장도 작업 복장이다.
“괘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올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그런데 방금 뭐야?”
고통보다는 얼떨떨한 기분이 더 크다. 진짜 대포에 맞아도 이러지는 않을 거다.
대포의 포탄은 적어도 눈으로 보고 피하거나 막기라도 했겠지. 하지만 그러지 못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인 것도 있지만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그… 심심해서 장난감? 그런 걸 만들고 있었습니다.”
“장난감?”
“네. 장난감이라기보다는 남은 투자금으로 조금… 헤헤.”
제인이 머쓱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투자금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닐 텐데.
원래라면 이상한 걸 만들었다며 호되게 혼나야 하지만 제인이라 그냥 넘어갔다. 뭘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일단 확인부터 할래. 대체 뭐야?”
“한번 보시겠습니까?”
제인이 눈을 반짝거렸다. 꼬질꼬질한 상태라 그런지 눈의 반짝임이 더욱 돋보였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 내 복부를 가격했던 물건을 확인했다. 우선 전반적으로 대포의 축소판처럼 생겼다.
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대포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다. 지구로 치자면 대충 유탄발사기에 가까운 느낌이다.
“이거야?”
“네! 원래 제작하고 있던 부분에서 따로 분리한 거라 보시면 됩니다!”
제인은 본인이 발명한 물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설명을 조용히 들었다.
이 세상의 대포는 공성전을 제외하면 거의 쓸모가 없다. 더구나 마법까지 존재하고 있어 사실상 거의 사장된 셈이다.
그래도 마력을 아껴야 한다는 명목으로 꾸역꾸역 발전시키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
“이 무기도 공성전보다 휴대용에 가깝습니다. 단순 마력을 화력으로 치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무기죠.”
“휴대용 대포야?”
“네. 기사뿐만 아니라 일반 병사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음…”
나는 그 설명을 듣고 대포 아니 정확히는 유탄발사기 비슷한 물건을 들었다.
이 세상은 마력과 마법의 존재로 과학 발달이 더딘 편이다. 산티아도 증기 기관이 끝이다.
그러나 제인은 그걸 아득히 상회하는 무기를 발명했다. 판타지긴 판타지인데 제인은 홀로 SF를 찍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거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나는 턱을 긁적이며 무기를 자세히 들여다 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서 봤는지 깨달았는데 이거 미래의 제인이 발명한 무기다.
정확히는 악마측으로 넘어간 제인이 발명한 거다. 악마와 몬스터를 최흉에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린 무기.
고블린이나 오크는 무섭지 않다. 하지만 총을 든 고블린과 유탄발사기를 든 오크는 매우 흉악한 수준이다.
‘그건 진짜… 어우…’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떤 사람이 이리 말한 적이 있다.
총은 어린아이마저 항우를 죽일 수 있는 무기라고. 제인의 발명품도 비슷하다.
제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한들 머리에 바람 구멍이 뚫리면 죽는 법이다.
“어디서 영감을 얻었어?”
“전에 시바르 씨께서 저에게 알려주신 부분을 토대로 제작한 겁니다. 손에서 이렇게 막~ 나가는 거 있잖습니까?”
제인이 신난다는 표정으로 팔을 뻗는 시늉을 보여줬다. 대충 뭔지는 알 것 같다.
겨우 그런 걸로 충분한 건가? 싶었으나 제인의 재능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절박함과 독기가 없어졌으나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보면 될 거다. 원래 여유가 생기면 딴 생각을 하니까.
“그리고 지난번에 아카데미가 난리가 났잖습니까. 그때 제 공방에 몬스터가 들어왔습니다.”
“몬스터가? 여기 외진 곳인데?”
“네. 그런데 오더라고요. 처음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제인은 끝말을 강조하더니 어디론가 걸어갔다. 뒤이어 그녀가 팔에 뭔가를 달고 나왔다.
외관만 따지자면 정말 영화에 나올 법했다. 다만 슬림하지 않고 약간 뭉특한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 중앙에는 구멍이 있었는데 아마 저기서 에너지가 분출되는 모양이다.
“이걸로 몬스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비행 제어 장치로 생각해둔 거지만 의외로 위력이 나왔습니다.”
“음. 나오긴 할 거야.”
“그래서! 이참에 이걸 만든 겁니다. 이것만 있다면 일반 사람들도 충분히 몬스터에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제인의 희망회로 및 논리가 쭈욱 이어졌다. 대충 이 세상의 구조와 관련된 이야기다.
수도 및 도시와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치안 특히 몬스터의 위협에 취약해진다.
그러나 이 무기만 있다면 자경단 수준의 인원도 충분히 제 위력을 낼 것이며 인명 피해도 줄어들 거다.
‘대신 전쟁에 이용되겠지.’
예로부터 그랬고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위력이 강한 건 무조건 전쟁에 사용될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 또한 제인만이 제작할 수 있다는 점.
설계도가 있긴 하지만 그녀의 발명품은 무조건 마석이 필요하다.
제인이 마석을 대체할 수 있는 물품을 발명했다지만 당장은 마석이 더 많이 사용될 거다.
“위력은 어느 정도야? 나 아까 엄청 멀리 날아갔는데.”
“방금 그건 충격량을 강화시킨 겁니다. 고딘 교수님께서 좋은 마법 이론을 가르쳐 주셨거든요. 이거 보십시오.”
나는 그녀가 가리킨 부분을 쳐다봤다. 조절 기능이 있는지 작디 작은 조정간이 있더라.
산티아의 언어가 아니라 공용어라서 문자도 볼 수 있었다. 대충 관통 폭발 충격 안전이다.
무려 4개의 장치가 있는 걸 보면 보기보다 괴랄한 성능을 자랑하는 모양이다. 대체 뭘 만든 거야.
“아! 참고로 성능 자체는 시바르 씨를 본딴 겁니다!”
“나를?”
“네! 시바르 씨가 쏘신 붉은 마력! 어마어마한 관통력과 폭발력을 보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자랑스럽다는 듯이 설명하는 제인.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조금 떨떠름해졌다.
물론 붉은 마력의 위력을 따라가려면 한참 부족하겠지. 그래도 비슷하게나마 만든 모양이다.
“혹시 이거 이름은 정했어?”
“아뇨. 생각해 놓은 게 있으십니까?”
“유탄… 이 아니라 마탄발사기?”
“마탄발사기! 정말 좋은 이름입니다!”
제인이 황홀해 하는 사이 마탄발사기를 세세히 살펴봤다. 대포긴 대포지만 조작감이 불편하다.
한때 군대까지 갔다 온 몸이다. 나는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여러 조언을 꺼냈다.
“이거 방아쇠 없어? 여기 밑에 만들어서…”
“네네! 혹시 또 없습니까?”
“반동이 얼마나 심해?”
“저도 충분히 다룰 수 있습니다!”
연약한 제인마저 다룰 수 있는 무기. 그런데 위력은 상상을 아득히 상회했다.
가급적이면 호신용으로만 써야 할 것 같다. 제인뿐만 아니라 엘리한테도 하나 주는 게 좋겠지.
비전투직에게 아주 좋은 무기로 이용될 수 있다. 이게 악마측으로 넘어가 대량생산된다고 하니…
‘어우. 끔찍해라.’
어찌 됐든 간에 이건 넘어가고 제일 중요한 게 남아있다.
나는 방아쇠와 견착에 용이한 개머리판에 대해 알려준 뒤 제인에게 물었다.
“그거는? 강철 슈트는 다 만들었어?”
“후후후후…”
내 물음에 제인이 사악한 웃음을 흘렸다. 다만 꾀죄죄한 외모 때문에 사악함보다는 빙구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윽고 그녀는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올리더니 당당한 목소리로 외쳤다.
“물론입니다! 특히 아카데미에 몬스터가 쳐들어왔을 때 잠깐이나마 사용했습니다!”
“오. 성능은 어때?”
“감히 걸작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빨리 가자.”
“예!”
제인의 힘찬 외침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쿠웅!
제인이 그대로 쓰러졌다.
“…?”
뭐야.
*****
시바르가 쓰러진 제인으로 인해 당황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아직 방학이었기에 로드는 편안하디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나 마냥 편안한 건 아니다.
앞으로 올 신입생들 중에서 주의해야 할 사람을 판별해야 했으니. 다행히 이번 신입생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은 없다.
‘그나마 프로즌의 공녀 정도인가.’
로드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명단을 살펴봤다. 프로즌의 공녀 레이나는 사라를 통해 들은 바가 있다.
아직 공용어를 완전히 떼지 못해 의사소통이 힘들지만 그걸 제외하면 괄괄하고 열정적인 성격이라고.
차갑디 차가운 프로즌이지만 공녀의 성격은 불같이 뜨겁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왈가닥이다.
‘시바르보다 사고는 덜 치겠지.’
로드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시바르다. 시바르처럼 온갖 괴상한 사고만 치지 않으면 끝이다.
그때문일까.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들었다. 조용하면 조용할수록 불안한 이 느낌.
그리고 이 느낌은 꽤 적중률이 높은 편이다. 로드는 명단에서 눈을 떼며 입을 열었다.
“엘리 학생.”
“네?”
이제는 사실상 개인 비서격이 된 엘리다. 엘리는 로드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혹시 시바르가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음… 글쎄요?”
엘리는 로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나중에 하늘에서 뭔가 뚝 떨어지면 시바르지 않을까요?”
“…”
시바르를 너무 정확하게 표현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바르: 오오. 강철 슈트.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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