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8
제인이 쓰러지면서 잠깐 뇌정지가 왔지만 곧장 그녀를 병원으로 옮겼다.
아카데미는 구조가 구조다 보니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곳. 따라서 메뉴얼이 잘 짜여져 있는 편이다.
따라서 제인이 쓰러진 이유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으며 머지않아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과로입니다.”
“과로?”
“네. 다행히 영양 상태는 좋으니 휴식만 취하면 될 겁니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고 단순한 과로란다. 특히 수면 부족이 가장 심각하다고.
꾀죄죄했던 몰골도 며칠 동안 씻지 않아 생긴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쓰러진 제인을 바라봤다.
도대체 얼마나 몰두했으면 잠을 자는 것도 잊어버린 것일까. 열정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악마 측으로 넘어갔을 때 그 열정이 독기로 바뀌는 거지. 이 부분은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으으음…”
제인의 간호를 자처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기절한 지 한나절이 흘러서야 제인이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눈을 끔뻑거리며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지금은 안경을 벗어서 눈이 침침할 거다.
‘맨얼굴이 훨씬 예쁘네.’
누가 말했던가. 안경은 미모를 봉인하는 데에 안성맞춤이라고.
실제로 제인의 안경은 도수가 높았던 건지 안경을 벗으니 눈이 훨씬 예뻐졌다.
특히 안경으로 가려졌던 속눈썹이 두드러졌는데 인상마저 확연하게 변했다.
안경을 썼을 때는 지적이고 맹한 이미지였다면 안경을 벗으니 날카로워졌다.
“여기는…”
“정신이 들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제인의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가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안경이 없어서 잘 안 보였던 걸까. 제인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이윽고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바르 씨…? 여기는 대체…”
“과로라고 했어. 쉬어야 된데.”
“아. 그렇습니… 까? 제가 과로로…”
“누워 있어.”
나는 일어서려는 제인을 억지로 눕혔다. 지금 그녀에게 휴식이 제일이다.
당장 나도 피로가 쌓이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다. 나라고 해서 피로가 안 쌓이는 건 아니니까.
하물며 제인은 대장장이 겸 공학자다. 뜨거운 열을 감내하며 뭔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고된 작업이다.
그 작업을 쉴 새 없이 진행했으니 몸에 무리가 가는 것도 정상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영양 상태가 괜찮다는 점.
“다행히 밥은 꼬박꼬박 먹은 모양이네. 혼자서 먹었어?”
“아뇨… 엘리 씨가 저를 데리고 간 거라…”
아무래도 엘리가 자주 찾아간 모양이다. 어쩌면 그거 때문에 피로가 더 쌓였을 수도 있겠지.
제인은 천성이 내향인이다.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바깥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 스타일.
물론 엘리가 데리고 가지 않았더라면 더 일찍 쓰러졌을 것이다. 불규칙적인 식사는 과로를 앞당기니까.
“…시바르 씨.”
“응.”
“저… 여기에 있어도 되는 겁니까?”
“?”
그게 무슨 소리지. 오히려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제인은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손으로 옆을 더듬거렸다. 서랍장 위의 안경을 찾는 것 같다.
그녀가 안경을 찾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나는 조심스레 쥐고 있던 안경을 건네줬다.
“여기.”
“아. 제 안경… 시바르 씨가 갖고 계셨습니까?”
“응.”
“감사합니다.”
제인은 감사를 전하며 안경을 꼈다. 안경을 끼니 날카로웠던 눈매가 순해졌다.
겨우 안경 하나로 눈이 작아지고 사람이 순해 보인다니 참 신기하다. 도수가 높아서 그런 거겠지.
제인은 안경을 낀 채 한참 동안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 봤다. 머리가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다.
그리고 나를 힐긋거리더니 여전히 잠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제가 뭐라고 말했죠?”
“여기 있어도 되냐고 물었어.”
“아. 그렇죠 참. 서둘러 테스트를 마쳐야 하는데…”
여전히 미련이 남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보낼 생각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착용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녀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니 의사가 퇴원해도 된다 말하기 전까지는 곁에서 지킬 예정이다.
“그냥 쉬어. 아직 시간 많아.”
“…정말 기다려도 됩니까?”
“응. 무슨 문제 있어?”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보니…”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해 했지만 제인의 환경을 보면 또 아니다.
제인은 가난하다. 적어도 내가 투자하기 전까지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있었을 터.
유나이티드 아카데미는 세계 최고의 교육 기관답게 등록금도 만만치 않다.
아마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입학했을 것이다.
‘돈의 출처는 할아버지의 유산이었던가?’
제인의 부모님 그리고 할아버지는 훌륭한 공학자다. 제인이 그 재능을 이어받은 것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산티아는 독재가 매우 심한 국가다.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자들은 극형에 처하는 수준.
특히 빅 브라더에 가까운 감시 체계 때문에 자유마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제인의 할아버지가 필사적으로 그녀를 입학시킨 이유다.
‘로드가 부츠를 압수했을 때 발작 수준으로 경계했던 이유가 있지.’
제인으로서는 무조건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성공 때문이 아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과 정성. 마지막으로 남은 유산 때문이라도 발악한 것이다.
훗날 모든 성과를 다 빼앗겼을 때 악마측으로 넘어간 이유도 그때문이다. 자살 아니면 전향밖에 답이 없었으니.
“제인.”
“응.”
“제인은 이거 끝나고 뭐 할 거야?”
강철 슈트는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발명품이다. 설사 잘 안되더라도 마석 대체품이 있다.
솔직히 마석 대체품만 해도 그녀에게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선사할 터. 인생의 목표를 반쯤 달성한 셈이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고?”
“네. 분명 만들고 싶은 건 만들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제인이 착잡한 투로 대답했다. 여러모로 고민이 깊어보였다.
확실히 슈트를 완성한다면 그 후로 뭘 만들어야 할지 고민될 것이다.
“시바르 씨. 제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질문?”
“예. 하나면 됩니다.”
“해도 돼.”
제인은 고개를 돌려 나와 똑바로 마주했다. 나 또한 그녀를 바라봤다.
속내는 읽을 수 없었지만 머리가 어느 정도 정리된 얼굴이다.
그렇게 한참 서로를 바라보다가 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바르 씨는 뭘 보고 저에게 투자를 한 겁니까?”
“뭘 보고 했냐고?”
“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카오스의 신자잖아.”
만능의 변명이다. 카오스의 신자이기 때문에 투자한 것이다.
하지만 제인의 지능은 남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녀는 곧장 반박을 내놓았다.
“그때는 제가 카오스 님을 믿기 전인 걸로 압니다. 성녀님께서 주신 도끼를 통해 판별할 수 있었죠.”
“…”
“솔직하게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대체 저의 뭘 보고 투자를 결심하신 겁니까?”
음. 이럴 때를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고민했다.
솔직하게 미래를 알고 있어서 그런 거라고 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애당초 제인이 믿을지도 의문이고. 적당한 변명거리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나는 제인이 납득할 수 있게끔 대답했다.
“절박해 보여서.”
“절박해… 보여서요?”
“응. 그리고 내 직감.”
“…”
저 말밖에 못 하겠다. 제인은 내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큭. 크흑흑.”
하지만 이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웃는 것이 아닌가.
제인이 웃는 얼굴을 많이 보긴 했지만 이처럼 바람 빠지는 웃음은 처음 들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바람 빠지는 웃음을 터뜨리던 제인은 후련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그게 끝입니까?”
“응.”
“그렇군요.”
이어서 제인이 꺼낸 말은.
“감사합니다. 정말로.”
어딘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
제인은 절박함이라는 단어를 누구보다 잘 체감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교육 기관 유나이티드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나 이곳은 끔찍한 정글이었다.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곳이 아닌 정해진 길을 따라야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곳.
고향에 있을 때는 원하는 걸 만들 수 있었는데 아카데미는 아니었다. 성적과 관련이 없다며 핍박만 받기 일쑤였다.
[계속 이런 걸 만들면 학사 경고를 내리겠네.]
[네? 하 하지만 이것도 쓸모가…]
[쓸모라고? 이딴 쓰레기가? 어서 빨리 가서 공부나 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틈틈이 만들었던 물건.
할아버지에게 보여줬다면 정말 잘 만들었다며 칭찬받았을 물건이 한순간에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제인에게 있어서 충격을 넘어 트라우마로 남았던 기억이다. 그렇다고 수업을 안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쟤 대체 뭐야? 이상한 말만 하고.]
[아카데미에 저런 애들 많잖아? 알아서 떨어지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제인의 마음은 점차 썩어가기 시작했다.
매번 환상에 가까운 이론을 꺼내는 탓에 동급생들에게는 무시받았으며 교수들에게는 질책을 받았다.
제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발명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시대를 한참 넘어선 천재가 으레 그렇듯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인은 결심했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바에야 투자를 받아 물건을 만들자고.
[투자? 내가 왜?]
[너 같은 학생이 뭘 만들겠다고?]
[졸업이나 하고 그런 말을 해.]
하지만 그 투자조차 받기 힘들었다. 사실 이게 당연한 반응이다.
대외적으로 제인은 괴짜에다가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이었으니까. 교수들의 추천서조차 받기 힘들었다.
[투자를 받고 싶다고? 할 수야 있지.]
[저 정말입니까?]
[그래. 그대신 나랑 같이 하룻밤만 보낸다면야.]
[그 그건…]
아니면 결코 수락하기 싫은 조건을 받을 때도 있었다. 제인은 그것만큼은 한사코 거부했다.
돈 때문에 몸을 파는 건 매춘부나 하는 짓이니까. 돌아가신 가족들 때문이라도 거절했다.
그나마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학생도 교수도 아닌 아카데미의 대장장이였다.
[너 손재주가 좋구나? 물건 몇 개 좀 만들어 볼래?]
[그럼 돈은…]
[투자까지는 아니어도 월급 정도는 줄 수 있다.]
[감사합니다!]
대장장이는 물품 몇 개를 만드는 것을 조건으로 그녀에게 돈을 지불했다. 덕분에 제일 싼 공방을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원하는 물건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제인은 하염없이 투자자를 찾았다.
누구는 말할 것이다. 그깟 투자는 뒤로 하고 성적이나 잘 받는 게 어떠냐고.
어차피 졸업하면 고향으로 돌아가 마음껏 재능을 펼칠 건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당장 만들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천성이 이런 식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가끔 현실과 타협해야 할 때가 오는 법. 제인은 투자자를 찾는 걸 슬슬 포기했다.
‘딱 한 번만 시도해 보자.’
때마침 최근 큰 돈을 벌었다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듣자하니 소란을 자주 피우던 학생이라 했던가.
문명과 동떨어진 야생에서 온 남자. 때문에 아직 기본 상식이 부족하다고 들었다.
‘사기 치는 느낌인데…’
양심이 찔리긴 했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이것마저 실패하면 조용히 졸업이나 할 생각이었다.
“할게. 투자.”
“네? 정말로요?”
“응.”
진짜로 투자금을 받았다. 제인은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평생 만지지 못할 금액이 손에 들어오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가 투자를 받았구나.
투자자 시바르는 대체 왜 이런 투자를 한 것일까. 도대체 뭘 알고 있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지만 제인은 묵묵히 할 일을 진행했다. 고민해 봤자 도움이 되는 건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완성에 천천히 다가가고 있을 때쯤 제인은 한 가지 사건을 겪었다.
-콰아앙!!
“우와! 하늘을 날았다!”
“오…”
“누나! 누나! 나도 저거 만들어 줘!”
강철 부츠를 테스트하던 시절이었다. 시바르는 테스트를 하자마자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제인은 시바르가 데려온 꼬마 던의 요청을 무시한 채 뻥 뚫린 천장을 쳐다봤다.
하늘을 나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장을 뚫을 줄은 몰랐다.
‘…내가 뭘 만들고 있는 거지?’
점차 스스로의 재능을 깨닫기 시작한 제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인이 생각한 것: 보조 기구
현실: 아이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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