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5
내가 조교 후보로 선출됐다는 소식은 의외로 멀리 퍼져나갔다.
오죽하면 지나가는 사람이 날 보고 수근거릴 정도더라. 대충 봤을 때 신입생으로 보였다.
겨우 학생 한 명이 조교가 됐다 해서 이 정도로 소문이 퍼지는 건 이상하지만 나는 아카데미의 유명인이다.
그것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상관없이 이름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관심이 끌릴 수밖에 없다.
심지어 여태까지 저지른 사건사고만 해도 자잘하지 않고 큼지막하다. 교수 폭행 다음에는 동급생의 혀를 잘랐으니까.
하물며 야생에서 넘어온 사람이라는 인식이 여전한 만큼 진지한 논의가 오고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궁금하군. 왜 조교를 한다고 한 건가?”
이는 로드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일 것이다.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잠시 잠깐 멍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걸까.
“짹짹!”
“천천히 먹으렴. 그러다 체한다.”
“짹!”
피죤투가 로드의 손바닥을 부리로 열심히 쪼고 있다. 그에 로드가 천천히 먹으라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바닥의 손바닥 위에 모이가 있어서 그런 거다. 덩치를 고려했을 때 저 정도 양으로는 턱도 없을 터.
어디까지나 ‘간식’이다. 그것도 내가 숲에서 캔 약초로 만든 모이. 다시 말해 건강식이다.
‘나한테는 하나도 안 줬으면서?’
조금 섭섭해졌다. 로드가 저런 건강식을 준 적이 있었나.
“1학년이 궁금해서요.”
“1학년이 궁금해서?”
“네.”
“흠.”
나는 로드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자 로드가 콧수염을 살살 잡아당기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피죤투에게 모이를 주는 건 잊지 않았는데 피죤투도 로드의 손바닥이 다치지 않게끔 힘조절을 하는 듯했다.
사실상 피죤투는 로드의 거주지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니 전보다 유대감이 더 올랐을지도 모르겠다.
“궁금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군. 호기심은 억누르라 해도 억누를 수 없는 것이니.”
“그럼 해도 되죠?”
“상관없긴 하다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네. 이번 신입생들은 유달리 귀족의 비율이 높거든.”
귀에 자주 들어오는 이야기다. 이번 신입생은 귀족들 특히 동방에서 온 귀족들의 비율이 상당하다고.
동방 정확히는 환 제국 곳곳에서 반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상황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반란이 아니라 ‘독립 운동’이지만 환 제국이 잘 포장해서 반란인 것이다.
환 제국이 여론을 얼마나 잘 조정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쯤 이연주도 열불이 나고 있겠지.
“혹시 신입생들이 시바르를 놀릴까 봐 걱정하는 건가요?”
피죤투의 진짜 주인 루나가 물었다. 때마침 루나도 조교직을 희망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개강이자 개학이 금요일이었으며 바로 다음 날이 주말이다. 그래서 로드의 거주지에 모일 수 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시간이 널널한 사람에 한정된 이야기고 그레이스나 카라 같은 귀족들은 각기 바쁜 일이 있어 못 모였다.
“그런 것도 있지만 시바르가 신입생에게 폭력을 저지를까 봐 걱정인 거지.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시바르가 혀를 뽑지 않을까요?”
“선을 넘을 듯 말 듯 한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은 많다네. 무시하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힘을 쓰는 것도 애매하지.”
대충 로드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다. 무례함을 적절히 섞어서 남을 골려먹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말에는 오묘한 힘이 담겨 있어서 잘못하면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꽤 많다.
그래서 외교적 수사라고 대변인들이 ‘유감이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걸 봤을 것이다.
겉으로는 하하호호 웃으며 얘기하는 것 같다가도 실상은 서로에게 극딜을 날리는 식이다.
‘예법에 외교적 수사가 포함돼 있다고 들었는데.’
귀족들이 예법을 가르치는 이유가 고도의 돌려까기를 위함이다. 대놓고 모욕할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물론 가끔 가다 무례를 담아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놓고 무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화를 내는 순간 속 좁은 인간으로 몰릴 확률이 높다. 화법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음… 총장님.”
“말하게.”
“총장님이 말씀하신 귀족들은 소수 아닌가요? 당장 제 주변만 봐도 그렇잖아요.”
루나의 말은 합당하다. 내 주변만 보더라도 ‘개념’이 넘치는 귀족들이 대부분이다.
우선 그레이스. 마음 속에 작은 동화를 품고 열심히 노력하는 귀족이다. 그것도 공작가의 영애.
다음으로는 카라. 신생국의 공주여서 그런지 몰라도 권위와 거리가 먼 데다가 대화도 잘 통하는 편이다.
오히려 그녀를 차별했다가 된통 혼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카라가 먼저 시비를 건 적은 한 번도 없다.
세 번째로는 단예린. 어찌 보면 가장 귀족다운면서도 무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카데미로 내몰렸음에도 황위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궁리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는 카라스다.
‘얘는 미친놈이니까 넘어가자.’
어찌 됐든 간에 내 주변만 하더라도 아주 훌륭한 인성을 가진 사람들밖에 없었다. 루나로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그러나 로드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그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연륜이 깊은 말을 꺼냈다.
“동방에는 이런 말이 있다네. 유유상종이라고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지.”
“아. 그 말은 자주 들었어요.”
“그래.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이지만 나쁜 사람들 근처에는 나쁜 사람이 몰리기 마련일세.”
맞는 말이다. 자기 성향에 맞지 않는 사람은 자연스레 멀찍이 떨어뜨리는 편이다.
반대로 근묵자흑이라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검어지는 경우도 있다. 때마침 로드가 설명했다.
“그래서 난 시바르가 자네들과 어울리는 게 축복이라 생각한다네. 마음이 검은 사람들은 주변인의 마음도 물들게 만들거든.”
“음…”
그 말에 루나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나를 관찰했다.
뒤이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해가 간다는 어조로 말했다.
“확실히. 시바르가 나쁜 사람들랑 어울렸다면… 생각도 하기 싫네요.”
“교육도 교육이지만 시바르의 심성이 착해서 그렇다네. 무엇보다 과연 귀족들이 시바르를 잘 따를지 의문이군.”
“조교는 딱히 할 일이 없지 않나요?”
“그건 학생들이 교수들을 잘 따를 때의 이야기일세. 조교는 일종의 군기반장 역할도 하는 셈이니까.”
그러니까 군대로 치자면 교수들은 중대장 혹은 소대장이고 조교들이 병장 또는 상병인 셈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할 수 있는데 내가 전에도 설명한 적이 있을 거다. 교수들은 정치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평민의 비율이 많다면 그나마 자유롭지만 귀족이 더 많아진다면 정말 골치 아파질 거다.
뭐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금쪽이로 빙의해 위에다 일러바칠 테니까. 그것도 아카데미가 아니라 가문에다가.
유치하다고 할 수 있는데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은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 조교들이 나서는 것이다.
마음의 편지에 찔릴 수 있겠지만 교수들보다 타격이 덜 할 테고 교수들이 적당히 커버할 수 있다.
“과연 시바르를 만만하게 볼까요? 게다가 시바르는 딱히 걸리는 것도 없잖아요.”
“옛날에 카라 학생이 징계 때문에 퇴학당할 뻔했다네. 악의적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생각해야지.”
실제로 카라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상대쪽이 악의적으로 보고해서 골탕 먹였던 일.
다행스럽게도 사회봉사 100시간을 선고받았지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시바르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조교를 하는데 괜찮지 않을까요?”
“나쁘지는 않지. 그래서 내가 기꺼이 허락한 걸세. 어차피 이건 내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니까.”
“째액!”
모이를 다 먹었는지 피죤투가 날개를 활짝 폈다. 그에 로드가 손을 대충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군. 난 피죤투 산책 좀 시키고 오겠네.”
“어… 산책이요?”
“그래. 좁디 좁은 방 안에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뒷마당도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 숲에 들어갈 거라네.”
꽤 일리 있는 말이다. 피죤투는 덩치가 대형견보다 훨씬 크다.
대충 비유하자면 타조와 비견될 정도다. 안에 있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을 터.
그렇다 해서 대놓고 산책시킬 수는 없으니 숲에서 산책하는 것이다. 위험할 것도 없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상담 감사합니다.”
“상담은 무슨. 만약 시바르를 욕보이는 학생이 나오면 보고하게나.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손을 쓸 테니.”
“네. 시바르. 가자.”
“응. 안녕히 계세요.”
나는 로드에게 인사하고 루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할 것도 없으니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다.
“아. 시바르.”
“?”
“너 정말로 신입생들 때릴 거야?”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누가 들으면 폭력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사람처럼 생각하겠네.
하지만 황당한 것과 별개로 반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짐승은 매로 다스린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조금 진지하게도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선을 넘으면?”
“음… 알겠어.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같이 때린다고?”
얘가 원래 그런 애였나. 내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루나도 뒤늦게 실언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리고 약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아니. 그건 아니야. 그냥 너로 남을 수 있게끔?”
“나로 남게끔? 그게 무슨 소리야?”
“음… 그런 게 있어.”
루나는 쓴웃음을 짓더니 애매한 말을 꺼냈다.
“너는 야생에서 왔으니까 웬만한 건 이해하겠지. 안 그래?”
“…”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
시바르와 루나가 각각 자기 거주지로 돌아갔을 때.
로드는 피죤투를 데리고 숲 입구로 향했다. 혹시 몰라 들키지 않게 공간을 베어 넘어갔다.
‘시바르가 조교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사고만 안 쳤으면 좋겠는데.’
이윽고 숲에 도달했을 때 로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피죤투의 몸 위에 안착했다.
방랑 생활을 하면서 말을 타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 정도는 간단했다. 비록 피죤투가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니지. 시바르가 사고를 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어.’
조금은 기대가 된다. 시바르가 조교직을 수행하는 것과 앞으로 발생할 일들이.
시바르에게 과연 누군가를 통솔할 능력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아주 훌륭한 장군감이 될 수 있을 텐데.
더 나아가 주변에서도 눈 여겨 보겠지. 막강한 무력을 지닌 사람이 강력한 통솔력 및 카리스마까지 갖췄다.
‘시바르가 악마로부터 해방된다면 직업도 얻어야 하는데… 무엇이 좋을까.’
-톡. 톡. 톡. 톡.
피죤투가 천천히 두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드는 피죤투의 등 뒤에 올라탄 채로 골똘히 생각했다.
피죤투도 별로 힘이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반대로 익숙하디익숙한 얼굴이다.
‘이는 차차 생각해야겠군.’
로드는 생각을 멈추고 앞을 쳐다봤다. 피죤투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자. 오늘도 날개짓을 연습하는 거다. 알겠니?”
“짹!”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요. 이 할애비가 지켜줄 테니까. 그럼…”
로드는 기대를 담고는.
“가라!”
“째액!”
발로 피죤투의 옆구리를 약하게 찼다.
약초 채집 다음으로 로드의 취미가 늘어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로드: 이게 낭만이다
님! 재미있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댓글 하나씩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