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68
소문이라는 건 정말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솔직히 정보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현대적인 환경이 조성되어야 퍼진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라단에서 깨닫게 되었다·
“제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매의 아들이시여!”
누가 복사해서 배포한 것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판에 박힌 대사 정도는 캬루베로스의 도움 없이도 자연스럽게 번역 된다· 물론 그 이후로는 캬루베로스의 통역이 있어야 하지만 이동을 하면서도 꾸준하게 공부를 이어 나가기 때문에 아주 조금씩은 귀가 트이는 중이다·
동서불문하고 서민들의 회화는 단순담백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며칠 사이에 귀가 트일 정도로 내가 영특한 건 아니다·
“주인님 이번엔 악마가 아니라 도적 문제인데요?”
“그래서?”
“굳이 이런걸 받···아야 더 빨리 명성이 퍼지겠죠! 하하하!”
변경의 시골이면서도 도시와의 교통이 나쁘지 않은 편에 속하는 마을에 숨어 모험가로 위장한 악마를 죽인 후 벌써 2주 째에 이르렀다·
그 사이 이어진 여정 자체는 단순했다·
3일에 한 번 ‘어떻게 그만한 거리를 그렇게 순식간에?’ 같은 의문이 들 수 있으면서 비범함으로 포장될 수도 있는 미묘한 수준의 거리를 만마전을 통해 도약하고 다른 이동 수단을 사용하지 않은 채 오로지 두 다리로 정해진 마을을 목적지 삼아 순회하기·
그러는 동안 마주하는 악마를 도적을 몬스터를 죽인다· 금품을 베푸는 행위는 하지 않고 받지도 않는다· 마을에 머무는 일도 없이 하루가 멀다하고 야영이 이어지는 나날이었지만 그건 라단의 평온한 기후 덕에 딱히 힘들지 않았다·
고작 그뿐인데도 불구하고 나에 대한 소문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처음엔 미심쩍어 하는 사람들에게 눈총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내가 누구인지 알기 시작했으며 2주차 막바지에 들어서는 이렇게 길을 가다 마주친 상단조차 나를 알아보고 부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 거기엔 캬루베로스의 정신 나간 헤어스타일도 한몫했을 것이다· 방금 내게 무릎 꿇고 부탁한 상인도 캬루베로스의 머리카락을 보고 반응했으니·
“어디 보자···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도적들을 처리하고 나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시에 진입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예정보다 좀 이른 거 아닌가?”
“그건··· 예상보다 사건이 더 많았음에도 빨라진 거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멀뚱히 야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감하다는 듯 대꾸하는 캬루베로스의 말은 얄밉게도 정론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악마들이 만마전에서 도망치기 위해 난리를 피우고 있었고 계획에 맞춰 최대한 이동 속도를 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양인 걸 뭐 어쩌겠어·
불필요하게 밍기적거렸다간 코앞에 있는 도시조차 못 들어갈 가능성이 있었기에 큰일을 하기 전에 대접하겠다는 상인의 배려를 정중히 거절한 뒤 빨리 도적들이나 처리하고자 움직인 우리는 딱히 서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상인이 말한 도적 떼를 마주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포위 당했다·
“너 엘드미아 에가· 맞나?”
어눌한 서방 대륙 공용어로 말을 걸어온 놈들은 아무리 과소평가를 해 줘도 도적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잘 정비된 장비를 지닌 무력 집단이었다· 산속 통행로 인근에 숨어서 사람들을 털어 먹으며 연명하는 놈들이라는 상인의 설명과는 아주 거리가 먼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엔 내 움직임을 파악한 다른 귀족이나 군대를 우연찮게 조우하게 된 것인가 싶었는데 다짜고짜 검부터 뽑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듯한 태도로 포위망을 좁혀오는 걸 보면 이제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날 보자마자 알아봤다는 건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니 그들이 무고하고 성실한 군인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보단 마주했던 상인도 한패였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흠 제공하려던 식사엔 독이 들어 있었을지도·
“그렇다면?”
“죽는다·”
“이건 또 참신한데·”
“이··· 버러지같은··· 씹어먹을 인족 새끼들이···!”
그리고 캬루베로스가 분노했다·
갑자기 나를 향한 충성심이 용솟음쳤다거나 감히 나를 속였다는 사실에 분노한 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지·
“같잖은 개수작으로 감히 나를 속···!”
“아가리 닥치고 넌 나중에 보자·”
“아 안 돼···! 주인님! 진짜 억울해요! 이상하다니까요!”
모든 통역을 녀석에게 맡기고 있는데 이런 조잡한 매복조차 눈치 못 챘다? 그럼 당연히 캬루베로스가 잘못한 거지·
“왜 나를 노리는지 말할 생각은 있냐?”
돌아오는 대답은 말이 아니라 창칼이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교차 검증이 가능한 정도로만 적당히 살려 두면 되겠지 뭐·”
라단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겪어보는 제 3 세력의 습격은 굉장히 조용히 시작되었다·
서른 명은 될 법한 인원이 간격을 맞추고 동시에 달려드는 것도 놀라운데 거기에 조용하기까지 하다니 마치 숙련된 암살자 집단이라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몸에 두르고 있는 기운은 암살자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으니·
“이건 또 뭐 하는 새끼들이지?”
무려 오러나 마나가 아닌 오묘한 형태의 마력이었다·
마족의 마력 기관과는 다르다· 분명 마력인데··· 마치 성법을 통해 버프를 주는 것처럼 둘러진 형태? 자원은 마법 자원인데 사용은 성법처럼 쓰는···?
“주인님! 저거! 루할!”
아무래도 루할 시나라는 악마는 말로만 신성력을 흉내낸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방금 그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사람처럼 상대하려던 생각을 접고 마력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바늘을 사출한다·
단순히 놈들을 죽이고 시작하기 위한 공격이 아니었기에 아홉 개의 바늘들은 각기 다른 속도와 위력을 지닌 채 적들에게 날아간다· 그렇게 하나 둘까지는 튕겨 나갔으나 다섯 개까지는 급소를 빗겨 박히고 나머지 네 개는 제대로 손 쓸 틈도 없이 적들의 급소를 관통하며 허공을 배회한다·
제일 약하게 사출한 바늘조차 마왕군 일반 병사를 상정하고 날린 거였으니 버프로 강화된 신체 능력이 균일하다고 가정할 경우 평범한 오러 유저는 아득히 뛰어넘는 신체 능력이라는 뜻이었다·
“Matiga ti tem moh oudqo!”
뭐라 외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면서도 부족한 인원으로 인해 비어버린 포위망을 재구성하는 놈들의 움직임이 하루 이틀 훈련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다· 루할 시나를 신봉하는 집단이 적잖은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위협적이진 않다· 내가 저들보다 월등하게 강한 것도 이유지만 놈들의 포위가 나만을 향하는 게 아니라 캬루베로스까지 포함하고 있었기에 더 그랬다·
“Si norep ruc?!”
“Te mustnom!”
파바박! 하는 고기에 칼 박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열 명 정도의 검이 캬루베로스에게 날아갔거든·
“빌어먹을 새끼들 주인님만 아니었어도 그 자리에서 터트려 죽여 버렸을 새끼들···”
캬루베로스의 증오가 가득 담긴 중얼거림이 들려왔지만 이번만큼은 봐주기로 했다· 악마 숭배자들은 결국 악마 새끼들과 다를 바 없으니 저건 동족을 욕하는 것으로 생각해주지 뭐·
덕분에 일곱이 전투 불능이고 열이 빠졌으니 내가 상대해야 하는 적들의 수는 겨우 열셋 밖에 안 된다· 안 그래도 쉬운 전투가 더 쉬워졌으니 나는 조금 더 찬찬히 눈앞의 악마 숭배자들을 뜯어보기로 했다·
“Mustno!”
소리치며 공격하기? 의외로 이상한 곳에서 훈련이 부족하네·
둘 이상의 협동 공격· 손발을 잘 맞는데 셋으로 늘어나자마자 꼬이는군· 정해진 인원끼리만 합을 맞춘 것일지도·
아군이 시야를 가릴 때의 대처· 와 저걸 그냥 찔러버리네? 아무리 빈틈으로 연기했다고는 하지만 일말의 주저도 없이?
“아아악! Gis taliv ued!”
열세에 몰렸을 때의 반응은··· 광기·
실력의 차이가 압도적인 걸 알아도 물러서지 않는 걸 넘어서 악을 쓰며 달려드는 건 비정상이다· 심지어 무기를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동시다발적으로 각오를 다지며 나를 향해 무기를 투척한 뒤 달라 붙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미 전생에서 광신도들이 행할 수 있는 최악의 행태들을 학습하고 이번 생에 이르러서 한 번 당할 뻔한 전적까지 있는 나는 놈들의 수작질에 당하지 않는다·
“어디서 자폭질이야 씨발·”
다시 마력을 움직여 순식간에 최고 속도까지 끌어올린 바늘들을 쏘아 충혈된 눈으로 달려들던 열 명 가까이 되는 적들의 머리통을 꿰뚫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놈들에게 둘러진 기묘한 마력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놈들이 스러져가는 광경이 느리게 비춰진다· 용갑에 내장된 마력을 꺼내쓰지 않았음에도 이전에 비해 많이 강화된 감각은 아주 잠깐이나마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다행히 놈들에게도 나에게도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자신들의 목숨마저 불사르려고 했던 미친놈들이 아무것도 못 하고 바닥에 픽픽 쓰러지는 것을 본 생존자들의 반응은 아까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뭐 하냐? 심문 준비해·”
놈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캬루베로스에게 명령하자 녀석을 해적 룰렛으로 만들고 있던 악마 숭배자들이 동시에 무기를 손에서 놓으며 바닥에 쓰러진다· 이미 진즉에 기절시켜놓고 다른 놈들을 속이기 위해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있다가 명령과 동시에 기절시킨 것인지는 몰라도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꽤 기괴해보일 법한 광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광경을 본 생존자들의 반응이 좀 더 그들의 주제에 맞게 바뀌었다·
“얻어낼 수 있는 거 다 얻어냈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죽이지 마라·”
“옙·”
되도 않는 결연함과 각오는 온데간데없이 당황과 두려움만이 자리 잡았으니 실로 악마 숭배자들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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