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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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태창·”
[이안 레이븐]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상태창이 대놓고 이안을 꼽주고 있었다·
이안 이즈 낫띵· 불쌍하도다 아무것도 아닌 이안이여·
굳이 이안의 호칭을 정하자면 ‘농부 이안의 아들 이안’일 것이다·
이 중세 판타지 세계에서 농부의 아들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니· 상태창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상태창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부류였다·
농부의 아들 이안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머리가 검은 아이다·
이안의 엄마는 샛노란 머리· 아버지는 새빨간 머리인데 이안의 머리는 먹물처럼 새카맣다·
어릴 적 이안의 부모님은 이 문제를 두고 지겹도록 부부싸움을 벌였다·
[솔직히 말해! 이 애 누구 애야!]
[당신 애지 누구 애겠어!]
[헛소리 마! 이 헤픈 여자가!]
[그게 지금 당신 아내한테 할 소리야!]
어쩌구 저쩌구·
이안 레이븐이란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 검은 머리카락이 지대한 지분을 차지했다·
이 동네의 이름 짓는 법은 아주 단순하다·
먼저 이름· 이름은 부모가 마음에 드는 걸로 아무거나 가져다 붙인다·
개똥이로 붙이면 개똥이가 되고 소똥이로 붙이면 소똥이가 된다·
이안이라는 심플한 이름 역시 부모님이 꼴리는 대로 갖다 붙인 이름이다·
여기에 아버지의 이름을 뒤에 가져다 붙인다·
러시아에서 곧잘 써먹는 ‘부칭’이라는 개념이다·
이안의 아버지의 이름은 이안·
이안의 아들 이안이니 부칭을 더한 이안의 이름은 이안 이안이다· 풀어서 표현하자면 ‘이안의 아들 이안’이겠지·
참고로 이안의 할아버지 이름은 이안이다·
할아버지 이름까지 꾸역꾸역 부칭에 집어넣는 집안도 있으니 길게 쓴다면 이안 이안 이안이 이안의 풀네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신병 걸릴 것 같은 이름을 남들이 불러줄 리 없다·
똑같은 단어는 생략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이안의 풀이름은 그냥 이안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안 3세쯤 되겠지·
동네 사람들은 큰 이안 작은 이안으로 구분해 부른다· 할아버지 이안? 죽은 사람은 찾지 말자·
보통은 여기서 이름 짓기가 끝나지만 특이한 사람에게는 별명을 덧붙인다·
이안은 동네 사람들과 전혀 다른 새까만 머리카락의 소유자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큰까마귀(raven) 이안·
“하하! 저기 봐! 까마귀 새끼가 지나간다!”
“이안은 매일 밤에 먹물로 머리를 감는다네~”
자신을 놀려대는 동네 아이들을 보며 이안은 혀를 쯧쯧 찼다·
저저 싸가지 없는 놈들·
동네 또래였다면 화가 날 법도 했지만 이안은 아이들의 순수한 악의가 그저 가소로울 뿐이었다·
이안은 환생자였다·
그것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 (구)조선 출신의 남자다·
#
사후세계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하다·
사후세계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죽어야 하는데· 당연하게도 죽으면 말을 할 수 없다·
때문에 더 이상 신비의 가치가 무의미해진 현대에서도 죽음만큼은 불가침의 영역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환생자인 이안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사후세계는 존재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하는지까진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안에게만큼은 그랬다·
‘곽재한·’
이안은 모래 위에 자신의 전생 이름을 적었다가 지워버렸다·
전생의 기억을 유지한 채 다시 태어난다는 게 흔치 않은 일이란 건 안다·
따지고 보면 환생 혹은 전생이라는 것부터가 생소한 개념이니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이안은 자신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과거 한국인일 때와 똑같은 색깔의 머리· 어쩌면 전생의 기억과 함께 머리카락까지 환생을 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본체는 사실 머리가 아니라 머리카락?
그 논리라면 대머리는···
음· 여기까지·
대머리보고 ‘영혼이 없는 자’라고 놀리는 건 너무 잔인한 짓이다· 그들은 단지 한 줌의 모발이 부족한 인간일 뿐이다·
어쨌거나 이안 더 레이븐은 콜브룬이라는 지방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국의 여타 농부들과 마찬가지로 이안의 가정은 가난했다·
가난하다는 건 매일 일을 열심히 해도 가끔씩 끼니를 거르는 일이 생기는 수준을 뜻한다·
부부의 네 명의 자식들 중 셋째로 태어난 이안은 거의 매일같이 허기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자식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는 한국과 달리 이곳은 웃어른부터 밥그릇을 챙기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문제 : 집안에 어른 둘과 아이 넷이 굶고 있다· 식량은 4인분 뿐· 그렇다면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은?
제국식 정답을 고른다면 어른 둘과 첫째 그리고 둘째다·
이들은 노동을 해야 하니 반드시 칼로리가 필요하다· 굶어서는 일을 할 수 없다·
일을 못하면? 온 가족이 굶어 죽는다·
첫째는 나이가 꽤 찼다· 현대인들이 ‘청소년’으로 분류하는 열다섯 살의 나이다·
하지만 현대의 청소년들이 그렇듯 첫째는 어른 못지않은 근력을 자랑하는 건장한 남자다· 둘째와 엮는다면 함께 한 사람 몫의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셋째와 넷째는 달랐다· 이들은 명백히 어린아이다· 일을 하지 않지만 먹는 양도 적다· 그래서 굶겨도 된다· 정 배고프면 풀숲에서 메뚜기라도 잡아먹겠지 뭐·
때문에 이안의 일상은 다음과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한다· 부모님이 제일 많은 음식을 먹고 이안과 막내는 작은 빵조가리를 나눠 받는다· 점심까지 아껴 먹어야 하는 소중한 식량이다·
부모님과 형들은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가고 이안은 여동생을 챙겨 숲으로 향한다·
거기서 하루 종일 먹을 걸 찾아다닌다·
열매도 먹고 벌레도 먹고 새알도 먹고 나물도 먹고·
그러다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온다·
운이 좋다면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아니면 그냥 잔다·
다음 날 해가 뜨면 어제의 일이 반복된다·
어린 나이지만 이안은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자각했다·
애가 눈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먹을 것만 찾아서 돌아다닌다니· 이게 어린이야 들짐승이야?
교육? 숲이 학교고 짐승들이 선생님이다· 야인의 생활 방식을 배웠다는 것이다·
어떠한 배움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삶·
물론 나이가 차면 부모님을 따라 밀밭에서 개고생을 하겠지만·
고생 자체는 싫지 않다· 세상에 고생 없이 얻어지는 게 뭐가 있겠나· 그 쉽다는 코인 투자마저 나락의 고통을 맛보아야 하는데·
문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얻는 게 없다는 거다·
소득이 없다· 이건 이 시대 농부들의 공통적인 문제다·
사실 이안의 부모님은 농부가 아니라 농노다·
농부나 농노나 밭일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농노는 영지에 종속된 농부라는 차이점이 있었다·
장점이라면 튼튼한 장벽 안에서 기사의 보호를 받는다는 점·
심심하면 도적한테 털리고 괴물한테 잡아먹히는 자유민들과는 차원이 다른 안정감이다·
하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았는데 바로 영주와 주종계약으로 묶인 관계라는 점이다·
영주에게 보호를 받는 대신 영주의 지배를 받는다·
허락 없이 영지를 벗어날 수 없고 생산물의 일부를 바쳐야 하며 필요에 따라 노동력과 군사력을 제공한다·
이안의 부모님이 농노이니 이안 역시 농노다·
농부도 다 같은 농부가 아니다· 농부 중에서도 부유한 농부들은 알뜰살뜰 돈을 모아 무기와 갑옷을 집에 들여놓고는 했다·
그들은 유사 시 장갑 보병으로 활용할 수 있기에 아주 좋은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이안의 부모님은 흙수저 중에서도 흙내가 풀풀 날리는 진짜 흙수저다·
땅은 영주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었고 흉년이 들 때마다 곡식을 빌려 먹어서 가게 부채도 심했다·
매일매일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손에는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는 빚쟁이의 삶·
그렇게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가 병에 걸리면 그대로 죽어 땅 속에 묻히는 하층민의 인생·
그것이 이안의 부모님의 인생이었고·
이안에게 예비된 삶이었다·
이안은 영지를 떠날 수 없었다· 부모가 빚쟁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빚은 자식이 갚아야 했다·
농노 외에 다른 직업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교육이 없는데 어디서 뭘 배운단 말인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안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 나이에 죽은 게 죄라면 죄였다·
입가에 검댕을 잔뜩 묻힌 채 구운 생선을 오물대는 여동생을 보니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쟤는 좋겠다· 아무 생각이 없어서·
“오빠 이거 안 먹어?”
“먹을 거니까 건드리지 마·”
걸신들린 듯 자기 몫의 생선을 먹어 치운 동생이 이안의 몫에 눈독을 들인다· 아주 하는 꼬라지가 며칠 굶은 거지나 다름없다·
사실 집이 있다는 점만 빼면 거지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인생이긴 했다·
이안은 생선을 뼈째로 씹어 먹으며(손바닥보다 작은 놈이었다) 머리를 굴렸다·
“상태창·”
[이안 레이븐]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의 창·
게임이나 소설에서 보았던 바로 그 상태창이다· 이것이 이안이 이세계 전생을 해버린 현대인임을 증명한다·
서브컬쳐의 명백한 메인스트림이 되어버린 상태창의 존재는 이안에게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눈앞에 상태창이 있는데 이세계 치트 능력은 없다?
명백한 문법 위반이다·
이안은 자신의 잠재능력을 확신했다· 이세계 전생을 하면서 얻은 개사기 치트 능력이 본인에게 있을 것이다·
정신승리에 가까웠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비참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버틸 수가 없었다·
치트 능력은 있다·
문제는 그 능력을 눈으로 확인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능력만 각성하면···!”
이안 각성! 각성자 이안!
영주가 깜짝 놀라고 기사가 고개를 조아리는 천재가 되겠지···!
그러면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배가 터지도록 처먹으리라·
“오빠 이거 안 먹을 거면···”
“건드리면 뒤진다고 말했다·”
중2병스러운 망상에 젖은 채 이안은 식사를 끝냈다· 냇가에서 잡은 작은 물고기 두 마리가 남매의 점심식사다·
겨우 허기만 달랠 정도지만 이 정도도 감지덕지다·
“오빠· 후식 먹으러 가자·”
“좋지· 가자·”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현대인의 삶의 질은 사실 중세시대 귀족보다 좋다·
맛 좋은 음식 깔끔한 생활 편리한 도구 안정적인 주거 환경 등등·
귀족의 값비싼 고오오급 은거울이 아무리 좋아도 스마트폰보다 좋을까·
현대인의 일상스러운 사치에 물든 이안은 여동생에게 ‘식사는 원래 코스로 하는 거야’라는 호화로운 정보를 건네주고 말았다·
순진한 여동생은 자연스럽게 이안의 사상에 물들었다· 밥을 먹었으면 당연히 후식을 먹어야지·
남매는 자연스럽게 산딸기 덤불을 찾으러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웬 낯선 여행자를 만났다·
“어머나·”
놀랍게도 여행자는 여자였다·
중세 시대에 홀로 여행하는 여자라니? 현대에서 보았어도 놀랄만한 일이다·
“안녕? 꼬마야?”
여자는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안은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가뜩이나 팍팍한 중세 판타지 세계에서 홀몸으로 여행 중인 여자가 보통 사람일 리가 없다·
이안은 최대한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여동생이 이안보다 한 발 빨랐다·
“아줌마는 누구세요?”
“··· 아줌마?”
이안은 질겁했다·
여자에게 아줌마라는 말은 선전포고나 다름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표정관리를 못하는 여자·
이안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가의 말을 열심히 적었는데 새로고침 하면서 다 날라갔습니다 ㅜㅜ
요약하자면 대충 잘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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