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3
# 153
사람들에게 마리아는 이미 죽일 년에 썅년이다·
오갈 데 없는 부모 없는 년을 데려다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그 집 아들을 죽이고 튀려고 했어?
눈이 뒤집혀서 달려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안은 마리아가 에릭을 살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그저 그렇게 보이게 연출됐을 뿐이다·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는지 까진 모르겠지만·’
마을을 조사한 결과 알아낸 사실이다·
마리아는 살해 용의자일 뿐· 진범은 따로 있다· 이것이 이안이 내린 결론이었다·
진범이 어째서 마리아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나? 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그놈과 아직 대화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마리아의 무고함은 주장할 수 있었다·
마리아 = 범인·
이 프레임을 벗겨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세 가지 진실?”
소영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마을로 ‘놀러’ 온 사람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놀러 왔다·
요즘 들어 영지 주변으로 강령술사들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그런 걸 처리하는 사람은 기사들이잖아? 내 알 바 아님!
그는 이미 세습 귀족의 나쁜 물이 들기 시작하는 특권 계급 꿈나무였다·
강령술사가 돌아다닌다면 영주가 가장 바빠야 하는 게 옳다·
하지만 진짜 영주는 노망난 늙은이고··· 소영주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작위만 이어 받으려고 기다리는 철면피다·
그래서 소영주는 가벼운 마음으로 외출 할 수 있었다·
강령술사보다 강령술사를 때려잡으러 왔다는 르샤흐 경에게 더 관심이 많았으니까!
마리아가 이 마을에서 무슨 짓을 했든 그는 관심이 없었다·
사형선고 땅땅 때리고 르샤흐 경이랑 술이나 마실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법사라는 자가 갑자기 세 가지 진실을 밝힌단다·
소영주는 일단 마법사가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마법사인데다가 르샤흐 경도 잠자코 있는데 본인이 뭐라고 하기에 좀 그랬기 때문이다·(본인이 재판관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좋아! 말해보아라!”
소영주는 당연히 이안이 마리아의 유죄를 밝힌다고 생각했다·
그것 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기에 그렇다·
마을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안은 사람들의 기대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에레디스의 제자 마법사 이안입니다· 르샤흐 경의 부탁을 받아 강령술사 마리아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죠·”
이안은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재판장을 휘젓듯 걸어 다녔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 넘기는 일에는 이골이 난 이안이다·
그 자연스럽고 당당한 태도가 마법사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더해지자 권위적인 설득력을 더해주었다·
그 증거로 모두가 숨을 죽여 이안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리아가 에릭이라는 청년을 살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해보았습니다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더군요·”
“··· 석연치 않다니? 무슨 말인가?”
이안이 재판의 흐름과 맞지 않은 발언을 했을 때·
소영주는 진심으로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지금··· 마리아의 유죄를 주장하는 게 아니란 말인가?
“첫째· 마리아는 로버트의 아들 에릭을 살해했습니다· 하지만··· 왜 죽였을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을 사람들뿐이었다·
하지만 영주와 기사님과 마법사가 목소리를 내는 이곳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어지간히 겁대가리를 상실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질문에는 제가 답을 해드리겠습니다·”
창백한 인상의 묘지기가 앞으로 나섰다·
묘지기 죠셉·
그는 어지간히 겁대가리를 상실한 평민이었다·
“마리아가 에릭을 왜 죽였는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죠셉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사촌은 촌장의 지시로 마리아를 억지로 떠안듯 키우게 되었습니다· 성질머리가 더러운 제 사촌은 부인과 함께 마리아를 구박하고 학대했지요·”
“아 아니! 죠셉! 지금 무슨 소리를···!”
옆에서 잠자코 있던 로버트 부부가 기겁했다·
로버트 부부가 마리아를 괴롭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그걸 시발 영주님 앞에서 말해버리다니!
너는 누구 편이냐! 대체!
“큭큭··· 로버트· 적당한 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들지 마라· 여긴 얄팍한 거짓말이 통할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다·”
“아 아무리 그래도···!”
“네가 평소에 마리아를 괴롭혔다는 증거는 널리고 널렸다· 뭣하면 어린애들한테 물어볼까?”
“···”
죠셉이 고개를 돌리자 마을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며 묘지기의 시선을 피했다·
죠셉의 말은 진실이었다·
마리아는 평소 로버트 부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지만 딱히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 없는 고아를 심심풀이로 괴롭힌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으니까···
죠셉이 이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원한은 차고 넘칩니다· 평소 로버트 부부의 차별과 괴롭힘에 시달린 마리아는 앙심을 품고 장남을 살해하기로 결심한 거죠··· 큭큭·”
동요하는 마을 사람들은 없었다· 모두가 어느 정도는 짐작한 동기였다·
이야기를 처음 듣는 소영주마저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이 안 된다·”
“큭큭···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안은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 물건을 알아보는 사람은 로버트 부부의 딸밖에 없었다·
“저건···!”
“잘 됐다· 네가 말해봐라·”
이안은 에릭의 여동생을 앞으로 불러냈다·
재판장 가운데로 불려나가게 된 그녀는 몸을 오들오들 떨며 이안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게 어떤 물건인지 설명해주겠니?”
그녀는 덜덜 떨면서도 이안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이건··· 마리아가 오빠한테 준 물건입니다··· 오 오빠를 꼬시기 위해서 준 게 틀림없어요! 아니면 어떤 저주를 걸었거나!”
“그만· 거기까지·”
이안은 그녀를 돌려보낸 뒤 설명했다·
“방금 들었다시피 이건 마리아가 에릭에게 선물한 단검입니다· 물론 어떠한 저주도 없는 평범한 단검이지요·”
“평범하다니· 그걸 어떻게 알지?”
소영주가 묻자 이안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새까만 어둠이 이안의 주변을 회오리치듯 맴돌다 사라졌다·
심약한 주민은 제자리에 주저앉았고 소영주마저 입을 쩍 벌리고 이안의 마법을 지켜보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진 지금 이안은 너무나 쉽게 암영술 마법을 펼쳐보였다·
“제 마법을 걸고 보장합니다·”
“··· 계속해라·”
이안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건 에릭을 ‘꼬시기’위해 준 게 아닙니다· 에릭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마리아의 선물이지요·”
“감사의 마음?”
“죠셉의 말처럼 로버트 부부는 마리아를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그 집에서 마리아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었지요·”
소영주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에릭이군!”
“맞습니다· 에릭은 마리아와 꽤 오래 전부터 썸을 타온 관계입니다·”
이안은 손짓으로 동네 꼬맹이들을 소환했다·
아이들은 이전에 말했던 것과 똑같은 증언을 반복했다·
“마리아 언니는요· 에릭 오빠랑 파엘 오빠랑 친하게 지냈어요!”
“저희가 똑똑히 봤어요!”
이안은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마리아는 에릭에게 선물을 줄 만큼 그를 아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로버트 부부에게 복수하기 위해 에릭을 살해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건···”
소영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애초에 구울을 부리는 강령술사라면 그냥 로버트 부부를 죽여 버리는 쪽이 훨씬 편하지 않은가?
“큭큭··· 재밌는 추측입니다·”
죠셉이 음침하게 웃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마법사님· 저희가 마리아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죠셉은 마리아의 머릿속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는 죽음의 힘을 다루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서는 명백히 죽음의 힘이 느껴집니다·”
소영주가 살짝 동요했다·
르샤흐 경도 눈썹을 꿈틀댔다·
마리아의 동기가 모호하다는 사실은 알겠다·
하지만 마리아는 강령술을 쓸 수 있는데?
구울을 이용한 살해가 가능한 사람은 마리아 한 명밖에 없는데 어쩔?
“마리아에게서 죽음의 신비가 느껴진다는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아니! 그러면 이야기를 계속 할 필요가···”
“하지만·”
이안이 소영주의 말을 끊었다·
소영주는 말이 끊겼음에도 입을 꾹 다물고 이안의 말을 기다렸다·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 마리아는 기절해 있었습니다·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죠셉이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기절’은 결과입니다! 강령술을 사용했기에 기절한 겁니다!”
“아뇨· 마리아는 강령술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외부 요인에 의해 기절한 겁니다·”
“···”
“···”
죽음 같은 침묵이 임시 법정을 뒤덮었다·
소영주도 르샤흐 경도·
로버트 부부와 죠셉까지·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이안을 응시했다·
이안은 조금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만약 마리아가 강령술을 사용했다면· 에릭이 죽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마법사!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마을 사람들은 단체로 충격에 빠졌다·
그들에게 있어 마리아는 썅년이다·
당연히 사형을 논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무죄를 주장하다니!
재판의 흐름은 그들이 바라는 것과 명백히 달랐다·
그래서 누군가가 숨어서 소리쳤다·
“검은 머리! 저 자는 마녀의 편입니다!”
사람들은 이안과 마리아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둘 다 까만 머리와 까만 눈동자···
제국에서 보기 드문 외모의 소유자였다·
여론에 휘둘려 소영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안에게 질문했다·
“호 혹시··· 사실은 강령술사의 편이었다거나···”
“하아· 소영주님·”
이안이 한숨을 쉬자 소영주는 뜨끔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안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소영주를 혼냈다·
“그렇다면 제게 임무를 맡긴 르샤흐 경의 안목이 형편없다 뭐 그런 뜻입니까?”
“뭐 뭣?!”
“르샤흐 경이 바보 병신이라 강령술사를 동료로 데리고 다닌다··· 그런 소리로 들립니다만?”
“아닐세! 절대 아니야!”
소영주는 본전도 못 건지고는 또 입을 다물었다·
이안을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안은 르샤흐 경이 인정한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이안이 무죄를 주장하는 어떤 근거가 있다는 뜻·
“좋습니다· 이쯤에서 목격자의 증언을 들어보죠·”
딱!
이안이 손가락을 튕겼다·
“양치기 파엘은 앞으로·”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인 법정이다·
파엘이 참여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예상대로 파엘은 법정에 참석해 있었다·
“아··· 넵!”
순박한 인상의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이런 자리가 어색한 듯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안은 파엘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양치기 파엘· 넌 마리아의 강령술을 목격했다· 그렇지?”
“옙! 맞습니다! 제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상황을 설명해봐라·”
파엘은 망설임 없이 발언했다·
“산책을 하던 저는 우연히 마리아와 에릭을 발견했습니다· 두 사람은 숲에서 어떤 비밀 이야기를 나누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리아가 쓰러지더니··· 어디선가 구울이 튀어나와 에릭을 찢어 죽였습니다·”
“저는 저게 말로만 듣던 강령술이구나 하고 놀라서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그 이후로는 마법사님도 아시는 대로입니다·”
파엘의 증언에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동요했다·
몇 번이나 들어도··· 범인은 마리아밖에 없었다·
이미 죠셉과 이안이 마리아의 강령술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안은 침착하게 죠셉을 쳐다봤다·
“죠셉· 어떻게 생각하나?”
“··· 전 강령술사가 아니지만· 강령술사가 언데드에 빙의할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죠셉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리아는 구울에 빙의해서 에릭을 살해했습니다· 하지만 미숙한 강령술 때문에 원래 몸으로 제때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잃고 만 거죠·”
“마리아에게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여전히 마리아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나?”
“의도가 있든 없든 살인은 살인입니다· 마리아가 유령의 광기에 사로잡혀 우연히 살인을 저질렀다 한들··· 한 번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죠·”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문장은 잔혹하리만큼 아프게 마리아의 가슴을 후벼 팠다·
‘아아···’
그녀는 금방이라도 법정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내가 그 사람을 죽였다· 라고 소리치고· 잘못을 빌고 싶었다·
하지만·
이안은 마리아에게 말했다·
에릭을 죽인 사람은 네가 아니라고·
얄팍한 거짓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안의 말을 믿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자신이 에릭을 죽이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다면· 넌 마리아가 빙의 마법을 썼다고 생각하는군?”
순간 죠셉은 이안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건··· 아까랑 똑같은 질문이 아닌가?
“네· 썼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질문이기에 죠셉은 똑같이 대답했다·
그때 이안이 이어서 질문했다·
“죠셉· 너는 마리아가 ‘어떤’ 죽음의 신비를 다루는지 아나?”
“··· 예?”
이번에는 대답할 방법이 없었다·
그야 죠셉은 묘지기지 마법사가 아니었으니까·
“죄송합니다· 마법사님· 잘 모르겠습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알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이안은 이어서 파엘에게 질문했다·
“그러면 너는? 넌 현장을 목격했으니 알 수도 있겠군· 마리아가 어떤 죽음의 신비를 다룬다고 생각하나?”
“그게···”
“사소한 것도 좋으니 짚이는 대로 말해 보거라·”
파엘은 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마법사님· 전혀 짚이는 게 없습니다·”
“정말로 짚이는 게 없나?”
“예· 뭐··· 어떤 망령을 부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떤 망령?”
“그냥··· 죽은 유령···”
그 순간·
이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다시 한 번· 꼬맹이들· 앞으로·”
이안은 어린이 증인단(?)을 호출했다·
아이들을 올망졸망한 눈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너흰 마리아가 어떤 유령을 부린다고 생각하니?”
“···”
“···”
어린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왜 애들한테 저런 걸···’
‘애들이 알기나 해?’
마을 사람들은 이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당연히 애들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어떤 어린이가 말했다·
“저 저는···”
어린이의 생각은 이러했다·
“마리아 누나가··· ‘굶어 죽은 유령’을 부린다고 생각해요·”
“···?”
주민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굶어 죽은 유령···?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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